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성 청소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공익마케팅팀 윤이나 매니저

202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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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넷플릭스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을 보았다. 같은 반 여학생인 케이티를 살해한 13세 소년 제이미, 그리고 가족들의 심리까지 섬세하게 다룬 범죄 스릴러다. 극 중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건 디지털 성범죄다. 케이티는 나체 사진이 전교생에게 유포되는 디지털 성범죄를 당하며, 케이티는 제이미에게 사이버 불링을 행한다. 

문득 최근 몇 년 간, 우리 사회에도 충격을 안겨 준 디지털 성범죄 사건(예: N번방, 딥페이크)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남성 청소년의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하다는 언론과 뉴스가 해마다 끊이지 않는다. 자극적으로 다뤄지는 영화나 뉴스처럼, 정말 요즘 ‘남성 청소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남성 청소년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특히 성범죄의 원인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남성청(소)년 특화 성교육 연구소인 <남다른성교육연구소>의 고상균 연구소장, 김연웅 총괄사업국장, 김근우 교육지원팀장을 직접 만나 경험한 남성 청소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 ‘이것’이 없었다

A. 고상균 : 최근에 가해자 남성 청소년 교육을 다녀왔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총 6번을 만나서 가해자 교육을 진행했는데요. 같은 지역에 있는 4개 고등학교의 남학생 20명이 SNS에서 특정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한 사건이었어요. 가해자 남학생들을 만났을 때 정말 놀랐어요. 전교 1,2등도 있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예의 바른 모범생이었어요. 아이들이 이렇게 말해요. “네, 다 알아요. 범죄인 거 알아요” 그런데 피해자가 어땠을지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가해자 중 아무도 이걸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저는 아이들의 무심한 반응에 섬뜩하면서도,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생각해보면요. ‘공감’은 남성이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공감이라는 걸 거세하거나 떼어내지 않고서는 남성이라는 젠더 위계의 상위에 올라갈 수가 없다는 걸 아이들이 알고 있는 거예요. 대한민국 남성들이 왜곡된 남성성에 갇혀있는 상황 속에서 저지르는 가장 큰 범죄는 결국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A. 김연웅: 최근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 드라마가 큰 이슈가 됐었죠. 드라마 속에서 ‘인셸’이라는 용어가 나와요. 한국에서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됐지만, 영미권에서는 이미 4~5년 전부터 사회과학적인 용어로 알려져 있어요. 인셸이라는 게, 나도 실은  누구를 만나고 싶고 관계도 맺고 교감도 갖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비자발적으로 독신이 되면서 누구와도 사귀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이 과정에서 ‘나는 문제가 없지. 우리 남자들은 문제가 없어. 여자들은 잘나가는 20%의 남자만 좋아해. 우리 같은 평범한 80%한테는 관심이 없어. 우리가 못 만나는 건, 관계를 못하고 소통을 못하는 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 여자들이 이상해서 그런 거야.’ 그렇게 여성들을 비난하고 적대시하게 되죠. 

드라마 <소년의 시간>이 영국 내 붕괴된 학교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현재 한국 학교의 상황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소년의 시간>에 주인공 제이미의 아빠가 자신의 아빠에게 당했던 폭력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음에도 ‘왜 아들 제이미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하면서 우는 장면이 있어요. 저는 그 장면이 굉장히 마음 아프면서도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리적인 폭력을 대물림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아들(제이미)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이미는 아빠의 일상 속 자잘한 폭력들을 이미 너무 자주 봐 왔잖아요.

그렇다면 아빠 본인은 과연 성 평등한 주체로서 건강하게 서 있는지. 가장이라는 맨 박스, 남성이라는 맨 박스 속에 여전히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요. 대부분의 아빠이자 남성 양육자들에게는 강철 같은 의지, 단호한 결단, 확언 같은 언어 외에는 부드러운 언어가 부족해요. 왜 그럴까요?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거든요. 대화를 나누고 위로받고, 위로하고 공감해 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지금 그런 마음이 들어서 자녀에게 말을 건네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거예요.

Q. 말씀하신 대로 한국에서도 N번방,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는데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A. 고상균: 디지털 성범죄 수사가 시작됐을 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어요. 다수는 아니었죠. 그런데 성범죄물을 본 사람은 10만, 20만이 훌쩍 넘어요. 접속한 IP 숫자를 따져보면 5명 중에 1명은 봤다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가입해서 들어갔거나, 직접적인 폭력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어쩌다 우연히 봤거나 그럼에도 신고하지 않은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면, 과연 우리들 역시 디지털 성범죄라는 폭력에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A. 김연웅: 초등학교 때부터 경험한 야한 동영상과 만화, 학교와 군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던 수많은 성적 대상화, 성희롱. 이런 상황과 대화 속에 제가 잠깐 빠져 있든 함께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결코 저의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 또한 성적 대상화라는 구조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 사람 중에 한 명인 것을 인지하지 않고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을 해요.

뿌리 깊은 젠더위계 , 갑자기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Q. 세 분은 성(性)을 처음 접한 때가 언제였어요? 

