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재단은 2019년부터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와 협력하여 아동·청소년의 문화 향유권 확대를 위해 ‘문화와 룰루라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문화와 룰루라라’를 함께 하고 있는 도담성남동지역아동센터, 손나경 사회복지사를 통해 아동청소년의 도전과 성장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매주 시인이 되는 아이들, 어떻게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있을까?
한적한 골목길에 자리 잡은 아담한 건물. 도담성남동지역아동센터에서는 월요일마다 초등학교 3~4학년 아동들의 동시 수업이 열린다. 골목에서 마주친 들꽃 한 송이, 사랑하는 엄마의 뒷모습, 집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 동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아동들은 매주 재미난 주제에 맞춰 시를 짓는다.
아동들에겐 너무나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시를 잘 아는 전문적 강사의 지도가 필요했다. 다행히 지난 2022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전국아동지역센터협의회가 함께 하는 ‘문화와 룰루라라’ 사업의 지원을 받아서 강사료 부담을 덜었다. 달라진 건 비용 말고도 또 있다. 자기주도성을 강조하는 ‘문화와 룰루라라’의 사업 방향은 아동들은 물론 센터에게도 도전이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멘토링과 교육을 받다 보니 센터 담당자의 역량도 함께 성장했다. 무엇보다 아동들의 마음이 쑥쑥 자랐다.
시인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매주 시인이 되는 아동들은 어떻게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있을까? 어떤 마음과 생각을 시에 담아내고 있을까? 시와 함께 얼마나 성장하고 있을까? 도담성남동지역아동센터의 손나경 사회복지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손나경 사회복지사
Q1. 사진과 동시 쓰기를 접목하셨더라고요. 어떻게 진행하나요?
수업은 외부 강사로 시 선생님이 오셔서 진행하는데요. 일단 주제에 따라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을 때 감정이 어땠어?” 이런 식으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요. 그걸 글감으로 삼아서 시를 쓰는 거죠. 이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사진 잘 찍는 방법도 가르쳐줬어요. 아이들이 사진을 잘 찍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찍어온 사진들이 너무 예뻐요. 원래는 아이들의 휴대폰 사진첩을 보면 게임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 정말 많았어요. (웃음) 그런데 동시 수업을 하면서 점점 사진이 다양해지고 있답니다.
그렇게 만든 시로는 한 달에 한 번 동영상을 만들어요. 옛날에 시와 그림을 함께 엮어 시화전을 했잖아요. 이제는 그림 대신 사진을 넣고 영상을 제작하는 거죠. 아이들이 정말 공을 들여서 영상을 만들어요. 배경음악 하나도 신중하게 고르고요. 시 자막이 빙글빙글 돌아가게 효과를 넣기도 하죠. 감상회를 하면 다른 아이들의 작품을 보고는 “나도 저렇게 만들고 싶다”면서 다들 좋아해요.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시를 모아서 매년 전시회도 하고 시집도 냅니다.
Q2. 주로 어떤 주제가 나오나요?
제일 쉬운 건 ‘꽃’이고요. 다양하게 주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집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도 주제로 나왔는데, 보통은 휴대폰이더라고요. (웃음) 다음으로는 인형이 많고요. 한 번은 트랜드에 맞춰 ‘네컷’ 사진도 시도했어요. 같은 피사체를 멀리서도 찍고 가까이서도 찍는 식으로요. ‘동물의 시선’이라는 주제도 있었네요. 동물이 볼 수 있는 색깔 범위에 맞춰서 흑백으로 찍거나 아예 더 알록달록하게 사진을 찍기도 하고요. 개나 고양이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찍기도 해요. 한 아이는 고양이처럼 차 밑에 들어가서 찍더라고요. 전 이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Q3. 듣기만 해도 귀엽네요. 수업 분위기나 참여아동의 반응은 좀 어떤가요?
시를 쓰는 수업이지만 조용하게 글에 집중하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조용’이 안 돼요. (웃음) 그냥 시만 쓰자고 하면 아마 수업이 더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다소 자유분방하게 수업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 따라서는 뭘 쓸지 유난히 오래 고민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고, 또 평소에는 잘 쓰는데 종종 시가 잘 안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렇다고 재촉하지는 않고 ‘신중하게 생각하나 보다’ 그러고 맙니다.
아이들은 동시 수업이 정말 좋다고, 월요일이 제일 재미있다고들 해요. 어떤 아이는 자기가 쓴 시를 좋아해서 줄줄 외울 정도예요. 심지어 더는 수업 대상이 아닌 5학년 아이가 “나도 시를 썼는데 시집에 넣어줄 수 있냐”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도 당연히 좋아졌죠. 어떤 아이는 매주 시를 거의 완성하지 못하고 글도 정말 서툴렀거든요. 그런데도 꾸준히 수업에 참여하더니 다음 해에는 글이 조금 늘더라고요. 시 감상회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자기 생각을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기회이기도 하고, 또 서로에게 귀 기울이면서 이해하는 기회도 돼요. 평소에 말이 너무 없어서 조금 걱정스러운 아이가 있었는데, 작품을 발표하면서 조금씩 말수가 늘고 활발해졌어요. 그런 아이들이 있으니까 저도 보람차게 프로그램을 이어나가는 것 같아요.
