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배우는’ 아동·청소년에서 ‘만드는’ 주인공으로

전략실 사회변화팀ㅣ김예주 매니저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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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년, 룰루라라 즐기면서 잘 자랐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계절이다. 이맘때 비영리단체들은 1년간의 지원사업을 정리하는 결과공유회 행사로 한창 바쁘다. 결과공유회는 사업에 참여한 당사자들과 기관·단체 담당자들이 함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서로의 성장을 축하하는 자리다. 당연히 모든 결과공유회가 중요하지만, 전국 지역아동센터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문화와 룰루라라’ 사업의 결과공유회는 그중에서도 좀 특별한 자리다.

영상으로 만나는 지역사회 나눔 공연 현장
영상으로 만나는 지역사회 나눔 공연 현장

‘문화와 룰루라라’는 ‘아동·청소년의 문화향유권 확대를 통한 문화 불평등 해소’를 목적으로 지난 2019년 시작된 사업이다. 매년 전국 지역아동센터 약 30곳을 지원하는데, 각 센터는 이를 통해 문학·미술·음악·놀이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 눈에 띄는 차별성은 아동·청소년의 자기주도성을 최대한 살려 활동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도록 하는 점이다. 이와 함께 각 지역사회 안에서 공연, 전시, 콘텐츠 제공 등으로 활동 결과를 공유하는 것도 특징이다. 덕분에 활동의 범위는 센터 바깥으로 넓어지고, 아동·청소년의 성취감은 그만큼 더 커진다.

이러한 취지를 살리기 위해 이 사업은 결과공유회도 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한다. 성과 수치나 사례를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청소년의 문화활동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행사가 열리는 장소도 강당이 아니라 전문 공연장이다. ‘문화와 룰루라라’ 사업의 가장 뜻깊은 성과는 아동·청소년들이 지난 1년간 전국에서 펼친 문화예술활동일 테니, 이를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만큼 좋은 결과공유회가 없다.

춤, 연극, 노래, 연주, 시낭송까지… 무대는 들썩

행사를 앞두고 들뜬 모습은 여느 송년 문화공연과 다를 바 없다. 저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약 250명이 한자리에 모인 공연장은 웅성웅성 들썩인다. 친구들과 멀리 나들이를 나온 아동·청소년들은 들뜬 목소리로 재잘재잘 수다를 멈추지 못한다. 센터별로 같은 옷을 입거나 손수건·응원봉 등의 소품을 맞춰서 팀워크를 자랑하는 곳들도 많았다.

결과공유회 전시존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결과공유회 전시존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무대에서는 2시간 가까이 공연이 이어졌다. 이날을 위해 오래 실력을 갈고닦았을 아동·청소년들은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실수 없이 공연을 이어나갔다. 관객의 반응도 뜨거웠다. 공연 내내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나이가 어린 아동 관객은 장시간 공연에 집중력이 떨어질 법도 한데, 휴대폰을 보는 등의 딴짓을 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너의 꿈을 응원해” 등의 문구가 적힌 응원 피켓과 플래카드로 아동들을 격려하는 센터 담당자들도 있었다.

춤과 연극, 노래, 악기 연주, 시낭송 등 공연 장르도 다양했다. 영재지역아동센터는 드론댄스를 선보였다. 신나는 노래에 맞춰 위아래로 날거나 회전하는 등 현란하게 춤추는 드론의 모습에 객석에서는 연이어 탄성이 터졌다. 서창(양산)지역아동센터는 여러 K-POP 음악에 맞춰 춤을 췄는데, 아이돌 못지않게 근사한 춤선과 멋진 칼군무를 보니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을지 알 것 같았다.

