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가장 대중적인 여가활동 중 하나이지만, 장애인에게는 하고 싶어도 닿지 않는 취미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카카오게임즈와 함께 ‘장애인 게임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장애인들이 문화·여가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본 사업을 통해 지체·뇌병변 장애인들은 각자의 운동능력과 환경에 맞는 기기를 지원받아 게임을 경험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지원사업 참여자 김신혜 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신혜 님은 보조기기를 만나며 멈춰 있던 일상과 취미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씨케이 님을 통해 삶 속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사고 이후 멈춰 선 플레이, 다시 이어지기까지
씨케이 님은 대학 시절부터 리듬게임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2008년 입문한 후 2012년 무렵에는 여섯 개의 키(6 Key)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상위 난도를 공략하는 수준급 플레이어였습니다.
그러나 그해 불의의 사고로 척수손상(SCI C7 ASIA A) 진단을 받으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가슴 아래로는 감각이 없고, 손가락은 일부 기능만 남아 힘이 없어요. 일반 키보드는 키압이 높아 타이핑조차 힘든 상태가 됐죠. 게임은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제약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그는 일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손가락 힘이 약해도 할 수 있는 모바일 리듬게임으로 방향을 틀어 두 개의 키만 쓰는 게임(오투잼, 사이터스, 탭소닉 등)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6key를 쓰던 시절에 비하면 만족감은 크게 달랐습니다.
“6개의 버튼으로 자유자재로 플레이하다가 2개만으로 하려니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보조기기를 알아보고 싶어도 가격이 너무 비싸고, 나한테 맞는지도 알 수가 없다보니 과감히 투자하기도 어렵더라고요.”
즐기자니 아쉽고, 포기하자니 미련이 남는 상태로 긴 시간이 흐른 끝에, 씨케이 님은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게임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알게 된 것입니다.
스트림덱, Razer 게이밍 키보드, XBOX 컨트롤러… “다시 손을 얻은 느낌”
“처음으로 지원을 받은 게 2023년이었어요. 230만 원 상당의 맞춤형 게임 보조기기를 지원해 준다는 문자를 보고, ‘정말 이렇게 해줄까?’ 싶었죠. 장애인 당사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걸 알게 된 뒤에야 믿음이 생겼고, 용기내 신청했는데 운좋게도 선정되었어요.”

씨케이 님은 약 230만 원 내외의 장비를 맞춤 지원받았습니다. 단지 기기를 보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직접 방문해 그의 잔존 운동능력과 집·생활 환경을 직접 살펴본 뒤 어떤 게임을 하고 싶은지 함께 논의하고 그 게임을 실제로 할 수 있도록 버튼과 장비를 세팅하고 사용자 훈련까지 지원했습니다.
“보조공학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집에 와 주셨어요. 제 생활환경을 보고, 어떤 기기가 필요할지 함께 고민해 주셨어요. 제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챙겨 주셔서 인상 깊었습니다.”
그 결과 작업 공간을 넓혀 주는 이동식 테이블과 거치대, 버튼을 마음대로 지정하고 불빛으로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스트림덱, 양손으로 하는 조작을 한 손으로 모아 쓸 수 있는 한 손 게이밍 키보드, 리듬게임의 핵심이 되는 XBOX 컨트롤러와 액세서리 버튼 등을 자신에게 최적화된 위치에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게임을 할 수 있게 된 순간, 울고 싶었어요.
“보조기기를 설치하고 첫 플레이를 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해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6개의 버튼으로 플레이를 시작한 순간, 솔직히 울고 싶었어요. 평생 다시는 못할 줄 알았거든요. 사고가 나고 중환자실에서 물도 못 마시다가 처음 음식을 삼켰을 때처럼 ‘아, 이게 다시 되네. 나도 할 수 있다.’ 하는 감격이 밀려오더라고요.”
물론 처음부터 능숙하게 다룬 것은 아니었습니다. 빠르게 연속으로 떨어지는 노트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꾸준한 연습 끝에 과거 실력의 절반 정도까지 회복했습니다.
“누를 수 있는 방향과 힘을 기준으로 버튼을 배치해 두니까 플레이가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어요. 손가락 터치로만 하던 때와 비교하면, ‘타격감’이라는 게 생기니까 게임하는 맛이 확 달라졌어요.”
게임으로 얻은 활력과 용기로 대학 진학에 도전했죠.
보조기기 지원 후 씨케이 님의 일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게임을 제대로 즐기게 되면서 다양한 게임에 도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장애인 게임대회 카트라이더 부문에서 우승을 거두며 상금과 상장도 받았습니다. 게임보조공학센터 연구자들과 자료를 주고받고 피드백을 전하며, “내가 그냥 노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연구와 삶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보조기기를 통해 게임을 하면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껴요. 자신감과 도전정신도 자연스럽게 생겨서 게임 유튜브 방송도 시작했죠. 그 뿐이 아니에요. 그냥 게임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좀 더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민 끝에 씨케이 님은 대학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국가장학금 신청을 계기로 100% 온라인에서 대학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평일에는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에서 UN 장애인권리협약을 알리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대학강의를 듣고 과제를 한 뒤, 게임과 유튜브 영상 편집을 하며 바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원사업을 통해 되찾은 활력이 일·학업·관계·자기효능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게임은 독서·운동과 동등한 취미다.
씨케이 님은 이 지원사업을 통해 얻은 변화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인식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는 게임을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픽, 음악, 스토리, 시스템, 연출, 사용자의 선택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완성되는 예술이자, 플레이어가 직접 상호작용하는 문화라는 의미입니다.
“게임은 독서, 운동, 등산, 프라모델 조립 같은 다른 취미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독 게임만 ‘중독’, ‘마약’ 같은 프레임으로 묶이곤 하죠. 건전하게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인식이 빨리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장애인에게는 집 안에서 게임을 하는 것도 재활이 될 수 있고, 책임감 있게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요.”
씨케이 님은 게임보조기기 지원사업이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이자 장애와 게임에 대한 사회 인식을 함께 바꾸는 사업으로 더 크게 확장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게임 플레이가 하나의 직업과 문화적 볼거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장애인고용공단 등과 연계해 ‘장애인도 게임을 통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릴 수 있게 되길 꿈꿉니다.
씨케이 님은 지원에 떨어졌다고 주저하거나 스스로를 탓하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보조기기 지원에서 떨어지면 ‘에이, 되지도 않는 거 뭐하러 해’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세요. 도전하기도 전에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실망이 클 것 같은데’ 하는 분들도 있고요. 저는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지원을 했는데 안 됐다면, ‘아, 나보다 더 절박한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흘려보내는 거죠. 내년, 내후년에도 기회는 또 올 테니까요. 그렇게 마음 먹고 나면 지원사업에 선정되었을 때 기쁨이 더 클테고,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해요.”
보조기기 지원사업은 씨케이 님에게 단순히 ‘게임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경험’을 넘어, 멈춰 있던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능력을 되찾았고, 그 변화는 여가를 넘어 학업·일·관계·자기효능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처럼 맞춤형 게임 보조기기는 장애인의 일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며, 동시에 “장애도 문화와 취미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현실로 바꾸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기술과 지원, 그리고 관심이 합쳐질 때 장애인의 문화 접근권은 비로소 현실이 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이 사업이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지와 활력을 제공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각자가 게임이라는 세계 속에서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글 김유진 작가
사진 김권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