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 손자영 캠페이너의 팟캐스트 <열여덟 어른이 살아간다>에서는 다양한 자립준비청년들의 삶과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코너 ‘신선하고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02화에서는 운동을 사랑하고, 책 익는 것을 좋아하는 자립 10년차 박정재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유년시절 받은 도움과 사랑을 기억하며 베푸는 사람이 되고자 사회복지사가 되어 자신이 자란 양육시설에서 생활지도원 일을 시작, 최근에는 보건복지부 청년 보좌역으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박정재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신선: 안녕하세요. 열여덟이 되면 보육원을 떠나 어른이 되어야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열여덟 어른이 살아간다>의 신선, 손자영입니다. 102화에서 이야기를 나눌 분은 어렸을 때 삶의 경험을 토대로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아동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만나고 계신 분입니다. 자립준비청년이자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박정재 님입니다.
정재: 안녕하세요. 자립 10년 차 박정재입니다.
신선: 팟캐스트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모시기 힘들었어요. 앞에서 사회복지사라고 소개해 드렸지만 이제 곧 보건복지부 청년 보좌역으로 일할 예정인데요. 청년 보좌역이 무엇이고, 왜 지원하게 되었는지는 잠시 뒤에 들어보겠습니다. 정재 님과 사전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번 감탄했어요. 이야기들이 너무나 다이나믹하고 또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구독자님들께도 정재 님이 너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빨리 들려드리고 싶네요.
보육원에서의 생활을 돌아니
자영: 어릴 때부터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몇 살 때, 어떻게 보육원에 입소하게 된 건가요?
정재: 3살쯤에 입소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어릴 때라 나중에 누나한테 전해 들었는데요. 저희 집이 형제가 많은데 또 너무 가난해서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이유 때문에 보육원에 왔다고 들었어요.
자영: 보육원 규모는 어땠나요?
정재: 시설 인원은 거의 80~100명 정도 됐던 걸로 기억하고요. 한 반에 11명에서 많으면 15명까지 이렇게 지냈던 것 같아요. 한 방에는 5명에서 6명 정도가 다 같이 잤던 것 같아요.
신선: 저희 보육원 규모와 좀 비슷한 것 같네요. 보육원들이 보통 시골에 있는데, 정재님의 시설을 어떠셨어요?
정재: 저희는 진짜 들, 밭 이런 곳에 보육원이 있어서 벌레도 진짜 많았고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동물들 너구리, 족제비 이런 것도 있어서 잡고 놀았던 것 같아요.
신선: 보육원에는 또래 친구들이 많아 심심할 때 같이 놀 수도 있는 친구가 많은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자영: 근데 또 그만큼 많이 싸우기도 해요. 어린시절 정재님에게 보육원은 어떤 곳이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지켜야 될 규칙이 많아서 좀 답답했거든요.
정재: 어렸을 때는 규칙적으로 생활한다는 거에 부담, 불편함이 없었어요. 근데 나이가 들수록 좀 불편함을 느꼈고, 학교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니 제가 너무 로봇처럼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신선: 불편함, 규칙이 많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있었나요?
정재: 규칙에 가장 반감을 느끼는 때가 사춘기인데요. 마침 그때 연애를 하고 있었고, 어디 놀러간다고 했을 때 제약이 많았던 것 같아요. 열심히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으로 가는데, 허락을 받아야 하고… 근데 또 거의 허락을 못 받았던 것 같아요.
자영: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여행을 가셨나요?
정재: 시설에서 못 가게 했지만, 다 무시하고 갔어요.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거 좋아했는데 그때 부산을 갔었던 것 같아요. 천안에서 살고 있었는데, 당일로 여행 다녀왔던 기억이 있어요.
자영: 정재 님은 그 보육원에서 꽤 오랜 사셨고, 자립의 순간은 또 남달랐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정재: 자립을 할 때 시설에서 제가 (규칙 안 지키는 아이라서) 좋은 입지는 아니었어요. 시설에서는 제가 조용히 나가주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LH로 집을 해야 하는데, 원장님 추천서가 필요해 추천서를 써 달라고 졸랐어요.
신선: 지금은 LH에 추천서가 필요하지 않은데, 그 당시에 있었나 보네요.
정재: 맞아요. 그땐 추천서가 많이 반영됐던 것 같아요. 집을 구하고 자립을 했는데 빈집에 이불, 전자레인지, 밥솥 이렇게 3개밖에 없었어요. 가구가 아무것도 없으니 방에서 말을 하면 울렸어요. 첫날 밤에 이불을 펴 놓고 혼자 누워서 천장을 딱 보면서 많이 걱정하고 고민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요.
