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는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이 숨을 후~후 불며 쉴 수 있도록, 변화의 증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6월은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답을 찾아 노력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질기게 뜨는 에러 메세지에도 전원을 끄지 않고, 끈기 있게 대응해온 사람들을 만나러가요. 😙

“탈시설 지원 주택 코디네이터는 활동지원사에 준해 우선 접종이 필요한데 배제되었네요. 저도 문제 제기 해야겠어요.” 인터뷰 글을 쓰고 있던 아침, 이주언 변호사에게 온 문자입니다. 탈시설 장애인의 경우 코로나19 시대를 어떻게 지나고 있는지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었거든요. 그 사이 여기저기 알아보고, 상세히 내용을 전한 거예요. 현재 진행형인 재난에 대응한다는 건 아마 이런 모습일거라 그려보게 되더라고요.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야 하니까요. 코로나19 확산 초기, 공익변호사들이 모인 ‘장애인법연구회’에서 코로나19와 장애 보고서를 펴낸 이유이기도 합니다.

보고서를 보는 내내 궁금한게 참 많았습니다. 그 사이 변화는 오지 않았을지, 또 아직 남은 과제는 무엇일지, 다음 재난에 대비해 무엇을 해야할지도요. 직접 만나 들어보기로 했어요. 인강재단 비리 소송, 지하철 승강기 설치 소송, 탈시설 연구 등 장애인권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이주언 변호사의 분투기를 전합니다.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

사단법인 두루 이주언 변호사


지하철 리프트의 공포는, 강렬했어요.

Q. 앞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장애인권 관련 소송을 많이 진행해오셨는데요. 처음 장애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대학생 때 장애인 야학에서 자원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어요. 뇌병변 장애인 학생들에게 국어나 사회를 가르쳤거든요. 그때 학생들이랑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어울리게 됐죠. 언젠가는 학생 한 분이랑 휠체어로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엘레베이터가 없는 곳이라 계단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를 타야했어요. 옆에서 보는데 저도 타보고 싶더라고요. 수동 휠체어여서 같이 올라갔는데 너무 무서운거예요. 내리자마자 ‘이거 어떻게 계속 탈 수 있냐, 너무 무섭다’고 했죠. 그랬더니 그 분이 ‘무서운거보다 쪽팔려죽겠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정말 다 쳐다보더라고요.

Q. 리프트에서 나던 소리, 저도 기억나요. 지금은 소리가 안나지만 위험은 여전하잖아요. 얼마전 리프트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하기도 하셨어요. 좀 더 설명해주신다면요?

A. 예전에 리프트에서 나던 소리가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져, 소리가 사라졌어요. 그럼 이제 남은건 리프트의 공포거든요? 실제로 서울 신길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추락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손해배상소송과 함께 지하철 역사 내에 리프트 대신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죠. 소송을 응원한 장애인들은 리프트를 살인기계라고 불렀을 정도예요. 기나긴 과정을 거쳐 리프트만 두는건 차별이라는 점을 확인받았고, 문제제기한 역들에 승강기가 설치되었거나 설치되고 있어요.

Q. 오랜 기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문제제기가 쌓이면서 현실은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두루에서 진행하신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서울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린 ‘인강원’ 소송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두루에서 맡은 첫번째 사건이기도 했거든요. 장애인들을 때리고 정부 보조금을 빼돌려 논란이 됐는데, 당시 인권위에서 직권조사를 하고, 운영자와 학대 가해자에 대해서도 고발에 들어갔어요. 그 외에도 별의별 소송이 굴비처럼 엮여 있었습니다. 기존 인강원의 이사 해임 명령을 다투는 소송도 있었고, 시설폐쇄를 둘러싼 문제도 있었죠. 해임명령을 받은 이사들을 대신해 공익이사들이 거기에 들어가게 됐는데, 소송이 계속 들어오니까 처음에는 시설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문 붙들고 들어가게 해달라 실랑이도 했었고요. 지금은 공익이사님들이 노력을 해주셔서 인강원이 탈시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곳으로 바뀌었어요. 거주장애인들이 여전히 있지만 자립욕구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또 지원하고 있죠.

메르스에서 나아가지 못했다면, 코로나19에서는 꼭 나아가야죠.

