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을 싣고 영덕을 달리다 ‘작은변화 만물트럭’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찬찬히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평온한 블루로드를 가진 지역이었던 영덕. 2025년 3월 22일 갑작스럽게 의성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로 인해 대부분의 집과 농작물은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4천 여명의 주민들이 인근 학교나 행정복지센터로 대피해야 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에이팟코리아와 함께 긴급하게 시민모금을 진행해 경북지역의 산불로 피해를 입은 이재민을 도왔습니다.
4월, 긴급히 나와 아무것도 없이 대피해 있는 이재민들을 위해 만물트럭을 움직였습니다. 해양청소년센터 및 마을회관 등 대피소를 일일이 방문하여 당장의 대피생활에서 가장 필수적인 물품들을 묻고, 수요 물품 리스트를 정리했습니다. 짐을 챙길 겨를도 없었던 대형 산불 대피로 인해, 이재민분들은 갈아 입을 옷도 부족한 상태로 대피생활을 견뎌내고 계셨습니다. 신발을 신을 틈도 없어 맨발로 뛰어나와 신발이 없는 분들, 긴급히 배분된 아이옷이나 헌옷으로 떼우며 지내고 계신 분 등 대피소에서 지낼 의류와 신발 등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또한 춥디 춥던 3월이 지나 4월을 맞이해 여름을 준비해야하는 계절이었기에 현재 이재민분들이 가지고 계신 옷으로는 생활하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여름용 상하의, 바람막이, 양말, 속옷, 장화 등을 직접 구매하여 배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에이팟코리아, 이동하는 만물트럭을 통해 어르신들이 입을 수 있는 봄옷 및 여름옷 등을 제공하고 있다.
영덕 지역 특성상 마을들이 한 곳에 모여있지 않아 인원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동이 편하지 않은 어르신들도 계시다는 점을 감안하여 직접 마을 어르신분들이 계신 곳을 찾아 물품을 전달드렸습니다. 이재민 1,450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물품 지원인 만큼 효율적인 물품배분을 위해, 유튜버 ‘청춘만물트럭’과 함께했습니다.
시골 깊숙하게 계신 어르신들에게도 물품을 전달드리는 유투버 ‘청춘만물트럭’과 함께한 물품지원 사업은 그 자체로 가라앉은 마을의 분위기를 잠시나마 들뜨게 했습니다. 이재민분들께서는 만물트럭이 싣고 온 옷들을 이리저리 펼쳐보며 함박웃음을 지으셨고, 마을회관의 분위기는 마치 여느 일상의 시골 장터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많은 어르신 분들께서 우울한 마음이 환기되는 것 같다며 감사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사진 한 컷이 만들어내는 작은변화 <다시봄 프로젝트>
6월, <작은변화 만물트럭>을 운영하면서 이재민분들과 말씀을 나누었을 때, 많은 이재민분들께서 전소되어버린 가족사진과 추억의 기록물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특히, 어르신분들의 경우에는 영정 사진을 준비하신 분들도 계셨지만 산불로 인해 준비해둔 사진들이 사라진 경우도 많았습니다. 피해를 입었으니 어쩔 수 없다 말씀하신 분들도 계셨지만 그 마음속에는 빈자리가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그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우고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다시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대상자 선정의 경우 사진촬영의 의사를 보이셨던 마을 19개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본 프로젝트는 바라봄 사진관과 함께 촬영을 진행하였으며, 동네언니협동조합에서 메이크업 및 헤어 세팅을 담당해주셨습니다.

