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많은 비영리 공익단체들이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넓게 열어두고 1%가 100%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다양한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2024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참여한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의 활동 후기를 전해드립니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은 발달장애청년의 마을살이를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발달장애청년들이 지역에서 놀고 배우고 기여하는 활동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길동무를 연결하고, 이웃들과 함께 사부작사부작 무경계 세상을 만드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지역 네 곳에서 발달장애청년과 함께 찾아가는 북토크를 진행했습니다. |
찾아가는 북토크 ‘찾북’
남춘천닭갈비 앞에 버스가 와 있어요. 버스 앞 유리창에 LED로 ‘사부작’이라는 글자가 번쩍거립니다. 활동가들이 짐칸에 짐을 싣고 있으면 사부작청년들과 길동무들이 하나둘 나타나지요.
“연두! 오랜만이야!” 피아노가 뛰다시피 다가오며 외쳐요.
“천천히 와요.” 어제도 만났는데 저리도 반가울까요. ‘찾아가는 북토크’(이하 찾북) 떠나는 날이니 유난히 반갑겠지요. 피아노 손을 잡으며 생각해요. 피아노처럼 반기는 사람이 많다면 거기가 바로 경계 없이 다정한 세상 아니겠나, 하고요.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북토크를 기획할 때 상상만으로도 실실 웃음이 났어요.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훌라를 같이 추면 얼마나 멋질까 두근거렸지요. 그런데 가만, 책 속에 나오는 사부작청년 6인, 작가님, 길동무들, 활동가들… 어림잡아 스무 명은 될 텐데요. 버스로, 비행기로 어찌 움직이나, 무얼 먹일까, 어디서 쉴까 머리가 복잡해져요. 하지만 ‘마을에서 경계 없이 다정하게’ 사는 이야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우르르 만나러 가는 것. 거기서 우리의 번잡스러움과 엉뚱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뿐이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걱정을 접어두고, 서울, 부천, 춘천 그리고 제주로 네 번의 북토크 이 날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찾북은 언제나 나영의 ‘반갑습니다’로 시작해요. 강당, 도서관, 극장, 문화동 장소는 달랐지만 나영의 춤과 노래가 시작되면 어디서든 대번에 집중이 되지요. 피아노가 덩달아 춤을 추면 분위기가 한껏 흥겨워져요. 마지막 소절이 끝날 때쯤 사회자 단미가 등장해요. 단미가 세 번 사회를 봤고 강동편에서는 요다가 진행을 해줬어요. 단미랑 요다는 사부작의 오랜 길동무예요. 미리 깨알같이 대본을 짜지만 그대로 될 리가 만무하죠. 하지만 단미나 요다는 어지간한 돌발상황에도 그러려니 하며 능청스럽게 받아 쳐주는 베테랑 길동무! 네 번의 북토크가 각양각색으로 진행된 것은 다 두 분 덕이에요.
처음 이야기를 열어주는 사람은 우리의 홍세미 작가님. 한때 성미산마을에 살던 작가님은 숨이라는 별명을 쓰지요. 작업할 때는 대전에 사셨는데 서울까지 오가면서 사부작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셨어요. ‘집으로 가는 길’, ‘유언을 만난 세계’ 같은 장애 관련한 책을 내셨는데 탈시설 이야기를 쓰면서 그 이후에 지역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고 해요. 사부작에서 그 답을 찾고 싶다 하셨지요. 마지막 찾북 부천편에서 숨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찾북 제주편으로 삼달다방에 갔을 때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이 2박 3일 꼬박 함께 지내며 서로돌봄을 경험했다고 하셨어요. 누가 누굴 돌보는 개념을 넘어선, 집단으로 자연스레 일어나는 돌봄이, 이런 공동체돌봄이 가능하구나 싶어 두고두고 그립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숨은 연말에 사부작 부근으로 이사를 오셨어요!
