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을 통해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는 ‘계절이주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의 사업 후기 및 실태조사 자료를 소개해 드립니다. |
휴일도 없는 농번기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었습니다. 계절이주노동자들은 이 무더위에 온 종일을 일합니다. 하루에 10시간씩…. 꼭두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농번기이다 보니 휴일도 없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쉬는 노동자, 한번 쉬는 노동자, 아예 하루도 쉬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주5일 근무는 대한민국을 치장하는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현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장을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안동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실태조사단이 구석구석 찾아다녔습니다. “찾아오지 마라.”는 농민들의 문전박대를 웃음과 넉살로 넘었습니다.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는 계절이주노동자들의 마음을 얼굴 가득 미소로 열기도 하면서…. 실태조사단은 계절이주노동자들이 가능한 시간에 맞추어 종횡무진하며 다니다 보니 식사를 거르기도 했습니다. 계절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낮에는 만날 수가 없으니 실태조사를 마치고 밤9시나 10시경이나 되어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그날 이야기를 나누며 고된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절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햇빛이 짱짱한 한낮 농가 한 귀퉁이나 마을회관 앞, 농촌지역의 한적한 버스정류장에 실태조사와 노동상담 내용이 담긴 홍보현수막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걸기도 하였습니다. 밤늦은 시간 마스크와 손선풍기, 노동권리안내책자를 들고 공단의 기숙사를 찾아다니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또 다른 계절노동 이주노동자들을 만날 통로를 찾았습니다. 또 아시아마트 앞에서 대형마트 앞에서 탁자를 펴고 홍보물을 쌓아놓고 지나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며 계절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한편, 지방자치단체의 담당공무원을 만나 이 실태조사의 의의를 설명하고 함께 하자고 설득하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한 장 두 장 쌓여가는 응답 설문지의 숫자가 작은 보람이었습니다. 혹은 휘갈겨 쓴, 혹은 객관문항의 설문만 적고 주관문항은 텅 비어 있는 설문지 하나하나가 모두 계절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말하는 귀한 자료였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들었고,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보다, 혹은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보다 더 엄혹한 상황에 처해 있는 계절이주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딪치는 현실은 더 더욱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계절 이주 노동자를 아시나요
본인의 비자종류를 모른다고 해서 등록증이나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뜨악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보고는 처음에는 이상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등록증이나 여권을 농장주에게 맡기고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나마 이주노동자들의 숙소에 샤워시설과 주방시설은 갖추어져 있어서 ‘이 무더운 여름에 씻을 수는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해먹을 수 있겠구나.’라는 웃지 못 할 안도감에 한숨 쉬기도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혹은 한 달에 한두 번 쉬는 휴일에는 워낙 오지에 있어서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거니와 그나마 농장주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어이가 없었습니다.
한 이주노동자가 SNS를 통해 다급하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전화가 아니더라도 소통할 수단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낸 사진에는 벌겋게 부풀어 오른 이주노동자의 팔이 보였습니다. 땡볕에 햇빛가리개도 없이 몇 시간을 일하다보니 열화상을 입은 것 같았습니다. 위치를 모르니 찾아갈 수도 없고 119를 부르려고 해도 한국말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은 참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가까스로 농장주에게 연락이 되어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짜증을 냅니다.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 내가 알아서 한다!” 그제야 외출외박을 금지당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그 나라의 민간요법으로 나름대로 치료한 이주노동자가 조금은 증상이 나아져 보이는 팔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왔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실태조사를 통해서 연락처를 주고받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설고 물선 한국에 와서 말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 어딘지도 모르는 산간벽지에서 그 이주노동자에게 그 실낱같은 연결망 하나가 위안이 된 셈입니다.
대면 설문조사가 앞뒤로 막혀 막막하고 답답할 때 조사원 한 명이 인터넷 설문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면서 일주일을 보내고 QR코드로 접속이 가능한 설문지 양식을 만들고 그동안 쌓인 네트워크를 통해 계절이주노동자들에게 요청을 하고 또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첫 설문이 들어왔습니다. 오프라인 설문지와는 다른 선명함도 좋았지만 설문 마지막 문항인 주관식 문항에 1,2,3,4,5로 적은 낯선 문장을 보며 감격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문에 대한 답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마지막에 깨알같이 적힌 ‘감사합니다(깜언, 컵짜이, 컵쿤캅, 쏨아쿤)’라는 글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며
한국의 노동시장은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계층화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정규직은 또 사내하청과 사외하청으로, 또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는 또 제조업, 농업, 어업 등으로 벽이 막혀 있습니다. 농업노동자는 또 고용허가제노동자, 미등록노동자, 계절노동자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며 같은 노동자인데 비자종류에 따라 너무나 다른 대우를 받습니다. 이번 실태조사는 그 현실을 현실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실태조사원들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개별 농가의 농민들한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단기고용만 허락하는 제도, 이탈하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농민들한테만 묻는 제도, 이 제도는 농민들 또한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이 구조 속에서 농민들은 절박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주노동자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다.”
“우리도 이주노동자들을 구석으로 내몰아서 착취하며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
설문조사를 통해 우리에게 던져진 이 질문(바람?)에 우리가 이제 대답해야 합니다. 한두 명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접속할 기회가 주어져서 그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이 지켜진다고 해도 나머지 백 명, 천명, 만 명의 계절 이주노동자들은 또 어떻게 합니까? 실태조사 기간 중에 있었던 이주노동자대회, 서울 용산에서 있었던 이주노동자대회에서 어떤 이주노동자가 들고 있었던 피켓에 적힌 글귀가 어쩌면 그 답일지도 모릅니다.
‘Nobody is illegal, System is illegal – 불법사람은 없다. 제도가 불법이다.’
우리가 만든 이 불법적인 제도를 ‘제도’란 이름으로 강요하는 이 현실 앞에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선 바라기는 공공형 계절이주노동자제도라도 각 지자체에 도입되어 이주노동자도 농민도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숙소와 생활편의시설 등을 공공시설로 만들고 단기고용의 한계를 공적인 시스템을 통해서 해결하는 공공형 계절이주노동자제도 도입이 시급합니다.
글 | 안솔잎(실태조사 연구원)
사진 |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