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FP 모여라!

아름다운재단에서 모금담당자로 꽤 오랜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얼마 전 안식월에서 감사한 쉼을 가지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다가 우연히 MBTI 컨텐츠를 보게 되었어요. 성향에 대한 분석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내가 이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있었던 건 성향에서 기인했으나 결국 나를 채워준 동료들 덕에 가능했구나…’

부족함을 보듬어준 동료들과 ISFP의 장단점을 이 일에 맞게 조금씩 다듬어온 시간들 덕에 지금의 제가 있는 듯 했습니다. 제 MBTI는 ISFP인데요. ISFP가 낯설게 다가오는 분도 계실 듯하여 간단한 소개를 담아봅니다.

🙋🏻MBTI란 무엇일까요?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방식의 차이를 4가지 지표(E/I, S/N, T/F, J/P)로 구분해 16가지로 나타내는 성격유형 검사예요.

🧡ISFP는 어떤 사람일까요?
온화하고 조용하지만 내면엔 깊은 감성이 흐르는 사람이라고 많이들 말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감정에 진실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지금 이 순간의 분위기와 감정에 집중하는 편이죠. 즉흥적이고 유연하며, 갈등보다는 조화로움을, 속도보다는 마음의 결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는 ISFP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모금담당자라 하면 보통 사회복지를 전공했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저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 세상은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는데 그 과정이 거칠게 느껴졌어요. ‘조금 더 따뜻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일 순 없을까? 힘이 적은 사람들은 누가 보듬어주어야 할까?’ 20대의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이었지만 그 마음이 저를 비영리기관으로 이끌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를 건내는 일, 그 온기가 세상을 품어가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전형적인 ISFP의 시작이었어요.

ISFP가 들려주는 모금 현장 이야기

모금담당자는 무엇을 할까요? 단순히 공익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기부를 요청하는 몇 가지 행동으로 끝날 듯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많은 연결과 조율, 감정과 정보… 그리고 숫자를 다루는 아주 다층적인 작업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ISFP의 네가지 성향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I – 내향적이지만 진중하게

모금담당자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일상입니다만 저는 외향적이지 않아 새로운 분들을 만나면 여전히 늘 긴장합니다. I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편안하고 진정성있게 다가가려 노력합니다. 기부자님, 기부처 담당자분들, 협력 기관, 지원대상자분들과의 소통에서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하지 않아도 경청하면서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신뢰가 쌓이고 어려운 안건들도 조율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S – 현실 감각으로 섬세하게

저는 원래 N 성향이지만, 일을 하며 S성향이 발현된 것 같습니다. 기부자의 관심사와 현장의 실제 필요가 맞닿아야 하고, 이를 재단이 감당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장의 맥락과 현실적 필요를 꼼꼼히 살피고, 어떤 임팩트를 낼 수 있는지 기부자에게 설득하는 편입니다. 기부는 감동으로 시작되지만, 현실적 설계가 수반될 때 지속가능성이 담보된다는 점을 유념하며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F – 감성적으로 공감하기

모금은 설득의 연속입니다. 보통 설득이라 하면 앞서 말씀드린 논리적인 것들을 생각하실텐데요, 그 전에 공감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기부자들이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일지 직관적으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스토리, 데이터, 임팩트 중 어떤 것들을 위주로 설명할지 고려하고, 감성의 방향을 섬세하게 조율합니다. 다만, 감정을 수치로 환산시켜야 할때 스트레스가 생기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숫자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감은 마음을 열고, 데이터는 마음을 움직여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배우며 감성과 현실사이의 균형을 서서히 익혀가고 있습니다.

P – 유연하고 즉흥적이라 변화가 많은 현장에 유용한

비영리 조직은 예측치 못한 변화가 정말 자주 일어납니다. 일정, 예산, 인력…. 계획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도 하죠. 이런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 하며 자연스럽게 흐름을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상황을 흘려보내다보면, 결국 방법과 방향을 찾게되는 경험을 해봤습니다. 이런 태도는 모금 현장에서 작은 생존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즉흥적이고 혼자 해결하려다 감정에너지가 빨리 소진되거나 지칠 때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묵묵히 중심을 잡아주고 방향을 다듬어준 든든한 동료들 덕분에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ISFP의 모금현장 미션 수행 중

ISFP의 모금현장 미션 – 기부처 대표님 앞에서 떨지 않고 프리젠테이션 하기. 하지만 머리카락까지 떨린다

T, J, E 동료들 덕분에

제가 감성의 물결이라면, T와 J 성향의 동료들은 단단한 방파제 처럼 함께 해주었습니다. 모금은 감성, 논리, 유연함과 체계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이를 실제로 경험하게 해준 건 동료들이었습니다. 판단력이 빠른 T성향의 동료들은 늘 한 발치 떨어져 사안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마음이 앞서 헤매일 때마다 그들은 논리와 통찰로 제가 감정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추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계획형인 J들은 흔들리는 일정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업무 범위가 넓고 세분화 되어 있어 일정이 촉박하게 움직이는 사안들이 많은데, 일의 흐름을 정리하고 구조화함으로써 일의 완성도를 높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외향적인 E동료들! 낯선 자리에서도 분위기를 밝고 부드럽게 끌어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다소 긴장되는 만남들도 E와 함께라면 훨씬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경우도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ISFP로 인해 심장 두근거렸을 T, J, E 동료들 이 자리를 빌어 사과 드립니다. 더 분발하겠습니다.)

ISFP의 지속가능한 일을 위하여

오늘 들려드린 이야기는 ISFP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셨을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어떤 업무 현장에 있든지 감성으로 다가가되 데이터로 증명하고, 조직이 창출한 임팩트에 이해관계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마음의 속도와 조직의 속도를 맞출 수 있도록 무던히 노력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입니다. 감성과 시스템의 균형을 찾아야 지속가능할 테니까요. 제가 이 일을 꽤 오랜 시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저의 강점보다 서로의 다름을 다정하게 보듬어준 동료들 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일이라는건 한 사람이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보완해가는 사람들이 함께 할 때 비로소 마음이 이어지며 가능할 테니까요. 그래서 현재시간은 저 혼자 뚜벅뚜벅 걸어온 시간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들의 동료들과 눈비 맞으며 함께 걸어온 시간이라 더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다정하고 행복한 나의 동료들! 고맙습니다.

댓글 정책보기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