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진 날씨로 코끝이 시리던 11월 10일. 서울의 옛 정취가 담긴 정동의 한켠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습니다. 서울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희망가게 20주년 기념전시회 <Her Story, Hope Story>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창업으로 자립의 꿈을 이룬 희망가게 창업주들, 그들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활동가들, 창업주들의 성장에 도움을 준 심사위원과 기부자들까지. 보통 한 자리에 있기 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해내온 사람들인데요. 그렇게 희망가게를 키워온 사람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같은 장소에서 함께 했습니다.
한부모여성 창업지원사업인 ‘희망가게’, 어느덧 20주년을 맞아 변화의 증거로 우뚝 선 이 사업의 성과를 기뻐하는 자리. 희망가게 매니저들은 찾아온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정성껏 인사를 건네며, 기념행사를 위해 공간에 준비된 여러 전시물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희망가게를 이어온 아름다운재단이 정성을 다해 만든 전시 현장을 전합니다.
희망가게 사업의 소중한 순간들을 모아둔 자리
아름다운재단은 2004년부터 창업자금 마련이 어려운 한부모 여성에게 1% 이자 대출과 창업컨설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을 진행해왔습니다. 희망가게 창업주들에게 자금을 대출하고, 이들이 상환한 자금을 다른 창업주에게 전달함으로써 희망의 선순환을 만드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취약계층에게 무담보, 무보증으로 대출하는 ‘마이크로크레딧’이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재단은 육아와 경력 및 사회 관계망 단절 등을 겪는 한부모 여성가장의 창업 지원사업을 준비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서성환 선대회장의 유지로 2003년에 기금이 조성되었고, 2004년 희망가게 1호점으로 출발해 올해로 520호점이 오픈될 만큼 크게 성장했습니다.
희망가게 20년은 참여자들의 진심어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사업으로 자신의 꿈과 아이들의 행복을 지키려는 창업주의 노력, 창업주들 곁에서 가시밭길을 함께 해온 아름다운재단 매니저들, 창업이 좀더 지속가능하도록 전문성을 더해준 심사위원들. 여기에 사업의 토대가 된 기금이 조성되도록 도운 아모레퍼시픽까지.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 삶의 변화를, 더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희망하며 조금씩 움직여온 덕에 지금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20년이란 오랜 시간을 버틴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희망가게 20년은 함께 한 이들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줬을까요? 전시 <Her Story, Hope Story>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희망가게의 사업기금의 조성 과정, 희망가게의 이름으로 진행된 사업들. 그 사업을 통해 성장한 창업주들의 모습과 성과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만든 희망이 담긴 현장을 자세히 살펴볼게요.
희망의 여정 속 일에 대한 진심이 담긴 오브제 전시
“사업자등록증이 발급된 날은 제 생일이었어요. 그리고 인생 2막이 시작되었어요!” 희망가게 19호점 홍미술학원 이유진 창업주의 ‘사업자 등록증’
“다양한 원단 샘플들은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저의 고민의 깊이입니다.” 희망가게 463호점 앤스홈 김미정 창업주의 ‘원단샘플’
전시장 입구를 지나 왼쪽 편. 희망가게 이야기를 담은 여러 전시물이 방문자를 맞이했습니다. 특히 희망가게 창업주 12명의 일을 보여주는 전시가 눈에 띄었는데요. 각각의 사업에 담긴 노력을 창업주별로 하나의 오브제와 이야기로 구성해, 희망을 찾아가는 그들의 창업여정에 잘 공감하게끔 구성됐습니다. 무용학원, 미술학원, 커튼판매 등등. 창업주 별로 일과 물건의 종류가 무척 다양했던 만큼 ‘이런 물건이 있구나’ 싶은 의외의 오브제도 눈에 띄었습니다. 물건의 종류는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노동의 가치, 창업으로 희망을 일구려는 절실함은 모든 오브제에 동일하게 담겼습니다.
