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은 시민사회의 성장을 돕기 위해 아름다운재단이 2012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사업입니다. 매년 공모를 통해 예비 공익단체를 선정하고, 3년간 단체의 설립과 성장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2024년에는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새로운 지원단체로 선정되었습니다. 아카데미극장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서 시작된 이 단체는, 이제 그 너머의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을 함께 응원해주실 수 있도록 오늘은 ‘아카데미의 친구들’을 여러분께 소개하려 합니다.
🗨️ ‘아카데미의 친구들’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원주 ‘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던 모든 시민의 이름이었습니다. 원주시에 의해 극장 철거가 강행되기 전에는 단체의 성격을 띠지 않는, 그저 불특정 인물들의 모임이었어요. 직업도 나이도 다양한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있었죠. 그저 오래된 극장이 그 자리에 더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하나가 같았기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시를 상대로 싸웠습니다. 관련 조례를 찾아서 시정정책토론을 청구하고(반려당했지만), 극장 앞에서 인간 띠 잇기를 하기도 하고, 정치인들이나 유관기관 대표자들에게 손편지를 보내고, 문화재청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수없이 기자회견과 성명문을 공유하고, 단식/노숙/고공 농성도 해봤지만 끝내 원주시는 극장를 철거했어요. 철거 직전에는 정말 더이상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좌절감과 벽에 대고 소리치는 듯한 답답함에 모두가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요.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 것 같아요. 철거 직후에 다들 원주를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진짜 원주를 떠난 사람은 거의 없어요.
다들 서로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서라도 부러 모여앉더라고요. 일상회복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진행했어요.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극장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서 전국을 다니며 상영을 했어요. 많은 분들이 “잘 싸웠다, 고생했다” 말해주시고 환영해주셔서 그런 힘으로 많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철거 이후였던 2023년 11월 12일에 다시 거리 행진을 했는데, 그때 외친 구호가 “극장은 무너져도 시민은 무너지지 않는다!”였어요. 원주 시장은 빨리 극장을 때려부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원주 시장의 아집이 모두에게서 앗아간 아카데미극장의 가치를 계속 이야기할 겁니다. 그리고 그 곳이 담아주었던 우리의 ‘꿈 꿀 권리’를 되찾을 거예요.
🗨️ 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앞으로 아름다운재단과 함께하게 되었는데요. 신청하신 이유와 소감을 짧게 알려주세요.
극장이 사라져도 흩어지지 않은 사람들과 극장이라는 공간 그 너머의 것들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멀리 보고 활동을 지속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르게 체계와 절차가 필요했고, 업무를 맡아 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여러 방법을 알아보던 중에 아름다운재단의 공익단체인큐베이팅지원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일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사업이 아니라 단체의 성장을 지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아친의 상황에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와중이라, 당장 어떤 사업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사업은 단체 ‘운영’을 지원하는 사업이라 실무자의 인건비나 공간 유지 비용 등을 지출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됩니다.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각자 다 다른 반응이었어요. 누구는 “와!” 하고, 다른 누구는 “헉 어떡하지!”하면서 걱정부터 하기도 했어요. 어쨌든 지금은 지원사업을 통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카데미의 친구들 단체명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단체명을 결정하게 되신 배경과 어떤 분들이 함께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의 친구들’이라는 명칭은 국내/외 다른 시민 운동에서도 종종 쓰이는 것 같습니다. 원주에서도 아카데미의 친구들 이후에 ‘치악산의 친구들’이라는 연합동아리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지키고 싶은 대상과 그 행동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연결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의 이름이었기에, 강제 철거 이후에 단체를 구성할 준비를 하면서 이름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요. 극장이 있던 자리에 남은 사람들이 ‘아카데미’를 빼고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없겠더라고요. 우리가 모였던 이유이자, 이대로 흩어질 수 없는 이유가 곧 아카데미극장으로 귀결되니까요. 우리는 왜 아카데미극장을 지키고 싶었는지, 극장은 어떤 의미였는지, 남은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의 친구들’이라는 이름을 이어가기로 생각이 모아졌습니다.
지금 아카데미의 친구들에는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빛내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버티는 걸 잘한다는 활동가, 최악의 상황부터 고민하는 활동가, 화가 많아서 헐크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활동가, ‘아카데미극장’ 검색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활동가, 비폭력 대화를 중요시하는 활동가, 송구하다는 말이 습관인 활동가, 미안하다는 말이 습관인 활동가, 개인연락처가 공공재가 된 활동가, 자꾸 한 턱 쏘려고 하는 활동가, 웃음이 많은 활동가, 모종심기를 즐기는 활동가, 오래된 장소에 심장이 반응하는 활동가, 잠 안자고 영화 찍는 활동가, 고마움이 많은 활동가, 강강약약이 매력인 활동가, 약속잡기 아티스트인 활동가, 호기심이 많은 활동가~ 까지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울고 웃으며 함께하고 있습니다!