Q. ‘코로나19와 장애’ 보고서에 메르스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그 사이 개선된 것들이 없었던 건가요?

A. 메르스가 확산되던 당시에는 장애인을 고려한 매뉴얼이 없었어요. 뇌병변 장애인 한 분이 입원한 병원에서 환자가 나오는 바람에 자가격리가 시작됐는데, 활동지원사 없이 2주나 버텨야 했죠. 당시 장애인에 대한 감염병 예방 대책을 마련하라며 낸 소송이 여전히 진행 중이예요 메르스 때 마주한 문제들이 해결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아쉽죠.

Q.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결국 오늘까지 온 것 같아요. 특히 집단 감염 등이 문제가 되면서 탈시설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데요. 탈시설의 가치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A. 최근에 대구에서 탈시설 관련 토론회를 했어요. 당사자가 ‘삶이 선택의 연속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시설에서는 정해져있는 것을 먹여주고, 틀어주는 TV프로그램을 보고,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았대요. 시설에서 나와보니 웬걸, 아침 메뉴부터 대중교통 수단, 신발까지 본인이 정할 수 있다는 거죠.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이 ‘오늘 점심 뭐먹지?’인데, 그런 고민의 기회조차 박탈된 게 시설이라고 생각해요.

Q. 얼마전 발의된 탈시설 지원법안에는 사단법인 두루의 연구 내용도 반영되었다고 들었는데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A. 단순히 시설 밖으로 나와서 사는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책을 담고 있는 법안입니다. 10년안에 단계적으로 시설을 축소, 폐쇄하는 내용도 담겨있다보니 우려의 목소리도 있어요. 시설 종사자의 일자리, 돌봄 공백 등을 걱정하시는거죠. 제 생각에는, 기후변화에 있어서도 정의로운 전환이란 말이 있는것처럼, 탈시설도 같은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탈시설을 인정하고 법적인 근거를 다져나가되, 시설 폐쇄 이후의 일자리 보장 등을 지원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넘어야 될 산은 많지만 하나씩 풀어가야 할 주제라고 생각해요.

끝이 아닌, 대전환의 시작이 되려면 계속 가야해요.

Q.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장애인 자립을 위한 자립형 생활주택과 전문인력 등을 지원하고 있어요. 코로나19 확산 당시 자립 생활을 이어가던 장애인들은 어떤 상황과 마주했을까요?

A. 자립을 시작하면 활동지원등급을 받아야 하거든요. 코로나로 복지 행정이 멈추면서 절차가 진행이 안됐어요. 아픈걸 혼자 참다가 응급실에 실려가고 했던 사례도 있고요. 백신 접종 관련해서도 공백이 보여요. 탈시설 지원주택에서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투약관리, 은행업무 등을 담당하는 코디네이터가 우선 접종에서 배제되었어요. 좀 더 문제제기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일부 지역에서는 시설 보호를 명목으로 예방적 코호트를 하기도 했고, 일년 반 이상 면회나 외출이 안되고 있는 곳도 있어요.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이 있어도 정보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인거죠.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코로나19와 장애’ 보고서를 기반으로 살펴봤을때, 보건복지부 매뉴얼이 코로나19 상황에 맞게 비교적 상세한 안내 등을 담고 있으며, 개정도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매뉴얼인만큼 구속력에 한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매뉴얼이 현장의 실무자들에게 적용되려면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나요?

A. 말씀하신 것처럼 보건복지부 매뉴얼이 상세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따르지 않거나 또 모른다는 점이 아쉽죠. 사실 해외 가이드라인에서도 강조하는건 장애에 대한 이해와 교육, 인식개선이거든요.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매뉴얼이 좀 부족하더라도 현장에서 인권을 지키며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굵직한 의제 외에도 일상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몇 가지 소개해주신다면요?

A.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차별을 개선하는 소송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현재는 영화관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장애인들도 영화를 볼 수 있게 접근성을 높여달라는 내용입니다. 화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는 화면해설,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자막이 있어야만 하거든요. 2016년에 시작한 영화관 소송은 1심에서 이겼고 2심 중입니다. 7월에 마지막 재판하고, 8, 9월쯤 결과가 나올거 같아요. 식당 까페 같은 공중이용시설을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1층이 있는 삶’ 프로젝트도 하고 있는데요. 소송과 함께 의원실과 법개정도 준비하고 있어요.

Q. 장애인 인권 운동의 전체 역사에서 코로나19란 어떤 존재로 기록될 것이라 보시는지요?

A. 개인적으로는 대전환의 시기로 기억이 되면 좋겠어요. 코로나로 시설 중심의 장애인 정책이 얼마나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는지 목격했으니까요. 취약한 곳에는 더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탈시설로의 대전환이 이뤄지는 시기였으면 합니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