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함께 보내야 제 맛이니까, 청소년부모 네트워크 워크숍! 

“아, 난 완전 망했어. 집에서 할 때는 잘 됐는데”
“국물 맛 좀 봐줄래? 어때? 좀 먹을 만해?”
“아무래도 너무 단 것 같아. 설탕을 한 숟갈 덜 넣을걸.”

유난히 길고 무덥던 여름의 열기는 꺾였지만, 이곳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요리사들은 저마다 지지고 볶고 부치고 끓이느라 정신이 없다. 지글지글 보글보글 식욕을 자극하는 맛있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매콤하고 달달하고 구수한 냄새가 한껏 식욕을 자극한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현장, 킹메이커와 아름다운재단이 마련한 ‘청소년부모 네트워크 워크숍’, 그중에서도 첫째 날의 핵심 프로그램인 ‘흑백엄마 요리대회’의 한 장면이다. 

청소년부모 네트워크 워크샵 첫 날을 화려하게 장식한 ‘흑백엄마 요리대회’

워크숍에 참여한 10가족은 모두 대회에 참가해 한 가지씩 요리를 만들었다. ‘흑백’ 콘셉트에 맞춰 조리복까지 갖춰 입은 요리사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재료부터 심상치 않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요리사들은 각자 집에서 미리 재료를 다듬어오기로 했다. 비법 소스를 미리 만들고 고기까지 초벌로 삶아온 요리사, 예쁜 플레이팅을 위해 고명까지 야무지게 챙겨온 요리사들도 눈에 띄었다.

밀푀유나베와 팽이버섯 고기구이를 준비하고 있는 참가자

역대급 황금연휴가 달갑지 않은 청소년부모들

이번 워크숍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열렸다. 추석은 가족과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한해의 수확을 기뻐하는 날이지만, 청소년부모들에게는 이 명절이 썩 달갑지 않다. 이른 임신과 출산을 인정받지 못해 원가족과 관계가 단절된 청소년들에게는 오히려 외롭고 쓸쓸한 시간인 것이다.

워크숍을 기획한 배보은 킹메이커 대표는 “올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다”고 명쾌하게 배경을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추석은 역대급 황금연휴였다. 개천절과 한글날 사이에 낀 데다가 대체휴일까지 붙어있다. 하루만 연차를 내면 최대 10일을 쉴 수 있으니 직장인들에겐 이런 꿀휴가가 따로 없다. 

청소년부모 네트워크 워크샵 NEXT LEVEL

달리 말하자면, 청소년부모가 오롯이 가사와 육아를 감당해야 하는 고립의 날이 그만큼 길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가 너무 어리면 한번 외출하기도 쉽지 않고, 아이가 좀 자랐다고 해도 연휴에 놀러 갈 곳도 마땅치 않다. 게다가 나가면 하나하나가 돈인데 빠듯한 살림에는 부담이 만만치 않다. 선택지는 결국 집콕. 그러나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라도 종일 둘만 함께 지내면서 아이와 부대끼는 날이 길어지면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고된 육아에 지친 청소년부모들이 맘껏 쉬고 즐길 수 있는 시간, 비슷한 상황에 놓인 또래 부모들과 만나 서로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네트워크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이 이번 워크숍의 기획 취지다. 배보은 대표는 “결국 외로움을 해결하지 않으면 부모들이 안정되기 어렵다”고 전했다.

흑백엄마 요리대회 1위를 차지한 명란솥밥

안정적인 상황에서 아기를 낳아 기르는 부모들도 종종 우울증에 걸리곤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나의 앞날은 어떻게 될지, 초보 부모들에게 세상은 온통 두려움이다.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원가족의 지원 없이 부모가 된 이들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또래들은 한창 인생을 즐기고 있는 시기에 종일 아기와 씨름하다 보면 하루하루 지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청소년부모들에게 이번 워크숍은 오랜만에 맛보는 휴식이다. 참가자들은 “아이 낳고 이렇게 마음 놓고 쉰 적이 없었다”, “다른 부모들과 함께 활동하니까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편안한 휴식 덕분에 쉽게 마음이 열린 걸까. 청소년부모들은 하루 만에도 금세 친해졌다. 자신의 요리 비법을 알려주고 음식 간을 봐주고 기꺼이 양념까지 빌려주는 모습은 대회의 라이벌이라기보다 오랜 친구 같아 보였다.

남편의 생일상 메뉴를 재현한 오리고기쌈과 미역국

청소년부모의 마음은 청소년부모가 제일 잘 안다

사실 어린아이를 둔 부모에겐 밥 한 끼 차리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24시간 풀타임 노동이다. 생계 활동 또는 학업을 병행하면 더 바쁘고 피곤하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각자 노하우가 있다. 아기를 재워놓고 틈틈이 요리하기도 하고, 한꺼번에 대용량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아기 이유식은 만들지만 본인은 간편식으로 먹는다는 부모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나와 가족을 위해 마음 놓고 푸짐한 한 상을 차릴 수 있다.

