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익 선생님은 1925년 봉화에서 나셨고 2004년 12월 19일 돌아가셨습니다. 전우익 선생님은 농사를 지으며 대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고 자리를 매며 인생을 배운다고 하셨습니다. 뒤늦게 나무에 반하여 사는 보람을 또 하나 알게 되셨다는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알게 해 주신 어르신입니다. 생활 속에서 발견한 자연의 섭리와 세상살이의 이치를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사람이 뭔데》에 풀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책 수익금으로 아름다운재단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기금’의 씨앗 기금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잠시 고향에 내려와 있는 동안 마당에 텃밭을 가꾸고 있다. 집안에 씨를 들이고 그것들이 움터 자라는 걸 보며 새삼스레 배우는 게 있다.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가꾸는 곡식들이 아니라 뽑아도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생명력 질긴 잡풀들에게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풀들도 제각기 자신들만의 독특한 생존방식이 있는 모양이다. 옥수수처럼 줄기가 길고 가는 외떡잎식물들 곁에는 대개 바랭이나 달개비가 붙어살고, 콩이나 감자 같은 쌍떡잎식물 곁에는 어김없이 까마중이나 비름, 명아주가 공생한다. 만일 바랭이나 달개비가 감자밭에 있었다면 금세 눈에 띄었을 테지만 그네들은 마치 카멜레온이 보호색으로 자신을 감추듯 자신과 가장 닮은 곡식 곁에 은둔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곡식과 풀을 가르는 것은 순전히 사람들의 기준이건만 그런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가다 보니 풀들도 곡식과 어우러져 사는 법을 체득한 모양이다. 들풀, 약풀에게 배우다 풀들에게 배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풀을 뽑을 때도 얼마나 정성을 쏟아야 하던가. 풀뿌리와 손아귀 힘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아야 하던가. 눈엣가시처럼 얼른 뽑아버려야겠다는 마음에 잎사귀 몇 개만 움켜쥐고 잡아당기면 줄기만 똑똑 끊어지기 일쑤다. 모질고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이 일어선 뿌리의 힘을 함부로 무시한 탓이다. 그럴 때면 “바랭이?달개비?비름?명아주를 뽑을 때 힘은 각각 다릅니다. 인간이 제 마음대로 하면 중간에서 끊어집니다”라고 했던 전우익 선생의 말씀이 죽비처럼 어깨를 때린다. 전우익은 누구일까. 풀 한 포기를 뽑는 데도 그런 정성과 이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그는 누구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기껏 책날개에 적힌 소개 글 몇 줄로 그와 그의 삶을 짐작할 뿐이다. 전우익 선생은 1925년 경북 봉화에서 대지주의 손자로 태어났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에 고등 교육까지 받은 이 지식인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그는 ‘우익’이란 이름과 달리 ‘좌익’활동에 연루돼 6년 남짓 옥살이를 해야 했다. 어수선한 해방정국에서 그를 차가운 감옥으로 내몬 건 사회안전법이었다. 그 후 오랜 옥살이 끝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그의 몸이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한때 주거 제한을 당하는 보호관찰자여서 지척에 있는 이웃 마을 안동엘 가는데도 먼 길을 돌아 봉화경찰서까지 나가서 허가를 받아야 했다. 올해로 팔순이 된 그는 고향에서 40여 년째 홀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그의 소박한 삶은 모두 자연으로부터 비롯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부들로 자리를 매며 인생을 배운다. 나무를 자식처럼 기르고 고사목이나 버려진 나무토막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에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등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런 그가 책을 썼다. 낮에는 농사짓고 부들 매고 나무토막을 다듬는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펜을 들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이다. 물질에 기대어 홀로 우뚝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인간 중심의 사고에 길들여져 ‘인격’만 주장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 늦게 가더라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라고 귀띔하기 위해서이다. 산골 마을에서 은둔하듯 살아가던 이 ‘고집쟁이 농사꾼’이 금속성 문명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약초처럼 귀한 소리, 약초처럼 쓴 소리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자연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지혜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사람이 뭔데》(모두 현암사 발행) 그가 농사지으며 틈틈이 쓴 글을 1993년부터 이태 혹은 예닐곱 해 간격으로 묶어 세상에 내보낸 책들이다. 편지글이어서일까, 평소 입말이 맛깔스레 살아난 글들은 ‘전우익 표’ 책들의 미덕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그가 조근조근 해 주는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는 잘 알려진 것처럼 모 방송사의 책읽기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모은 책이다. 1993년에 초판이 나온 걸 생각하면 뒤늦은 감이 있지만 늦게나마 진가를 인정받았으니 퍽 다행스런 일이다. 이 책은 그가 소중한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모음이다. 주로 농사일과 농촌 생활에서 길어 올린 알토란 같은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은 것인데 도라지와 나무를 심고 가꾼 이야기, 부들로 자리를 매며 깨달은 세상의 이치를 들려준다. 아울러 노신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고찰과 독후감들도 이어진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가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자연에서 얻은 삶의 지혜와 철학을 담았다면,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는 나무에 대한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담았다. 