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사설] 살인적 폭염, 노년 취약층이 위험하다
어제 경남 밀양의 낮 최고기온이 37.5도로 치솟아 올여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33.2도 등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어 폭염을 기록한 곳도 전국의 관측지점 60곳 가운데 49곳이나 됐다고 한다. 길에서 몇 발짝만 옮겨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온 나라가 찜통이다. 이런 고온현상이 9월 초까지 이어진다니, 여름 내내 치러야 할 무더위와의 전쟁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살인적 폭염은 벌써 심각한 피해를 낳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통계를 보면, 6월1일부터 7월28일까지 폭염에 의한 열사·일사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94명에 이른다. 이들 중 비닐하우스나 논밭에서 일을 하다 증세가 생긴 70~80대 노인 4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염특보가 연일 발효된 지난주부터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년 취약계층의 건강이다. <한겨레>가 7월25~26일 취약층 독거노인이 밀집해 살고 있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의 20가구를 살펴본 결과, 오전 11시~오후 3시에 측정한 집안 기온이 33도를 넘는 곳이 전체의 절반인 10곳이나 됐다. 집안 온도가 35도를 넘는 가구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60%의 독거노인이 변변한 여름침구 하나 없이 그저 무더위를 견뎌내고 있다고 한다. 고혈압과 당뇨, 위장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 노년층에게 폭염은 한순간에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다. “아프고 더워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 수 있다”는 한 70대 독거노인의 탄식은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빈곤층 독거노인이 9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폭염의 위협에서 취약층을 보호할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한낮에 일을 중단하는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전국의 마을회관, 주민센터, 경로당 등 3만7000여곳의 ‘무더위 쉼터’를 취약층의 폭염 대피처로 활용하고,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 등을 앓고 있는 독거노인에 대한 돌봄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나 기업들의 관심과 지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민단체인 아름다운재단의 독거노인 돕기 캠페인에 여름휴가비를 쪼개 보내는 등 시민들의 기부활동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은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가뜩이나 힘겨운 취약계층이 폭염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이웃의 사랑과 보살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