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 4주년을 맞아 그간 작성했던 인터뷰를 다시 읽어봤습니다. 인터뷰이들이 바랐던 변화가 현실이 되기도 했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늘어났습니다. 그만큼 새로 덧붙이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것이 달라졌으니까 답변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써보면 어떨까?’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인터뷰 새로고침! 활동가 네 분께 과거 인터뷰 답변을 새로 작성해달라는 부탁을 드렸는데요! 과연 어떤 내용이 달라졌을지 지금 시작합니다.
1️⃣김희진,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위원
2️⃣이주언, 공익법단체 두루 공익변호사
3️⃣조한진희, 다른몸들 활동가
4️⃣이동환, 에이팟코리아 상임이사
2021년 봄,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만난 김희진 변호사님을 기억합니다. 당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유령아기’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보편적 출생등록의 필요성을 알리고, 제정을 촉구했었는데요. 4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들어봤습니다.
Q. 변호사님과 국제아동인권센터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었어요. 당시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마스크를 벗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최근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근황을 가볍게 들려주세요!
A. 2021년 봄에 인터뷰를 했었는데, 저는 2021년 여름 끝무렵에 국제아동인권센터를 떠났네요. 변명같기도 하지만, 육아를 위한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고정 근무가 필요한 일터를 떠나게 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저의 주요 일들은 ‘아동인권’입니다. 국제아동인권센터의 구성원은 아니지만, 계속하여 국제아동인권센터와 다양한 아동단체와 연대해 아동인권 옹호활동을 함께 하고 있고요. 민변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위원 혹은 김희진 법률사무소 변호사로서 출생등록과 가족관계등록, 소년사법, 아동학대, 아동 탈시설을 포함한 아동보호체계, 학생인권 이슈 전반에 폭넓게 관심을 갖고 법률 조력, 입법운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2023년 8월 대학원을 졸업한 때부터는 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속의 연구자 정체성을 갖고 아동인권과 관련된 연구에도 상당한 시간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설명이 길어졌는데, 간략하게 아동인권 옹호활동을 하는 프리랜스라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Q. 2021년, 보편적 출생등록과 관련해 아래와 같은 답변을 남겨주셨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논의가 더 진행되었고, 변화도 있었죠! 인터뷰 새로고침을 시작해볼까요?
📆2021년 5월의 이야기
A. 보편적 출생등록 네트워크에서는 보편적 출생등록을 요구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들이 한국 정부에 출생이 등록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입니다. 지난 2월에는 법무부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어요.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정보를 국가기관에 신속히 통보하는 제도죠. 출생통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건 상당수 아이들이 병원에서 태어나기 때문이예요. 이주민도 병원을 이용할 때 기록이 남으니까 출생통보가 가능하죠. 다만 현재 논의되는 출생통보제는 건강보호심사평가원에 의료기록을 전송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려 해요. 그렇게 되면 의료보험 가입을 못 하는 외국인의 자녀는 출생통보제에서 배제될 수 있는 한계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2025년 4월의 이야기
A. 2023년에 큰 사건이 있었어요.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정기감사 결과 2015~2022년까지 임시신생아번호로 예방접종을 받았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주민등록번호 등으로 전환되지 않은 아동이 6,179명(보호자가 내국인인 아동이 2,154명, 보호자가 외국인인 아동은 4,025명)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시 감사원은 아동이 위기 상황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23건을 표본으로 선정해 아동의 실제 생존 여부와 양육환경 등을 조사했는데, 조사대상 아동이 살해된 사례가 확인되는 등 출생등록 제도의 공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졌습니다.