Q4. 기억에 남는 작품도 한번 소개해주세요.
가족에 대해 사진을 찍고 시도 쓴 적이 있어요. 주로 엄마에 관한 내용이 많았는데, “호랑이라고 쓰고 엄마라고 읽는다”는 시가 나오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하나도 무서운 분이 아닌데. (웃음) 또 다른 아이는 엄마가 한 말을 시로 옮기면서 느낌표를 그렇게 많이 붙여요. 엄마의 모든 말에 느낌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나 봐요. 그리고 어떤 아이는 엄마가 많이 아프셨대요. 설거지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은 우리 엄마”라고 시를 썼어요. 활발하고 통통 튀는 아이가 쓴 시라서 더 기억에 남네요.

아동이 쓴 시의 한 구절
Q5. 매년 아이들이 쓴 시로 책도 내고, 지역 내에서 성과공유회도 하신다면서요. 참 뿌듯하시겠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참 어려워요. 저는 이 작업이 되게 떨리더라고요. 전시회는 장소 선정부터가 참 어려워요. 매년 도서관에서 열었는데 지난해는 그게 잘 안돼서 시청에서 행사를 했어요. 아예 더 큰 데로 간 거죠. (웃음) 사진과 시를 액자에 담아서 전시하고, 시를 쓴 아이들이 도슨트가 되어서 관람객에게 직접 설명도 해줬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힘든 작업은 시집이에요. 편집을 혼자서 다 하거든요. 아이들이 쓴 시를 하나하나 타이핑하고 사진도 함께 넣어요. 아이들이 만든 영상을 볼 수 있도록 QR도 만들고, 오탈자도 여러 번 검토해요. 그리고 아이들은 누구나 자기 작품이 많이 실리길 바라잖아요. 부모님도 ‘우리 아이 작품이 얼마나 많이 실렸나’ 유심히 보고요. 그래서 되도록 시를 골고루 담고 싶은데, 완성된 시가 얼마 없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그럴 때 참 난감하더라고요. 시 선생님은 ISBN(국제표준자료번호)을 발급받아서 우리 시집을 정식 출판물로 등록하자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어려울 것 같아요. (웃음)
Q6. ‘문화와 룰루라라’ 사업에서는 아동·청소년들의 자기주도성이 무척 중요합니다. 무척 의미 있는 사업 방향이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요.
확실히 어렵긴 해요. 결국에 어른들이 주제를 정해줄 때도 있고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어떤 걸 하고 싶냐고 꼭 물어봐요. 아이들이 “선생님, 이런 주제로 해 봐요” 그러면 반영하고요. 그리고 주제를 함께 정했더라도 어떤 아이는 그에 맞는 사진이나 시가 잘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꼭 이 주제가 아니더라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영상도 너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그렇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Q7. 아름다운재단은 남들보다 먼저, 남들에게 기준이 되는, 영향력을 만든다는 ‘마중물’의 기준을 사업 방향으로 잡고 있어요. 지난 4년간 참여한 ‘문화와 룰루라라’ 사업은 이런 기준에 부합하나요?
그럼요. 아이들에게 충분히 ‘마중물’이 되고 있죠. 저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다양한 경험이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거든요. 뭐든 시도해 봐야 늘잖아요. 때로는 칭찬도 듣고 또 때로는 실패도 겪어보면서요. ‘문화와 룰루라라’ 사업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시도할 기회, 실패가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와 룰루라라’는 세부적 진행 과정도 다른 사업과는 좀 달라요. 어떤 사업들은 예결산이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거든요. ‘문화와 룰루라라’ 사업은 그런 부담이 적어요. “궁금한 점은 언제든 전화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게다가 간식비나 교통비처럼 세세한 부분도 꼼꼼히 지원해주시니까 편하게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죠. 그리고 센터 담당자들을 위한 교육이나 멘토링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이게 단지 업무로만 느껴지면 힘들 수도 있는데, 들으면 ‘와 이거 정말 좋다’ 싶어요. 덕분에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저도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시집도 많이 읽어보고, 사진이나 영상에 대해서도 배우고요. 영상은 집에 가서 우리 애한테 물어보기도 했어요. (웃음)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저 역시 변화하는 것 같아요. 센터의 동료들이 저를 많이 부러워한답니다.

손나경 사회복지사
Q8.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업의 주인공인 아동청소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으로 인터뷰 마무리할게요.
초등학생 시절에 우리 센터를 다니던 중학생 아이를 최근에 만났는데요. 공부는 재미없는데 센터 활동은 참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동영상 촬영이 좋았던지 나중에 직업으로 피디도 해보고 싶대요. 그게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곳의 경험이 인생에서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와 룰루라라’ 사업과 함께하는 시간은 어떻게 보면 인생의 1/10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지금의 경험이 두고두고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글 | 박효원
사진 | 김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