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오전 업무에 한참 몰두하던 팀원들이 하나 둘 기지개를 편다.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한다.
“(돈까스/모밀 파는) 우리집 갈까요?, 아니면 (연어덮밥 파는) 덕이나루 갈까요?”
팀원들은 서로의 점심 메뉴를 확인하고, 갈 곳을 정한다. 곧이어 내게도 점심을 함께 할지 묻는다. 그러다 “이나 매니저님은 뭐 드세요?, 아! 오늘도 그거 먹으러 가죠?”라며 알겠다는 듯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팀원들은 이미 안다. 내가 점심 때 무엇을 먹으러 가는지. 특히 오후 회의가 있는 날은 꼭 먹어야 하는 점심 메뉴, 추어탕이다.
사무실에서 식당까지는 도보로 10분. 오후 회의가 점심 직후에 있는 날이면 왕복 20분이나 걸리는 식당까지 가는 것은 꽤 부담이다. 김밥으로 간단하게 요기하고 부족한 회의 준비를 점심시간에 보충할까 싶은 유혹도 든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는다. 점심에 추어탕을 먹었냐, 못 먹었느냐에 따라 나의 오후 체력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플라시보 효과라고 해도 뭐,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의가 시작된다. 현재 업무 진행 상황, 수정 사항, 각종 이슈, 향후 준비 사항 등 빠른 시간 내 회의록이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진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었으니까. 무려 4년 째, 추어탕은 내게 단순한 한 끼를 넘어, 나의 하루 업무를 완수하게 하는 일용할 ‘보’양식이 되었다.
다들, 오늘 점심은 뭘로 골랐을까?
“어떻게 매일 추어탕만 먹어요? 신기해요”
오늘도 어김없이 추어탕 식당으로 향하는 내게, 어느 동료가 말했다. 점심 메뉴를 고민할 일이 없던 나는 되려, 다른 동료들이 신기했다. 동료들은 대부분 매일 다른 음식을 먹는 편이었다. 나처럼 항상 같은 메뉴를 먹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문득, 동료들은 하루 업무를 어떤 힘으로 버텨내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동료들의 점심 메뉴를 수집해보기로 했다.
오늘 왜 이 점심 메뉴를 골랐어요? 이유는요?
간편하면서도 영양이 골고루 들어 있어서 비빔밥을 선택했어요.
채소도 다양하게 들어가고, 매콤하게 비벼 먹으면 속도 편하더라고요.
🌱공익마케팅팀 김선우 매니저
곤드레 밥을 먹으면 속이 편해져서 참 좋아요. 오후에 부담도 없고요.
🌱공익마케팅팀 이지희 팀장님
오늘 점심은 우동정식입니다.
이제 곧 냉모밀의 계절이 오기에 마지막으로 우동을 먹었습니다.
🌱공익사업팀 임동준 매니저님
저는 점심으로 ‘도시락’을 싸옵니다.
생활비 아낄 겸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는데, 가게 살림에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도시락은 장점이 많이 있는데요.
도시락을 싸면 제가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조리 할 수 있어 좋더라고요.
좋아하는 재료로, 입맛에 맞는 간으로, 그리고 저에게 딱 맞는 양으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어 만족스럽습니다.
오늘 메뉴는 렌틸콩 밥에 참치 김치찌개, 멸치 볶음, 두부 조림입니다.
참! 도시락을 먹으면 다양한 동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장점이에요.
오늘도 도시락 나누며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주제들로 한참 재미나게 수다 떨었습니다.
🌱공익사업팀 최지은 매니저님
오늘은 재단 서버실의 네트워크 스위치가 고장났는데요,
점심시간에 작업하다 보니 밥 먹을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에 바나나 우유를 먹었습니다.
🌱운영관리팀 홍철기 매니저님
아이가 많다 보니 점심은 다른 사람이 차려 주는 걸 먹고 싶어요.
특히 긴장되거나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순댓국이 당기더라구요.
🌱연구사업팀 장윤주 팀장님
녹차물에 밥을 말아먹는 오차즈케라는 메뉴예요.
간이 세지 않고 슴슴한데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맛이랄까요?