조사 결과가 최초 보도된 때로부터 일주일이 되는 2023년 6월 30일 출생통보제의 도입을 규정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출생통보제가 기적적으로 법제화 된 거죠.🔃 출생통보제에 따라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아동의 출생 관련 정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자체에 송부되고, 지자체는 신고의무자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직권으로 출생을 기록하게 됩니다. 출생통보제 입법으로 출생 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아동의 유기‧방임, 영아 매매 및 살해 등 사각지대에 놓인 아동의 발생을 줄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한계는 있습니다. 현재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 역시 2024년 7월 19일부터 동시에 시행되고 있습니다. 보호출산제는 위기임산부*가 지역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은 후에 보호출산을 신청하면, 산모의 개인정보를 비식별화(익명처리)하여 출산하고, 아동을 보호조치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사람은 출생증서에 대한 공개를 청구할 수 있지만, 이때 생모와 생부의 동의가 없거나, 생모와 생부의 사망으로 동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을 때 의료상 목적 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출생증서를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출생에 따른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보다 부모의 비밀유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셈이죠.
※ 위기임산부: 위기임부 및 분만 후 6개월 미만인 위기산부로서 경제적ㆍ심리적ㆍ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하여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
특히나 출생통보제는 이주아동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2023년 감사원 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보호자가 외국인 아동은 4,025명일 정도로 이주아동의 사회적 공백은 더 큽니다. 그러나 출생자의 모에게 외국인등록번호가 있거나 의료급여 관리번호가 있을 때에만 출생통보제가 적용되어, 이른바 체류자격이 없는 이주민의 자녀는 출생사실이 통보되지 않습니다. 이주아동의 출생이 통보되는 경우에도 한국에서는 이들의 출생을 등록할 수 없는 문제도 있습니니다. 우리나라에서 출생등록에 관한 법인 가족관계등록법은 국민에게만 적용되어, 한국이 아닌 국가의 국적이거나 무국적인 부모의 자녀는 한국 땅에서 태어났더라도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21대 국회에서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안이 2건 발의되었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고, 22대 국회에서도 현재까지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안이 3건 발의되었으나 추가적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외국인 아동에 대한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안은 내국인 아동과 구분되는 출생등록체계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접근성의 제약과 같은 우려점이 없지 않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아동의 즉각적인 신분의 증명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출생통보제 적용을 확장하는 근거도 될 수 있고요.
출생등록은 인간의, 아동의 기본적 인권이 실현되는 삶의 첫 단추입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기록을 온전히 알고, 가급적 부모와 함께 자라나도록 지원받으며, 어느 상황에서건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받는 결과를 포함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이건 누구든 아동의 존재를 인지했을 때 그 책임을 나누는 개념의 출생통보제 적용, 보호출산(익명출산)이 아니라 임신중지의 합법화, 보편적 양육지원의 제도화 논의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출생한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이 가능해져야 그 아동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아동의 인권 보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아동인권의 관점에서 보편적 출생등록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Q. 출생등록이 실제로 시행되는 것을 보며 변화를 체감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4년 동안 가장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가장 우선적인 바람은 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대사관이나 영사관, 혹은 부모의 본국에 직접 가서 출생신고를 하면 된다지만, 이는 출생등록의 접근성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법률상 장애로 인해 출생신고가 상당히 지연되는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국내에 체류하는 난민아동이나 난민신청아동은 본국의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상황인데, 해당 국가에 출생신고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한국은 이주배경아동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할 뿐만 아니라, 출생등록이 이루어질 때까지 발생하는 아동보호의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도 현저히 부족합니다. 즉각적인 신분의 확인과 증명은 출생등록의 핵심으로서, 이들 아동의 출생등록을 위한 법체계가 조속히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2021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장애인 당사자들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습니다. 당시 ‘코로나19와 장애’라는 보고서 제작에 참여한 이주언 공익변호사를 만나 ‘영화관 소송’, ‘1층이 있는 삶’ 프로젝트에 대해 상세히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4년간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들어봤습니다.
Q. 인터뷰를 마치고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걸어가며 ‘무슨 활동이든 혼자 해낸 게 아닌데,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마치 혼자 다 해낸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된다’고 하셨어요. 변호사님의 진심을 전해들으며 크게 감동받았던 기억이 나는데요! 요즘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지내시는지요?
