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까닭에 설명할 게 많은 인생은 피곤했다. 자세히 설명한다고 더 환영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설명하는 일은 분명 손해였다.’

소설 ‘완벽이 온다’의 문장입니다. 이야기는 그룹홈에서 자란 네 명의 청년들이 사회로 나오며 전개됩니다. 거주지도, 양육자도 달랐던 청년들은 다름이 약점이자 결점이 되는 사회에서 서로의 불완전함을 안아주며 가족이 되어갑니다. 부서지고, 깨어지더라도 한번 더 믿어보기로 한 그 마음 안에서 관계를 회복해 나가죠.

‘완벽이 온다’로 제2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을 받은 이지애 작가는 미술치료사로 일하며 틈틈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누구보다 진한 위로를 건네준 이지애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소설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벽이 온다' 이지애 작가와 후후

‘완벽이 온다’ 이지애 작가와 후후

자신만의 ‘완벽’을 찾아 나가는 청년들을 향한 응원

Q. 소설은 자립준비청년 민서, 솔, 설, 해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여러 인물 가운데에서도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배경이 있을지요?

A.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그룹홈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을 마주할 기회가 있었어요. 아이들의 불안에서 나오는 행동과 말을 보고 그 상처를 아프게 느꼈고, 미안하고 걱정도 되었어요. 이때의 경험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어서 자연스럽게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게 된 것 같습니다.

Q. 해서의 임신 이후 청년들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기는데요. 해서의 임신을 다루면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A.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잘못 쓸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 됐어요. 예전에는 해서 같은 동생이 있으면 출산을 말렸을 텐데요. 소설을 쓰면서 ‘개인의 선택일 수도 있겠구나,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평가하는 태도로 바라본 거죠. 해서가 아이를 품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까 해서의 임신에 대해서 말을 보태거나 할 일은 아니다 싶었어요.

Q. 소설 제목인 ‘완벽이 온다’의 뜻이 궁금해요. 해서 아이의 태명이 ‘완벽’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완벽’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완벽이 온다는 건 자신의 완벽을 찾는 것이기도 하고요. ‘완벽’의 기준은 성장하면서 계속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소설에서는 민서라는 주인공(화자)이 절친한 언니인 솔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았던 당시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럼에도 한번 더 믿고 관계를 유지하기로 하죠. 민서에게 ‘완벽’이 온다는 건 믿음이 온다는 의미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기가 선택한 관계 속에서 지지고 볶고 사랑하길”

Q. 그룹홈을 퇴소한 이후 청년들이 가족이 되는 서사를 쓰셨는데요. 서로 관계맺고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 이유가 있을까요?

A. 소설을 쓰기 전에는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가 세상에 대한 믿음을 구축하는 데, 또 사회에 안정적으로 서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 속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살아온 만큼 상처를 회복할 수 있을까 절망감을 많이 느꼈는데요. 민서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가족이나 부모와 신뢰를 맺지 못하더라도 새롭게 선택한 관계 속에서 믿음을 회복할 수 있겠더라고요. 무엇보다 관계를 구축하고 회복했으면 하는 생각에 아이들이 모여서 사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Q. 소설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이 나오잖아요. 그런데도 가족이 될 수 있었던 성격이나 장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관계가 이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건 상처예요. 가까워지면 불안해지거든요. 그런데 사람이다 보니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도 계속 올라와요. 성장하고 싶은 에너지를 방해하는 것도 상처고요. ‘민서’가 제일 잘한 점은 그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을 외면하고 덮지 않았다는 거죠. 민서는 자신이 아끼는 해서나 솔에게 다시 상처받을 수 있을 텐데도 기꺼이 먼저 연락하고 행동해요. 본인이 뭔가 하겠다고 마음먹는 의지가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동기가 되어준 것 같아요.

Q. 민서, 솔, 설, 해서처럼 사회에 나올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A. 자기가 선택한 관계 속에서 지지고 볶고 사랑하길 바라고, 자신을 돌보고 여력이 된다면 돌보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자신에게 잘해주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기를 먼저 잘 돌보면 어느샌가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일테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패는 성장의 원동력이자, 아주 작은 부분일 뿐

Q.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여러 장르가 있었을 텐데 소설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소설은 제가 만든 허구의 세상에서 제 감정을 담을 수 있어서 쓰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그림으로 해소했는데 소설이 훨씬 더 구체성을 가지고 제가 구체적인 감정들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저에게 좋은 도구였던 것 같아요. 마치 대나무 숲 같은. 소설을 쓰면서 또 저조차도 몰랐던 저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이걸 쓰고 있네, 내가 여기에 관심이 많았네, 이게 무척 마음이 아팠었구나.’ 하는 것들이죠.

Q. 소설을 읽다 보면 에세이처럼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미술치료사라는 일이 소설을 집필하는 데도 영향을 주었을까요?

A. 미술치료사 일한 경험 때문에 ‘완벽이 온다’를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미술 치료를 하면 타인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니까 다른 사람의 고민과 감정이 저한테도 쌓이잖아요. 저도 그걸 풀어내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미술말고 다른 도구를 찾았던 것 같아요. 또 미술치료를 하면서 일지를 매일 쓰거든요. 누군가를 관찰하는 시선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배제가 되어야 해요. 아마 그렇게 서술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성장소설인 만큼 아무래도 청소년들이 주요 독자일 것 같은데요. 글을 읽을 청소년들에게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소설을 다 쓰고서는 느낀 건데 민서가 하는 그 모든 일련의 실패들이 실패처럼 보이지 않았어요.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과정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러나 부분만, 또 어떤 잣대로만 보면 그게 실패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청소년들이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실패를 경험했을 때 자신을 실패 자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고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건 어른인 저도 힘든 일이지만 청소년기의 실패는 성장의 원동력이자 아주 작은 부분이기 때문에 내가 한 경험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많이 실패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김선우 매니저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