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 결과보고서 발간(2022~2025)
아름다운재단과 노동건강연대는 지난 4년 간 일하다 다쳐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청년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경제적 지원과 회복 프로그램을 지원해왔습니다. 사업을 진행하며 청년여성의 일하는 환경과 건강의 관계, 특히 서비스업과 사무직 등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청년여성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 환경과 산재 보험의 사각지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보고서를 통해 저임금, 고용 불안정,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등 이들이 마주한 구조적 폭력과 건강권 침해 사례를 심층 인터뷰와 통계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지원을 받은 노동자들은 이번 사업을 통해 자신의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책임임을 깨닫고 정서적 위로와 재기의 발판을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본 보고서가 청년여성의 건강과 노동문제에 대해 한층 더 깊은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
‘청년여성’과 ‘노동’은 좀처럼 잘 붙지 않는 단어이다. 일하다가 건강이 상하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철도 씹어먹을 젊은 나이니까 아플 리 없고, 쉬운 일만 하는 여성이니까 다칠 리 없다고 여긴다. 노동건강연대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통해 2019~2021년에 진행한 ‘산재노동자 생계비 지원사업’ 지원 대상자 총 176명 중 여성 노동자는 22.2%(39명), 청년여성 노동자는 5.0%(9명)에 불과했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청년여성은 건강 부담 없는 일만 하기 때문일까?

어떤 일들은 일부러 찾아내서 드러내야만 보이기도 한다. 어려움을 겪는 집단의 사회적 발언권이 충분하지 않거나, 해당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여성의 노동과 건강 문제가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2013년에 EU 산업안전보건기구(EU-OSHA)는 ‘주로 여성이 수행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고 안전한 것으로 간주하는 성별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산안정책과 관련 연구의 관심 대상에서 벗어남에 따라 여성의 일은 위험하지 않다는 근거 없는 인식이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청년여성의 일에서 비롯된 건강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2022년에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청년여성 산재’라고 이름하니 신청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4년간 1천 명의 청년여성이 지원사업의 문을 두드렸다. 이전 지원사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규모였다.
청년여성은 몸 쓰는 일을 안 한다는 거짓말
1,042명 중 근골격계 질환 40.4%
근골격계 질환이란 무리하게 힘을 쓰거나 반복 동작 때문에 허리·목·어깨·팔 등의 근육이나 관절 등에 손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디스크부터 어깨·팔·무릎 인대나 신경에 생기는 염증까지 다양하다. 쉽게 말해 몸을 무리해서 많이 쓰면 발생한다.
지원사업에 신청한 1,042명 중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한 청년여성은 40.4%이다. 빵집에서 일하며 반죽을 치대고 빠르게 빵을 포장하느라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기고, 편의점 물류를 정리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자주 야근하며 영상을 편집하던 중 목 디스크가 터졌고, 화보 촬영에 필요한 옷과 장신구가 든 캐리어를 옮기다가 무릎을 다쳤다. 큰 카페를 혼자서 관리하느라 쉬는 시간 없이 서 있는 바람에 허리 디스크가 악화하는가 하면, 물류센터에서 몇만 보씩 걸으며 일한 탓에 허리 통증과 족저근막염을 달고 살았다.

사업장은 작고, 임금은 적다
아프면 일자리를 잃는 불안정 노동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취약한 상황에 놓이기 쉽다. 조직 문화가 사장을 비롯한 소수에 의해 좌우되거나, 의사결정이나 업무 관련 시스템이 미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법조차 온전하게 적용받지 못한다. 신청자 중 27.5%(251명)는 건강 문제가 생긴 당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5~9명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한 사람은 16.2%(169명)로,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청년여성 노동자가 43.7%에 달했다. 임금 측면에서 보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월 임금이 200만 원 미만인 청년여성 노동자가 50.0%(521명), 200만 원 이상 250만 원 미만인 경우가 32.1%(335명)로, 신청자 가운데 82.1%(856명)가 25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았다. 지원사업에서 만난 청년여성 노동자들은 작은 사업장에서 적은 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이들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은 ‘건강 문제 발생 이후 고용 변화’이다. 전체 신청자의 ⅓가량인 33.2%(346명)가 건강 문제가 생긴 이후 무직 상태가 되었다. 정규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규직으로 일하던 414명의 청년여성 노동자 중 37.6%(156명)는 건강 문제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스스로 그만두어야 했다.
회복하지 못한 채 일하다 또다시 다치는 악순환
지원 대상자의 46.8%, ‘건강이 악화하거나 새로운 건강 문제가 생겼다’

