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의 당사자 캠페이너로 활동하면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두렵고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렵고 걱정스러운 감정은 옅어 졌다. 대신 그 자리에 ‘용기’가 들어왔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나의 ‘열여덟, 내 인생’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들 덕분에 더 이상 용기를 내지 않는다. 그저 내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할 뿐이다.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어준 존재들처럼, 이제는 내가 또 다른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싶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자리준비청년이자 싱어송라이터 이요한 님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이 선선한 바람을 타고 안전한 땅에서 예쁜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민들레홀씨’라는 노래로 만들었다. 영상 작업을 하면서 들었던 고민과 생각을 나누면서 ‘열여덟, 내 인생-이요한’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
처음 시작하는 일은 언제나 떨리는 마음이 동반된다. 요한님과 온라인으로 처음 만난 날도 어찌나 떨리고 긴장되는지 일주일 전부터 요한님에게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두 시간 안에 다 물어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 질문지가 완성되었다. 드디어 온라인에서 처음 만나는 날, 어색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손자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요한입니다.”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준비한 질문들을 마구 쏟아냈다.
이름의 뜻은 무엇인지, 언제 자립했는지,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는지 등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3년간 나의 이야기만 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이었다. 아차! 싶었다.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 라는 질문 대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라고 질문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는 빼곡하게 준비했던 질문지는 접어두고 요한님이 말하는 삶의 이야기를 따라갔다. 듣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 인터뷰가 이어졌다. 요한님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칭찬에 대한 기억’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음악수업, 갑자기 누군가의 이름이 호명 되었는데 바로 요한님 이었다. 요한님은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동구 밖 과수원길’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난 후 친구들과 선생님의 박수가 쏟아졌다. 요한님은 자신에게도 남들처럼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요한님은 지금까지 가수의 꿈을 꾸고 있다.
요한님의 경험은 내 삶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교에서 처음 100점을 받고 온 날, 양육자가 내게 해준 첫 칭찬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때 받았던 칭찬과 인정의 말이 너무 기뻐서 말이다. 그때 들었던 박수 소리와 잘 한다는 칭찬은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킬 정도로 어쩌면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누군가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야기를 잘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었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녹취록을 풀고, 삶을 입체적으로 보기 위해 마인드맵을 그려갔다. 마인드맵을 그리면서 요한님이 직접 제작한 ‘민들레 홀씨’ 노래를 검색해 들었다. ‘민들레 홀씨’는 요한님의 삶의 이야기이자, 자립준비청년들의 이야기다.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가사를 써 내려갔을 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요한님의 이야기를 더 잘 담고 싶어요
온라인으로는 다 나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더 들어보고 싶었다. 한번 더 만나자는 연락에 요한님이 흔쾌히 응했다. 요한님이 일하고 있는 동네로 넘어가서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갔다. 어색할 줄 알았던 만남은 편안했다. 비슷한 형태의 양육시설에서 자라서 그런지 금방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어린시절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웃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에서는 같이 속상해하기도 했다. 만남의 끝에는 현재 가지고 있는 삶의 고민들을 꺼냈다. 음악이 좋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음악을 계속 해도 되는 건지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요한님의 이야기가 저번과는 다르게 들렸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 사이에는 생의 문제가 겹쳐 있었다. 두번째 만남 덕분에 단편적으로 생각했던 요한님의 삶을 더 깊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 만남 그리고 세 번째 인터뷰
촬영 2주 전부터 어디서 촬영을 하면 좋을지 스튜디오를 알아보고, 영상 구성안을 작성했다. 어떻게 인터뷰를 하면 좋을지, 추가적으로 필요한 화면에 어떤 영상과 그림이 들어가면 좋을지 매니저님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수정하고 수정했다. 어느덧 요한님의 촬영일이 다가왔다. 뜨겁게 더웠던 8월 여름, 아름다운재단과 촬영팀이 홍대 인근 스튜디오로 총 출동했다.
음악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잘 담기 위해 녹음실 스튜디오를 빌렸다. 촬영 시작 하기 전에 동선을 체크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감독님과 함께 동행한 매니저님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어떻게 하면 요한님의 인터뷰가 화면에 잘 담길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렇게 세 번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세 번이나 듣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요한님의 답변에 종종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오기도 했다. 살아온 삶이 너무 귀해서.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그렇듯 요한님의 이야기도 내게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요한님의 이야기가 선선한 바람이 되어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반복해서 요한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것이 처음이기도 했지만,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어떤 부분을 덜고 담아야 할지 매순간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1차 수정에서는 덜어 내야한다고 생각한 부분이 2차 수정에서는 또 다르게 들렸다. 여러 번 보고 듣는 경험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롭게 듣고 보는 행위였다.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요한님의 ‘열여덟, 내인생’ 영상을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은 더 깊어졌다. 수정 피드백 요청만 몇 십장이 넘어간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요한님이 영상을 다시 봤을 때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선물이자, 청춘의 기록이 되었으면 했다. 요한님에게 2차 수정 편집본을 드린 날 떨리는 마음이 들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이 요한님의 반응이었다.
‘민들레 홀씨’ 노래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램이 되었고’ 라는 부분이다. 요한님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자주 들었던 단어는 ‘덕분에’ 였다. 처음으로 들었던 칭찬, 자신의 꿈을 지지해준 보육원 선생님, 낯선 미국에서 이름모를 누군가의 따듯한 포옹, 노래를 내기까지 용기를 낸 순간은 모두 요한님 곁에 좋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요한님에게 불었던 선선한 바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요한님의 노래로, 메시지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전히 자립해 나가고 있는 지금의 나도 힘들 때면 열여덟, 내인생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위로를 얻고는 한다. 요한님의 이야기에도 계속 그런 선선한 바람들이 불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준 요한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글/사진: 손자영 캠페이너
📹 유튜브 열여덟 어른TV ‘열여덟, 내인생_이요한’ 바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