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산타, ‘베테랑’ 착한 어린이를 만나다
희망산타가 만난 백장미 이른둥이 이야기
직접 희망산타가 되어 이른둥이 가정을 방문한 경험만 2회, 희망산타의 선물을 받는 것도 이번이 두 번째다. 12월이 다가오면 산타를 기다리거나, 산타가 되고 싶어 마음이 들썩이는 장미. 이름부터 특별한 아이, 백장미는 그야말로 산타가 사랑하는 착한 어린이 계의 ‘베테랑’이다. 한데, 장미를 찾아온 산타 3인방은 모두 다 새내기. 초보 산타와 베테랑 착한 어린이의 ‘케미’ 돋는 만남은 서로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우리 집에 산타가 올까요?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장미를 기다리며, 3명의 산타는 계단 아래로 몸을 숨겼다. 굴뚝으로 입장할 수 없는 희망산타의 등장 공식은 초인종을 누르는 것. 집주인이 집안에 있어야만 가능한 이벤트다. 장미 어머니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망을 보던 산타의 신호로 숨소리조차 삼키며 벽면에 밀착, 타박타박 계단 오르는 소리가 멀어질 쯤 살며시 모녀의 뒤를 좇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산타를 맞이한 장미의 얼굴엔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엄마, 우리 집에 산타가 올까요?”
“엄마, 올해는 우리 희망 산타 안 가요?”
11월부터 ‘산타 타령’을 해온 장미였다. 엄마와 직접 산타로 분해 이른둥이 가정을 방문한 경력만 2회, 집에서 산타를 맞이하는 것도 이번이 두 번째다.
“장미는 산타 옷을 입고 봉사활동 가는 것도 좋아해요. 작년과 재작년엔 ‘다솜이 희망산타’에 자원봉사자로 신청해 함께 가정방문을 했는데, 아픈 동생들 보면서 의젓하게 그래요. 열심히 치료 받으면 꼭 좋아질 거라고…. 아직 아이니까 자기도 산타에게 선물을 받고 싶을 텐데, 나눠주고 오는 것도 참 좋아했어요. 그 기쁨을 아는 거죠.”
‘장미’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예쁘거늘, 성까지 붙여 부르니 무려 ‘백장미’다. 이름처럼 예쁘고 키도 훌쩍 큰 아홉 살 소녀는 ‘이대로 쭉 커서 모델 되면 딱 좋겠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백순길 씨는 딸의 늘씬한 키가 반갑지만은 않다. 올해 초 눈에 띄게 쑥쑥 자란 이후, 장미는 넘어지거나 발목을 접질리는 일이 잦았다. 서있거나 걸을 때도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다. 뼈가 자란 만큼 같이 자라지 못한 다리 근육 때문이다. 보톡스 주사로 근육을 늘리는 치료를 진행 중이지만, 순길 씨는 장미의 성장이 증세를 악화시키는 것 같아 속이 탄다. 엄마는 아이가 작아도 좋으니 제발 아프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임신 35주차에 2kg으로 태어난 장미는 뇌수막염을 앓고 뇌병변 3급 판정을 받았다. 첫 돌이 되기까지 눈가에 혹처럼 솟은 혈관종양 제거 수술을 두 차례 받고, 갑상선기능저하에 대한 약물치료를 진행했다. 편마비는 일생토록 지고 갈 숙제지만, 다행이 재활치료의 효과가 좋아 양손 사용엔 무리가 없다.
피어라, 장미!
엄마는 장미에게 사흘 전에야 산타의 방문을 귀띔했다고 한다. 산타에 대한 각별한 애착을 감안한 까닭. 엄마의 우려대로 요 며칠 내내 산타 생각에만 빠져 지냈다는 장미는 반가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오늘만 계속 기다렸어요.”
그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산타 3인방, 김선영․박정준․이태영 씨가 드디어 선물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산타 오빠, 언니들이 제일 먼저 꺼내놓은 선물은 깜찍한 마카롱. 환호를 기대했건만 의외로 장미는 단맛을 즐기지 않는 ‘웰빙 입맛’의 소유자라고. 하지만 생크림과 초콜릿 등으로 마카롱 위에 직접 데커레이션을 하는 시간은 매우 흥미로워했다. 산타가 꺼내든 다음 선물은 색종이 세트. 마카롱 때보다 장미의 얼굴이 활짝 핀다. 소근육 발달을 위해 어려서부터 종이접기를 배워온 장미는 가장 잘하는 것도, 또 가장 즐기는 것도 종이접기다.