A. 저는 요즘 부산에 있어요! 오래 전부터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었는데, 3년 전에 실행에 옮겼답니다. 그때도 코로나 시기라서 주변에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누고 조용히 이사하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서울에서는 주로 장애인권 영역에 집중했는데요. 부산에서는 다양한 인권 이슈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산에는 공익전업변호사가 지금은 저밖에 없거든요. 물론 공익활동을 열심히 병행하는 변호사님들은 많이 계셔서 혼자서 일을 다하는건 아니고요. 아무래도 제가 인권단체 활동가님들과 만날 기회가 많고, 현장에도 갈 수 있으니까 요청받는 일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도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로 의지하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Q. 2021년 ‘영화관 소송’을 진행하고 계시다는 내용을 들려주셨어요. 당시 2심 중이라며 아래와 같이 답변을 남겨주셨었는데요. 4년이 지난만큼 달라진 것이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새로고침을 해볼까요?
📆2021년 6월
A.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차별을 개선하는 소송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현재는 영화관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장애인들도 영화를 볼 수 있게 접근성을 높여달라는 내용입니다. 화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는 화면해설,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자막이 있어야만 하거든요. 2016년에 시작한 영화관 소송은 1심에서 이겼고 2심 중입니다. 7월에 마지막 재판하고, 8, 9월쯤 결과가 나올거 같아요. 식당, 까페 같은 공중이용시설을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1층이 있는 삶’ 프로젝트🔃도 하고 있는데요. 소송과 함께 의원실과 법개정도 준비하고 있어요.
📆2025년 4월
A. 오 제가 이렇게 답변했군요.^^ 영화관 소송🔃은 2심 재판이 코로나 시기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영화관들도 많이 어려워졌잖아요. 코로나로 사람들이 영화관을 안가기도 했고, OTT 시장이 커진 영향도 크지요.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피고 영화관업체들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기 때문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를 갖추기 어렵다고도 주장을 했습니다. 저희는 오히려 장애인을 위한 편의를 갖추는 것은 장애인 관객을 유치할 수 있는 투자이기 때문에 피고들에게 유리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심 재판에서 피고쪽에 부담을 줄여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각, 청각장애인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원고와 피고가 모두 상고를 해서 지금은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에요.
‘1층이 있는 삶’ 프로젝트🔃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우선 저희 프로젝트는 더 많은 단체, 전문가들과 연대하면서 ‘모두의 1층’ 프로젝트로 진화했습니다. 2022년 2월에 1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편의점 업체를 상대로 저희가 승소했습니다. 국가를 상대로는 법령을 잘못 만든 것에 대해 위자료를 청구했는데, 이 부분은 1심과 2심을 모두 패소했습니다.
