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폭풍이 두렵지 않다.
나의 배로 항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헬렌 켈러 –
한국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5개 부처, 9개 사업에서 공적급여를 통해 장애인 보조기기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책과 제도는 제한적이며, 여성장애인의 경우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은 여성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은 물론 임신과 육아 중심의 다양한 보조기기를 지원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 논의조차 미흡하다.
현실을 헤아린 아름다운재단은 LG생활건강의 지원으로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와 파트너십을 맺어 여성장애인 맞춤형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별칭으로 ‘여성장애인 날개달기(技) 프로젝트’라 부르며 2020년부터 시작한 본 사업은 유관 조사 및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2023년까지 총 112명의 여성장애인에게 맞춤형 보조기기를 제공할 수 있었다. 여느 해처럼 2023년 역시 여성장애인들은 맞춤형 보조기기를 통해 행복한 삶의 변화를 맞이하게 됐음이 지난 1월 27일 온라인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펼쳐진 ‘2023 여성장애인 맞춤형 보조기기 지원사업 결과공유회’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2023년에는 그간의 지체·뇌병변·시각 장애에 더해 청각 장애까지 맞춤형 보조기기를 지원했기에 그 의미는 한층 특별했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찾고, 삶의 변화를 맞다
올해도 여성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보조기기 지원사업의 결과공유회가 개최됐다. 특히 올해는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동시에 진행돼 결과공유회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했다. 사회자는 2020년 여성장애인 맞춤형 보조기기 지원사업 참여자였던 최국화 아나운서로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특유의 해사한 미소로 결과공유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화면에는 주인공으로 초대받은 이 사업의 지원대상자 30여 명이 반갑게 인사하며 양손을 흔들었다.
오프닝은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축사’였다. LG생활건강 ESG팀 성유진 팀장은 “출산, 육아, 가사 등의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위한 여러분의 희망이 실현되길 바라며, 지속적으로 이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라며 성원을 아끼지 않았고, 아름다운재단 변화사업팀 박정옥 팀장은 “맞춤형 보조기기가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의 밑받침이 되길 기원하며, 우리의 이야기가 널리 퍼져 변화의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라고 따뜻한 격려를 보냈다. 또한,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강인학 센터장은 “여성장애인분들이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는 가운데 자신감을 되찾고 행복감을 느끼길 응원하겠습니다.“라며 진정성을 다해 지지했다.
다음은 ‘성과 보고’ 순서였다. 성과 보고는 지원대상자인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크리에이터 리즌정 님이 그간의 지원대상자들을 만나 맞춤형 보조기기를 통한 삶의 변화를 생생하게 들여다보는 영상으로 제작됐다. 화면에는 맞춤형 보조기기를 기반으로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영위하고 있는 지원대상자들의 활기찬 모습이 흘러나왔다.
윤희 님은 청각 장애 맞춤형 보조기기들을 지원받았다. 그녀는 음성을 자막으로 변환하는 태블릿, 램프와 진동으로 신호를 확인하는 무선호출기를 통해 카페에서 활발하게 사회활동 중이었다. 아울러 음성이 글자로 표시되는 특수 안경,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방문자를 알리는 스마트 도어락, 램프와 진동으로 경보를 울리는 화재 감지기를 통해 편리하고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삶의 만족도 역시 무척 높아졌다.
지현 님은 지체 장애 관련 수전동휠체어를 제공받았다. 그녀는 명랑한 대학생으로 수전동휠체어를 통해 한결 자유롭게 캠퍼스를 오가며 강의를 듣고, 친구들과 식사하고 차도 마시며 학교생활에 열중하고 있었다.
“수동휠체어를 이용할 때는 제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기 어려워 막막하고, 답답했던 경우가 많았는데요. 수전동휠체어로 교체한 후에는 그러한 제약이 적어지고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많아지면서 자존감이 엄청 올라갔어요.”
이어서 윤수 님은 지체 장애 관련 ‘높이 조절 싱크대’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전에 그녀는 주방에서 요리할라치면 불에 얼굴을 델 뻔하기도 했고, 그릇을 설거지할라치면 물에 옷이 젖기도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위험과 불편이 모두 해소됐고, 가족과 더불어 가사활동을 할 수 있어서 즐겁고 기뻤다.
“높이 조절 싱크대로 삶이 윤택해졌어요. 비장애인들도 제가 가사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문제는 장애가 아니라 환경이라고 인식이 변화한 것 같아요. 그런 만큼 맞춤형 보조기기 지원이 보다 확장되면 좋겠어요.”
혜선 님은 2021년부터 시각 장애 맞춤형 보조기기들을 다용도로 활용하게 됐다. 일단 그녀는 29개월과 4개월의 두 자녀를 돌보는 엄마였다. 그래서 ‘자동 분유 제조기’를 통해 두 자녀의 속을 채우고,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해 동화를 읽혀 주고, 동요도 들려주며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화면 낭독 노트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했고, 점자 라벨링 기기의 출력물을 집 안 곳곳에 붙여 사물을 구분하며 평온한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그 가운데 자신감을 찾은 그녀는 예전과 다른 진취적인 태도로 삶과 직면할 수 있었다.