비행기부터 왕관, 모빌까지, 3명의 산타는 돌아가며 종이접기 선생님을 자청했다. 희망 산타 발대식 때 김영만 종이접기 아저씨로부터 배워온 따끈따끈한 기술을 펼치고자 했으나, 종이접기 고수인 장미를 가르치기엔 산타들이 영 역부족이다. 어느 순간 장미가 산타 오빠, 언니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고 있다.
학을 접든 별을 접든, 색종이를 접어 무언가를 만들다보면, 끝내 ‘펼침’으로 완성된다. 꾹꾹 접어두었다 비로소 활짝 만개하는 세상. 이 같은 종이접기의 마법이 장미의 꼬깃꼬깃한 슬픔도 활짝 펼쳐주었을 것이다. 치료가 힘들거나 친구들의 놀림에 마음이 상할 때, 색종이를 오리고 접었다 펼치면 마음의 응어리도 풀어졌으리라. 좋아하는 무언가에 열중하고, 칭찬받고 자부심을 느끼며 아이는 성장한다. 잘 끊어지지 않던 테이프를 힘주어 야무지게 잘라낸 후, 스스로 흡족한 듯 장미가 혼잣말을 했다.
“역시, 태권도 다니길 잘했어.”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루돌프 사슴코’도 율동과 함께 힘차게 불렀다. 수줍어 하면서도, 좋아하는 건 확실하게 해내는 성격. 종이접기의 고수 장미는 노래도 잘 불렀다. 대망의 선물은 마지막에 등장했다. 고운 포장지가 찢어질세라 조심조심 풀어낸 선물 상자엔 장미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휴대용 피아노가 들어있었다. 피아노에 건전지를 끼우고 바로 실력 발휘에 들어간 장미. 김선영 산타와 함께 나란히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새내기 산타, 성공적 임무 완수를 보고합니다!
손발이 척척 맞아 당연히 친구나 동료 사이일거라 짐작했던 산타 3명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으니. 하나는 ‘젊음’이요, 또 하나는 세 사람 모두 ‘새내기 희망산타’라는 것.
지인의 소개로 희망산타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김선영 씨는 이번 기회를 통해 아름다운재단의 이른둥이 지원사업 ‘다솜이작은숨결살리기’를 처음 접했다. 연말에 뜻 깊은 시간을 보내게 된 것도 기쁘고, 이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도 기쁘다는 선영 산타는 내년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요즘엔 산타를 믿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이렇게 산타를 기다리는 장미를 만나게 되어 행복했어요. 우리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장미야!”
역시 지인의 소개로 이른둥이 지원사업을 알게 되었다는 이태영 씨는 좋은 산타가 되기 위해 나름 외모부터 신경을 썼다고 한다. 위생에 철저해야 할 것 같아 예쁘게 기르던 손톱도 짧게 다듬고 왔다고. 교회 청년부에서 활동하는 터라 산타 복장이 처음은 아니라더니, 과연 멋지게 산타 룩을 소화했다.
“이른둥이라 해서 정말 작은 아기를 만나나 했는데, 어려움을 딛고 이렇게 잘 자라준 장미를 만나 더욱 뜻깊었어요. 작고 약하게 태어나도, 충분히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아기들임을 알았으니까요. 이름처럼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랄게, 장미야!”
장미에겐 ‘산타 오빠’ 대신 ‘산타 아저씨’로 불렸지만 충분히 ‘훈남 산타’인 박정준 씨는 최근 아름다운재단의 새내기 기부자 모임에 참석했다가 희망산타에 지원하게 된 케이스다. 첫 기부가 첫 봉사활동으로 이어진 훈훈한 사례인 셈. “또 많이 배우고 갑니다”라는 한 마디 만으로도, 그를 물들인 나눔의 온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초보 산타 3인방의 나들이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활짝 핀 장미의 얼굴이 그 증거랄까. 추운 날씨에도 골목 어귀까지 배웅을 나온 장미는 엄마 품에 폭 안겨 들어갈 때까지 산타 오빠, 언니들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간절한 기다림이 이루어진 12월의 행복한 추억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어느 날, 장미가 꺼내들 알록달록 색종이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스며듦 경영사업국 홍보팀│심유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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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부가 첫 봉사활동으로 이어진 훈훈한 사례인 셈. “또 많이 배우고 갑니다”라는 한 마디 만으로도, 그를 물들인 나눔의 온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