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종이도, 쓰레기도 아니다?
한파에도, 폭염에도 6년 간 성실하게 줍깅을 해온 사람들이 있다. 매주 월수금, 서울 경복궁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나는 서촌 지구봉사단이다. 하루를 정해 나와 서촌 일대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한 가지를 수집한다. 다 쓰고 남은 종이팩이다.
종이팩은 보통 종이로 생각하거나, 쓰레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둘 다 아니다. 여러 재질이 혼합되어 있어 종이가 아니며, 자원이 된다는 점에서 쓰레기가 아니다. 그래서 별도로 분리해 내놓아야 한다. 분리공정을 거치면 휴지나 종이가 되고, 나무를 보호할 수 있다. 탄소 흡수원인 나무도 지키고, 새로운 펄프 생산에 드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문제는 과정이 굉장히 번거롭다는 것이다. 종이팩 전용 수거함이 없는 지역의 경우 주민센터나 생협 등으로 가져다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제도적으로 ‘마가 뜨는 기간’에 활약하며 변화를 앞당기는 건 공익단체들이다.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이하 지소행)은 서촌 지구봉사단을 꾸려 카페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종이팩을 가장 많이 내놓는 곳이 바로 카페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남은 종이팩을 내놓으면, 지구봉사단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직접 수거하고, 수거한 종이팩은 제지회사로 보내 재생휴지 등으로 재탄생시키는 방식이다.
사실 활동을 모를 때도 방문한 카페에서 이런 표식을 발견하고 찍어두었는데 운명이었나보다.

직접 참여해봤다, 서촌 지구봉사단!
어떻게 종이팩을 수거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1월 12일 월요일 10시에 직접 달려가봤다. 영하 5도의 추위에도 시간을 내어 나와준 시민들이 있었다.
다들 같은 가방을 꺼냈다. 하얀색 수집 가방이다. 호기롭게 장갑없이 갔는데, 시민 한 분이 흔쾌히 새 장갑을 뜯어 빌려주셨다. 덕분에 정말 따뜻했다.

다같이 지소행 가방을 들고 걸어가본다. 문을 연 카페에는 다 같이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한 사람만 들어가서 종이팩을 받아온다.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들어가 받아오는 배려였다.

가게 사장님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주말 동안 쌓인 팩을 내어줬다. 부피를 줄이기 위해 종이팩 하나에 6~7개를 담아둔 상태였다. 섬세함이 느껴졌다.

들고 나오면 다같이 개수를 세어서 차곡차곡 넣는다. 가방 안에는 혹여나 종이팩에서 액체가 새어나올 수 있어 비닐이 깔려있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깨끗했다.

반가운 안부 그리고 올해의 임팩트
아침 10시라 오픈하지 않은 카페들은 미리 종이팩을 담아 바깥에 두었다. 수집가방 겉면에 쓰레기가 아니라고 세심하게 기재해두기도 했다.

카페를 주 3회 방문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장님들과도 인연이 생겼다. 요즘 장사는 어떤지 묻기도 하고, 추위를 걱정해주기도 한다. 오늘은 2025년 한 해 임팩트를 전달하는 날이다. 지소행 담당 매니저가 정리된 파일을 건네고, 참여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길을 지나다가 강풍에 쓸려온 듯한 쓰레기도 발견했다. 종이팩이 버려져있길래 그 또한 바로 수집해 넣었다.

다정한 마음이 만들어내고 있는 변화
카페를 모두 돌고 나니 종이팩 168개가 모였다. 이렇게 모은 종이팩을 들고 근처 거점공간으로 향했다. 월수금 동안 모은 종이팩을 여기에 둘 수 있도록 배려해준 곳이다. 어느정도 종이팩이 쌓이면 지소행에서 재활용처로 보내고, 재활용처가 별도 공정을 거친 이후 제지회사로 보내면 재생휴지 등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종이팩을 차곡차곡 모아 거점공간에 넣어두고 나니 활동이 끝났다. 1년 이상 참여한 시민들은 아래와 같이 소감을 전해오기도 했다.
“서촌 지구봉사단은 힘듦과 순간의 나약함을 이겨낼 수 있는 즐거움이 많은 활동입니다. 특히 카페 사장님, 함께 활동하는 봉사자의 따뜻한 마음과 정 덕분에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이었지만, 어느새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한 번의 참여보다 지속해서 꾸준히 이어가는 과정에서 의미를 느끼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종이팩을 제도적으로 수거하게 되겠지만 그 사이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건 시민의 노력이다. 사무실에서도 꾸준히 종이팩을 모아 배출하고싶어 이렇게 별도로 분리함을 설치해두었다. 어느정도 쌓이면 주민센터로 배출하려 한다. 귀중한 자원이 길 위를 헤매지 않도록, 제대로 버려보자.
2025년 서촌 지구봉사단 임팩트
🙍🏻참여 봉사자 53명(중복 참여 포함)
☕참여 카페 22곳
🧃종이팩 수거량 30,625개 (30년생 나무 20그루 보호효과)
※ 서촌 지구봉사단 전체 기간(21.06 - 25.12) 종이팩 수거량 110,477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