자영: 그래도 좀 신나긴 하셨을 것 같은데 저도 되게 신났거든요. 물론 하루아침에 약간 의기소침해지긴 했지만 자립 이후에는 어떻게 자립생활을 이어 가셨나요?
정재: 기대했던 자립이니 일단은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저희 학교가 자율선택학부라고 나중에 전공학과를 선택하는 방식이었어요. 저는 경찰이 되고 싶어서 경찰행정학과로 정했는데, 이미 그 안에 무리가 지어져 있더라고요. 그 무리에 잘 끼지도 못하니 학교 생활도 적응을 못해 힘들었고, 그때 이별도 경험해서 힘든 일이 겹치면서 많이 우울했던 것 같아요. 우울함에 학교도 안가서 제적당했고요.
인생의 터닝포인트, 워킹홀리데이
신선: 아무래도 첫 시작이 뭔가 삐걱한 것 같네요. 북적북적한 보육원에 살다가 혼자가 되고, 또 안 좋은 일들이 겹치다 보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아마도 많은 자립준비청년들이 자립을 하면서 어려운 것도 많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순간도 많을 것 같은데 정재 님은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넘기셨어요?
정재: 진짜 방에서 몇 개월간 고립된 상태로 지냈어요.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라면서 긴 시간 고민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뭘 해야 되는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당시에 세계여행이 진짜 하고 싶었거든요. 시설에 있을 때 세계여행 책을 읽으면 가슴이 막 두근거렸어요. 그래서 내가 뭘 해야 되는지 모르겠으니 하고 싶은 거 ‘세계여행을 하자’ 이렇게 마음먹고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목표를 세우고 아르바이트로 오징어 튀김 가게에서 13시간 일을 하고, 끝나면 바로 운동을 했어요. 제가 몸이 진짜 왜소했거든요. 왜소하면 해외에서 바로 범죄 대상이 되겠다 싶어 운동도 열심히 했고, 남는 시간에는 항상 영어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런 순간들을 좀 이겨냈던 것 같아요. 근데 세계여행이라는 목표가 달성하기에 너무 멀기 때문에 제일 빠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11개월 정도 다녀왔어요.
자영: 저도 워킹 홀리데이를 가보고 싶은 꿈이 있는데 어때요? 추천하나요?
정재: 원래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좀 미화되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좋은 기억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경험으로 습득하는 성격이에요. 지금으로 말하면 극P 성향이라서 그때도 무작정 갔던 것 같아요. 그때 수중에 딱 100만 원 밖에 없었어요. 편도 항공권만 끊고, 딱 100만 원 가지고 시작했던 거예요. 그때 호주에 가서 공사장에서 타일 일을 5~6개월 정도 했어요. 이후에는 돈이 좀 모여서 차를 사서, 팝 청소를 새벽에 다녔어요.
자영: 어떠셨어요? 새로운 나라에 가서 일을 구하고, 11개월 동안 산다는 게 여행과는 또 다르다고 생각되거든요.
정재: 워킹 홀리데이는 저에게 터닝 포인트예요. 그 때가 진짜 자립의 시작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왜냐면 거기는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진짜 돈 100만 원이 전부이고, 거기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살아남으려고 적극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많이 성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자영: 거기에서 살아남고, 일을 구하고, 또 돈을 모으고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씩 성장했다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받았을 것 같은데 그러셨나요?
정재: 그때 제일 많이 성장했고 그리고 제가 극P 성향으로 몸으로 부딪히는 성격인데 그때 남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좋은 양육자를 꿈꾸며 도전한 사회복지사
신선: 경찰을 꿈꾸다가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오고, 코로나 때문에 세계여행이 막힌 상황에서 사회복지사를 하게 되셨는데요. 이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궁금해요.
정재: 제 목표였던 세계여행이 막히면서 앞으로 뭘 해야 되지를 다시 고민하게 됐어요. 그때 내가 왜 경찰을 하고 싶었는지를 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유년 시절에 살아왔던 게 누군가의 도움, 봉사, 어떠한 사랑으로 성장했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나도 베푸는 사람이 되자’고 딱 마음먹은 찰나에 시설에 살고 있는 후배들이 연락을 많이 해왔어요.
