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휴식이 분리되는 삶을 지향해왔지만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놀 때도 일 생각이 난다. 콘텐츠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이 콘텐츠 소재이고,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는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얻어야만 한다. 그래야 매일 범람하는 숏폼, 건너뛰기조차 할 수 없는 게임광고 등을 뚫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으니까.
공익적인 이야기일수록 사람들에게 닿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더욱 트렌드 레이더를 켜고 다니고 있다. 사람들이 요즘 뭘 좋아하는지, 디자인 트렌드는 어떤지, 세상이 어떻게 뒤바뀌고 있는지 살피는건 물론이고 쉬면서도 ‘일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운재단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야채와 콘텐츠 담당자인 듀이가 일 생각을 접지 못한 채로 돌아다닌 궤적을 짚어봤다.
야채 PICK 🎦 30년 전통에 트렌드를 더하다,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를 좀 본다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올해로 30회를 맞이했다. 여러 영화제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영화제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나는, 나와 동갑인 부산국제영화제에 방문하기 위해 한달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숙소·영화 티켓팅을 차례대로 성공하며 부산행에 올랐다.
BIFF는 ‘아시아 영화의 창’이 되겠다는 포부로 출발한 첫 해 이후, 수많은 영화와 영화인을 발굴하며 세계적인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30회를 맞이한 올해 영화제를 방문한 관객은 전년 대비 약 2만 명이 늘어난 17만 5천여 명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흥행을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본 BIFF의 힘은 전통 위에 트렌드를 더하는 유연함에 있다.
BIFF는 거장들의 신작을 선보이고 신인 감독의 데뷔작을 공개하는 등 영화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OTT 산업 확산에 발맞춰 OTT 시리즈 섹션을 신설하고 개막작을 OTT 공개작으로 선정하며 시대적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올해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공식 경쟁부문인 ‘부산 어워드’를 도입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또, 3년 전에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굿즈 브랜드 ‘피트(p!tt)’도 런칭했다. 개장 전부터 굿즈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오픈런’이 펼쳐지고, 모든 상품이 매진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2003년 작품인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올해 최고의 기대작 <부고니아>와 해외 신인 감독의 첫 장편 영화를 연달아 보고 나오는 길, 내 가방 한켠에 달린 BIFF 굿즈 키링을 바라보며 느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트렌드를 선도하는, 거장을 존중하면서도 신인을 발굴하는 BIFF의 정체성이 그대로 느껴졌다. 시대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색을 찾고 확장해 온 BIFF의 유연함은, 많은 관객들이 내년을 또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나 역시 내년에도 같은 설렘으로 부산을 찾게 될 것 같다.
야채 PICK 👩🏻🎤 락, 인디, 환경보호 스피릿 레츠고! 그랜드민트페스티벌
4인 이상 한자리에 모일 수 없던 팬데믹 시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현장’을 찾아갔다. 좋아하는 가수를 향해 마음껏 환호할 수 있는 공연장, 팀의 승리에 열광할 수 있는 야구장,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열기를 회복한 곳은 단연 대형 페스티벌이었다. 온라인에서는 ‘밴붐온(밴드 붐이 온다)’이라는 말이 화제가 될 만큼, 사람들은 좋아하는 가수의 슬로건과 정체성이 담긴 깃발을 들고 축제 현장으로 달려갔다.
락 스피릿보다 인디 감성을 장착한 나는 지난 10월 열린 그랜드민트페스티벌(GMF)을 방문했다. GMF는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들려주는 아티스트들이 무대를 채우며, 관객들은 도심 속 피크닉을 하듯 여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음악 페스티벌이다. 팬데믹 이후 처음 방문한 GMF였지만, 잔디밭에 누워서, 벤치에 앉아서, 근처를 거닐며 각자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은 여전했다. 그런데 한 가지 뚜렷하게 달라진 점이 눈에 띄었다.
바로 음식을 사먹는 푸드존에서 제공되는 모든 접시가 다회용기로 바뀐 것이다. 찾아보니 2023년부터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eARTh’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한다. 페스티벌에서 직접 다회용기 시스템을 운영하다 보니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행사장 곳곳에는 다회용기 사용 안내와 수거 지점이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수거 과정이었다. 다회용기의 의미는 제공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회수되어 다시 쓰일 때 완성되는데, GMF는 이 부분을 매우 공들여 운영하고 있었다. 여러 곳에 배치된 분리수거장마다 스태프들이 상주해 있었고,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안내를 받으며 다회용기 반납에 참여하고 있었다. 공연을 즐기며 환경을 지키는 일, 그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현장이었다.