오브제 전시공간을 지나 안쪽에 마련된 사진전시도 찾아온 이들에게 큰 여운을 전했습니다. 사진전시는 업, 긍지, 러닝메이트, 나 자신 등 특정 주제를 기준으로 벽면에 배치됐는데요. 가게에서 일에 매진하는 창업주, 멋진 옷을 입고 초상화 속의 주인공처럼 정면을 응시하는 창업주 등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당당히 드러낸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에 색색의 디저트와 맛과 정성이 담긴 음식사진까지, 창업주들의 사업에서 나온 물건이나 음식들이 모여 하나의 큰 이미지로 구성됐습니다. 사진전시장 한쪽 벽에 희망가게 창업주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도 상영됐는데요. 창업주들의 경쾌한 몸짓을 보며 많은 사람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희망가게가 일군 변화의 성과들
기념행사가 열린 무대 주변에는 희망가게 사업의 구체적 성과들이 전시됐습니다. 종업원 수나 주당 평균 근로일 등이 담긴 ‘희망가게 매장 운영현황’, 사업 생존율과 업종 별 창업현황 등을 다룬 ‘숫자로 보는 희망가게’, 언론에 노출된 희망가게 사례 건수 등 사업관련 수치가 일목요연하게 나왔는데요. 사업 성과뿐만 아니라 창업자금 지원 외에 희망가게에서 진행하는 ‘임대차 계약과정의 법률자문’ 부분도 웹툰 형식으로 알아보기 쉽게 전시됐습니다. 희망가게가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창업주의 건강지원이나 사업진행 과정에서 필요한 법률자문 등 여러 측면을 감안하는 사업임을 가늠케 한 내용입니다. 희망가게 창업주들이 창업과정에서 느낀 성과를 다양한 단어로 조합한 시각자료도 눈에 띄었는데요. 창업 후 가장 큰 변화로 ‘자신감 ‘아이’ ‘여유’ 등이 꼽혔습니다.
무대 왼편 벽면에는 희망가게의 주요 연혁과 성과가 한눈에 펼쳐져 사업의 전체 흐름을 가늠하도록 했습니다. 2003년 아름다운세상기금 조성, 2004년 희망가게 1호점 오픈. 희망가게 초기의 중요사업부터 2023년 20주년을 맞이하기까지의 여정이 담겼는데요. 창업성과는 물론 학술분야 포럼이나 심리정서 상담지원 등 창업주들을 위한 희망가게의 든든한 지원들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연혁이 적힌 벽면 아래에는 희망가게 사업과정의 결과물들이 전시됐는데요. 미술품처럼 깔끔히 놓인 덕에 많은 사람이 발걸음을 멈추고 전시물을 구경했습니다. 사업성과를 담은 보고서, 사업자금 대출금을 모두 상환한 창업주들에게 전하는 희망함 등등. 아름다운재단 매니저들이 진심을 담아 창업주들에 전한 기념품들이 주목 받았습니다.
희망가게 연혁을 살펴봤다면 2003년 조성된 아름다운세상 기금의 사연이 적힌 맞은편 벽 전시내용도 흥미로웠을 겁니다. 화장품 방문판매 일을 해온 여성들과 함께 성장한 아모레퍼시픽. 방문판매 여성 중 홀로 생계를 책임진 이들을 위한 기업 차원의 나눔정신이 희망가게 사업과 연결되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인데요. 덕분에 기금조성에 대한 의미가 전시를 보는 이들의 마음에 더 와닿았습니다.
희망가게 20주년을 다 함께 기억하고 축하하는 자리. <Her Story, Hope Story> 전시는 오랜기간 만들어온 변화의 이야기로 가득한 행사였습니다. 사업전시와 더불어 ‘내 가게의 가치 측정하기’라는 컨셉으로 현장 이벤트까지 진행됐으니 더욱 즐거운 자리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동안의 20년을 뒤로하고, 희망가게는 미래의 희망을 품기 위해 나아가려 합니다. 늘 그랬듯 앞으로도 한부모 여성 창업주들의 삶을 위해, 희망의 여정에 마음을 내어준 여러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계속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상미 작가
사진: 김민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