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에 사활을 건 팀이 있다면?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보고서를 앞에 두고 머리를 싸맬 것이다. 비영리단체도 그렇다. 매년 연말이면 비영리단체들은 연차보고서 기획에 착수한다. 비영리단체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인만큼 기부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해야한다. 1년 성과를 요약해야 하는데다 수많은 기부회원들에게도 배포되는만큼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다.
연차보고서는 보통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팀에서 제작을 주도한다. 아름다운재단의 경우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이 도맡아 진행해오고 있다. 조직의 성과를 기반으로 기획하되, 각 팀에게서 주요 자료를 전달받아 하나로 꿰는 작업을 진행한다. 살펴야 하는 텍스트와 숫자가 많다보니 팀원 전체가 뛰어들어 오탈자를 손보고, 수입과 지출 합계가 정확히 일치하는지 점검한다. ‘매년 만드는데 뭐가 어려울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옆에서 업무를 지켜보기만 해도 숨이 찰 정도였다. 평소 업무는 일정대로 진행하면서 연차보고서 과업만 1~4월에 집중적으로 추가되기 때문이다.
선배가 해내던 업무를 인수인계 받았을 때 그래서 두려웠다. ‘잘 할 수 있을까?’ 다행히 웹 기획 담당자와 함께 일을 진행하게 되면서 마음이 놓이고 용기가 생겼다.
도전, 모바일 연차보고서
2023년 연말부터 연차보고서 제작을 맡았다. 보통 ‘보고’라는 성격에 맞게 연차보고서는 아래와 같은 구조로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1) 필수 보고 사항에 맞춘 활동 요약, 지원자 후기, 결산보고
2) 월별 활동 요약, 활동가들의 활동후기 및 결산보고
아름다운재단은 필수 보고사항인 기부, 사업, 재정 등의 카테고리에 맞춰 1)의 형태로 온라인 연차보고서 제작을 진행해왔다. 매년 레이아웃과 배치되는 주요 소재를 변경해왔으나,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주요한 도전이 생겼다. 바로 모바일에 최적화된 연차보고서를 제작하는 것!
아마 모바일이 뭐 대수인가? 싶을 수 있겠다. 대부분의 홈페이지가 모바일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연차보고서를 모바일 버전으로만 제작하는 곳은 아직 찾지 못했다. 웹에서도 화면이 모바일 크기로만 보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사실 이건 모험이기도 했다. 웹과 모바일 둘 다 제작하는 방향을 택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둘 다 제작하기에는 비용뿐만 아니라 업무 투여 역시 높아진다. 웹에서는 가독성 좋게 배치한 것들이 모바일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도 하고, 반대로 모바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웹과 모바일을 따로 고려해 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모바일 기획의 경우 웹과 다르다. 모바일은 손가락을 수직으로 내려가며 보기에 정보를 수직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택한다. 차이가 애매하다고?
이 글을 모바일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아래 2개의 버전 중 모바일 버전이 훨씬 가독성이 좋을 것이다.
📱정보를 수직으로 전개하는 모바일
🖥️정보를 수평적으로 늘어놓는 웹
무엇보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기기 비율을 비교해보니 7:3으로 모바일 접속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조직을 설득할 근거가 생겼다.
※ 모바일 연차보고서를 시도할 수 있었던건 2020년부터 온라인 연차보고서 제작에 집중해온 덕분이다. 종이연차보고서의 경우 인쇄, 발송 비용 등이 훨씬 많이 들기도하고 기부회원에게 닿기가 어려워 오래 전부터 온라인 제작을 진행해왔다. 곽보아 전 팀장이 온라인 개편과 오디오 연차보고서 제작을 진행해왔으며, 최근 인수인계 받아 웹 기획, 개발을 담당한 신아베 팀장과 함께 해오고 있다.
보고서 보기 불편하다고? 그럼 바꿔야지.
문제는 모바일에서는 보고서를 읽기가 불편하다는 점이다. 모바일은 ‘읽기’보다 ‘보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한 해동안 한 일을 구구절절 읊어서는 바로 이탈할 것이다. 그래서 정보를 나열하기보다는 키메시지를 잡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풀어내기로 했다.
💡메시지 기반 연차보고서를 어떻게 제작할 수 있을까?
1) 써라: 일단 한 해 성과를 줄글로 다 써본다. 분량이 너무 많다면 회의록이든 단체 블로그든 한번씩 훑어본다.
2) 줄여라: 한 해 성과에서 느껴지는 인상을 3문장 정도로 써보고, 나중에는 한 문장으로 줄여본다.