시립도담성남동지역아동센터와 늘푸른(충주)지역아동센터는 시낭송에 도전했다. 가족과 놀러 다녀온 하루, 감자를 보고 떠올린 내 얼굴의 모양, 하늘만 보고도 내일 날씨를 훤히 아는 할아버지. 일상의 모습이 예쁜 시에 가득 담겼다. 시가 울려 퍼지는 동안 무대 위 화면에서는 ‘문화와 룰루라라’를 통해 지은 동시들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삐뚤빼뚤한 서툰 글씨지만, 시에 담긴 마음은 더 진하게 느껴졌다.

늘푸른지역아동센터의 그림자연극 공연 장면
늘푸른지역아동센터의 그림자연극 공연 장면

늘푸른교실지역아동센터는 ‘저리 가, 알프레드’라는 동화를 그림자극으로 만들었다. 각색과 시나리오는 물론 인형과 소품 하나하나까지 모두 6개월 동안 공을 들여 직접 만들어냈다. 인형 조정과 대사 연기도 당연히 아동·청소년들이 직접 맡았다. 꽤 자연스러운 연기부터 책을 읽는 것처럼 딱딱한 연기, 이주배경아동의 다소 어색한 한국어 연기까지, 연기 톤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래서 더 재미난 연극이었다. 남들과 좀 다르게 생긴 알프레드가 새 친구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따뜻한 대화가 이어져 집이 따뜻해졌네요”라는 마지막 대사로 공연장도 함께 따뜻해졌다.

그림, 시화, 캘리그래피, 도기, 뜨개질… 전시도 풍성

은성지역아동센터는 무대에 올라 ‘나만의 옷 만들기’ 활동 과정을 설명했다. 이 센터에서는 “예술과 과학을 결합해보자”라며 의기투합해 열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티셔츠를 만들었다. 일단 적양배추 끓인 물에 베이킹소다를 넣어 색이 바뀌는 과정을 관찰하는 실험을 통해 원리를 배웠다. 그리고는 옷 제작에 나섰는데, 특수 펜으로 그린 도안은 물론 사이즈 측정, 옷감 재단과 재봉까지 모두 아동·청소년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직접 만든 티셔츠를 입고 패션쇼도 열어 런웨이를 걸었다.

뜻깊은 공연에 신나는 연주와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위더스틴즈지역아동센터는 지난 3년간 ‘내 마음의 노래’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자기 생각과 이야기를 담아 노래를 만드는 활동이다. 아동·청소년들은 이날 무대에서도 그렇게 만든 노래를 함께 불렀다. “아주 작지만 빛나는 게 있었어. 그게 내 꿈이었지.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지치고 힘들어도 꿈을 믿자. 오늘도 내일도 우리의 꿈을 향해” 노래 가사는 소박하고 따뜻했다.

구립가재울지역아동센터의 난타 공연
구립가재울지역아동센터의 난타 공연

높은뜻마중학교지역아동센터와 구립가재울지역아동센터는 악기 연주를 보여주었다. 높은뜻마중학교지역아동센터는 ‘마중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무대 영상으로 드럼과 베이스, 기타, 건반이 어우러진 멋진 연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밴드부원들은 “친구들과 합주하고 싶어서 활동에 참여했다”면서, 센터 담당자와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구립가재울아동센터는 난타 공연으로 웅장하게 북소리를 울리면서 무대의 마지막 순서를 장식했다. 아리랑·애국가 연주에서는 태극기를 부착한 북채를 휘날리면서 화려한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은평구 난타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한 실력자들다웠다.