ⓒ에이팟코리아, 산불로 사라진 가족사진 촬영 중
사진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웃음꽃이 가득했습니다. 대기실에서 이 옷이 예쁠지, 저 옷이 예쁠지를 고민하시며 어르신들은 그야말로 소녀같은 웃음을 보이셨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신 듯 머뭇거리며 한발 물러서있던 주민분들도 하나 둘 찍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셨고 처음 몇 명만 촬영할 예정인 마을에서 20명으로 늘어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촬영을 준비하여 사진을 인화하는 전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긴 기다림에도 묵묵히 순서를 기다리며 마지막에는 환한 웃음과 함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시는 장면을 보며 다시 한번 ‘심리 지원’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은 테이블 위에서 이루어지는 <작은변화 심리지원>
6월부터 이재민분들께서 3개월 정도의 대피생활을 정리하고 임시주거에 입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시집이 다 자리를 잡을 즈음인 6월 25일부터 대피소 생활동안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을 대형 산불에 대한 트라우마를 조금이나마 해소시켜드리고자 마음속 이야기를 듣기 위해, 치유활동가 집단 ‘공감인’과 함께 1:1 심리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에이팟코리아, 심리 지원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마음속 무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다보니 조금이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꽃병과 다과, 음료가 준비 되어있는 작은 피크닉 세트를 활용하여 소풍과도 같은 분위기에서 상담이 진행되었습니다.
피해경험이나 상실감 등 강력한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부담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선택이 가능한 마음표정 그림판을 활용하여 심리상담을 진행했습니다. 몇몇 이재민분들께서는 ‘억울하다’와 같은 슬픈 감정을 표하시기도 하셨지만 자신의 산불로 인한 경험을 어디에서도 이야기하지 못한다며 ‘부끄럽다’는 감정을 보이시기도 하셨습니다. 더욱이 도움을 받는 지금의 상황이 민망하다는 말씀을 남기시며 분명 피해자이심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잘못한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계셨으며, 상담 도중에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이번 심리지원으로 이재민분들께서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다시 자기 사진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셨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작은변화세트로 일상회복을 <작은변화세트지원>
9월에 진행한 <작은변화 심리지원>을 통해 이재민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나누며, 새로운 집에 아직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부분이 많음을 확인했습니다. 많은 이재민분들께서 과거 전소되어버린 생활 기반에 대해 말씀하셨고 현재의 임시거주지에서는 정말 최소한의 생활만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에 에이팟코리아는 일상회복을 도와드리고자 물품을 요청하신 이주민 750세대를 대상으로 작은변화세트지원을 시작했습니다. 필요 물품들 전부를 수용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예산과 배분 일정의 한계로 인해 그릇, 이불, 티비장으로 물품을 지원하였습니다.

ⓒ에이팟코리아, 임시거주지에 제공된 생활용품들.
그릇 750개, 티비장 670개, 이불 1,500을 전달드릴 계획이었으나, 각 임시컨테이너 내에 가족단위로 거주하고 계신분들도 계시고 추가 수요도 발생하여 물품을 추가 공급하여 배분했습니다. 작은변화세트는 말 그대로 ‘집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집의 주거 공간을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는 구성품들로 구성했습니다. 물품을 직접 전달할 때, ‘이제 조금이나마 생활이 더 편해질 것 같다’는 말씀을 듣고, 단순한 물품전달의 의미를 넘어 진정한 회복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은변화들이 만들어낸 큰 변화
아름다운재단과 에이팟코리아가 4월부터 9월까지 진행한 ‘작은변화 프로젝트’는 4개의 프로젝트가 서로의 개연성을 더하며, 이재민들이 새로운 집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데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본 프로젝트를 통해, 재난 및 재해 지원이 단순한 긴급 구호에서 그치지 않고, 일상으로의 회복까지 이어지는 것의 중요성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지원으로 경북 영덕의 이재민분들의 일상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픔이 컸던 2025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산불에도 논밭 걱정을 하며 장화를 요청 했던 이재민 어르신의 바지런함은 컨테이너 박스, 장독대도 없고, 농기류 창고도 없고, 손때 뭍은 냄비, 장농도 없는 임시거처에서도 생활을 회복하고 다지는 힘이 되었고, 이제 2026년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산불 앞에서 힘들었던 마음에 작은 새싹이 돋기를 바라며,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에이팟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