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개인의 삶과 사회의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을 통해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마중물이 되어주는 공익 콘텐츠 제작 및 확산을 지원합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제일 먼저 앞장서는 공익단체들이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활동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기후변화, 난개발, 해양 오염으로 급격히 변해가는 제주바다 산호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고자 산호포스터를 제작하였습니다. 기후변화, 난개발 등으로 급격히 변해가는 제주바다 보전에 앞장서는 신주희 활동가 인터뷰를 전해드립니다. |
제주 바다는 보기만해도 가슴이 벅찰만큼 아름답다. 막힌 것 없이 탁 트인 하늘 아래 넘실대는 바다. 하지만 거기에는 더한 아름다움이 숨어있다고 한다. 제주에 위치한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신주희 활동가가 들려주는 제주 앞바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낯선 조합, 그러나 지금 반드시 필요한 시민 X 과학
한 달에 한 번, 제주 바다 깊은 곳으로 다이버들이 뛰어든다. 이들은 바다를 즐기러 온 평범한 다이버가 아니다. 서귀포 앞바다에 살고있는 천연기념물 ‘제주연안 연산호 군락’을 조사·기록하는 시민들의 모임 ‘산호탐사대’이다. 이들은 어떤 산호종이 살고 있는지, 산호의 생명을 위협하는 변화는 없는지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한다. 이렇게 바다에서 건져올린 기록은 산호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공유된다. 산호탐사대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즐거움을 넘어 더 큰 가치를 만드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산호탐사대 활동을 기획·운영하는 이들은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이하 파란)이다. 파란은 제주 바다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기후위기 대응, 생물다양성 보호, 해양보호구역 확대와 관리, 시민과학을 통한 산호 군락지 기록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다. 단체 이름이 표방하듯 시민과학을 기반한 활동으로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고자 한다. 시민과학이란 시민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데이터를 모으는 것부터, 직접 이슈를 발견해 조사하고 연구자로서 협력해 결과를 도출하는 것까지 다양한 층위의 활동을 아우른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에 섬도 정말 많죠. 그러니 조사해야 할 산호도 정말 많아요. 하지만 산호를 조사하고 연구해 보고서까지 낼 수 있는 전문 연구자는 국내에 채 5명도 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에 비해 바닷 속 현실은 한 해 한 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시민들의 참여가 절실한 이유입니다. 산호 연구가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이빙 하는 시민 한 사람이 물 속에서 산호 사진 한 장만 찍어도 그곳 해양 생태계의 변화를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기후우울증을 극복하는 힘, 자연에서 찾아
시민참여가 중요한 이유를 힘주어 설명하는 신주희 활동가도 처음 시민으로서 파란을 만났다. 신 활동가는 이전에 회사에 다니며 여행하는 사람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제주 제2공항 문제로 제주 오버투어리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환경단체에서 하는 시민참여 탐조활동에 참여했고 거기서 파란의 전신인 녹색연합 해양생태팀의 활동가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오버투어리즘 : 어느 지역에 수용 한계를 초과하여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방문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환경적 문제를 일컫는 말
“당시 <체이싱 코랄 Chasing Coral>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후, 엄청난 기후우울증에 시달렸어요. 망해가는 지구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데, 개인이 뭘 할 수 있을지 몰라 답답했죠. 그때 마침 활동가를 찾는다는 걸 보고 바로 지원한 거예요. 학교 때 해양학도 전공했고, 스쿠버 다이빙과 바다도 정말 좋아해요. 면접 때 ‘저는 정수리에 물이 닿아야 하는 운명’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운명처럼 이어진 인연으로 파란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어느덧 3년차 활동가가 되었다. 극심했던 기후우울증은 파란에서 활동하며 점차 해소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거대한 기후를 바꾸는 활동은 장기적으로 봐야겠죠. 하지만 지금 당장 세상이 들어야 할 말을 하고, 그것에 대해 누군가는 반응해서 우리와 함께 해주고 있으니 성취감이 있어요. 엉망이 되어가는 지구를 보며 넋 놓고 있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주변에 넋 놓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 많아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점차 회복됩니다. 자연으로부터 온 병은 자연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바닷 속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대변인, 더 많은 시민과 함께 하고파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활동인 만큼 지속적으로 활동에 참여할 시민들을 모집하는 것도 중요하다. 파란은 <변화의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으로 산호탐사대 활동을 알리며, 동시에 제주 앞바다 산호의 우수성을 알리는 포스터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이 있는 문섬, 밤섬에서 조사한 산호 40~50종의 사진과 설명을 담아 포스터를 만든다. 완성된 포스터는 제주 지역의 다이빙샵이나 강사들에게 배포할 예정이다.