3심 결과도 뻔해보였지만 그래도 끝까지 싸워보고 싶어서 대법원에 상고를 했는데요. 뜻밖에도 대법원에서 이례적으로 공개변론 사건으로 지정되어 재판 과정이 전국에 생중계되었고, 작년 12월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원고 2명에게 국가가 위자료 1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위자료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령을 잘못 만들고 방치한 정부에게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의 의미가 컸습니다. 위 소송들은 서울에서 시작했고, 부산에서도 대리인단으로 계속 결합해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고요. 아직도 실제 전국적으로 변화를 만들려면 갈길이 멀어요. (참고글, 참고기사)
부산에서 하고 있는 일상 속 프로젝트로는 ‘공영장례 TF’를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공영장례는 무연고자 등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서 부산시 예산으로 빈소를 마련하고 장례의식을 지원하는 건데요, 존엄한 삶의 마무리와 시민들의 애도할 권리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부산반빈곤센터, 건강사회복지연대와 함께 조문단을 꾸려서 공영장례 교육을 하고, 조문을 가면서 공영장례가 취지에 맞게 운영되는지 점검하고, 취지에 맞게 조례와 매뉴얼을 개선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공영장례는 고인을 위한 상주(장례주관자) 역할을 장례업체가 하게 되는데, 법과 조례가 개정되면서 생전에 친했던 지인도 상주가 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이 생전에 서로 돌보고 연대하면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롭지 않도록 하는게 공영장례 제도의 취지라고 생각하고, 일상에서 이웃을 돌보고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영장례 관련 활동은 2024년, 2025년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Q. 변호사님께서 언급해주셨던 소송 등의 추이를 지켜보며 변화를 체감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4년 동안 가장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는 많은 것이 서울과 수도권 중심이잖아요. 제가 몸담고 있는 공익법 운동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단체(공익법단체 두루)에서는 ‘공익법 생태계’라는 말을 쓰는데요. 공익법 생태계는 ‘공익법 운동이 체계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인적, 물적 환경’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공익법 생태계가 지역마다 생기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부산에 저 말고 공익전업변호사가 더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공익전업변호사는 직접 공익사건을 할 수도 있지만, 다리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리 한쪽에는 법률지원이 필요한 소수자, 취약계층 그리고 이들을 위해서 현장에서 지원하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법률지원이 가능하고 또 해야 할 사명이 있는* 변호사들이 있어요. 이들이 우연과 행운으로 연결되는게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으로 연결되고, 또 교육이 이루어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튼튼한 다리를 만드는게 공익법 생태계 운동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4년 안에 이런 다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변호사들은 변호사법에 따라 공익활동 의무가 있답니다.
‘건강이 최고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이야기, 한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프게 되고, 돌봄이 필요하게 됩니다. 아플까봐 두려워하기보다 아파도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한 이유예요. 조한진희 활동가는 당시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 돌봄이 공기처럼 당연해지는 세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Q. 2021년 겨울, 활동가님과 비대면으로 인터뷰를 했네요! 책 ‘질병과 함께 춤을’ 출간 소식을 담기도 했었는데요. 요즘은 포럼, 연극 등 더 다양한 형태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 것 같아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A. 지난해에 ‘다른몸들’의 돌봄노동자생애사 모임 분들과 연극 <I don’t care>를 올렸습니다. 그외 일본 요양시설인 ‘요리아이의 숲’ 총괄소장인 무라세 다카오 선생과 강연과 대담을 했어요. 그리고 <질병권포럼: 질병권운동의 불/가능성>도 진행했고요. 이 주제들은 활동을 할 수록 가야 할 길이 더 멀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특히 질병권 관련해서는 기존에 의사나 건강권을 다루던 분들과 이야기 하면, 전달이 거의 안 되고 오독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그만큼 건강에 대한 전제와 규정 자체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연극 <I don’t care> 하이라이트 영상보기
그리고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지만, 지난 12.3 계엄 이후 민주주의 전진과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논의가 점차 확산되고 있어요. 그래서 최근 옛 동료들과 함께 <고등학생운동사>(동녘)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지워진 역사인데, 1980-90년대 독재정권타도와 교육과 학교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뜨겁게 타올랐던 ‘고등학생운동’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운동 마지막세대 인데요. 그 역사를 기록한 책인 동시에, 누가 어떻게 역사를 전진시켜 왔는지 그리고 10대들은 유사 이래 언제나 광장에서 외쳐왔지만 매번 ‘재발견’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지하고 있는 책입니다.