3) 심어라: 한문장으로 줄인 메시지를 강화하는 여러 표현이나 장치를 곳곳에 배치한다.
지난 2년 간 제작해온 모바일 연차보고서를 보면 흐름이 더 이해가 될 것이다.
1) 2023년 연차보고서 ‘변화를 향한 눈부신 레이스’
아름다운재단은 기부자와 함께 일하는 단체, 지원사업에 참여한 지원자 등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결되어 일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기부 문의, 취재요청, 사업 관련 문의 등이 쇄도한다. 특히 2023년의 경우 성과를 조명하는 굵직한 행사들이 많았다. 자립준비청년 지원사업 임팩트 공유회, 희망가게 20주년 기념 행사, 이노베이션 캠프 등 연결이 만들어낸 힘을 조망하고 싶었다.
메모해둔 내용을 찾다가 ‘이어달리기’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우리 모두 한 트랙 위에서 바통을 넘겨주고 받으며 일하고 있는만큼, 2023년 한 해를 ‘변화를 향한 눈부신 레이스’라는 메시지를 뽑아냈다. 아래는 달리기 컨셉에 맞춰 각 영역을 세부적으로 묘사한 표현들이다.

이어달리기라는 메시지에 맞춰 배경에 레이스를,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달리는 중’이란 메시지를 배치했다
- 키메시지: 변화를 향한 눈부신 레이스
- 컨셉 문구: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달리는 중 (바통을 주고받고, 씨앗이 하트가 되는 등의 토대가 되었다)
- 재정: 건네주신 마음, 투명하게 사용 했습니다.
- 사업: 빛나는 변화를 향해 달려온 공익사업 입니다.
- 기부: 마음과 마음을 잇는 힘, 나눔 입니다.
- 참여: 함께 만든 변화의 명장면을 모았습니다.
참여코너는 연차보고서에 추가한 또 하나의 재미요소다. 연차보고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레이스에 함께 했다는 의미를 담아 완주증명서를 발급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닉네임을 입력하면 아래와 같이 완주증명서를 발급했다.
2) 2024년 연차보고서 ‘우리가 만든 보통의 나날’
아, 이어달리기 참 좋았는데 올해는 어떻게 할까. 아이디어가 도저히 안 나와 회의가 끝없이 길어졌고 회의실 산소가 부족해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달리기 컨셉을 이어가자니 새롭지 않은데다 2024년의 변화를 담기도 모호했다. 팀원 전체가 모여 고민한 끝에 선배인 곽보아 전 팀장의 제안으로 ‘보통의 나날’이라는 컨셉을 도출했다. 연말의 계엄을 경험하며 무탈한 하루는 거저 얻어지는게 아니란 사실을 느낀데다 재단이 해내는 일들 또한 사람들의 보통의 나날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는 것에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 키메시지: 우리가 만든 보통의 나날
- 컨셉 문구: 26,752명의 일상이 모여 변화가 되었습니다.(아래와 같이 재단과 연결된 사람들이 대화창에서 이야기하는 메인의 토대가 되었다.)
- 변화 4개 파트: 더나은 환경, 나다운일상, 촘촘한 돌봄, 퍼뜨린 변화
기존 재정, 기부 등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삶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를 기반으로 재단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 배우고 놀고 성장하는 매일,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돌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더 나아가게 만드는 변화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기획했다.

더나은환경의 경우 지역아동센터의 비포애프터가 보일 수 있도록 스와이프 기능을 활용했다.
- 참여: 연차보고서를 본 모든 사람들의 무탈한 하루를 바라며, 소소한 행운이 오길 바라는 랜덤 뽑기를 준비했다.
잘 알겠고… 오디오 연차보고서?
재단은 2020년부터 오디오연차보고서를 제작했다. 별도 프로그램을 활용해 웹과 모바일의 텍스트를 모두 음성으로 들을 수 있지만, 기사와 같은 줄글이 아닌만큼 텍스트가 중구난방으로 음성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오디오연차보고서를 시작한 선배는 리더와 함께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녹음을 진행했다. 2021년에는 KBS 제 6기 장애인 앵커인 최국화 님이 녹음에 참여했고, 2022년부터는 재단 구성원들이 직접 기부회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향으로 기획을 변경했다.
재생버튼을 누르면 재단이 제작한 연차보고서를 바로 들을 수 있다.
2020년 연차보고서 |
2021년 연차보고서 |
2022~2024년 연차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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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실무자 1:1대화 |
구성원 참여 녹음 |
원고 작성, 녹음과 편집… 어떻게 할까?