그림과 글로 담아낸 시화 작품
그림과 글로 담아낸 시화 작품

지난 1년의 문화예술활동 결과는 전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비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꽃과 나무, 동물, 각종 풍경의 그림이 알록달록하게 펼쳐졌다. 시화 작품에는 직접 쓴 시에 근사한 그림이 곁들여졌다. 일상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한켠을 장식했다. 공예 작품도 많았다. 멋진 캘리그래피가 들어간 각종 소품. 도기로 만든 그릇과 오밀조밀 인형들, 한코 한코 뜨개질로 만든 목도리까지 모두 ‘문화와 룰루라라’를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아기자기한 참여 이벤트도 펼쳐졌다. 가상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는 ‘가상사진관’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아동·청소년의 발길이 이어졌다. 소망을 적어 걸 수 있는 ‘소망나무’에는 ‘우리 가족 건강’, ‘모두 행복한 세상’, ‘로또 1등’, ‘연애하게 해주세요’ 등등 저마다의 마음이 주렁주렁 달렸다. 이 가운데는 ‘우리 센터 여행 한 번 더 가자’, ‘앞으로도 센터에서 재미있는 것 하기’와 같이 지역아동센터와 관련된 소원도 눈에 띄었다. ‘문화와 룰루라라’를 통해 아동·청소년들이 얼마나 즐겁게 지냈을지, 또 얼마나 더 친해졌을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꿈이 하나둘 모여, 어느새 풍성해진 소망나무
꿈이 하나둘 모여, 어느새 풍성해진 소망나무

7년의 여정, 이제는 마침표… “아름다운 기억 잊지 말고 도전할 용기 갖기를”

이번 ‘문화와 룰루라라’ 결과공유회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지난 2019년부터 이어진 사업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모두 끝이 난다. 지난 7년간 지역아동센터 235곳에서 3,713명의 아동·청소년이 ‘문화와 룰루라라’와 함께했다. 놀이체험(80개), 문학(30개), 미술(75개), 음악(50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펼쳐졌다.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 ‘문화와 룰루라라’
서로를 응원하는 마음, ‘문화와 룰루라라’

그간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사업이 시작되고 바로 다음 해 코로나19가 밀어닥쳤다. 그럼에도 사업은 멈추지 않았다. 비대면 프로그램 ‘랜선만남’으로 여러 아동과 함께 만나면서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아동의 자기주도성을 강조하고 지역사회 연계를 꾀한 사업의 방식 역시 힘든 도전이었다. 이 어려운 미션을 각 지역아동센터가 잘 해낼 수 있도록 전문가 멘토링, 담당자 교육 등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다양한 문화예술활동 사례를 함께 나누는 결과공유회 역시 각 센터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마련되었다.

사업이 진행된 시간이 짧지 않은지라 아름다운재단과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에는 ‘문화와 룰루라라’와 인연을 맺은 담당자들이 참 많다. 이날 행사 스태프로 참여한 담당자들은 마지막 결과공유회를 지켜보면서 소회가 남달랐다.

7년 전 ‘문화와 룰루라라’의 첫 담당자로 사업의 문을 열었던 아름다운재단 임주현 매니저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뒤를 이어 사업을 맡았던 전서영 매니저는 “전문적이고 다양한 자원을 연계하기 위해서 센터 담당자를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과 아동·청소년 대상 ‘랜선만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서 “현장의 어려움을 반영한 기획이 아동·청소년들의 경험으로 실현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역시 함께했던 아동·청소년들의 모습이다. 김예주 매니저는 “‘문화와 룰루라라’를 떠올리면서 ‘그때 내가 좀 멋있었지’라고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어떤 기회든 도전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유승민 간사의 바람도 비슷하다. 그는 “문화활동을 하면서 또래 친구들과 협업하는 법, 관계 맺는 법을 배웠길 바란다. 이렇게 함께 결과물을 만든 경험을 잊지 말고 다른 도전도 겁내지 않을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소망나무에 띄운 우리들의 꿈
소망나무에 띄운 우리들의 꿈

이날의 결과공유회를 마지막으로 ‘문화와 룰루라라’는 모두 끝이 났지만, 전국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청소년들은 앞으로도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며 친구들과 함께 어우러진 시간, 자기 생각과 감정을 문화예술로 표현하며 여러 사람과 소통했던 경험은 결코 덧없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길고 때로는 힘든 인생에서 이 아름다운 추억을 꺼내 먹으며, 다시 걸어갈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럿이 함께 행복했던 기억은 힘이 세고 오래 가는 법이니까. 

박효원
사진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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