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부모’라는 말조차 없던 2019년, 아름다운재단과 청소년부모지원 킹메이커는 과감하게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청소년부모가 아기도 자신의 삶도 포기하지 않도록 꾸준하게 청소년부모 가족의 곁을 지켜온 지난 7년. 그 간의 시간을 돌아보는 조금은 특별한 자리가 열렸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 성과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임팩트연구보고 ‘조명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행사장 로비에는 보고서에 다 담을 수 없는 사업 관련 스토리를 보여주는 오브제가 전시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쓴 어버이날 카드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평생 내 편인 우리 엄마,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십자수 액자와 손뜨개 목도리는 1.6㎏ 이른둥이로 태어난 아기와 함께 지내다가 건강하게 퇴소한 청소년부모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며 킹메이커에 선물해 준 작품이다. 청소년부모들이 진로학습지도 프로그램을 통해 취득한 각종 자격증 서류도 눈에 띈다.

로비에 전시된 변화 오브제
청소년부모들이 보내온 편지와 카드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했다. “저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한 아이의 엄마로만이 아닌,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24살의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현실에 치이고 지쳐있던 저희에게 희망이라는 게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은 환영사를 전하며 “세상을 바꾸는 변화는 작은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그 관심은 어느새 작은 빛이 되어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을 조명하고, 그 빛이 닿은 자리에서는 변화의 선순환과 연결 반응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하는 이 자리는 그 변화가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뜻깊은 자리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청소년부모주거지원사업은 청소년부모의 삶을 조명하며 청소년부모 지원생태계를 바꾸고 제도개선에 대한 변화까지 이뤄냈기 때문이다.
6.4배의 사회성과 창출… 비결은 역시 ‘초밀착’
행사의 1부 순서인 임팩트 연구보고 발표에서는 연구를 맡았던 임팩트리서치랩의 김하은 부대표가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의 특성과 의미, 주요 성과를 꼼꼼히 짚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사업이 만든 사회성과 창출배수는 6.4배에 달한다. 1억 원을 투자하면 6억 4천만 원 규모의 사회성과를 낸다는 뜻이다. 5년간 49가정이 아늑한 보금자리를 얻어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인원으로 치면 청소년부모 79명과 그 자녀 60명 등 총 139명이다. ( 2024~2025년까지 포함할 때 지원인원은 더 늘어난다.)

임팩트리서치랩 김하은 부대표
청소년부모 당사자들이 참여한 사업평가에서도 성과가 확인된다. 청소년부모들은 주거지원을 받은 뒤 주소지를 등록하고 독립 세대주가 되어 출생·혼인신고를 할 수 있었고 정부의 사회서비스도 받게 되었다. 청소년부모들은 ‘제도권 편입 과정에서 주거지원사업이 기여한 정도’를 89%라고 평가했다.
5점 척도 설문을 살펴보면 ▲청소년부모 건강 개선(4.4점) ▲자녀 건강 개선(4.5점) ▲부모의 양육·살림 역량 향상(4.5점) ▲자녀와의 관계 개선(4.6점) 등 대부분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진로·근로 코칭(4.7점) ▲학업유지·진학 지원 만족도(4.8점) 역시 만점에 가깝게 나타났다. 또한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감소시키고(4.5점), 긍정적인 생각을 키웠으며(4.5점), 회복탄력성(4.4점)과 사회적 자본(4.4점) 역시 증가시켰다.

사업성과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행사 참가자
비결은 역시 초밀착 맞춤형 사례관리. ‘주거지원’사업이라고 해서 집만 지원하는 사업이 아니다. 청소년부모에게 집이 중요한 것은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성장하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운재단과 킹메이커는 이러한 집을 기반으로 청소년부모의 생활 전반을 돌본다. 아이를 함께 씻기고, 장을 함께 보고, 병원을 함께 가고, 각종 지원제도도 함께 알아본다. 검정고시나 수능을 준비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 역시 당연히 ‘함께’다.
꼼꼼한 사례관리는 아름다운재단과 킹메이커의 강한 신뢰와 파트너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름다운재단은 현장의 긴박한 상황에 맞게 최대한 유연하게 지원했고, 협력단체의 역량 강화 및 단체간 네트워크를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킹메이커는 일선에서 청소년부모를 총체적으로 지원했다. 현장의 생생한 경험은 고스란히 연구 활동과 정책 제언으로 이어졌다.
배보은 킹메이커 대표는 사업을 소개하면서 “지원금만 전달하는 방식,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며 같이 해보는 방식으로 했다”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청소년부모들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어린이집 발표회에 잘 안 가는데, 그러다 (부모들과의 네트워크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면서 “그래서 발표회 때는 킹메이커 전 가족이 총출동해서 제일 시끌벅적하게, 화려하게 응원한다”고 전했다. 마치 자식들과 손주를 모두 ‘내 새끼’로 보듬어 안는 할머니·할아버지들 같다.

청소년부모지원 킹메이커 배보은 대표
‘내 삶은 끝났다’고 절망했는데… “넌 진짜 역량 있는 사람이야”
2부는 ‘변화를 경험하다’라는 제목의 토크콘서트. 청소년부모 당사자와 멘토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자리다. 무대에 오른 청소년부모들은 사업을 통해 “인생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하루를 버티는 것도 숨이 차던 때에 내일을 생각할 수 있게 희망을 불어넣은 것이 바로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이었다는 이야기다.
송연화·이병철 부부는 “아무 준비 없이 임신만 한” 상황에서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을 만났다. 송연화 씨는 “이전에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시도할 마음도 없었는데 아이 때문에 책임감도 생겼다. 그때 시도할 기회가 생기니까 성장도 할 수 있었다”고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종종 흔들렸지만 그때마다 지원사업 멘토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서서히 자신감을 찾았고, ‘해내야지. 내가 엄마인데’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 마음으로 자격증을 따고 일자리도 얻었다.