듀이 PICK 📖기획력 집합체, 서울국제도서전
이제 핫하다못해 뜨거워져버린 도서전에 다녀왔다. 브랜딩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서전만한 공부는 없다고 생각한다. 출판사들이 도서전에 나오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출판사를 알리기 위해서니까. 책을 판매하는 것도 주요 목적 중 하나겠지만,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 대한 인상을 만드는게 더 먼저일 거다. 부스 방문자들로 하여금 출판사에 대한 일관된 인상을 전달하고, 이를 위해 브랜딩 기획을 A부터 Z까지 해내는데 이런 출판사가 수십곳이 모여있는 행사? 현장학습이다.

현암사의 팔순잔치
이번 도서전에서 인상깊었던 두 곳은 출판사 현암사, 독립출판사 발코니였다. 현암사는 80주년 기념 ‘팔순잔치’ 부스를 차렸다. 80년이나 된, 오래된 출판사의 이미지가 아니라 힙스터 그 자체로 인식됐다. 무엇보다 대표님으로 보이는 분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부스 방문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것부터 대단하게 느껴졌다.
발코니는 참신한 책 기획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국불효자랑’이라는 책이었는데, 책을 쓴 저자들이 모두 참석해 맨 앞에 싸인을 해줬다. 굿즈는 ‘콩가루’였다. 불효하기 어려운 세상에 불효하겠다고 나선 불효꾼들의 이야기, 그래서 콩가루가 굿즈인 너무나 완벽한 기획이었다. 나쁜 부모,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부모 등에 맞선 자식들….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재단에서도 많이 다뤘지만 ‘전국불효자랑’이라는 기획은 한번도 상상한 적 없는 새로움이었다. 같은 소재라도 기획자에 따라 참신하게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듀이 PICK 🙍🏻 결혼하지 않는게 뭐?, 비혼페어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아베와 듀이가 주말에 출동했다. 아니 세상에 비혼페어? 국내 최초, 제1회 비혼페어라니. 무조건 가봐야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비혼여성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싶었다. 총 2,000명이 방문했다고 하니 동시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행사였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제1회 비혼페어
비혼여성의 삶과 닿아있는 기업과 창작자. 그리고 다양한 연사들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었다. 반려고양이, 반려식물 부스부터 여성청년커뮤니티 ‘여글여글’ 등 삶을 지지하는 든든한 존재들로 가득했다. 서로 매일 안부를 묻고, 품앗이로 배우는 것. 혼자 살더라도 서로의 안위를 돌볼 수 있는 커뮤니티라니! 너무나 반가운 존재였다. 점심 이후부터 시작된 ‘여성폭력의 이해와 대책’, ‘단단한 비혼을 위한 내집 마련 101’ 강의도 꼭 필요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들고 온 팸플릿에 메모하면서 적어왔을 정도다.

여성 청년 커뮤니티의 부스
듀이 PICK 🗃️영감 대방출! 엽서 도서관, 포셋
가을 나들이겸 서울 연희동에 갔다가 발견한 곳! 엽서도서관 ‘포셋’이다. 도서관을 차지한 책들처럼 선반마다 엽서가 가득히 있는 곳이다. 누군가에게 엽서를 쓸 수 있는 작은 책상들도 마련되어 있어서 뭔가 쓰고 싶어진달까?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엽서도서관 ‘포셋’
엽서는 보통 생일, 크리스마스, 신년 등 특정한 시즌에 쓰는 경우가 많은데 단 하나의 엽서도 겹치는게 없었다. 작가마다 시즌을 다르게 해석하고 풀어내는 것을 보니 영감이 샘솟을 수밖에. ‘우리 브랜드 메시지는 어떻게 시각화해볼 수 있을까, 라인을 써야하나 쓰지 말아야 하나? 캐릭터를 넣을까 뺄까?’ 등 여러 방면으로 고민해볼 만한 지점을 얻었다. 직접 가지 않더라도? 포셋 홈페이지에서 수많은 엽서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엽서 속에서 브랜딩 영감 얻기
일과 휴식의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오늘도 고통받고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변화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드리고 싶다. 야채와 듀이의 힙스터 지향기는 쭉 이어질테니 지켜봐주시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