Q. 돌봄이 공기처럼 흐르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 아래 세 가지 조건을 언급해주셨었어요. 지금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2021년 11월
“돌봄이 공기처럼🔃 흐르기 위해서는 첫째, 돌봄이 공공화되어야 해요. 제도화된 의료 안에 포함된다는 뜻인데요. 가족 간병을 하는 사회가 한국이랑 대만 밖에 없다라는 통계도 있어요. 가족이 직접 병원에 와서 간병한다는게 쉬운 일인가요. 가족 간병이 빨리 폐기되고 간호 간병 통합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번째, 돌봄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입니다. 돌봄노동은 지금도 저평가되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형광등 안정기를 교체하는데 20~30분 정도 걸리고, 5만 원 정도 비용을 받아요. 반면 간병 노동자들이 12시간 간병하면 보통 10만 원 정도 받아요. 노동 시간이랑 비용을 따지면 진짜 말이 안 되는 얘기죠. 노동 비용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보면 전문성과 위험성이예요. 근데 가래 흡입하는 의료용 석션을 아무나 할 수 없죠. 기저귀를 교체하고 목욕을 하는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감정을 교감하는 것 등도 굉장히 고도의 노동이고요. 나아가 위험성도 있어요. 청도 대남병원에서 코로나가 확산되었을때 간병노동자들이 감염되어서 사망했잖아요. 어떤 질병, 어떤 바이러스는 대소변을 통해서 감염되기도 하는만큼 간병노동자들에게도 위험수당이 별도로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돌봄 받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전환되어야 해요. 특히 노년으로 갈수록 ‘내가 밥 숟가락 뜰 때까지만 살겠어’란 말들을 하시잖아요. 이 말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밥을 먹여주는 행위에 대해서 되게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든지 돌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로 전환되었으면 합니다.”
📆2025년 4월
큰 틀에서는 여전히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관심🔃 대폭 확대된 것은 반가운데, 너도 나도 돌봄을 말하게 되면서 상당히 보수적인 흐름도 함께 늘어난 것은 안타깝죠. 어떤 게 보수적이고 문제적 발언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어떤 주제든 사회적으로 확장되면서 늘 발생하는 일이긴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돌봄이 더 좋은 것처럼 여기는 것이나 돌봄의 성별성 문제가 여전히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이고요.
Q. 활동가님께서 언급해주셨던 상병수당*이 확대 시행되는 것을 보며 변화를 체감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4년 동안 현장에서 가장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상병수당: 질병 등의 건강 문제로 근로 능력을 잃은 노동자의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
2015년부터 상병수당에 대해 여러 자리에서 대중들과 호흡하며 문제의식을 만들어 왔고, 이후 정부에서 시범사업도 하게 되고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요. 이 또한 아직 찬찬히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상병수당도 결국 사회적 돌봄의 한 형태에 속하고, 오랫동안 돌봄 문제에 대해 중고령돌봄노동자들이나 다양한 돌봄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확장시키려고 노력해 왔는데요. 결국 다시 일부 전문가들이나 스피커들이 목소리를 대리하는 형태로 많이 흘러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이건 사회 운동 방식과도 연결된 문제인데, 올바른 구호를 모아 놓는다고 운동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90년대 초반에 운동을 시작했는데, 사회운동이 내용과 형식 면에서 모두 너무 제도화되고 보수화된 것 같습니다. 법이나 제도를 바꾸는 게 필요하긴 하지만, 성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부작용이 많았는데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운동이나 대중운동의 생태계나 운동의 흐름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전개되면서, 운동 생태계의 생명력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운동의 지형이 지금과 좀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2022년 산불이 발생했던 울진에서 에이팟코리아 이동환 이사를 만났습니다. 이동환 이사는 당시 현장에서 필요한 지원을 진행하고, 이후에도 마을 주민들을 꾸준히 살폈는데요. 3년이 지난 지금, 그때보다 더욱 규모가 커진 재난과 마주했습니다. 오늘도 바쁘게 지원을 이어가고 있는 이동환 이사에게 앞으로 필요한 변화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Q. 3년 전 울진 산불 관련 인터뷰를 진행한 기억이 납니다. 이사님께서 마을 현황도 돌아볼 수 있도록 함께 해주셨었지요. 요즘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며 지내시나요?
