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버티던 아픔에 ‘산재’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공익사업팀 박수진 매니저

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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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결과공유회 현장에서

12월 6일, 종로 문화공간 길담에서 <청년 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결과공유회가 열렸다. 지난 4년을 정리하고, 그 성과와 남은 과제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2022년 사업을 기획할 때만 해도 ‘왜 하필 청년 여성인가’라는 의구심 섞인 질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 박한솔 사무국장(노동건강연대)

박한솔 사무국장이 지난 4년 간 만났던 지원자들의 이야기와 사업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박한솔 사무국장

박한솔 사무국장은 사업의 출발부터 짚었다. 출발은 2019년 시작한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의 통계였다. 176명의 지원 대상자 중 청년 여성 노동자는 9명에 불과했다.

청년 여성은 다치거나 아플 만큼 힘든 일을 하지 않는 걸까? 2022년 ‘청년 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은 이 의문에서 시작됐다.

‘청년 여성’이란 이름을 호명하자마자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 응답하기 시작했다. 지난 4년간 1,042명의 청년 여성이 이 사업에 신청했다. 일하다 아픈 청년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제도가 그들의 삶에 닿지 않았던 것이다.

왼쪽부터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공동대표, 김명희 자문위원장, 변수지, 안현경 자문위원이 지원사업의 후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공동대표, 김명희 자문위원장, 변수지, 안현경 자문위원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 청년 여성 노동자들

신청자들의 통계는 청년 여성 노동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원자 10명 중 4명은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했고, 절반은 200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였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상 연차유급휴가,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로 10명 중 3명이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했다. 쉬지 못한 이유는 ‘눈치가 보여서'(45%), ‘병가·휴직 제도가 없어서'(38%)였다.

산재보험 신청률은 3%에 불과했다. 대부분 건강보험으로 치료비를 처리했다. 왜 이들은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았을까? ‘산재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몰라서’, ‘산재보험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해고나 불이익이 우려되어서’가 주된 이유였다.

건강 문제는 일자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87%가 ‘건강 문제가 일자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고, 절반이 아프고 나서 직업을 바꾸거나 그만둬야 했다.

1인당 100만 원. 지원금이 크지는 않았지만, 지원받은 220명의 변화는 분명했다. 86%가 의료기관을 찾기 시작했고. 46%가 건강 회복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지원금은 대부분 치료비와 식비, 주거비 같은 생활비에 사용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성과도 있었다. 지원 대상자들은 ‘나의 경험이 외면되지 않고 존중받았다’, ‘아픈 게 내 잘못이 아니라 산재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로였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경제적 지원을 넘어 그동안 가려져 있던 청년 여성의 노동과 아픔에 정당한 이름을 부여하는 과정이었다.

지원사업결과보고서 표지
청년여성산재회복지원사업 결과보고서

청년 여성이 편한 일을 한다는 편견

“청년 여성이 편한 일, 쉬운 일을 한다는 것은 편견입니다.” – 김명희 자문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김명희 자문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은 연구 인터뷰 사례를 제시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매일 70여 개의 무거운 아이스크림 통을 옮거나 10~20kg의 생지를 반복적으로 들어 올렸다. 주방 작업대가 남성 키에 맞춰져 있어 여성들은 더 쉽게 다쳤다.

청소 용액에 노출되어 피부가 타는 듯한 통증을 느껴도 습윤 밴드를 붙이는 것이 전부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의 부상이 개인의 부주의로만 취급된다는 점이다, “여성은 비교적 안전한 일터에서 일한다”라는 젠더 편견은 안전 조치를 불필요하다고 여기게 만들고, 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김명희 자문위원장이 청년여성의일, 삶, 그리고 건강 연구보고 발표를 하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자문위원장이자, 국립중앙의료원 데이터센터장인 김명희 위원이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청년 여성들이 겪는 아픔을 개인의 불운이 아닌 ‘젠더’라는 렌즈를 통해 투영된 사회 구조적 결함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가 말했듯이 “개인의 고통(personal troubles)을 공적 의제(public issues)로 전환”할 때 해결의 실마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청년 여성 노동자에게 좋은 사회는 결국 모두에게 좋은 사회”라며 함께 연대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나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이어지는 대담 시간에 전수경 대표(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노동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데도, 왜 청년 여성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까?” 이에 안현경 노무사(자문 및 심사)가 답했다.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공동대표가 사업 후기를 나누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공동대표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1980~1990년대 제조업과 건설업이 활발하던 시절의 산업 환경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청년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서비스업 등의 새로운 노동 환경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거죠.” – 안현경 노무사(자문 및 심사)

변수지 노무사(자문 및 심사)는 심리적 장벽 역시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청년 여성의 상담이 적습니다. 정규직 일자리가 아닌 내가 산재에 접근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고, 신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 변수지 노무사(자문 및 심사)

대담이 끝날 즈음, 한 참석자가 질문을 던졌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어떻게 해야 세상이 나아질까요?” 이에 김 위원장은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산업안전보건법의 한 줄 한 줄은 모두 누군가의 목숨값으로 바꿔낸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아요.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목소리 내고 연대할 때 변화는 시작됩니다.” – 김명희 자문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4년간 천여 명이 신청했고, 그중 220명에게 회복 지원금을 지원했다. 39명의 청년 여성 노동자를 인터뷰했고, 이를 바탕으로 청년 여성의 노동과 건강 이야기를 사회에 발신했다. 그러나 이 숫자와 2시간의 행사로 담을 수 없는 4년의 이야기가 아직 많다. 아파도 쉴 수 없는 환경과 여전히 높은 산재보험 신청의 장벽, 청년 여성의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등 과제도 분명하다. 전수경 대표는 결과공유회를 마치며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노동 문제에는 젠더 문제가 분명히 있습니다. 젠더에 관해 이야기해야 보이지 않는 직업병도 드러납니다. 지난겨울, 광장에 나왔던 수많은 청년 여성들을 사회가 더 많이 떠올려야 합니다. 거기에 당연히 노동 문제가 함께 이야기되어야 하고요.” – 전수경 대표(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2025청년여선산재회복지원사업 결과공유회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2025청년여선산재회복지원사업 결과공유회를 마무리 하며
 우민정 작가
사진 장은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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