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 폭우로 세계 곳곳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도 예외는 아니었죠. 한국은 올해 여름 전국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도 1도나 높았고, 평균 강수량도 1018.5mm로 역대 5위를 기록했습니다. 차트를 벗어나는 기후위기 속에 재난재해로 인한 피해도 더욱 잦아집니다. 아름다운재단 지난 여름, 충북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인한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수재민의 일상회복을 지원하는 긴급지원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긴급지원사업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재난재해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에이팟코리아>와 함께 했습니다. 폭우가 휩쓸고 간 여름,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이재민들의 일상회복을 위해 무수한 땀을 흘린 에이팟코리아 활동가의 현장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 본 긴급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의 안전영역에 모아주신 여러분의 소중한 기부금으로 진행했습니다. |
수해가 발생했다
2023년 7월 14일부터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7월 16일 에이팟코리아의 1차 파견팀은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주말 내내 충북, 충남, 경북지역의 호우 피해 현장을 파악하였고, 그러던 도중 들린 인명피해 소식은 호우 피해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충북 괴산과 경북 예천의 상황을 파악하던 중, 괴산군 주민분들이 모여있는 대피소 환경이 특히나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해 보일 정도로 열악한 것을 알게 되었다. 괴산군 감물면의 대피소는 근처 오성중학교의 체육관이었는데, 지원이 부족하고 관리가 잘되지 않아 2차 피해가 예상됐다. 대피소에서 파악한 첫 번째 문제는 위생 문제였다. 대피소 내 샤워부스는 사용이 불가한 상태였기에, 가장 먼저 목욕 지원을 생각했다.
7월 17일 2차 현장 조사팀을 파견했다. 그리고 바로 목욕 지원을 위해 괴산군 내 유일한 목욕탕인 동원목욕탕으로 갔다. 감사하게도 협의가 잘되어 수재민들에게 드릴 목욕 쿠폰을 이장님께 전달할 수 있었다. 수해 피해를 입은 분 중에는 어르신들이 많아, 대피소에서 집으로 혹은 목욕탕으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은 분들이 계셨다. 매일 대피소에 방문하여 상황을 살피고, 필요 물품을 파악하면서도 틈틈이 차로 수재민들이 대피소와 목욕탕으로 태워 드렸다. 무거운 물건을 대신 옮겨 드리고, 이야기를 들어 드렸다. 힘든 상황임에도 우리에게 고맙다며 환하게 웃어주시는 모습에 작은 보람을 느꼈다.
침수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지속되는 비에 집이 마르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깨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었다. 수재민들은 대피소에서 무한정 지낼 수는 없기에 낮에는 집으로 돌아가 청소를 이어갔다. 그러나 물에 완전히 잠겨 버린 집들은 건조에 시간이 걸려 보였다. 에이팟코리아 혼자의 힘으로는 더 이상의 일 진행이 쉽지 않았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그때 아름다운재단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 도움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말 필요한 지원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진행하였던 사업이 온열 질환 예방 지원사업과 일상복귀 지원사업이다.
집이 한번 물에 잠기면 완전히 건조를 시키기 전 까지는 도배와 장판을 까는 작업을 할 수 없다. 마르지 않은 벽에서 계속 곰팡이가 생기고, 벌레가 기어나오기 때문이다. 에이팟코리아는 침수된 집을 말려 하루빨리 수재민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습기와 선풍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제습기 49대, 선풍기 40대를 구매했다. 제습기와 선풍기를 배분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리에도 신경을 쓰며 작업하였다. 모든 제습기와 선풍기에 라벨링을 하고, 지원해 드릴 수재민의 주소와 각 제습기 혹은 선풍기의 번호를 매치하여 배분 및 회수 시에 용이하도록 하였다.
