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다

모금기획팀 송혜진 매니저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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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가장 대중적인 여가활동 중 하나이지만, 장애인에게는 하고 싶어도 닿지 않는 취미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카카오게임즈와 함께 ‘장애인 게임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장애인들이 문화·여가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맞춤형 게임 보조기기 지원사업인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지체·뇌병변 장애인이 각자의 운동능력과 환경에 맞는 장비를 지원받아 실제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2025년 이 사업과 만난 김다영(가명)님 역시, 수년간 멈춰 있던 취미와 일상의 흐름을 다시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지원사업이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직접 만나 들어 보았습니다.

게임 디자이너였던 그녀의 멈춰버린 시간

김다영(가명)님은 병을 앓기 전까지 ‘게임’을 직업이자 일상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콘솔 게임 개발에 참여해 원화와 그래픽을 담당했고, 이후에는 좋아하는 강아지를 주제로 애견 의류 디자인 사업도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대학 시절부터 나타나던 증상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잦은 두통, 어눌해지는 발음, 흐트러지는 걸음.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뇌병변, 희귀질환 크라베병, 그리고 우측 전신 마비였습니다. 오른손은 거의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원화·그래픽 작업도, 게임도 그녀의 손에서 하나둘 멀어져 갔습니다. 그때부터 다영 님의 시간은 사실상 멈춰 있었습니다.

“말이 어눌해지면서 필담이 필요해졌고,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필기 연습을 시작했어요. 글을 쓰는 것 정도는 가능해졌지만, 그 외에는 손으로 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어요. 특히 게임은 전혀 할 수 없었죠.”

평생 못할 줄 알았던 액션·FPS 게임을 다시 플레이 하다

게임 원화를 그리는 디자이너이자, 움직임이 살아 있는 액션·FPS 장르를 사랑하던 게임 마니아였던 다영 님. 하지만 오른손을 거의 쓸 수 없게 된 뒤로 즐기던 게임은 그저 구경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영 님에게 ‘게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깊은 상실감으로 남았습니다.

“이제 평생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좋아하던 게임을 멀리하기도 했어요.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한 손으로 가능한 레이싱 게임으로 갈증을 달래봤지만 우울감은 점점 더 커지더라고요. 그러던 어느날 카카오 게임즈에 근무하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어요. 장애인 게임 보조기기 지원사업이 있는데 저한테 딱인 것 같다면서 말이에요.”

지체·뇌병변 장애인이 각자의 운동능력에 맞는 장비를 통해 실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1인당 약 230만 원 내외의 장비를 맞춤 지원한다는 내용에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었다는 다영 님. 운 좋게 사업에 선정되었고, 그녀의 집에 보조공학 전문가 두 사람이 직접 찾아와 생활환경을 살펴보고, 어떤 기기가 적합할지 함께 상의 후 세팅과 사용 교육까지 함께 진행했습니다.

“두 분이 번갈아 오셔서 기기를 설치하고, 마우스, 게임 컨트롤러 등을 테스트해 주셨어요. 어떻게 세팅하면 제가 덜 힘들게 오래 게임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같이 고민해 주셔서 참 든든했어요.”

버티던 일상이, 기대하는 하루가 되었어요

지원사업을 통해 다영 님이 받은 주요 장비는 왼손 전용 마우스와 게임 컨트롤러입니다. 특히 왼손 전용 마우스는 자주 쓰는 기능들을 단축키로 설정해 두어 복잡한 조작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예전엔 왼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이고, 또 키보드를 누르고 하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마우스에 단축키를 넣어두니까, 클릭 한 번으로 다양한 조작이 가능해서 훨씬 편해졌어요.”

보조기기를 사용한 뒤, 다영 님의 하루는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오전에는 활동보조인과 함께 재활 헬스와 수영 등 운동을 하고, 오후에 집에 돌아오면 보조기기를 이용해 게임을 즐깁니다.

“좋아하는 게임을 편하게 즐기게 되면서 활력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그냥 버티는 느낌으로 하루를 살았다면, 지금은 ‘오늘은 누구랑 어떤 게임을 하지?’ 기대하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게임으로 다시 이어진 관계들, 그리고 되찾은 자존감

보조기기를 통해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다영 님의 인간관계는 달라졌습니다. 병이 찾아온 뒤 가깝던 사람들과 연락이 끊어지고, 밖으로 나가는 일도 줄어들면서 고립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게임 속 친구들이 5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매일 같이 플레이하는 몇몇 친구들과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기도 해요. 예전처럼 떠들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생겼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요.”

우울감은 이전이 10점 만점에 9점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0에 가까워 졌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이렇듯 다영 님에게 게임은 단순한 ‘놀이’로 끝나지 않습니다. 삶의 재미와 의미를 되찾았을 뿐 아니라,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자존감도 다시 조금씩 회복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즐겁고, 제가 쓸모 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 게임 회사에서 작업했던 포트폴리오도 다시 꺼내 보게 되고, ‘그래, 나는 원래 이런 걸 하던 사람이었지’ 하고 스스로를 다시 떠올리게 돼요.”

게임을 넘어서, 다시 창작의 세계로 성큼 다가서다

그녀는 최근 새로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귀여운 이모티콘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녀는 2022년에도 강아지 이모티콘 습작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귀엽게 움직이는 강아지 캐릭터 이모티콘은 “바로 팔아도 되겠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수준급이었지만 손 떨림과 불안정한 움직임 때문에 오래 작업을 이어가기 어려워, 결국 중간에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보조기기가 있으니 PC 작업도 예전보다 안정감 있게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카카오 이모티콘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강아지를 좋아하니까, 강아지 이모티콘으로요.”

그녀에게 게임 보조기기는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준 장치를 넘어, 창작 활동으로 다시 나아가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창작자 김다영’으로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 다영 님은 속 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이 사업은 저를 다시 태어나게 했어요. 병으로 인해 게임도, 디자인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모두 멈춘 채였던 저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요. 게임은 그냥 시간 낭비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만들고,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는 분들이 누구든 지원사업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다영 님의 이야기는 장애인의 여가를 TV 앞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게임이라는 문화·여가의 세계로 넓혀가는 시도가 왜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병으로 인해 몸이 멈추고, 일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순간에도 적절한 기술과 지원, 그리고 관심이 더해진다면 그 시간은 다시 흐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장애인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사업’이 더 많은 사람들의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작은 희망의 장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각자의 속도로, 게임이라는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와 가능성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유진 작가
사진 김권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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