🗨️ 아카데미극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 일을 해야만 해’ 라고 용기와 위로를 받는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활동이나 사례가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극장 강제철거 이후 얼마되지 않았을 때, 멀리 홍콩에서 아친을 찾아왔던 분들이 있었어요. 홍콩에서 큰 이슈가 있었는데 그때 우리처럼 권력에 탄압을 받으면서도 투쟁을 하던 사람들이었고, 아카데미의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셔서 언어가 잘 통하지 않음에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고 극장을 잃은 상실감과 무력감에 힘들어하던 때였는데 멀리서도 우리가 말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어요. 연대방문은 투쟁 내내 있었지만, 그 분들이 유독 인상깊었던 이유는 그 연대가 언어와 거리를 초월한다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분들의 이야기 중에서 “그럼에도 우리는 홍콩에서 살아갈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우리가 상처받고 핍박받으면서도 원주를 떠나지 않는 이유를 대신 설명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만남 이후에 아친들은 원주시로부터 고발당한 시민들의 법률대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의 날을 열었는데요. 그때 후원의 날 주제가 ‘아카데미 너머’였습니다. 아카데미극장 이후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던 시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극장은 부서졌지만 사람은 남았고, 우리는 계속 이곳에 살아야 하니까, 좀 더 나은 지역-세상을 만들어야만 해요. 그래서 계속 활동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 2024년 선정되시고 나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요. 짧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소개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일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아무래도 ‘활동회원 워크숍’일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회원들끼리 모이는 자리이기도 했고, 자체적으로 리더십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내부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아친들은 정말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느꼈고요. ‘리더’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리더십에 대해 각자 생각을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각자가 잘하는 것을 찾아주고,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 용기를 북돋을 수 있었습니다. 자주 만나는 사이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당신의 강점은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할 기회는 많이 없으니까요. 각자가 가진 다양한 강점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참여했던 모두가 다음에도 그런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어요. 비슷한 가치를 좇는 사람들끼리도 다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계속 염두에 두고 ‘우리’의 생각을 모아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지원사업을 시작한 후에 조직역량강화를 위해 시도할 수 있는 게 많아졌어요. 다음 워크숍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 2025년에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으신가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하는 일도 많아서 계획한 일이 가득인데요. 주로 시민들과 함께 뭔가 배우고 감각하기 위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광장 이후의 세상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도록, 색다른 정치 강연 프로그램 ‘지금 우리, 다음 정치’를 원주에서 열어보려고 준비하고 있고요.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작은 변화를 일으켜보자는 취지로 다양한 소모임의 활동을 지원하는 ‘다양성 실험실’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과 커먼즈 관련해서 함께 공부하기 위해 연사 초청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고, 아카데미의 친구들을 소개하고 활동을 알리기 위해 공식 홈페이지 개설도 준비중입니다. 바람이라면, 이런 활동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시너지를 발휘하게 되는 걸 기대하고 있어요. 다양성 실험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작은 단위의 사람들이 지역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논의할 지역의제가 발굴된다면 더없이 뿌듯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극장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다른 지역 현장에 연대하거나 커먼즈 관련 이슈에 대응하는 일은 일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가장 최근에는 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 농성장 지킴이를 지원해서 다녀왔어요. 보존 가치가 차고 넘치는데도 시에서 일방적으로 철거를 추진하려 한다는 점이 아카데미극장과 많이 닮았거든요. 연대활동을 다니면서 배우는 것도 많고, 새로운 현장이나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아친의 역량이 더욱 자라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라면 이런 연대활동을 통해 더 많은 연결과 성장의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제 시작이지만! 앞으로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작은 바람, 큰 바람이어도 좋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일을 나눠할 때도 종종 하게 되는 말이 “투쟁은 즐겁게!”인 것 같습니다. 하는 사람들이 즐거워야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즐겁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가진 작은 바람이라면 계속해서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즐겁게 활동하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계속,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찾고 연대하면서 즐겁게요! 아카데미극장이 진통 끝에 강체 철거되었던 기억이 우리를 강하게 연결시켜 주고 있지만, 그 오래된 분노에만 잠식되지 않고 계속해서 유쾌하게 활동을 풀어내고 있는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받는 위안과 용기는 정말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 오래된 것을 무용하게 여기지 않고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활동 같은 것들이 더 힘을 얻게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름다운재단의 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우리가 하는 활동이 엄청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다른 단체들과 네트워크 워크숍을 했을 때도 모두 응원해주셔서 큰 힘이 되었어요.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도로 위에 나왔는데 능숙한 선배 운전자가 차선 변경을 기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움직이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온기가 연결되면서 정말 ‘서로의 용기가 되어’ 작은 것이라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우리가 경험했던 온기가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혼자가 아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작은 행동도 큰 가치가 있으니 즐겁게 계속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남아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더 많은 연결과 연대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고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낯선
용기있고 능력있는 아름다운분들 ‘아카데미의 친구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