A. 김연웅 : 제가 비디오 세대거든요. 어렸을 때 동네에 비디오 가게랑 만화 가게가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아빠랑 같이 가곤 했어요. 혼자서는 뭐랄까, 좀 무섭다고 해야 하나. 가게 입구에 야하거나 폭력적인 포스터가 붙어있으니까 성인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당시에 ‘이누야사’라는 만화가 있었어요. 야한 만화는 아닌데, 초등학생이 느끼기에는 다소 야하다는 장면이 있었어요. 요괴가 약간 헐벗고 있다던가.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재밌게 만화를 보다가, 그 장면이 딱 나오면 심장이 콩닥콩닥 하는 거예요. 밤에 잠도 잘 못 잤어요. 괜히 잘못을 저지른 것 같고. 혹시나 이걸 봤다는 걸 들키면 부모님에게 혼날 것 같아서 침대 밑에 만화책을 숨겨둔 기억이 나요.

A. 고상균 : 성(性)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당시에 청계천에 갔어요. 청계천에 가면 책, 잡지, 비디오 등을 도매상 아저씨한테 사는 거죠.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책을 구해왔다는 거예요. 책 제목이 ‘섹스’래요. 반 친구들이 제목을 딱 듣는 순간 ‘그거 봐도 돼..?’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 책을 볼 사람은 어디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너무 고민이 됐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친구들은 재빠르게 움직였죠. 저처럼 주저하는 애들은 용기가 없어서 못 갔어요. 그래서 나중에 갔다 온 친구들에게 어땠냐고 물어보니, 장난 아니다, 더럽다, 이상하다 등 반응이 달랐어요. 이게 성에 대한 첫 기억이에요.

Q. 남자만 모여 있는 남중, 남고에서 생활은 어땠어요?

A. 김연웅:  남자 아이들만 모여있는 집단이니,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 했죠. 그런데 섹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배운 적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위행위 관련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논리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었죠. 그때는 서로 열띠게 주장했어요. 서로 거짓말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더욱 강하게, 성적으로 뛰어난 남성이라고 과시하고 싶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얼토당토않는 주장이지만,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증명해야 했던 거예요. 자극적으로, 폭력적으로 농담을 잘 할 수록 서열과 위치가 올라가는. 이것도 결국 남성중심의 왜곡된 젠더 위계라고 할 수 있죠.

Q. 군대는 어땠나요?

A. 김근우: 저는 육군 병사로 군 복무를 했어요. 당시 저의 생존 전략이 있었어요. ‘선임들 말을 잘 듣자. 크게 물의 일으키지 말고, 반박하지 말고 맞장구 잘 쳐주자.’  당시 기억나는 것 중, 새벽에 보초를 서고 있었어요. 선임과 나란히 서 있었는데 본인이 휴가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나 어디 다녀왔다 하면서, 성매매 경험을 자랑해요. 그때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그거 불법 아닌가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거죠. 자칫 비판적으로 말했다가, 괴롭힘을 당하거나 남은 군대 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저도 어쩔 수 없이 호응을 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제 스스로 후유증이 남아요. ‘아, 이건 아닌데…’

A. 김연웅: 저는 육군 장교로 복무를 했어요. 당시에 저는 ‘페미니스트 소대장’이 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죠. 당시 우리 소대에 여성 군인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장교, 부사관, 병사들과 이야기를 자주 나눴어요. 덕분에 여성 비율이 높은 우리 소대에서는 나름의 성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어요.  두 세 달에 한 번, 미용 실습생 분들이 미용 봉사를 하러 오세요. 그러면 병사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거죠. 막내 이등병부터 부대에 가장 높은 사람까지,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봉사를 온 여성의 외모에 대해 말을 하는 거예요. 그때 숨이 턱 막혔어요. ‘그동안 이렇게 노력을 했는데… 내가 과연 뭘 바꿀 수 있긴 한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성적 대상화 하고, 성희롱적 발언도 서슴없이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상적인 풍경. 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때 무력감이 들면서 암담했죠.

우리에게 필요한건 문제를 바꿀 수 있는 ‘강인한 마음’

Q. 최근 ‘아빠들을 위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왜 ‘아빠’에 주목했나요?

A. 김연웅: 남성 청소년의 성교육에서는 아빠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같은 성별을 가진 가족이니까요. 그런데 교육 프로그램을 모집하면 엄마들만 오세요. 아빠들이 잘 안 오세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빠’를 주인공으로 해서 어떻게든 모셔와야지 작정하고 교육을 진행했어요.

남다른성교육연구소가 진행하는 교육 현장 ⓒ남다른성교육연구소

Q. 구체적으로 아빠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Q. 진행하시는 교육이 더 많은 분들에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짜 남자다움’은 뭘까요?

A. 고상균: 우리 사회는 남성에게 강인함을 요구죠. 맞아요. 강인해야 해요. 이 강인함을 다른 데 쓰지 말고 이 세상에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그때 강인함을 쓰면 좋겠어요. 우리가 성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이거 좀 아니지 않나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을 가진 남성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A. 김연웅: 저는 언제나 딱 하나예요. 다정함. 우리 사회에는 다정한 남자가 필요해요. 다정한 게 멋진 것, 진짜 남자다운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남성 청소년의 디지털 성범죄는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몇몇 가해자만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보통의 남성의 생애주기만 따라가 보아도 우리 사회에 ‘왜곡된 남성성’이 얼마나 깊고 두텁게 잠식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터부시 되었던, 사회적으로 통용되었던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디지털은 물론 여러 장르의 성범죄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남성들만’ 또는 ‘여성들만’ 사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성의 언어를 배우고, 건강한 성 감수성을 배워나가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언젠가는 나 역시 이들의 엄마이자 아빠, 가족이나 이웃이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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