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물꼬 지원사업은 시민들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를 스스로 탐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4 변화의물꼬 지원사업 1단계인 ‘물꼬트기’에서는 총 16개 프로젝트를 지원하였으며, 그 중 7개 프로젝트는 2단계인 ‘항해하기’에서 연속 지원을 받았습니다. 1년 동안 ‘물꼬트기’와 ‘항해하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7개 프로젝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마지막 동행을 부탁해 |
나 홀로 집에, 그래서 나 홀로 죽음
영화 <나 홀로 집에>는 아시다시피 코미디 영화이다. 어린 주인공과 악당이라고 하기에도 좀 모자란 도둑들이 자빠지고 구르면서 웃기는, 원초적인 몸개그 드라마이다. 과거에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등장하는 가족영화로 각광을 받았는데, 대체 어디까지가 웃어넘길 만한 범주고 아닌지, 비판 어린 시선들이 등장하면서 예전만 같은 인기를 누리는 것 같진 않다. 각설하고, 우리는 조금 다른 입장에서 <나 홀로 집에>의 꼬마 주인공이 처했던 상황과 공포에 공감한다. 보통은 이 영화를 우여곡절 끝에 가족과 재회하며, 그 소중함을 깨닫는 가족주의 드라마로 보지만, 곤란에 처한 주인공을 위해 ‘가족’이나 ‘국가’가 해준 일은 하나도 없다. 정작 주인공을 구한 건, 본인 자신의 절실함과 기지, 그리고 낯설고 두렵게만 보였던 말리 할아버지(1편)와 비둘기 아줌마(2편) 같은 ‘이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삶의 조건 또한 ‘혼자 사는’, 그래서 ‘홀로 죽을 걱정이 많은’이다. 당연히 가족과의 ‘화해’ 같은 것으로 해결될 리 만무하다. 가족은 빠르게 해체 중이며, 어느 사회보다 1인가구, 비혼가구가 증가하고 있고, 곧 자식과 부모가 함께 늙고 죽어가는 다사(多)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국가는 이런 사정들을 헤아리기는커녕 기본적인 신뢰마저 거두고 있는 시대에 ‘자식도 배우자도 없는’ 우리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의문점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매일 매일 공포에 떠는 수준은 아니지만 문득, 문이 잠겨 화장실에 갇히는 상상, 정신이 오락가락 한 채로 남에게 폐만 끼치다 어느 날 부패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불안….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도 별다른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비혼 1인 가구로서 홀로 남겨지는 삶과 홀로 죽을 삶을 누구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마음속 어딘가에 풀리지 않는 실타래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1인가구 장례에 대해 알게 된 것
커뮤니티 안녕(가칭)의 두 사람은 2014년 모 문화재단의 세대공감 관련 연구사업에 함께 하면서 창의적 나이듦, 돌봄, 죽음 등의 문제에 공통적인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몇몇 예술가와 문화행정인 등과 함께 모임을 만들어 나이듦을 주제로 책을 읽고 대화모임을 하다가, 2019년 일본의 관련기관 및 단체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경험을 어떤 식으로 진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욕구와 논의는 있었으나 각자 생계 활동 등으로 실행의 동력을 만들지 못했다.
그 사이 두 사람은 가족의 발병과 돌봄에 익숙한 상황이 되었고. 일상에서 부모와 선생, 지인들의 죽음을 더 자주 겪게 되면서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한 시점에 변화의물꼬 사업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의 질문에 동감할 사람들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사람들인지, 공감의 밀도는 어떠할 지 등을 알아가고 싶었다. 또한 이 질문에 대한 어떤 답을 가지고 있거나, 관련된 활동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 혹은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어떤 대화를 할 수 있고, 할 필요가 있는지 알게 되어 행동까지 이어지길 바랐다.
1단계 물꼬트기로 무연고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사)나눔과나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상담·지원하는 (사)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생태성을 그대로 살린 장례문화를 지향하는 국립기억의숲을 찾아갔고, 죽음을 주제로 하여 30대 그룹, 50대 그룹과 두 차례 대화모임을 열었다. 그 결과, 장례와 관련해서는 아래 세 가지를 알게 됐다.
① 자식도 배우자도 없는 1인가구 나는 무연고 사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② 예비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한 죽음을 지켜줄 ‘누군가’와 ‘무언가’가 필요하다.
③ 보편적인 권리이자 복지로서 공영장례제도를 이해하고 요구해야 한다.
죽음과 관련해서는 ①죽음에 관해 대화할 기회나 자리가 없고 필요하다, ② Death Talk을 나누고 기획하며 관련 활동을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는 점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1단계 물꼬트기를 통해 우리의 물꼬가 확실히 트였다.
1인가구

디-톡스 (죽음이야기주간 준비모임)

해외 장례식 사례 공유 학습회
‘디-톡스 Death-Talks’ 시작
2단계 항해하기로 넘어가면서 대화모임에 참여한 30대 그룹에서 두 사람, 50대 그룹에서 세 사람이 함께 활동하기로 했다. 우선 첫 모임에서 죽음이라는 주제와 존재가 일상과 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해 함께 ‘죽음주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 시작으로 2025년 4월, ‘대화’, ‘이야기’를 토대로 한 ‘죽음이야기주간’의 개최를 목표로 하는 데에 뜻을 모았다. 죽음이야기 주간 준비모임의 이름을 ‘Death-Talks’의 ‘D’를 따서 ‘디-톡스Death-Talks’라고 지었다.
디-톡스는 매월 1~2회의 온·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며, 가족들의 장례식 사례를 공유하거나 일본·호주의 장례식 사례 공유 학습회를 열기도 했다. ‘죽음·장례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아카이브를 염두에 두고, 관련 질문을 선정하여 향후 진행할 인터뷰를 준비했으며 틈틈이 죽음이야기주간의 기획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죽음과 장례에 관한 질문 만들기1.

죽음과 장례에 관한 질문 만들기2.
‘웃으면서 죽음을 말하고 싶었어’
드디어 2025년 4월 18일과 19일 <죽음이야기 주간 첫 번째, 웃으면서 죽음을 말하고 싶었어>가 개최된다. 별도 지원금을 받지 않은 행사라 이제 막 텀블벅에 펀딩 페이지를 열었다. 어떤 사람들이 방문할 지는 아직 모르지만, 다양한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야기’의 의미를 말하는 행위를 넘어, 대화와 스토리, 교류와 문화,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확장하는 자리를 상상하며 기획했다. 참여하는 모두의 이야기가 사례로 다뤄지며, 다채로우면서 더 넓고 깊은 흐름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2025 죽음이야기 주간 첫 번째, 웃으면서 죽음을 말하고 싶었어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계속 미뤄왔던, 말로만 떠다니던 일이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변화의물꼬를 만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원사업은 일종의 약속인데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몸을 움직였더니 일부가 실현되었다. 이 무(無)신뢰의 시대에, 함께 하게 된 디-톡스 구성원들이나 대화모임에서 만난 젊은, 혹은 또래의 참여자, 그리고 이미 많은 경험을 가진 물꼬의 빙고들에게 우리가 하려는 일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감이 섞인 눈빛을 받았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었다. 앞으로 어디로 갈지, 이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지만 역시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나아갈 수 있었다. 반갑고 고맙다. 여러모로 고마운 항해였다.
글 / 커뮤니티안녕 (백현주, 이초영)
사진 / 커뮤니티안녕 (백현주, 이초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