경남ㆍ경북 등 영남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서 현장에서 필요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식사, 물품지원뿐만 아니라 목욕 지원 등도 함께 이어가고 있습니다. 늘 하던 것처럼 가장 필요한 지원, 이해관계자 모두의 회복을 생각하는 활동을 이어가려 합니다.
Q. 당시 울진 산불발생 이후 현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인터뷰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올해는 어떠한가요?
2022년 4월
긴급구호는 72시간이 중요해요. 대피소든, 본부든 상황이 여의치않으니 반드시 사각지대🔃가 생깁니다. 저녁부터 너무 추웠는데 난로조차 없었거든요. 편의점 가서 있는 핫팩을 모두 사 왔고, 따뜻한 음료를 사서 나눠드렸는데도 추위를 막는데는 한계가 있었어요. 가까운 주유소에 난로가 있으면 돈을 드리고 빌리고 싶다고 연락드렸는데, 알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죠. 그런데 오만군데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난로 필요하시다면서요?’라고요. 지역에서 재난이 났을 때 당장 어디에 기부해야 할지, 또 어디로 가야할지 애매한데, 지역 시민들에게 미션이 생긴거죠. 난로도 보내주시고, 집에 있는 핫팩을 가져다주기 시작했어요. 소방본부라는게 알려지면서 각종 택배도 도착했죠. 커뮤니티 안에서 뭐가 필요한지 확인하고, 겹치지 않게 서로 조정하면서 물건을 보내는거에요.
2025년 4월
이제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이번 대형산불로 발생한 이재민이 울진산불 때 10배가 넘습니다. 영덕군이 울진군에 6배가 넘어요. 이는 군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봅니다. 산불의 양상도 감당하기 어려운, 예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죠. 의성에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영덕까지 올지 아무도 예상 못했어요.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재난이 발생한다고 봐야죠. 재난의 예방, 대비 단계에서 재난이 안 생기길 바라는게 아니고, 무조건 발생하고 그 수준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자체의 재난대응 능력이 점점 중요한데, 지역 소멸화, 고령화에 재난이 더 가속화를 시키고 있어요. 무력감도 들고, 겁도 납니다. 저희가 가장 피해가 큰 영덕군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대형 대피소를 없애고 각자 모텔, 펜션 등으로 분산시켰어요. 각자 알아서 지내야 합니다. 그 중에 안전약자들도 있는데 감당하기 어려운거죠. 아직 피해 조사 중이니까요. 이제 각자생존이라는 말은 필수고, 생각을 바꿔 해외처럼 개인 방재에 신경써야 합니다. 이렇게 재난이 빈번화, 대형화 되면 정부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재난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이제 필수입니다.
특히 이번 산불의 경우 피해 지역이 광범위하다보니 매뉴얼과 시스템이 발동하는 것이 거의 전무했습니다. 정부 컨트롤타워도 어려운 상황이라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역에 재난대응리더가 있어야 하고, 사람이 대응해야하는 것이라는 것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공무원들은 자주 바뀌고, 자원봉사자들은 있지만 판단할 수 있는 현장 전문가가 없다면 또 같은 재난이 발생해도 대응력은 비슷할 것입니다. 어르신들이 이번 산불로 그나마 들어온 젊은이들이 떠날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있는 젊은이들이 유사시 재난대응리더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다가올 4년 동안 가장 보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재난이 발생하면 뉴스 기사가 아닌 지역의 인력들이 정보를 발신하고,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내용으로 외부에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 지도처럼 IT를 접목해 어느 대피소에 어떤 물품이 들어오고, 어떤 물품이 부족한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재난 현장은 아직도 아날로그가 많고, 발전되는 분야가 아니라서요. 현재 후원물품이 이재민들에게 전달되는 속도가 느리고, 현실적으로 배분이 어려운데 유통계의 아이디어가 접목되어 더 나은 지원이 이뤄지길 바라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필요한 지원을 발굴하고, 이어가는 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