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많은 비영리 공익단체들이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넓게 열어두고 1%가 100%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2024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참여한 다른몸들의 활동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
다른몸들은 2024년 ‘돌봄을 잃어버린 사회의 돌봄’이라는 주제로 3가지 세부 사업을 진행하였다.
(1) 돌봄노동자들의 연극<I don’t care>
돌봄을 돌보지 않는 세계의 돌봄과 노동 현장을 담은 연극이다. 한국 사회 돌봄 현실은 ‘나는 하기 싫고 누군가 해주었으면 하는 돌봄’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백한 돌봄 현실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지만, 돌봄노동자는 사회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인정받은 적 없고, 돌봄 노동자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적다. 다른몸들의 ‘돌봄노동자 생애사 모임’의 구성원들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자신의 삶과 노동에 대해 쓴 글을 중심으로 만든 연극<I don’t care>의 의미는 각별하다. 60,70대 돌봄노동자인 김춘심, 김순심, 천민숙의 어린시절부터 요양보호사가 되어서 겪는 다양한 차별적 현실까지 고스란히 무대에 담겨있다. 돌봄노동자라는 자긍심은 ‘똥기저귀 치우는 사람’이라는 언사 속에서 상처 받기도 하지만, 우리는 돌봄의 가치를 믿으며 돌봄이 우리의 세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노동이라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2024년 12월 15일 대학로에서 2회차 공연 전석 매진 속에서, 관객들은 무대 위 돌봄노동자들의 열연에 함께 웃고 울었다. 지금처럼 계속 돌봄을 돌보지 않는다면, 과연 미래의 모습은 무엇일까. 관객들은 함께 상상하며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실천 할 수 있을지 고심하며 객석을 일어섰다.
(2) 돌봄국제강연: 무라세 다카오 초청 <존엄이 살아 있는 돌봄의 불/가능성>
일본은 한국 보다 앞서 초고령사회를 겪으며 돌봄 운동을 전개해왔다.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돌봄 공간을 운영해온 ‘요리아이의 숲’ 운영총괄 소장인 무라세 다카오 선생을 줌으로 초대해서 온라인으로 강연과 대담을 진행하였다. 요리아이의 숲에는 몇 가지가 없다. 대문에 잠금 장치가 없고, 규칙적 일정표가 없으며, 결박이나 격리 과도한 약물이 없다. 다수가 인지저하증(치매)를 겪는 노인들인데 한국과 달리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무라세 다카오 선생은 인간은 자율성을 잃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가 아무리 인지적 한계를 갖는다고 말이다. 돌봄노동자들은 인지저하증(치매)을 겪는 노인과 동기화 되어 그의 현실속으로 들어간다. 이용자인 노인이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면 ‘그래, 딸아’라고 답한다. 그것이 바로 존엄한 돌봄이며, 우리의 미래여야 한다고 말한다.
2부에 이어진 다른몸들 조한진희 대표와의 대담에서는 다양한 내용이 오갔다. 특히 조한진희 대표는 무라세 다카오 소장에게 인지저하증(치매)을 겪는 노인을 비정상이라며 위험하다고 대문 너머로 가두지 않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다른몸들에서는 질병권(잘아플권리) 운동을 전개하는데, 아픈 몸도 ‘정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의미를 전했다. 무라세 다카오 선생은 질병권 담론에 깊이 공감한다며,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질병에 걸리고 노쇠해지는데, 이 과정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고 했다. 앞으로 한국의 돌봄 운동이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을 넘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전망하는 자리였다.
(3) 질병권포럼: 질병권 운동의 불/가능성
너나 할 것 없이 아픈 사회에서, 질병권(잘 아플 권리)은 쟁취될 수 있을까? 새해가 되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어느 때보다 자주 쓰인다. 질병권 운동에서 이 말을 10년째 비판하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기만 하다. 이 말은 건강이 손상된 채 살아가는 아픈 몸을 배제하는 말이고, 건강을 잃는다고 모든 것을 잃는 사회는 극복돼야 할 나쁜 사회라고 주장해왔다.
이번 질병권 포럼 <질병권 운동의 불/가능성>은 그간 만들어 온 질병권 운동에 대한 논의를 검토하고 확장하는 자리였다. 질병권은 ‘건강’이라는 말로 다 담기 어려운 현실을 쟁점화하며, 기존과 조금 다른 사회 운동 문법으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 고안한 개념이다. 특히 아픈 몸 노동권과 관련해서는 2018년부터 다양한 토론회나 여러 활동을 통해 아픈 몸 노동권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쟁점을 던져왔다. 이번 포럼에서도 질병권과 아픈 몸 노동권에 관한 여러 토론이 이어졌다. 아픈 몸 노동권을 말하면 주로 건강이 일정 정도 손상된 상태라도, 원하면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그것을 포함하지만 더 나아가서 노동현장에서 상상되는 노동자는 누구인가를 질문하며, 이 사회에 노동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정의하는 게 필요하다는 운동임을 강조한다.
포럼에서 패널인 문영민 교수는 자기소개를 할 때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장애인이며 여러 만성질환을 함께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면서, 질병권 운동을 마주하면서 아픈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고 해방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운동은 당위를 넘어, 억압과 차별 속에 살아왔던 존재들이 해방감을 감각하고 그것을 확장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언급이었다. 질병권 운동을 접해온 아픈 몸들이 자주해온 말이기도 하다.
이날 토론에서 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활동가가 정확하게 짚어서 설명했듯, 질병권 운동은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문제시하면서 당연하게 여겨온 인간적 욕망의 영역까지 재구성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래디컬할 수밖에 없고,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것을 실제로 실현한다는 것은 모종의 불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한다.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것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의미에서 포럼 제목에 <질병권 운동의 불/가능성> 이라고 빗금을 넣은 것이다.
지금의 상식 없는 현실에서 상식적인 사회 즉 가난하거나 아픈 몸들, 장애가 있거나 성소수자인 이들 누구도 배제당하지 않고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그리고 종차별 등이 없는 모두의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건강은 생명체의 본성으로서 언제나 다다익선이라는 전제와 아픈 몸 노동권이 결핍이나 인정투쟁으로 수렴되는 것을 넘어서는 사회를 꿈꾼다.
글, 사진 : 다른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