흑백엄마 요리대회의 때깔 좋고 맛난 결과물!

평범한 음식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면 특별해진다. 맛있게 먹고 오래오래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이 음식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날 차려진 음식들이 모두 그랬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김치볶음밥, 따끈따끈 바로 먹는 명란솥밥, ‘좀 있어 보이는’ 동파육, 생일날의 특별식 훈제오리 무쌈과 미역국, 누구나 좋아하는 제육볶음, 집들이에서 호응이 좋았던 밀푀유나베, 아이가 좋아하는 케첩 듬뿍 오므라이스, 명절에 어울리는 산적꼬지와 잡채. 한 그릇씩 모으니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진수성찬이다.

심사위원들의 시식이 끝나자마자 요리는 참가자들의 저녁 식탁으로 옮겨졌다. 좀 전까지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요리사들도 조리복을 입은 채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맛있는 한 끼를 함께 만들고 나누는 경험, 사람이 친해지는 데는 역시 이만한 게 없다. 게다가 이들에겐 서로를 끌어당기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육아와 출산의 경험이다.

다 너무 맛있어서 심사가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 애는 6개월인데 벌써 8㎏야. 안고 있으면 팔이랑 어깨가 너무 아파.”
“차라리 그때가 나아. 이제 뛰어다니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러다 지치면 애가 안아달라고 한다.”
“태몽으로 과일 꿈을 꿔서 딸인 줄 알았는데 아들이더라고. 딸이면 좀 더 키우기 쉬울 텐데”
“나는 임신할 때 입덧 때문에 몇 달을 토했어. 잘 먹고 잘 토하고.”
“나는 배가 별로 안 나와서 주변에선 막달까지 모르더라.”

각자 자신이 더 힘들다고 ‘배틀(?)’을 하다가, 서로의 고충에 공감하다가, 각자의 육아 꿀팁을 전수하다가…. 대화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임신 6개월인 예비 부모에겐 “지금이 제일 힘들 때네”라고,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기르는 엄마에겐 “곧 좋은사람 만날 거야”라고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청소년부모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대화. 다른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청소년부모의 공통된 관심사 1위는 역시나 육아

함께 손잡은 청소년부모들, 더 큰 가족으로 연결되다

이번 워크숍은 청소년부모 가족들이 계속 굳건하도록, 그리고 여러 청소년부모들이 모여 더 큰 가족을 이루도록 기획되었다. 요리대회 이외에도 부모들을 위한 소통교육, 힐링콘서트, 레크레이션, 워터파크 가족활동 등 재미있고 유용한 프로그램이 2박3일을 가득 채웠다.

알찬 워크숍을 만들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손길이 있었다. 청소년부모들에게 즐거운 명절을 선물하겠다는 마음이 이심전심 퍼져나간 것이다. 특히나 돌봄 자원활동가들의 활약이 빛났다. 너무 작아서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1개월짜리 갓난아기부터 한창 개구지게 뛰어다니는 6살 아이까지, 청소년부모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자원활동가 17명이 출동했다. 부모들이 즐겁게 활동하는 동안 이들은 방에서 유아들을 재우고 키즈카페에서 아이들과 놀아준다. 청소년부모에게는 이렇게 잠시 아이를 맡기고 또래들과 맘껏 교류하는 시간이 그 자체로 휴식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워크샵

청소년부모와 함께하겠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먼저 자립한 선배 부모들이다. 아름다운재단과 킹메이커가 청소년부모 지원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6년째. 사업 초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6살이 되었고, 10대 후반이었던 부모들은 어느덧 20대 중반이 되었다. 갓난아기를 안은 청소년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뭐라도 돕고 싶지만, 그동안은 이 마음을 실행하기가 어려웠다. 청소년부모들의 네트워크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글게, 청소년부모들이 웃었다

이번 워크숍은 청소년부모들의 지지망을 잇는 연결고리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킹메이커는 앞으로 청소년부모 당사자 활동가를 양성해 ‘청소년부모가 청소년부모를 돕는’ 지원의 선순환 모델을 꿈꾸고 있다. 배보은 대표는 “어른들은 채워줄 수 없는 외로움, 또래 부모들만이 해줄 수 있는 위로가 따로 있다”면서 “당사자들이 서로를 돕기 위해 서로를 지지하기 위해 어깨를 내밀었다”고 청소년부모 네트워크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날 이어진 네트워크는 더 큰 지지망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떠받칠 것이다.

가족이라는 게 별거 없다.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돌보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정답게 밥을 나누어 먹는 식구(食口)가 가족이다. 명절에 한자리에 모여 함께 먹고 쉬고 즐긴 부모들은 서로의 ‘가족’으로 한걸음 가까워졌다. 부디 청소년부모들의 삶이 더도 말고 덜고 말고 올 한가위만 같기를, 앞으로도 아이들을 지키고 서로를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휘영청 밝은 보름달에 빌어본다.

부부, 자녀간 커뮤니케이션의 노하우를 공유한 소통교육 프로그램

글: 박효원
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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