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에서 공익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예주 매니저입니다.
오랜기간 한부모여성의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을 담당해오다가 2025년부터는 사회변화팀으로 이동해 아동청소년 문화 지원사업과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을 담당하고 있어요. 희망가게를 담당했을 때는 한부모여성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담긴 말에 주목했습니다. ‘편부모’, ‘미망인’, ‘학부형’ 등의 말이 대표적인데요. 불편함과 차별의 요소를 찾아내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이 있어 점점 쓰이지 않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여성인권이 신장되면서 언어도 바뀌게 된 것이겠죠.
아름다운재단에서 공익사업을 담당하며 이주배경아동, 자립준비청년 등 다양한 이웃들을 만나는만큼 자주 접하는 단어에서도 좀 더 기민하게 반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최근 언어와 관련된 책을 부쩍 많이 읽게 되었어요. 제가 꼽은 네 권의 책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언어와 존재: 단일한 민족, 단일한 정체성은 환상이 아닐까?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 퀴브라 귀뮈샤이 라는 작가의 책입니다. 작가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가 튀르키예 출신이어서 이주민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요. 독일에서 교육받으며 다양한 정체성을 지녔지만 학교와 사회에서 자신이 무슬림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취급받는 듯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말들은 때론 조용하게, 주목되지 않으면서, 아는 사람들끼리 알아들을 수 있는 농담으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작가는 튀르키예계 독일인으로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복잡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단일한 정체성이라는 개념에 도전합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회가 되자고 글을 쓰고 강연하고 있습니다.
저도 경험과 생각을 얘기할 때 어떤 말로 뽀족하게 설명하기 힘든 모호한 상황과 어려움에 대해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소셜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개개인들은 그런 개인적인 경험들을 자기의 말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그런 증거들이 모여 하나의 해시태그가 되기도 하고요.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차별의 경험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표현하는 언어가 사고의 기반이 되며, 차별과 혐오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
미끄러지는 말들: 우리 사회에 필요한건 다양한 ‘혀’를 받아들이는 것
백승주 작가는 사회언어학자라 소개합니다. 사회언어학이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언어학은 언어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변화하는지, 사회 구조와 언어 사용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해요. 작가는 소수자와 약자가 경험하는 언어 속에 내재된 차별, 대중매체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의미, 일상생활 속 대화의 의미를 작가 본인의 경험과 함께 녹여 풀어냈습니다.
작가는 대학생이 되어 서울의 어느 카페에서 자기 혀에 대해 인지한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같은 제주 출신의 친척에게 ‘승준디예, 좀 늦을 거 닮아마씀’ 이라고 말을 하기 전, 이렇게 말해도 될지 한참을 고민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다른 혀를 가진걸 다른사람에게 들킬까봐, 준비 안 된 상황에서 숨겨둔 혀가 튀어나올 까봐 두려워했던 경험을 말해줍니다.
자신이 숨겨왔던 제주어라는 혀를 통해, 소수자로 언어를 숨겨왔던 사람들에게 공감을 확장합니다. 발음이 이상하다거나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거나, 표준어가 아니라거나, 조용히 말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이유로 말할 기회가 막히는 경우 말이죠. 작가는 언어적 차이가 소통의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이곳에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가게 되니까요.
말을 부수는 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권력이 있기 때문이야
이 책의 부제는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입니다. 이라영 작가는 언어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권력을 작동시키는 방식에 주목하며, 특히 소수자의 언어와 그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책에 담았습니다.
작가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위치와 힘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억누르는지 살펴보는데요. 어떤 고통에 대해 ‘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 내 우선순위는 아니야’라고 자신의 상대적 무관심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것은 관심이 없어도 되는 위치에 있는 권력 행위라고 말합니다. 자세히 몰라도 판단해버릴 수 있고 현재 사회구조에서 만들어 놓은 고통의 우선순위가 불편하지 않은 것이니까요.
누군가를 연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민은 사회적 참여의 기초가 될 수 있지만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에 연대하기 보다 시혜적인 시각에 빠져 우월감이 생기기도 쉽습니다. 무엇보다 연민의 대상이 불쌍해 보이지 않을 때는 순식간에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나와 다른 생명과 공존을 배우고 연민에서 애도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 권력의 언어 해체는 또 다른 언어로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고통에서 아름다움까지, 사고의 흐름이 한 챕터 안에서도 넓게 확장됩니다. 읽으며 함께 고민할 게 많은 책이에요. “고통의 언어를 듣지 못하는 귀는 죽음의 비명마저 듣지 못한다.”(p.36)는 문장은 따로 메모장에 남겨 두었습니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나의 정체성은 결함이 아니다
농인 부모 밑에서 자란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가지는 공감이라는 감정을 살펴본 책입니다. 작가 이길보라는 농인(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란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s)로서, 수어와 소리 언어 모두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경계에 있으며 이런 위치는 미등록 이주 아동, 디아스포라, 재일조선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의 위치와 흡사한 점이 있다고 말해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연민과 동정의 시선을 소수자에게 보내며 이를 공감이라 착각한다고 지적합니다. 이건 공감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투영한 것인데 말이죠. 장애를 고통과 상실의 관점으로 보는 것 역시 타인에게 어떤 불편함과 폭력성을 담을 수 있다 말합니다. 장애에 대한 경험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며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다른 정체성을 부족함이나 극복해야 할 점으로 보는 것이 아닌 다양한 정체성과 경험의 일부로 존중 받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기초이면서 스스로 생각할 때도 사용하는 요소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돌아보고 타인의 경험을 상상하는 노력으로 우리는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서 이야기 했듯 백승주 작가가 사는 동네 빨래방에 베트남어, 러시아어, 중국어, 한국어 안내가 있다고 해요. 제가 사는 곳도 그렇거든요. 언어가 서로 섞이고 넘나들며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어요.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한국어 또한 모국어 사용자뿐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언어로 발전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