청소년부모와 지원사업 멘토로 구성된 2부 토크콘서트 패널
아빠가 된 이병철 씨 역시 얼른 사회에 자리를 잡고 싶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실수해도 괜찮다”는 조언을 듣고 과감하게 도전에 나섰다.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학능력시험을 쳐서 대학에 진학하고 군대까지 다녀왔다. 그래도 삶은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제대를 앞두고 오히려 사회에 돌아가는 게 겁났던 그는 다시 지원사업 멘토들을 찾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아이도 키울 방법을 멘토들과 함께 찾다가 지게차 자격증을 땄다. 이번에도 일사천리로 한 번에 패스했다.
혼자 아이를 키우던 김랑하 씨는 빚까지 진 상황이었다. 정부의 서민대출제도라고 생각하고 돈을 빌렸는데 알고 보니 고금리의 사금융이었던 것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채가 생기고 명의까지 도용당하니 ‘내 삶은 끝났다’ 싶더라”고 말했다. 빚 독촉 전화를 받으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더 나은 미래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을 만나면서 그의 삶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우선 아기와 함께할 집이 생겼고 긴급생계비도 받았다. 개인회생에 대해서도 알게 되면서 빚을 털어내고 적금을 시작했다. “넌 진짜 역량 있는 사람이야. 마음만 먹으면 잘할 거야. 못해도 괜찮으니까 해봐”라는 말에 다시 가슴이 뛰었다. “학원에 다니면서 전산회계 자격증을 땄다”고 말하는 얼굴에서 감출 수 없는 미소와 자부심이 드러났다. 현재 킹메이커에서 회계를 담당하는 김랑하 씨는 앞으로 비영리 회계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다.

지원사업 멘토로 활약중인 성석희(좌) 박은경(우) 멘토
이러한 변화의 모든 순간에는 청소년부모와 함께한 지원사업 멘토들이 있다. 멘토들은 “사회적으로 엄마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활동을 설명했다. 한때 강남의 ‘일타강사’였던 성석희 멘토는 청소년부모 학습지원을 해왔다. 청소년부모들은 원가족에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공교육 과정에서도 소외된 경우가 많다. 학습 수준이 저마다 달라 맞춤형 지원이 필수다. 성석희 멘토는 “검정고시를 함께 준비해보니 짧은 기간에도 청소년부모들의 생각이 쑥쑥 자라더라”고 전했다. 그동안 기회와 동기가 없었을 뿐 역량이 없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박은경 멘토는 근로자립 지원을 맡았다. 청소년부모의 진로를 함께 모색하고 필요시 국가제도를 활용해 학습 기회를 지원받도록 돕는 일이다. 청소년부모들은 각종 지원제도 관련 정보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알아도 절차가 워낙 복잡해서 혼자 신청하다가 포기하곤 한다. 박은경 멘토는 “청소년부모들은 겨우 20대 초중반이다. 충분히 더 공부할 수 있고 지원받을 수 있는 시기다. 실제로 조금만 도와주면 정말 잘 해낸다”고 강조했다.
어린 부모들도 행복을 포기하지 않도록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이 진행된 지난 7년 동안 청소년부모와 아이는 쉬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넘어지면서. 청소년부모 가정만 자란 게 아니다.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도 꾸준히 성장했다. 2019년 시범사업 형태로 시작한 이후 주거지원 대상과 지역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주거지원을 기반으로 학습지원, 근로자립 지원으로 영역도 확대했다.
청소년부모 지원생태계도 함께 자랐다. 아름다운재단과 킹메이커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함께 사업 첫해 국내 최초로 ‘청소년부모 생활실태조사 및 개선방안’을 발표했으며, 그 뒤로도 국회토론회를 열고 매뉴얼북을 만드는 등 지원생태계 성장에 힘썼다. 청소년부모 주거지원사업은 특정 단체만의 빛나는 성과로 남는 게 아니라 수많은 단체의 사업으로 널리 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21년 관련 법에 ‘청소년부모’ 지원 근거조항이 마련되었고, 다음 해부터 정부의 청소년부모 아동양육비 지원사업도 시작됐다.

지원사업 임팩트를 한 눈에 보여주는 임팩트캔버스
지원사업을 7년째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아무 지원 없이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부모들이 많다. 그만큼 지원사업도 해를 거듭할수록 현실에 맞춘 성장단계를 밟아야 한다. 그래서 임팩트 연구보고서 역시 제언으로 끝을 맺는다.
우선,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만들려면 지원생태계를 변화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현장 조직 발굴과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청소년부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적 공감을 키우기 위해 어드보커시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셋째, 전문적인 지원 인프라를 운영하고 청소년부모의 생애주기 단계별 지원을 설계하는 등 종합적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청소년부모에 대한 인식이 확 달라진 사회. 더 촘촘하고 종합적으로 청소년부모를 지원하는 사회. 국가와 민간단체는 물론 다양한 조직이 협력해 청소년부모를 지원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는 나이가 어리고 기댈 어른이 없어도 누구나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빨리 부모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꿈과 미래를 버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이도 청소년부모도 우리 사회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나 희망은 보인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개척해온 지난 7년, 그리고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다”고 말하는 청소년부모들의 목소리가 바로 이 희망의 증거다. 이번 임팩트연구보고 ‘조명하다’는 그 희망을 확인하는 자리이며 새로운 변화를 시작하는 자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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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청소년부모들 곁을 지켰더니… 투입한 사업의 6.4배 사회성과 이뤘다
글. 박효원 ㅣ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