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여성가족 아이돌봄지원사업과 함께하고 있는 돌봄선생님들은 돌봄이 ‘돌봄 그 이상의 행복’이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부모여성가족의 돌봄공백을 채워주었던 시간 속에서 아이와 엄마 모두 심리, 정서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직접 체감했기 때문이다. 한부모여성가족 아이돌봄지원사업에 참여한 세 분의 돌봄선생님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돌봄선생님은 중장년 여성 중 아동교육이나 가정 내 아이돌봄 경험이 있는 유경험자를 우선 선발했다. 서류검토와 대면 면접을 거쳐 다양한 적합성을 종합평가 후, 40시간의 직무교육으로 전문성을 높였다. 2022년 비슷한 시기에 아이돌봄지원사업에 투입된 신경주, 홍선희, 그리고 2023년부터 참여한 박선미 선생님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정년퇴직 후에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일자리를 찾다가 제가 사는 지역의 여성인력개발센터를 통해 구인내용을 접하게 되었죠. 사실 이런 돌봄선생님을 전문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 겁도 났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특히 한부모 가정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이나 성평등 교육이 굉장히 유익하더라고요. 종이접기, 점토 만들기 같은 놀이는 현장에서 아이들과 친근감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신경주
“가사도우미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아이돌봄교육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40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는데 교육을 받다 보니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돌봄선생님으로 일을 하게 되었어요.” -홍선희
“저는 예전에 아이돌봄서비스 관련 교육을 이수했어요. 청소년 교육을 공부하던 중에 다문화센터 대표님께서 한 아이를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권하셨어요. 제가 딸이 둘인데, 둘째 딸과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동갑이더라고요. 인연이라는 생각에 선뜻 응했죠. 처음에는 보수를 받지 않고 봉사로 시작했는데 아이돌봄지원사업 돌봄선생님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박선미
아이들과 호흡을 맞춰갈수록 보람도 커졌어요.
아이돌봄지원사업은 ‘맞춤돌봄’이 특징이다. 돌봄선생님은 주3일 회당 3시간, 또는 주말 긴급돌봄으로 하루 9시간 등 각 가정에서 필요한 시간에 방문해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각 가정 상황에 맞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주 3회, 3시간씩 중국인 할머니와 사는 9살 아이를 돌봤어요. 부모님은 청각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와 떨어져 지내고 있었고요. 저는 보육보다는 학습 중심으로 돌봄을 진행했어요. 할머니가 한국말이 서툴다 보니 공부나 숙제부터 학교생활 전반을 살펴주길 원하셨거든요. 알림장이나 가정통신문 확인, 준비물도 챙기고, 학교상담도 직접 갔어요. 제 딸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여서 더 많은 부분을 신경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선미
“제가 방문한 가정은 엄마가 늦깎이 대학생이라 공부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토요일 9시간 동안 13살, 4살 형제를 돌봤어요. 주된 업무는 생활지도와 정서케어였어요. 첫째는 ADHD가 있어서 깊은 대화에 어려움이 있었고, 둘째는 말이 느린 편이라 아이들이 엄마가 없는 동안 마음 편하게 있었으면 하더라고요. 첫째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했고, 둘째는 동화책 읽기로 말문을 틔워주려 노력했어요. ” -신경주
“캄보디아에서 온 한부모여성의 가정에 주 3회, 3시간씩 출근했어요. 13살, 7살, 2살 아이가 있는 집이었는데 주로 7살, 2살 아이들을 돌봤어요.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이들이 잘 따라주더라고요. 손 씻고 밥 먹기, 양치하기 같은 기본적인 생활지도와 한국어 학습에 신경을 썼어요. 아이가 감기에 걸리거나 아플 때 병원에 데려다주기도 하고요.” -홍선희
세 사람 모두 수년간 아이를 키워온 ‘육아 고수’이기에 각자의 돌봄 철학이 있었고, 이를 아이돌봄지원사업 수행에 접목해 아이들을 대했다. 서로 철학은 다르지만, 뜻은 하나로 통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되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것이다.
“아이들은 약속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려 했어요. 예를 들어 ‘문제집을 다 풀면 아이스크림을 사줄게’라고 약속했다면 꼭 지켰어요. 또 한 가지는 아이들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려 노력했어요. 캄보디아에서 왔으니 한국 생활에 어려움이 얼마나 많겠어요. 육아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들어주고, 직접 나서 해결해주기도 했죠. 저에겐 간단한 일이, 아이 엄마에게는 큰 도움이 될 때가 많더라고요.” -홍선희
“이용자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가지 않는 것과 물건이나 음식에 손대지 않는 것이 제 돌봄 원칙이에요. 편안한 사이라 해도 서로 지켜야 할 선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돌봄 시간에는 정해진 위치에서만 아이를 돌보려고 했고,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직접 손대지 않고 아이에게 가져오도록 했어요. 기본을 지키는 건 신뢰를 쌓는데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아이가 스스로 자립해 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과정이기도 해요.” -박선미
“저는 두 가지를 지키려고 했어요. 첫 번째는 ‘출근 시간을 정확히 지키자’, 두 번째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자’요. 근태는 근무의 기본이니 당연히 지켜야 하고 ‘안전’은 아이돌봄의 0순위라고 생각하거든요. 사고는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날 수 있잖아요. 위험하거나 불안한 요소가 없는지 늘 살피면서 아이를 돌보려 했어요.” -신경주
아이들이 주는 사랑에 절로 책임감이 생겼어요.