청년여성이 경험하는 대다수 산업재해는 절단 같은 영구적인 손상이 아니기에 초기에 충분한 휴식과 치료가 이루어지면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도 청년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아파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지원 대상자 212명 중 32.1%(68명)가 아플 때 한 번도 쉬어보지 못했고, 쉬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조차 개인 연차를 소진(37.5%)하거나 무급 병가(34.7%)를 사용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설문에 응답한 지원 대상자 173명 중 46.8%(81명)는 회복지원을 받은 이후 짧게는 반년, 길게는 3년 사이에 기존 건강 문제가 악화하거나 새로운 사고 또는 질병을 경험했다.

이들이 아파도 쉬지 못하는 이유는 회사 바깥에도 있다. 지원 대상자 220명 가운데 27.7%(61명)는 부양 부담을 지고 있었다. 가족의 생계비 전체 또는 일부를 부담하거나, 장애가 있거나 간병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았고, 본인의 건강 상태가 좋든 나쁘든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아픈 조부모를 돌보느라 야간 단기 일자리만 전전하거나, 아직 미성년자인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아픈 걸 참고 출근을 이어갔다.
정신건강을 해치는 성차별적인 노동환경
한국 사회에서 정신건강 문제의 심각성은 노동과 괴리된 맥락에서 논의되곤 한다. 그러나 지원사업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청년여성의 정신건강에는 노동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 신청서에 정신건강 문제를 최소 1개 이상 적은 사람은 전체 신청자 중 39.6%(413명)이다. 청년여성들은 고객 대면 업무를 하면서 발생하는 폭언·폭행뿐만 아니라, 직장 내 위계적이고 성차별적인 조직 문화 자체로 고통받았다. 업무 지시를 빙자한 언어폭력, 아랫사람에게 전가되는 허드렛일, 외모나 학력을 핑계 삼은 괴롭힘, ‘여자는 기를 죽여놔야 한다’라고 말해도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 사내 분위기, 여자랑은 같이 일 못한다는 상사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직무가 바뀐 경험 등 청년여성들이 지목한 정신건강 악화 요인은 모두 노동 과정에서 발생했다.
위에서 나열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조직은 청년여성 노동자들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결과물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럴수록 청년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만큼’ 혹은 ‘남성보다 더’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느라 본연의 업무 외의 일까지 해내느라 추가적인 건강 부담을 지게 되었다. 청년여성이 노동자로서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환경 자체가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셈이다.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 이제는 변화를 만들어야 할 때
그동안 청년여성을 포함한 여성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잘 이야기되지 않았고, 화두에 오르더라도 직장 내 성폭력이나 재생산 측면에서 다루어졌다.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은 이러한 경향에서 나아가고자 ‘청년여성의 노동’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지원 및 연구를 진행했다. 청년여성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일으키는 노동환경에 주목했고, 청년여성의 취약성을 구조적 취약성, 젠더 기반 취약성, 관계적 취약성으로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2022년부터 4년 동안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확인한 사실은 분명하다. 일하는 청년여성이 다양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으나, 사회문화적 분위기 등 때문에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적절한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탓에, 일하다가 생긴 질병·부상이 청년여성의 삶과 향후 노동 활동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고 있다. 더 많은 사례 발굴과 연구가 필요하다. 청년여성의 노동과 건강을 연결하는 시도에 이 보고서가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
글 박한솔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