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과 청소년부모지원 킹메이커(이하 킹메이커)가 함께 펼치는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 지난 5년 간 80가정, 200여 명의 청소년부모가정을 지원해온 본 사업은 올해 6년 차를 맞았습니다. 자녀의 출산과 양육, 학업이나 취업을 동시에 해내야 하지만, 아직 안정적 삶의 기반이 충분치 못한 가운데 있는 청소년부모들. 어린 부모들이 마주한 크고 작은 일상 속에서 든든한 조력자이자 응원자로서, 5년여 간 청소년부모를 돕고 지지해온 멘토선생님들의 생생한 지원현장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청소년부모의 자립과 성장을 돕는 사례관리자 멘토선생님 박은경, 성석희 님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코로나 위기가 막 시작되던 시점이었어요.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인큐베이팅 하우스*를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방문시간이 한정적이니까 음식을 미리 요리하고 챙겨서 찾아갔지요.” – 박은경 님
※ 인큐베이팅 하우스: 최대 2년간 청소년부모가 자녀와 거주할 수 있는 풀옵션 주거지. 이를 중심으로 초밀착사례관리를 통해 양육, 생활, 자립 등 통합지원한다.
킹메이커의 사례관리자로 청소년부모를 만나고 있는 두 멘토 작년 한 해만 해도 청소년부모 30여명의 주거 및 생계 관리, 자립상담, 의료지원 등으로 활동하며, 청소년부모의 생활 전반을 그야말로 ‘초밀착’ 지원했습니다.
사례관리1 ) 출산을 앞둔 ○○네 집에 방문했습니다. 청소용품과 수납용품 사러 슈퍼와 생활용품가게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과일을 먹고 싶다고 해서 오렌지, 사과를 샀습니다. 부엌정리와 싱크대청소, 화장실청소, 방과 거실, 창틀, 바닥을 청소했습니다. 세면대 폽업 교체해야 합니다. 출산하러 간 사이에 한 번 더 청소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
사례관리2 ) 2시에 ○○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와서 소아과병원에 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오늘 진료 후 큰 병원을 가야 할 만큼 상태가 나쁘지는 않다고 하십니다. 전반적으로 ○○상태가 괜찮고 약 먹여보고 밤에 쌕쌕하며 자고 기침이 심해지면 이틀 뒤 오라고 하십니다.
묵묵히, 따스하게, 관심과 지지로 다가서는 ‘좋은 어른’
사례관리는 생활관리 면부터 학업, 취업 준비는 물론 청소년부모 가정의 양육까지 하나하나 돕는 세심하고도 전면적인 지원방식입니다.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공부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스무 살 안팎의 청소년부모들은 독립의 경험도 처음이거니와, 원가족의 지원 없이 누적된 사회적 배제의 경험으로 힘든 여건 속에서 살아온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청소년부모의 집에 가면 바로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요. 청소하고서, 같이 밥을 먹고요. 아기를 돌보고,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나눠 먹지요. 분리수거, 쓰레기봉투 사는 법 등 쓰레기 버리는 법을 간단히 알려주고요. 말없이 청소해줍니다.” – 성석희 님
“청소년부모들이 밥을 잘 안 먹더라고요. 끼니를 잘 거르고, 하루에 한 끼밖에 안 먹어요. 굶는 게 익숙해서인지, 하루에 두 끼 먹으면 많이 먹는 편인데 그나마 그 두 끼 중 한 끼는 컵라면이고…. 그런 영양 상태거든요. 식사를 제대로 하게끔 하려고, 저희가 밥을 준비해 가서 둘러앉아 나눠 먹고 있어요. 이왕이면 집밥을 먹게 하고 싶거든요. 밥을 같이 먹는 것만으로도 얘들이 살아나더라고요. 누구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야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청소년부모는 관심이나 돌봄을 넉넉히 받지 못한 채 살아왔는데, 그러면서도 아기도 키우고 정말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거든요.” -박은경 님, 성석희 님
정다운 식탁 풍경이 훤히 그려지는 것만 같습니다. 멘토들은 집수리와 인테리어를 직접 하면서 습득한 노하우를 발휘해 청소년부모의 집에 페인트칠, 도배, 가구 조립, 정리정돈도 척척 해줍니다. 청소년부모가 계약하는 집도 꼼꼼히 둘러보고 장보기도 함께 다녀옵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부모의 아기를 안고 눈을 맞추며 아기의 언어발달 촉진을 위해 수다쟁이처럼 말을 건네기도 하고, 아기 씻는 법을 직접 목욕시키며 알려주기도 합니다. 더러 청소년부모가 서로 다투면 차분히 각자의 얘기를 들으며 “아기 키우는 건 어른들도 버거운 일이니 힘든 거 서로에게 풀지 말고 우리와 함께 풀어가자”고 격려합니다. 청소년부모와 아기들이 아무런 걱정근심 없이 식사와 수면을 취하고, 고립된 청소년부모가 사회와 이어져서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주눅 들지 않게, 힘을 팍팍 불어넣기!