마카롱이 나오자 장난기 발동한 단미가 마카롱에게 책은 다 읽었냐 물어요. 마카롱이 머뭇거리다 다는 못 읽었다며 말끝을 흐리니까 단미가 어디를 읽었냐고 또 물어요. 마카롱이 자기 랑 가족 나온 부분만 읽었다고 하자 관객들이 박장대소를 해요. 그다음 나온 차니는 단미가 틀린 가게 이름을 정확하게 “그. 랑. 블. 레!”라고 정정해 줘서 웃음을 자아냈어요. 틀릴 수도 있지, 단미가 무안해하거나 말거나 차니는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눈치예요. 나영은 마지막에 나오게 되어 있지만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커피 먹은 자랑을 하고 싶을 때가 나영의 차례지요. 무대로 나와 마이크를 잡고 동네 어디 어디서 누구 누구랑 커피를 먹었는지 랩처럼 줄줄이 자랑해요. 피아노는 길동무 중 누가 가장 좋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가지!!!”라고 크게 외쳐요. 가지가 두 팔을 올려 환호했어요. 이어서 선동꾼 피아노가 “가지, 가지, 가지, 가지!!!” 응원을 보내면 관객들도 다 따라 외쳐요. 순식간에 찾북이 콘서트장이 되지요. 다음은 마이크만 잡으면 목소리가 중후해지는 냐옹이. 순천에서 서울 올라온 얘기부터 최근 사부작 근처로 이사를 온 얘기까지 들으며 관객들이 홀랑 빠져들 때쯤 이제 할 얘기 다 한 냐옹이는 “준하, 이제 네 차례야!”하고 본인이 진행을 합니다. 한 자리에 앉아있는 걸 선호하지 않는 준하는 찾북 할 때는 예외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어서 활동가들이 서로 쳐다보며 눈이 동그래졌지요. 아직 고등학교 졸업 전이지만 자신을 00대학교 3학년 준하라고 소개를 하면 단미는 또 속아주는 척하지요.
관객들 배꼽이 빠질락 말락할 때쯤 길동무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책에 나온 길동무는 여럿이지만 가지와 알라딘, 석류가 길동무 대표로 찾북에 함께해 주었어요. 이번에 ‘북토크 전문 길동무’로 거듭난 가지가 청년들 다음에 자기 차례라 부담된다고 투덜거려요. 가지가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고립감을 마을에서 해소하며 사부작과 연결된 이야기를 할 때 관객들과 공명하는 기운이 느껴져요. 가지는 북토크 끝에 훌라 워크숍을 진행해주기도 하는데 모두들 사랑에 빠져버리죠. 춘천 갔을 때 한 참가자가 “가지! 우리 길동무가 되어 주실래요?” 하기도 했다니까요. 알라딘과 석류는 활동지원사인 길동무예요. 사부작이라는 기지가 활동지원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말씀해 주셨어요. 날마다 만나는 분들이지만 마이크를 잡고 하는 얘기는 또 새롭더군요. 우리가 사부작에 연결된 사람들과 같이 제도적 돌봄을 넘어서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구나 뿌듯하기도 했어요.
만나는 단체와 소피아의 이야기 자리는 서로 알아가며 고민을 나누고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지요. 지역은 달라도 ‘발달장애인’과 ‘마을’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의 고민은 비슷비슷해서 서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아도 연결을 시도하고 활동을 실험하다 보면 어느새 풍성한 마을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훌라 워크숍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참여자들이 서로 파우를 입혀주고 머리에 꽂을 꽂아주면서 벌써 마음이 부풀어 올라요. 먼저 선샤인아놀드훌라가 대표곡을 공연으로 보여드리면 참가자들은 훌라를 춰보고 싶은 눈빛이 되지요. 길동무 가지에게 훌라 한 곡을 배워요. 훌라 인생 3년차인 우리도 잘 못하는데 짧은 시간 배운 분들은 어떻겠어요. 하지만 가지를 따라 더듬더듬 정성을 들여 동작을 해봅니다. 마지막엔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공연을 해요. 초록 잔디 위에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알록달록 어여쁜 파우를 입은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공연합니다.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드리고 싶네요.
돌아오는 길 버스 안은 출발할 때와 달리 조용합니다. 입을 벌리고 자는 사람도 있고요, 오늘 있었던 일을 복기해 보기도 하지요. 피곤함 끝에 묻어있는 이 충만함을 사랑하여 사부작 활동을 계속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함께 쏘다니는 맛을 알아버렸으니 사부작은 내년에도 작당을 하겠지요? 우르르 만나러 갑니다. 기다려 주세요.
글, 그림 :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