“우리가 숲에 가서 ‘와! 숲이네’ 하는 것보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단풍나무, 은행나무 하나씩 이름을 알고 부를 때 더 많은 것이 보이잖아요? 바다도 마찬가지예요. 저희가 조사하는 연산호 군락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에요. 금빛나팔돌산호, 맵시산호 등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산호들이 살고 있죠. 레저를 목적으로 다이빙을 하거나 배우는 분들에게 제주 앞바다에 어떤 산호가 살고 있는지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신주희 활동가는 산호탐사대의 활동이 ‘바닷 속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대변인’과 같다고 했다. 밖에서 보면 평화로운 바다이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산호 군락은 지금 마치 전쟁을 치르듯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감각할 수밖에 없다. 그 바닷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 보이는 일을 산호탐사대와 함께 파란이 해내고 있다.
2014년부터 맺어온 아름다운재단과 인연
파란이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시나리오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서귀포 앞바다 연산호 군락지 서식 변화상을 조사했다. 파란은 당시 ‘제주해군기지 연산호 조사모임’이란 이름으로, 연산호 군락지의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이를 연구할 수 있는 해외 전문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를 꾸렸다.
“2014년에 지원받은 변화의시나리오 지원사업은 현재 저희 활동의 태동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지금 산호 데이터를 기록할 때 ‘방형구 조사’ 방식이란 걸 쓰고 있거든요. 가로세로 50cm 길이의 틀을 들고가서 그 안에 얼마나 변화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인데, 2014년에 했던 조사 경험이 많은 밑거름이 되어 주었어요. 또 당시 해외 심포지엄을 열면서 맺게 된 해외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2014년에 본 연산호 군락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자연의 회복력에 희망을 갖고, 현재 바다 속 상황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해군기지 건설 이전에 찍은 사진과 2014년에 저희가 찍은 사진을 보면 당시에도 이미 많은 부분이 파괴된 상태였어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파괴된 상태 그대로 남아있죠. 다시 회복되지 않고 있어요”
한 번 망가진 산호가 다시 회복되는 데 10년이란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지금은 해군기지건설보다도 더 큰 위기가 제주 앞바다에 닥치고 있다.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
“여기, 전 세계 북이남 60도 내에 있는 바다 수온의 평균값을 매일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어요. 그래프를 보시면 2023년 3월부터 매일매일 가장 뜨거운 바다를 기록하고 있죠. 지구는 가장 뜨거운 하루를 매일 갱신하면서 2023년 이후 지금까지 오고 있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인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서 이 위기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편함이 불행이 될 날이 얼마 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재고 따지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하는 거죠.”
그래프가 가리키는 변화를 보니 무서운 마음이 덜컥 든다.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다고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절망이 큰 파도가 되어 마음을 집어 삼키는 기분이었다. 무섭고 막막하지 않냐는 질문에 신 활동가는 이렇게 답했다.
“인류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어요. 전 세계에서 1990년대 프레온 가스를 줄이자 해서 실제 변화를 만든 적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헤엄쳐 나가길
바다 사진과 영상을 볼 때면 신 활동가는 산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었다. 줄줄이 이어지는 낯설고 신기한 이름을 들으니 사진 속 바다가 훨씬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곳을 가 본 적 없지만, 어쩐지 좀 더 가깝고 다정하게 다가왔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푹푹 찌는 여름 열기에도 유난히 기운이 샘솟고 마음이 쾌청했다. 희망의 마음으로 들려준 푸른 바다의 이야기에서 얻은 에너지 덕분이었나 보다. 그 푸르고 단단한 희망의 마음이 거센 파도에 부서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오래도록 더 멀고 깊은 바다로 헤엄쳐 나가길, 그래서 그 안에 살고있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글 | 최지은(변화사업팀)
제주 바다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하다면?
[2014 변시 이야기] 국가가 포기한 멸종위기 ‘연산호’ – 제주해군기지연산호조사모임
[2014 변시이야기] 제주 강정 앞바다, 연산호에 무슨 일이?
[2015 변시 이야기] 강정 기록 展 ‘적, 저 바다를 보아라’
[2016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A 지원사업] 제주 ‘산호 정원’ 관찰 – 제주해군기지 연산호 조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