멘토들은 청소년기에 임신과 출산을 해서 엄마·아빠가 되었다는 단지 그 사실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청소년부모의 삶을 생각합니다. 임신·출산 이전부터 이미 위기청소년으로 살아오며 감내해온 고통, 현재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곤경을 헤아려보고, 어떻게 하면 청소년부모에게 힘을 팍팍 불어넣을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고민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 청소년부모의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김밥 도시락을 싸서 같이 다녀왔습니다.
“요즘에는 다들 결혼을 늦게 하니까 청소년부모가 어린이집 행사에 가면 어린 편이라, 쉽지 않은 면도 있어요. 더욱이 할머니·할아버지·삼촌·이모·고모까지 함께 오는 가정도 있는데, 청소년부모의 가정은 엄마 혼자나 엄마·아빠 단둘이 가니까 어디 나가는 거 자체로 주눅이 들고 움츠러들게 돼요. 그래서 같이 행사에 가주고 같이 밥 먹고, 그런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청소년부모에게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성석희 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행동하고 실천합니다
박은경님과 성석희님은 성장과정에서 물질적·정신적·인적 자원이 두루 부족한 청소년부모 한 명 한 명을 만나며, 그 삶에 드리워진 그늘, 무기력함이나 우울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빈곤과 박탈, 고립의 경험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청소년부모의 삶을 손수 바꾸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활동 초기에 일주일에 한 번하던 자원활동을 세 번, 네 번으로 늘렸습니다.
“자라면서 주변에 가족이든 친지든 늘 자신을 이용해온 어른들만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도움의 손길을 좀처럼 믿지 못하는 청소년부모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일단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원가정 안에서 겪은 여러 가지 문제도 있고, 간혹 학교선생님에게 차별을 받기도 하는 등 좋은 어른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점이 공통적이더라고요. 그래도 진정으로 돕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 곧 마음을 열고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척 애를 써요.” -박은경 님
청소년부모를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청소년부모의 해묵은 허기와 외로움을 따스하게 채워주는 멘토들은 평소 알던 지인을 통해 킹메이커의 지원 활동과 연결되었습니다. 박은경 님은 대안교육으로 키운 자녀가 장성한 뒤 행동하고 실천하는 시민으로 살아보자는 결심을 굳히게 된 때였습니다. 성석희 님은 전부터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바라던 차에, 열여덟 살이 되면 시설을 퇴소해서 홀로 살아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소식을 접하며 소외된 청소년들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시기였습니다.
현재 사회복지학도 공부하고 있는 멘토들은 청소년부모를 위해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청소년부모가 사회에 나왔을 때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지식이나 정보 습득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 있으므로, 적어도 고교수준의 배움을 지원하려면 청소년부모가 공부하는 동안에 양육과 돌봄, 경제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공공의 영유아 양육관리가 실질적으로 진전되어야 하고, 청소년부모의 기초생활보장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갖고 있습니다.
“요새 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와 함께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수능 시험을 봐서 지금 대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부모가 있어요. 작년에 그 친구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문득 그러더라고요. ‘요새 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요. 자존감이 높아진 모습을 보니, 실로 감격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난 괜찮은 사람’이란 말이 저희를 감동시켰어요.” -성석희 님
요즘 킹메이커라운지는 청소년부모들의 학업을 위한 열공 스터디공간으로 탈바꿈합니다. 전에 과학 선생님으로 일하던 성석희님이 개별수업을 하며 청소년부모의 학업이나 취업 공부를 돕는 동안, 박은경님은 한켠에서 아기를 살뜰히 보살핍니다. 학업처럼, 또래가 하는 것들을 다 경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청소년부모들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 굉장히 재미있어하면서 성취감을 느낍니다.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청소년부모가 있습니다
열의에 힘입어, 한 청소년부모는 검정고시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받고, 취업을 위한 전문자격증 시험에서도 “두려움 없이!” 도전하여 단번에 합격했습니다. 어엿한 사회인으로 취직도 했습니다. 절실하게 공부하고 싶어 하다가도 정작 공부시간이 되면 막막함 탓에 여기저기가 아팠던 이였습니다. 멋진 성장과 변화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청소년부모와 차곡차곡 관계성과 신뢰를 쌓아가는 아낌없는 노력으로 청소년부모는 자녀와 함께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끝으로 박은경, 성석희 님은 “청소년부모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히 돌봄과 배움을 지원해나가겠다, 좀 더 많은 청소년부모의 멘토, 사례관리자가 나오시면 좋겠다”고 포부와 희망을 덧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자님들이 안 계셨더라면 이 지원사업이 없었을 테고, 청소년부모들이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서 헤어 나오기란 몹시 힘들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다정한 말 한마디, 단 한 끼 같이 밥 먹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을 살릴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엄마, 아빠를 살리고, 아가들을 살리는 소중한 일에 기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은경, 성석희 님
글 작가: 조승미
사진 작가: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