“어머님. 아버님은 식사나 약 먹는 시간이 어떻게 되세요? 알려주시면 알림 설정해둘게요.”

“이 사람 낮에는 대부분 잠들어 있어서 식사나 약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제가 약 먹는 시간에 같이 먹도록 설정해두면 어떨까 해요.”

강북구에 자리잡은 10평 남짓의 작은 아파트. 이곳에서 올해로 여든인 할머니는 치매 어르신 보조기기를 들고 집에 찾아온 사람들의 질문에 이것저것 답합니다. 평생 함께 해온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지는 약 1년 반. 그 기간 동안 할머니는 보호자로 할아버지 곁을 지켜왔습니다. 단정히 앉아 가족과 함께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벽에 놓인 사진에만 남았습니다.

알람을 설정하면 치매인형이 약먹는 시간을 알려준다

데이케어 센서틀 직접 오갈 만큼 건강했던 할아버지였지만, 이제는 치매가 급속히 진행돼 낮의 대부분을 기력 없이 침대에 누워 보냅니다. 삶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만큼 더 좁아보이는 집에서, 할머니는 기억이 흐릿해지는 상황에서 거동까지 불편한 할아버지와 지내왔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는 한 지원사업과 연이 닿았습니다. ‘2020 재가치매노인 보조기기지원사업’입니다. 집에서 생활하는 재가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보조기기를 지원하는 내용이지요. 서울과 인천 경기지역 거주자로, 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 중 해당 지역의 치매 안심센터 등 관련 기관에서 추천한 재가 노인 70명을 대상으로 합니다. 치매노인을 돌보는 데 필요한 맞춤형 보조기기가 1인 200만원 이내로 지원됩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찾아 온 사물친구들

치매노인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보조기기들

할머니는 지원사업 덕에 치매 간병에 도움이 될 든든한 사물친구들을 곁에 두게 됐습니다. 치매 보조기기를 지원하는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와 케어라이프코리아 담당자분들이 집으로 할머니의 간병생활을 함께 할 보조기기를 갖고 온 것이지요.

찾아온 사물친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유용합니다. 실내에서 움직이는 도중 넘어지지 않게 하는 미끄럼 방지 매트, 어두운 발밑을 비춰줄 센서등, 환자를 씻기는 데 도움이 되는 목욕의자,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한 변기 안전 손잡이 등 생활의 편의를 높여줄 지원물품들이 집안 곳곳에 설치되었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효도인형 ‘효돌’도 함께 왔는데요. 케어라이프 이지형 실장님은 사용법에 익숙해지면 치매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될 거라 말했습니다.

미끄럼 방지 매트

“막상 쓰시면 제일 좋아하는 게 이 인형이에요. 보호자의 핸드폰과 인형을 연동해두고 환자의 상태를 살펴볼 수도 있고요.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멘트를 해주기도 하지요. 인형 귀를 누르면 환자분들을 위해 체조를 하게 하거나 기억력 유지를 위한 퀴즈를 내주기도 해요.”

목욕의자와 치매인형 효돌이

강북구 치매안심센터 이은민 간호사는 할머니 집에 종종 방문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할머니의 간병과 할아버지의 투병생활에 직접 도움이 될 물건들을 보며 반가워했습니다.

“어르신이 집 안에서 자주 넘어지셨어요.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혼자 주저앉으실 때가 많아 화장실에 안전 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변기 손잡이가 생겨서 다행이에요. 어머님이 어르신을 목욕시키기 힘들어하셨는데 지원받은 목욕의자 덕에 편하게 할 수 있을 테고요.”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담당자가 야간 센서등을 부착하고 있다


직접적인 도움이 되려는 마음과 노력

각 지원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치매노인 보조기기들. 이 물품들은 치매 가정에게 전달되는 실질적 도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현장에서 보조기기를 사용한 환자들의 사례를 접한 이은민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치매 환자 가정에 방문하면 필요한 것들을 말씀해주시는데, 직접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이번에 저희 센터와 연결된 분들 중에서는 총 7분이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먼저 물품 지원을 받으신 다른 어르신 댁에 방문했는데, 인형을 포함해 다른 보조기기들도 좋아하셨어요.”

강북구치매안심센터 이은민 간호사님

강북구치매안심센터 이은민 간호사

지원가정을 방문해 여러 보조기기를 설치하면서 환자나 보호자들의 반응을 접한 이지형 실장도 의견을 냈습니다.

설치형 안전 손잡이 같은 건 움직임이 불편한 환자분들에게 없으면 안 되지요. 센서등을 활용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발밑을 인지하면 넘어질 순간에 안 넘어지는 효과도 있을 테고요. 효돌이의 경우에는 치매 환자들 중 독거노인분들에게 활용이 잘 되지 싶었어요. 인형으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라 생각하고 옷이나 모자를 입혀주는 분도 있으셨거든요.”

케어라이프코리아 이지형 실장

치매노인의 상황에 맞춰 가정마다 지원되는 물품 종류를 다양화한 것도 더욱 효과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립방석에서 흡착식 손잡이까지 44개의 기기가 마련되었고, 이중 각 지원자의 상황에 맞는 물품이 5개에서 7개 정도 선정돼 전달됐습니다. 이후로는 보조기기를 지원받은 재가 치매노인 가정을 대상으로 사용실태 파악과 만족도 조사, 이에 기반한 사후 서비스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재가치매노인 보조기기지원사업은 환자 본인의 건강을 돌보면서, 동시에 환자를 곁에서 지키는 가족들의 삶을 더 낫게 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치매 노인의 돌봄은 한 가족 혹은 환자 개인이 감당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회가 함께 고민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치매 노인과 그 가족들의 삶에 더 귀기울이고, 더 크게는 국가 차원의 공동체에서 치매환자에 대한 돌봄을 함께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글 ㅣ 이상미, 사진 ㅣ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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