집집마다 방문하여 제습기와 선풍기를 배달하고 설치했다. 사용 방법 설명도 잊지 않았다. 기계사용에 서툰 어르신들이 계셔서 이해하실 때까지 여러 번 설명해 드렸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의 이런저런 걱정거리도 들어드리며 마음을 나누었다. 에이팟코리아 현장팀이 상시로 방문하여 잘 사용하고 계시는지 여부를 확인하였고, 전화로도 사용 현황 및 문제는 없는지를 확인했다. 전화하면 계속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보시거나, 집이 다 마르지 않았음에도 가져가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셨다. 제습기와 선풍기 모두 직접 구매해서 지원했기에 반납 일정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집에 물이 다 빠질 때까지 충분히 쓰실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비가 그치고 나니 이번에는 폭염이 찾아왔다
수재민들의 일상은 반복의 연속이었다.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 집으로 돌아와 물에 잠긴 물건들을 내다 놓고, 수건으로 바닥을 훔치고, 집 안을 청소한다. 해가 져서 대피소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청소의 연속이었다. 해가 아직 높이 뜨기 전에도 금방 온몸이 땀으로 젖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냉장고도 물에 잠겨 코드가 꽂혀 있지 않은 상태라, 음료도 미지근한 상태로 밖에 보관할 수 없었다. 숨이 막히는 더위에 쓰러지는 인원들이 발생하면서 또 다른 재난이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에이팟코리아는 온열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냉장고 6대와 냉동고 2대를 지원했다. 수분을 보충할 수 있는 이온음료, 물, 얼음 등 여러 종류의 음료를 가득 채워놓고, 수재민뿐만이 아닌 지나가는 누구나 시원한 음료를 즐길 수 있도록 공유냉장고를 만들었다. 수재민들은 청소 중간마다 공유냉장고를 찾았고, 복구 작업을 도우러 온 경찰학교 학생들, 군인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도 시원한 음료로 잠시의 휴식을 즐겼다. 누구나 자유롭게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쉼터가 생겨 모두가 만족하며 이용했다.
수해 현장에 지원이 진행되는 중에도 에이팟코리아는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 현장 조사를 이어갔다. 각각 오송읍과 청천면의 상황 파악을 맡았다. 청천면은 캠핑장과 펜션으로 유명해 강가를 따라 캠핑장, 펜션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엄청난 폭우에 캠핑장 한 곳은 아예 침수되었고, 나머지 건물들의 상태도 참혹했다. 여름 장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은 이번 집중호우 피해로 한 해 장사를 모두 망쳐 버리고 만 것이다. 그 참담한 표정에 마음이 아팠다.
청천면 거봉리는 시내에서부터 차로 25분 이상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어 피해 복구지원이 거의 없었다. 강가를 따라 집들이 들어서 있어 물이 넘친 그 순간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 물이 빠지고 난 후 길은 진흙투성이였고, 길가 전봇대에는 떠내려온 부산물들이 매달려 있었다. 피해 상황이 심각하고 복구가 매우 더딘데도 지원이 충분치 않아 추가로 제습기 9대를 구매하여 급히 지원하였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사용이 완료된 제습기와 선풍기를 옮겨와 청천면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 가능하다
8월 말 냉장고와 냉동고를 철수하고, 완전히 건조 후 도배 및 장판을 완료한 침수피해 가정에 설치되어있던 제습기와 선풍기를 회수했다. 제습기 49대, 선풍기 40대를 에이팟코리아가 단독으로 회수하기에는 워낙 양이 많고,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서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다행히 괴산군에 거주하는 청년들과 연이 닿았고, 그들과 함께 일주일에 걸쳐 모든 제습기 및 선풍기를 함께 회수할 수 있었다.
재난현장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들은 참 소중하고 감사하다. 에이팟코리아는 앞으로 재난현장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각 지역의 청년들을 발굴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목표를 향해, 이번 충북 집중호우 피해 긴급지원사업도 괴산지역의 청년들과 함께하면서, 한 걸음씩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냉장고와 냉동고는 더위 속 쉼터가 되었고, 제습기와 선풍기는 흙탕물에 물든 집의 얼룩을 지워주었다. 집중호우가 준 어두운 그림자가 차차 거쳐나가고, 고맙다며 활짝 웃어주시는 모습에 이제는 가슴이 울릴 정도의 큰 보람을 느꼈다. 에이팟코리아 혼자서 해내지 못했을 일이고, 함께 하는 마음들이 모였기에 작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의 사례들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글/사진 : 에이팟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