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많은 비영리 공익단체들이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넓게 열어두고 1%가 100%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2024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참여한 민달팽이유니온의 활동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
민달팽이유니온의 2024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민달팽이 발딛고 사는 땅>은 주택을 소유해야만 주거권이 있는 것처럼 취급하는 정책, 주택 소유를 기준으로 시민을 양분해 온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주거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구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어떤 말들과 행동이 필요한지, 세 가지의 실천 행동을 통해 세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세입자의 시선에서 대안의 언어를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불온한 세입자로 살기로 했습니다 – 2024 세입자 아카데미
첫 번째 활동은 ‘불온한 세입자로 살기로 했습니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2024 세입자 아카데미>였습니다. 총 4차례의 강의와 워크숍을 통해 권리로서 집 문제를 인식하고 세입자 조직 운동의 필요성을 참가자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했습니다.
첫째 주에는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활동가의 주거권 투쟁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듣고, 커다란 지도를 펼쳐 내가 경험한 집과 도시의 이야기, 강의에서 언급되었던 주거권 투쟁 지역들을 표시하고 이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어서 둘째 주에는 가족구성권연구소 타리 활동가를 통해 페미니즘 관점으로 파악하는 집과 도시, 가족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보람채 아파트, 역세권 청년주택(현 청년안심주택), 동자동 쪽방촌 세 곳을 거점으로 정해 이 집들에서 어떤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고 주거권을 되찾기 위한 실천과 연대 방법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이어서 셋째 주에는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로부터 빈곤과 불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집과 도시, 정책 강의를 들었습니다. 워크숍 시간에는 강의 중 인상 깊은 장면 (예를 들어 공공역사 상업개발과 공공공간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선정하고 그 현장에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강탈당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빼앗기게 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 주에는 민달팽이의 세입자 운동을 살펴보고 주거 불평등 현장을 바꿔내기 위한 3개년 활동 지도를 함께 그려보았습니다.
불온한 세입자는 곡성으로, 민달팽이 서식지 탐험대 – 2024 주거권 캠프
아카데미를 통해 세입자 안의 불온함을 함께 탐색해 봤다면 이제는 불온한 세입자가 집을 찾는 여정을 떠날 차례입니다. 올해의 주거권 캠프는 곡성에서 진행됐습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2024년 2월과 3월 곡성 항꾸네 협동조합의 청년 조합원들과 만나 농촌에서 세입자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나눴습니다. 도시의 세입자 문제와 농촌의 세입자 문제는 닮은 듯, 다른 듯 서로 달라 보이는 양상 속에서도 분명히 교차하는 지점은 있었고, 이를 다른 도시의 세입자 청년들과 함께 나누고 대안을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수도권의 주거 문제와 타 지역의 주거 문제는 동일하지 않지 않나요?” 라는 질문보다 더 넓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지역 별로 서로 달라 보이는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세입자가 처한 구조를 파악하고 이에 관한 답을 함께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세입자로 살아도 괜찮은 사회,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보장받는 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러 곡성으로 떠났습니다.
캠프는 7월 25일부터 28일까지, 3박 4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주거와 농은 서로 어떤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캠프를 열었습니다. 또 겸면토석채취장·폐기물처리장반대주민대책위원회의 활동과 항꾸네 협동조합의 청년 조합원이 세입자로서 곡성에서 겪고 있는 주거 문제를 주제로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도시의 세입자와 농촌의 세입자의 삶과 일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곡성 현장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들이 필요한지 함께 토론하고 대안의 언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경험하고 들은 현장의 이야기를 토대로 실질적인 주거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민원 작성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지역소멸 이유로 공사 말고 곡성을 지키며 농사짓는 이들의 집과 땅을 보장하라”, “곡성군 겸면 항꾸네 협동조합 귀농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는 살자리가 필요합니다”, “귀농 청년들을 위한 주거 대책, 농지 대책이 필요합니다”, “곡성군 겸면 공공매입임대 늘려야 합니다”, “곡성군 귀농인들의 주거 대책 논의 소통이 필요하다” 등의 언어로 곡성군에 제언하였습니다.
전월세 집도 내 집이다 – 세입자 집구하기 가이드북 2024 버전 제작
마지막 프로젝트는 이렇게 모아낸 세입자들의 언어를 다른 세입자에게 알릴 도구를 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그동안 다양한 버전의 세입자들을 위한 집구하기 가이드 자료들을 제작하고 배포해 왔습니다. 이번에 제작한 세입자 집구하기 가이드북 ‘전월세 집도 내 집이다’는 최근 2~3년 사이 제도 변화를 반영한 버전으로, 세입자가 참고할 수 있는 안전한 집구하기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세입자를 존중하지 않는 잘못된 주택임대차관행에 의문을 제기하고 연대의 손길을 건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습니다. 각 목차에 들어가기 전 ‘마음 챙김’의 문단을 더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당 차례를 읽으면 좋을지, 혹시라도 주거 문제를 겪고 있다면 혼자서 자책하지 말고 민달팽이유니온을 비롯한 다른 세입자와 연결되길 바라는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표현해보고자 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특히 중요했던 것은 민달팽이 회원을 비롯한 세입자 당사자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었는데요, 11명의 세입자가 원고팀과 자문팀으로 제작에 참여해 8개 목차, 약 150쪽의 가이드북을 완성했습니다.
12월 16일에는 북토크 형식으로 가이드북 제작발표회를 진행했습니다. 원고팀으로 참여한 회원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집’, ‘탄핵 이후, 내가 바라는 집에서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자리에 참석한 약 서른 명의 민달팽이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현장에서는 가이드북에는 차마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도시에서 세입자로 살며 집구하기 과정에서 겪은 불안을 떠올리기도 했고, 집보기와 계약 과정에서 겪은 불합리함을 상호 간에 고발하기도 했고, 물리적으로 안정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세입자들 간의 연결과 연대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집에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글, 사진 : 민달팽이유니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