돌봄선생님들은 한부모여성가족 아이돌봄지원사업의 차별화된 장점으로 ‘자율성’을 꼽았다. 다른 돌봄사업의 경우 매번 돌봄 후 서류를 작성하거나, 시간 제약이 있는 등 까다로운 사항이 많아 보수적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밖에 없는데 한부모여성가족 아이돌봄지원사업은 자율성이 있어 편안한 분위기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율성은 자연스레 책임감이 샘솟는 계기가 되었다. 돌봄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한 노력을 했다. 홍선희 씨는 아이들 학습을 위한 문제집이나 글씨교정을 위한 교정노트를 선물해 도움을 줬고, 신경주 씨는 동화를 잘 읽어주고 싶어 동화구연스토리텔러 자격증을 취득했다. 박선미 씨는 돌봄이 없는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어 아이와 함께 외출했다. 내 주머니를 털어 아이를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단순한 직업, 그 이상의 보람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이돌봄지원사업은 근무시간만 채우면 그만인 일과는 달라요. 아이들이 주는 생기가 대단하거든요. 둘째 아이는 제가 집에 방문하는 시간에 맞춰 문을 열어놓고 기다려요. 아파서 누워있다가도 제가 가면 얼른 일어나서 안기고요. 집에 갈 시간이 되면 가지 말라고 옷깃을 붙잡죠. 아이와 정이 붙으니까 일도 더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다가가면 몇 배로 사랑을 주니까요.” -신경주
“일곱 살 아이가 처음 만났을 때는 전혀 몰랐던 구구단을 지금은 술술 외워요. 글씨도 몰라 볼 정도의 악필이었는데 지금은 단정하게 잘 쓰고요. 요즘은 집에 가면 글씨교재를 스스로 들고 와서 자랑스레 보여줘요. 두 살이 된 막내는 누워있을 때 돌봄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걸어 다니고, 더듬더듬 말도 해요. 아이의 성장을 온 몸으로 느낄 때, 이 일을 하기 참 잘했구나 싶어요.” -홍선희
“아이를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가면 ‘선생님!’ 하면서 환한 얼굴로 뛰어와 안겨요. 공부나 숙제를 시킬 때 하기 싫다고 입을 삐죽거리다가도 금방 웃으며 애교를 부리고요. 아이가 예쁘니 하고 싶다는 게 있으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해주고 싶더라고요. 복지관이나 문화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도 알아보고, 최대한 많이 참여시켰어요. 아이가 웃으면 저도 웃게 되니까요.”-박선미
돌봄선생님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동안 잊지 못할 순간도 많았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한부모가정의 집에 물이 차 동사무소며 구청을 쫓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청각장애 부모를 가진 아이가 중이염에 걸리자 완치될 때까지 가슴 졸이기도 했다. 스승의 날에 받은 손편지와 선물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대화를 어려워하던 아이가 속내를 털어놓은 날에는 하늘을 날 듯 행복했다.
아이가 밝아진 만큼 엄마도 밝아지더라고요. 돌봄의 마법 같아요.
아이돌봄지원사업은 각 가정의 한부모에게도 의미 있는 변화를 불러왔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자기계발에 힘쓰게 되었고 마음 또한 풍요로워졌다. 실제로 캄보디아 국적을 가진 엄마는 돌봄기간동안 오랜 목표이던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엄마는 장학금을 받았다. 몸이 아팠던 할머니는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아이 양육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엄마도 있다. 이런 변화를 보며 돌봄선생님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이돌봄사업이 참 영양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마치 달걀 같다고 할까요?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날달걀처럼 조심스러웠다가 점점 무르익을수록 삶은 달걀처럼 안정감이 생겼죠. 아이들도 돌봄선생님도 함께 하는 시간만큼 내면이 단단해졌고요. 이렇게 영양가 있는 일을 하게 되어 참 좋아요.”-신경주
”돌봄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이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이에요.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의 쓰임을 재발견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홍선희
“아이에게 제2의 부모가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케어하고 마음을 나누다 보니 자식 같더라고요. 아이와 놀이터에 나갔다가 아는 엄마들을 만나면 ‘우리 셋째야’하고 소개하곤 해요. 마음으로 낳아 기른 아이라고 말이에요.” -박선미
돌봄선생님이어서 행복했습니다
돌봄선생님들은 새봄선생님, 천사선생님, 행복선생님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용자 가정에서 아이와 엄마가 직접 지어준 선물이다. ‘나로 인해 가정이 변화된 걸 보면서 큰 행복을 느꼈다’라는 선생님들께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이제 곧 한부모여성가족 아이돌봄지원사업은 올해의 사업을 마무리하고 잠시 동안 내년도 사업을 위해 재정비 시간을 갖게 된다. 돌봄선생님들은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돌봄사업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아이를 놓고 나가면 뒤통수가 늘 따가웠는데 선생님이 오고부터는 맘 편히 나갈 수 있어 좋다고 했던 아이 엄마의 말이 떠올라요.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함께 했던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행복했습니다.” -새봄선생님 신경주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많잖아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 번씩 외출도 할 수 있고, 필요한 게 있으면 사줄 수 있도록 운영비나 지원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더 여유롭고 풍성하게 우리 아이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선생님 박선미
“지금보다 돌봄 시간이 좀 길어졌으면 좋겠어요.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많거든요. 아이와 엄마 그리고 돌봄선생님은 하나의 팀이었어요. 그 행복한 팀워크를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하고 소망해 봐요.”-천사선생님 홍선희
글 | 김유진
사진 |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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