1) 원고작성
오디오 연차보고서는 기부회원들에게 건네는 리더의 인사로 시작해 재정, 사업, 캠페인 등 주요 분야를 주무팀의 매니저가 녹음한다. 녹음이 익숙하지 않은 매니저를 고려해 문장을 짧게 쓰고, 최대한 구어체로 표현을 다듬는다. 숫자의 경우 한글로 풀어 기재하는 것이 좋다.
① 문장은 최대한 짧게, 숨쉴 구간을 넣어서 쓰자
아름다운재단은 투명한 재정 운영을 위해 / 매년 회계법인의 외부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 그 결과가 담긴 감사보고서는 온라인 연차보고서나 /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② 숫자는 한글로 풀어서 쓰자
아름다운재단은 지난해 건강, 교육, 노동, 문화, 안전, 주거, 환경, 사회참여 여덟 개 영역에 걸쳐 사십여 개의 지원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단체 및 시민모임 275곳(이백 일흔다섯 곳)과, 총 8,388명(팔천 삼백 여든여덟 명)의 개인을 지원했으며, 지원사업에 쓰인 사업비는 총 7,928,284,165원(칠십구억 이천팔백 이십팔만 사천백 육십오 원)입니다.
2) 녹음
벽이 책이나 파일 등으로 가득 차있는 회의실이 있다면? 스튜디오가 아니어도 녹음이 가능은 하다. 책이나 파일이 흡음재 역할을 해내기 때문에 울리지도 않고 잡음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땅한 공간이 없다면 녹음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대여해서 사용하면 된다. 재단이 쓰는 장비는 아래 2대다.
① 마이크쉴드: 잡음이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는 도구다. 포털에 ‘마이크쉴드’를 검색하면 나오는 여러 물건 중 하나 구입하면 된다.

마이크쉴드
② 마이크: 영상 제작을 위해 구매했던 것이라 사양이 매우 좋다. (공익마케팅팀에서 대여) 여의치 않다면 작은 녹음기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단, 옷에 걸거나 손으로 들고하면 작은 부스럭거림도 모두 녹음이 되므로 어딘가에 고정해두고 사용해야한다. 스마트폰은 하루에 몰아서 녹음할 경우 사용 가능하다. 스마트폰과 녹음하는 사람의 위치가 달라지면 녹음에도 거리감이 생기기 때문에 여러 날에 걸쳐 녹음한다면 구간별로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다. 이어폰을 사용하는 유저들을 고려해서 스마트폰보다는 꾸준히 사용할 수 있는 녹음기나 마이크를 추천!
3) 편집
오디오편집프로그램인 오다시티를 사용한다. 무료 프로그램이나 사용할 경우 노트북이 조금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다. 처음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뭐가 뭔지 몰라서 한참 헤맸던지라 꿀팁을 요약해왔다. (오다시티 사용법 링크)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 오다시티(audacity) 초간단 사용법
사실… 연차보고서의 핵심은 ‘협업’ 아닐까?
1월에 시작한 연차보고서 제작은 4월에서야 마무리됐다. 오늘은 보고서의 알맹이를 전달하는 방법에 주로 초점을 맞춰 소개했지만, 사실 가장 핵심은 협업이다.
조직의 한 해 성과를 외부로 알리는 일인만큼 유관단위가 많다. 실제로 각 팀의 팀장들에게 거듭 원고와 데이터 확인을 요청하는건 물론이고, 종이와 오디오 연차보고서 원고도 모두 피드백을 받으며 진행한다. 평소에 각 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주안점을 두는건 무엇인지, 어떤 표현을 사용하면 안되는지 등을 파악해두는게 중요하다.

팀별 자료입력 시트, 원고는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에서 작성하고 팩트 및 사진 위주로 의견을 취합한다.
무엇보다 연차보고서 제작을 담당하는 개발사와의 물 흐르는 듯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개발사를 만날 경우 담당자가 아이디어가 없어 머리를 싸맬때 함께 고민할 수 있고,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해 제안해주기도 한다. 참고로 이전에는 언타이드와 함께 협업을 진행했고, 지금은 디메인에서 맡고 있다.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에게는 든든한 파트너들이다.
내년 연차보고서도 우리가 만든 변화를 꽉꽉 눌러 담아내보려 한다. 변화를 향한 눈부신 레이스 위에서 만들고 있는 보통의 하루들이 2025년을 채워주겠지? 2026년에 선보일 연차보고서 또한 부푼 마음으로 기대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