첫 책에서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임을 일깨워준 그가 이번엔 뿌리 깊은 나무처럼 ‘진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을 쏟아 놓는다. 이쯤 되면 나무 예찬을 넘어 나무로 철학하기쯤 되는데 나무에 대한 그의 사랑은 참 따스하고 애틋하다. 특히나 오랫동안 그의 눈길을 잡아끄는 나무들이 있으니 바로 말라죽은 나무와 버려진 나무토막들이다. 고사목(枯死木), 말라죽은 나무를 보며 그렇게 이렇게 말한다. “죽었다는 게 뭘까, 진짜 죽었는가, 인간들이 죽었다고 단정해서 잘라 켜 다듬은 나무가 향기를 뿜어내고 빛깔을 바꿔 가며 자꾸 변해 가는데 어째서 죽었다 할까.” 그런가 하면 나무토막을 바라보며 못나고 모자란 것들 자투리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기도 한다. “나무도 큰 것보다는 작은 토막이 더 아름다웠어요. 자연도 작은 걸 더 아끼고 보살피나 싶데요. 작은 것이 알뜰살뜰 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크면 듬성듬성 살 수밖에 별도리 없지요. 토막, 자투리, 조각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했지요.” 나무를 바라보는 그의 웅숭깊은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말들이 아니겠는가. 첫째, 둘째 권과 다소 시차를 두긴 했지만 전우익의 세 번째 지혜걷이 《사람이 뭔데》도 흙을 일구고 나무를 가꾸며 살아가는 소박한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그는 “맨날 해봤자 그놈의 소린 그놈의 소릴 수밖에 없는데 또 지껄였습니다” 하고 겸손해 하지만 풀과 나무에 대한 관심이 사람에게로, 마침내 자연과 사람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모둠살이로 모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참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의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조금 느린 듯 겸손하게, 단출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일까? 하지만 분초를 다투는 시대에 더욱이 도시인들에게 그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헌데 그는 인생도 삶도 과정이지 결과는 아닌 듯하다고 말한다. “과정은 조급함보다는 느긋함이고, 그 과정은 길수록 좋고, 과정에서 삶은 이루어지고 결과에선 삶을 그르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곱씹다보면 우리는 그동안 과정이 생략된 시대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과정은 간과한 채 오로지 결과만 바라보며 달려왔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현재를 잃어버린 채 미래를 살고 있는, 그것이 삶이라고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화두를 던진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여기서 그가 말하는 ‘혼자’는 여러 의미를 지녔다. 사람살이로 보자면 이기주의를 빗댄 것이기도 하고, 자연이라는 커다란 울타리에서 본다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동물과 식물,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을 두루 아우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인권에만 매달린 사람은 가짜요, 목권(木權) 옥권(屋權) 산권(山權) 강권(江權) 천지만물에 두루 성스러움과 존엄이 깃들어 있음을 알고 받들고 대접하는 게 참사람”이라고. 그는 또 참된 뜻의 큼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달고 있던 뿌리를 과감히 잘라 버려야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제도나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바뀐 토대 위에서 제도가 새로워지는 것이 진짜 발전이지요. 사람은 그대로인데 제도만 바뀌어서야 페인트칠 색깔만 바뀐 가짜가 아닐까요?” 그의 이러한 생각은 노신의 사상, 특히 개인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가 노신의 개인주의에서 받아들인 것은 개인의 자기 확립과 개성 존중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시작도 개인주의에서 비롯한다고 그는 말한다. 즉 주체적인 개인들의 자립적인 연대에서 공동체의 희망이 싹튼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자전과 공전론’으로 정리한다. “역사가 뒤틀리고 개인의 삶이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 공전과 자전을 알맞게 하지 못한 데서 오는 듯합니다. 우리가 자전에만 힘쓰다 보니 돌아가기는 제법 돌아가는데 공전과 떨어져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공전(空轉)이 되어 버리고, 일부 사람들은 자전은 안 하면서 공전에만 열중해서 역시 공전(空轉)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주장하는 진정한 개인주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립적 연대는 그리 거창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서로 부담감 주지 않고,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다. 책에도 인용돼 있듯 신영복 선생은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곧 우리들의 심신의 일부분을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 묻는 과정”이라 했다. 묻는 것은 씨앗을 뿌리는 것이고, 나눔은 확장이고 팽창이다. 작은 씨앗 하나가 자라 마침내 숲을 일으킨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은 언젠가 길이 되는 것이다. 박옥순 늦깎이로 대학을 졸업한 후 글을 쓰고 만지는 얕은 재주로 스스로 부양하며 세상과 만나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순박한 부모님은 내가 공무원이 되지 못한 걸 내심 안타까워하셨으나 이제는 그분들도 짐작하고 있다. 나에겐 앞날이 훤히 내다보이는, 대체로 평온한 생활이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삶은 자신의 존재에 미학을 부여하기 위한 부단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현재에 오롯이 깃들이기 위한 머뭇거림, 그것이 바로 삶의 비의(秘意)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