정재: 워킹 홀리데이를 갔다 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나도 가고 싶다, 어떻게 준비해요?’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친구들은 ‘이제 퇴소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형은 어떻게 했어요?’ 이렇게 많이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자립할 때는 이렇게 질문할 사람이 너무 없었는데, 그럼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이렇게 마음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자영: 실제로 공부를 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하시는 건 또 어떠셨을지도 궁금해요.
정재: 청소년을 담당하고 싶어서 들어갈 때부터 청소년 쪽에 자리를 내달라고 요청을 했어요. 청소년들은 교육적이고 딱딱한 사람은 별로 안 좋아해요. 이미 친구들의 범주가 있는데 거기에 끼어들려면 그 친구들처럼 행동하고 말해야 되거든요. 그러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자영: 저희 때와 지금의 친구들은 조금 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또 가까이에서 키우면서 또 어려운 건 없으셨나요?
정재: 요즘에 심리 정서적으로 조금 힘든 친구들이 있어요. 이 친구들을 돌보는 것이 저에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하루 종일 끊임없이 말을 하는 친구, 갑자기 너무 폭력적으로 변하는 친구, 하루 종일 우울한 친구들도 있는데 이런 친구들을 돌보는 것이 힘들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사회복지사이지 정신 건강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지식이 부족하니 관련 서적을 많이 찾아봤어요. 이상성격, 이상 심리학 등 이런 책을 진짜 많이 봤어요. 왜 이러는지를 알아야 되니까 그런 공부를 많이 하면서 극복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신선: 저는 정재 님이 충분히 좋은 양육자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선생님 1명당 아동 10명 정도를 관리했는데요. 최근에는 7명 정도를 선생님 1명이 양육한다고 하는데 어떠세요? 심리적으로 힘든 친구들이 있는데 7명이라는 양육 아동 수가 너무 많은 건 아닌 지도 궁금합니다.
정재: 사실 과거에 비교해보면 인원수는 많이 줄었어요. 그러나 이 친구들은 일대일 케어를 받아야 되는 친구들인 것 같아요. 일대일 케어를 받았을 때 훨씬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양육 아동수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신선: 계속 이 아이들을 봐왔는데 이 아이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자립했으면 좋겠는지도 궁금해요.
정재: 제가 자립할 시기에는 자립이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자립하면 혼자서 스스로 해야 된다는… 저희가 20살이 됐다고 상황은 바뀌었지만, 일반 가정 친구들도 그렇게 갑자기 혼자서 스스로 하는 친구들은 없어요. ‘스스로 혼자서 하는 거’ ‘나 혼자 이겨내야 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자립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관계를 잘 맺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저희는 존재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사자 자조모임에 자주 참여해서 정보도 얻고, 소통하고,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신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제 정재님이 사회복지사를 그만두신다고 예기를 들었어요. 아직 근무를 시작한 게 아니라 조금 조심스러울 텐데 그래도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보건복지부 청년 보좌역은 무슨 일을 하는 건가요?
정재: 말 그대로 보건복지부에 있는 장관실에서 청년의 입장에서 정책을 바라보고 그리고 청년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대변하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영: 왜 청년 보좌역에 지원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해요.
정재: 저는 자립이 저희 자립준비청년들만 힘든 줄 알았어요. 근데 일반 청년들도 그 속에서 다 고충이 있고 힘듦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자립준비청년을 넘어서 청년 전체가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자영: 어떤 철학 혹은 가치관을 가지고 일하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정재: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아서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소통을 조금 제가 잘 할 수 있게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사실 많은 문제들이 잘 들여다보면 소통에서 오는 원인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소통을 잘할 수 있게 중간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신선: 장기적으로 정재님의 목표도 궁금합니다.
정재: 제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복지사 역량강화입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복지사 1명을 좋은 사회복지사로 양성하면, 그 밑에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좋은 서비스가 전달된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렇기에 사회복지사들을 동기부여하고, 교육하고, 이끌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아이들은 학대, 방임 등 힘든 상황에서 시설로 온 건데 아이들을 일로만 대한다면 그것 또한 방임으로 보일 수 있거든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사회복지사들을 도와서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권위를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자영: 오늘 팟캐스트에 출연하셔서 많은 이야기 나눠 주셨는데 어떠셨나요?
정재: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지금 자립하는 과정 중에 있거든요. 그 과정을 다양한 경험으로 채우고 있어요. 오늘 제 이야기가 또 다른 청년이나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잘 전달돼서 또 그 친구들이 그들의 자립 생활을 좋은 경험으로 채울 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사회복지사에서 청년 보좌역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정재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