몸을 가볍게 하고 싶어서 한그릇 뚝딱 먹었습니다.
깔끔하고 정갈한 분위기라 잠시 일 생각을 멈추고 스스로를 챙겨주고 싶을 때 절로 생각나요.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박주희 매니저님
외근 가는 길, 피자 가게 앞에 줄이 길게 서 있길래 ‘맛있는 곳인가 보다’ 궁금하여 선택했어요.
🌱재무회계팀 안지해 매니저님
아침에 길을 나섰는데 더 걷고 싶은 기분이라 산책하다 보니 샌드위치 가게 앞이더라고요.
그래서 점심도 챙길 겸, 가볍게 샌드위치 하나로 해결했어요.
🌱공익마케팅팀 이윤희 매니저님
떡볶이가 저의 소울푸드예요. 2주에 한번 이상은 꼭 먹게 되는 것 같아요.
매콤 달콤한 떡볶이를 한 입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1%나눔팀 윤보미 매니저님
제육을 바로 볶아서 만든 덮밥이라 쫄깃하고 신선해요! 가성비도 좋아 자주 먹게 돼요.
🌱운영관리팀 박소연 매니저님
오늘은 날이 더워서 열무비빔국수를 선택했어요!
새콤하고 깔끔해서 오후를 가볍게 시작하기 좋아요.
🌱전략실 서지원 매니저님
아무래도 고기가 많은 도시락을 먹어야 힘이 나는 것 같아요.
🌱공익마케팅팀 김태형 매니저님
동료들의 점심 메뉴를 고른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나처럼 ‘보양’을 위해 메뉴를 고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날씨, 기분, 입맛에 따라 선택하는 저마다의 기준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이었다. 이렇게 각자의 ‘오늘’을 버티게 하는, 일용 할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동료들의 점심 메뉴를 수집하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있다. 점심 메뉴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따로 있는데, 바로 ‘함께 먹는다’는 것이었다.
우리, 오늘 점심 같이 먹으러 갈까요?
어느 날, 동료가 내게 말했다.
“혹시 오늘도 추어탕 먹으러 가요? 그럼 저도 같이 가도 돼요? 근데 저 아직 한번도 안 먹어봤는데..”
추어탕은 호불호가 있는 음식이라, 처음 시도하는 동료가 자칫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 되었다. 그럼에도 함께 가보기로 했다. “늘, 1명이요~” 하던 내가 함께 오는 이가 있으니 추어탕 사장님도 신기해 하며 반가워하셨다. 그렇게 어느덧 하나 둘, 동료들과 추어탕을 먹는 날이 늘어났다. 나중에는 처음 추어탕을 먹어보는 동료도, 나처럼 추어탕을 좋아하지만 함께 갈 이가 없어 굳이 찾아 먹지는 않았던 동료도, 추어탕과는 상관 없이 나와 함께 식사하기 위해 동행 해 준 동료와도 추어탕을 먹었다.
함께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료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요새 어떤 업무를 하는지, 마음이나 몸의 컨디션은 괜찮은지, 혹시 고민은 없는지 등 안부를 물어가며 뜨거운 뚝배기를 천천히 비워냈다. 한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해도 사실 혼자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바쁜 업무에 집중하다보면, 바로 옆에 있는 동료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채 퇴근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에게는 ‘함께 먹는 점심’이 큰 힘이 된다. 아무리 바빠도, 어쨌든 점심은 먹어야 하니까.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동료에게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한숨도, 걱정 어린 표정도 곧장 들키곤 하지만, 그래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된다.
함께 먹는 힘
물론 때로는 혼자 먹는 것이 간편하고 빠르고, 효율적이다. 게다가 우리 재단은 ‘식사는 항상 함께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곳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 짧은 점심시간을 쪼개, 동료들과 시간을 맞추고, 점심 메뉴를 함께 고르고, 점심 식사 장소까지 함께 걷고, 점심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은 – 결국 서로를 알아가고 돌보며, 살피는 노력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먹는 힘’을 우리 재단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나도 오늘 점심은 추어탕 말고, 다른 동료들이 좋아하는 점심 메뉴를 함께 먹자고 말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