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2022~23년 청년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산업재해 현황 실태조사를 통해 청년여성의 산재보험 신청률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은 산재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 여성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생계비를 지원하고, 청년여성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해 지금의 산재보상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일하다 다친 청년 여성들과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회복하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뒷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함께 할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문구가 낯설지 않은 요즘입니다. 서로 독려하면서 같이 달리는 모임부터 영어·중국어 등 회화를 익히는 모임, 독특한 주제의 독립영화만 골라서 같이 보는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도 있죠. 쓰레기를 주우면서 걷는 모임처럼 건강과 환경 보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노리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소규모 모임의 전성시대입니다.

지난 7월 12일 토요일, 서울역 인근 아담한 공간에 오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 바로 ‘일하다가 아파본 청년여성’이라는 점입니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으로 지원받은 경험이 있는 청년여성들에게 모임 포스터를 돌렸고, 열 명 남짓한 사람이 기꺼이 손을 들었습니다.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모임 ‘2025 참으면 병나, 놀러와!’ 포스터입니다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모임 ‘2025 참으면 병나, 놀러와!’ 포스터

어색하면 어쩌나 걱정한 시간이 무색하게,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도 전에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의 이름을 묻고,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왔는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준비하느라 분주한 활동가에겐 ‘뭐 도와드릴 건 없나요?’라고 물으며 일손을 보태는 다정한 시간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 일하다 생긴 문제 대응법

모임 첫 시간은 안현경 노무사(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임금 체불 등 일하다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부터 일 시작할 때, 그만둘 때 꼭 챙겨야 하는 필수 서류, 산재 신청하는 방법까지 중요한 내용만 쏙쏙 뽑아서 속성으로 공부합니다. ‘퇴사했는데 산재 신청할 수 있을까?’ 알쏭달쏭 헷갈리는 내용은 OX퀴즈로 진행하고, 그동안 일하면서 궁금했지만 시원하게 답을 들을 수 없었던 질문들을 쏟아내고 보니 금세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일하다 생긴 문제 대응법’을 강의하고 있는 모습

‘일하다 생긴 문제 대응법’을 강의하고 있는 모습

책상을 붙이고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는 모습은 고등학교의 점심시간 풍경 같습니다. 마치 몇 번 만났던 적이 있는 사람들인 양 재잘대는 목소리에 활기가 느껴집니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치웁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와 생각을 기꺼이 나눌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마음도 열립니다.

소소한 일탈 안에서 주고받는 위로 미술 소통 프로그램

미술 소통의 주제는 ‘소소한 일탈’입니다.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인 과자 더미 속에서 ‘평소대로면 사지 않을’ 과자를 한두 가지 고르는 데에서 작은 일탈이 시작됩니다. 선생님이 준비한 예시를 유심히 보다가도 활동가들이 마트와 세계과자점을 돌며 모아온 특이한 과자들 덕분에 한바탕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포장지에 생선이 그려진 쥐포부터 로제 떡볶이맛 감자칩, 누룽지치킨맛 아몬드, 솜사탕, 땅콩크림 웨하스, 마시멜로, 엄청나게 신 젤리, 추억의 알사탕… 저마다 고른 과자를 뜯어 맛보고 포장지를 붙여 감상을 적습니다. ‘역시 그동안 사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부터 ‘먹어보길 잘했다’ 등 반응은 각양각색입니다.

일탈 경험을 다이어리에 꾸미고 있는 참가자의 모습. ‘스카치캔디’ 포장지가 눈에 띈다

일탈 경험을 다이어리에 꾸미고 있는 참가자의 모습. ‘스카치캔디’ 포장지가 눈에 띈다

오늘의 작은 일탈을 물꼬로 이전에 일탈했던 경험을 떠올려보거나, 앞으로 해보고 싶은 ‘나만의 일탈’을 생각하며 다이어리에 표현해봅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나에게는 일탈일 수 있죠. ‘예전부터 도전해보고 싶었던 해외봉사를 신청했어요’, ‘놀이터에서 그네랑 미끄럼틀을 타고 싶어요’, ‘혼자서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어요’, ‘일이 너무 바쁠 때 소리 지르면서 집으로 뛰어가고 싶어요’ 상상하는 일탈이 쌓여갈 때마다 탄성과 공감의 박수가 섞입니다. 한 청년여성은 ‘얼마 전부터 바다에 너무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라며 바다에 가는 걸 일탈로 정했습니다. 다이어리 양면 가득 붙인 파란색 마스킹 테이프가 꼭 바다 같습니다.

미술 소통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변우리 선생님과 웃고 있는 참가자들

미술 소통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변우리 선생님과 웃고 있는 참가자들

꽃꽂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의 다이어리를 꾸미는 시간을 보냅니다. 각자 최근 고민하는 주제를 몇 개의 단어로 적고 난 뒤, 다이어리를 옆으로 돌리면 다음 사람이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담아 스티커를 마구 붙입니다. ‘불안’, ‘취업’, ‘건강’, ‘외로움’ 등 쓸쓸한 단어만 덩그러니 쓰여있던 하얀 종이를 보냈는데, 다시 받았을 땐 귀엽고 아기자기한 스티커들에 가려 그 단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뭐 해 먹고 살지’ 걱정된다는 말 옆에는 네잎클로버 스티커부터 ‘럭키빔’까지 행운을 담은 온갖 스티커가 붙었습니다.

한 바퀴를 돌은 뒤 다시 받은 다이어리. 고양이, 강아지, 판다 등 귀여운 동물 스티커부터 응원의 말이 담긴 스티커가 다양하게 붙어있다

한 바퀴를 돌은 뒤 다시 받은 다이어리. 고양이, 강아지, 판다 등 귀여운 동물 스티커부터 응원의 말이 담긴 스티커가 다양하게 붙어있다

나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

노란 여름꽃이 가득한 꽃을 들고 바구니에 꽂으며 오늘을 정리합니다. 꽃과 풀 향기가 퍼집니다. 오늘 모인 청년여성들은 하는 일이 모두 달랐습니다. 빵을 만드는 사람, 간호사, 작가 일과 쿠팡을 병행하는 사람, 웹 개발을 하다 쉬는 사람, 운동선수 출신으로 학원에서 일하는 사람 등 직업은 다르지만 겪은 고충은 다른 듯 닮아있었습니다. 장시간 노동, 직장 내 괴롭힘과 성폭력, 반복 작업 때문에 만성적으로 아픈 몸…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는 청년여성들이 일하다가 다치거나 일 때문에 아픕니다. 그러나 청년여성과 노동은 좀처럼 나란히 배열되지 않는 단어입니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산업재해’는 더욱 그렇습니다. 홀로 겪는 아픔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내 옆 사람의 문제이고, 우리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라는 걸 모이면 알게 됩니다.

완성된 꽃바구니를 들고 찍은 기념사진

완성된 꽃바구니를 들고 찍은 기념사진

좋아하는 일을 나누며 더 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고, 혼자서는 꾸준히 하기 어렵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함께해내며 짜릿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위로를 받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이날 참석한 청년여성 중 한 분이 이번 모임을 ‘따뜻한 시간이었다’라고 표현해주신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지요. 자리를 정리하며 우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했습니다. 올해 안에 한 번 더 보기로요. 그땐 어떤 즐거움을 나누고 어떤 위로를 주고받게 될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글 | 박한솔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사진 | 장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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