맞춤형 보조기기라 쓰고, 인생의 동반자라 읽다
귀중한 결실을 담은 성과보고 영상의 감동 속에 대망의 ‘공감톡’ 순서를 맞이했다. 공감톡은 지원대상자들이 맞춤형 보조기기를 통한 삶의 변화를 차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듯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시간이다.
화면에는 최국화 아나운서와 함께 공감톡을 진행하고자 LG생활건강 ESG팀 신원주 파트장이 자리했다. 그는 “이 사업은 LG생활건강 임직원의 자발적인 기부로 마련된 행복미소기금으로 진행돼 더욱 뜻깊은 만큼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여성장애인을 위한 동행의 의지를 밝히면서 공감톡의 시작을 알렸다. 공감톡에는 생동감이 넘치는 수어통역과 가독성을 높이는 문자통역이 계속되고 있어 지원대상자들은 자유롭게 대화에 참여했고, 그간의 행복한 삶의 변화를 공유해 나갔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고요. 지체 장애로 높이 조절 책상과 복합 재활 자전거를 지원받았습니다. 그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정된 테이블에서 작업하다 보니 목이나 어깨, 또 허리도 많이 아팠는데요. 높이 조절 책상을 사용한 후로는 확실히 피로감이 덜해 작업하기가 수월해졌어요. 그리고 복합 재활 자전거로 운동하고부턴 다리에 힘이 붙으면서 활동이 한결 편해져 너무 좋았습니다.”
“예전에 저는 보청기만 활용해 사회활동했는데요. 코로나19로 직장동료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이후부턴 정확한 소통이 어려워 업무에 차질이 생겼어요. 그런데 음성을 자막으로 변환하는 태블릿을 통해 업무능력이 상승했죠, 실제로 최근에 업무를 인계받았는데, 98%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도 이 태블릿을 활용해 더욱 집중하게 돼서 정말 뿌듯해요.”
“저는 일의 특성상 외부 강연이나 미팅이 많아요. 그런데 기존의 전동휠체어는 크고 무거워 일반 차량이나 택시를 타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정보다 1시간 이상 늦은 적도 있어 매번 불안했는데요. 이번에 비교적 작고 가벼운 수전동휠체어로 교체하고 이동이 용이해지니까 안심이 되더라고요. 거기다 제가 문도 열고, 물건도 옮기며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어서 크게 도움받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웃음을 머금고 교감한 공감톡이 서서히 마무리되면서, 어느새 클로징 순서인 ‘경품 추첨’이 이어졌다. 이 순서가 기대되는 이유는 온라인 상품권을 선물받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나에게 보조기기란 OO이다‘라는 질문에 대한 지원대상자들의 특별한 답변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 취지에 따라 화면에는 지원대상자마다 생각하는 보조기기의 각별한 의미가 익명으로 펼쳐졌다. ‘응원단’, ‘자신감’, ‘내 손과 발’, ‘생활’, ‘내 등불’, ‘편안함’, ‘생명’, ‘동상일몽’, 휴대폰’, ‘나의 정체성’, ‘친구’, ‘안락함’, ‘생명과 자유’, ‘소통 창구’, ‘배신 않는 진실한 내 몸’, ‘자신감’, ‘무적 아이템’, ‘명쾌함’, ‘가능성’, ‘성장의 불씨’
울림이 가득한 문구들을 헤아려 보며 최국화 아나운서와 신원주 파트장, 그리고 수어통역사들은 마음이 머무는 단어를 각각 2개씩 추첨했다. 그것은 바로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부스터’, ‘편리함’, ‘인생의 동반자’, ‘징검다리’, ‘든든한 내 편’, ‘아바타’, ‘비타민’이었다. 그중에 ‘인생의 동반자’라는 표현에는 보조기기란 한 순간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함께한다는 뜻이 깃들어 있어 모두의 공감을 자아냈다.
맞춤형 보조기기를 향한 지원대상자들의 애틋한 심정이 여운으로 감돌며 경품 추첨은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끝으로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영상캡쳐 방식의 단체사진이 촬영됐다. 지원대상자들은 환하게 웃으며 첫인사처럼 양손을 흔들었고, 그렇게 ‘2023 여성장애인 맞춤형 보조기기 지원사업 결과공유회’는 성공적으로 매듭을 맺었다.
올해도 확연히 드러났듯이 사업을 통해 여성장애인들은 가사와 육아를 비롯한 일상생활과 학교나 일터 속에서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실현해 나갔다. 그 가운데 그녀들의 주체성과 능동성은 확장됐고, 자신감과 자존감은 점차 고조됐다. 맞춤형 보조기기는 장애는 물론 그릇된 세상의 인식, 관습,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날개 같았다. 그런 만큼 이제 그녀들은 그 날개로, 저마다 꿈꾸는 행복의 나라로 날아오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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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I 노현덕 작가
사진 I 임다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