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과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는 건강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 영유아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돕고자 2024년부터 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이주 아동에게 건강보험 가입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합니다. 소위 ‘의료 쇼핑’을 하는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과도한 국제 수가를 감당하며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2025년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여섯 영유아와 가족의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나누고자 합니다. 시련의 계절을 지나 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여섯 아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해 주세요.
오늘은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인큐베이터 안에서 삶의 첫 전투를 시작해야 했던 두 아이, 누엔홍하와 끼얀의 기적 같은 생존 기록을 전합니다.
※ 인터뷰 대상자의 이름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버틴 시련과 1.5kg의 기적
낯선 땅,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마주한 생명은 축복인 동시에 거대한 폭풍처럼 다가왔다. 건강보험이라는 안전망도, 기댈 수 있는 가족도 없이 ‘미등록’이라는 그늘에서 이주민 엄마들은 오직 아이의 숨소리 하나 만을 붙잡고 긴 터널을 지나왔다.
1.5kg도 되지 않는 작은 몸, 억대를 넘어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 넘어서기 불가능한 절벽 앞에서 국적을 넘어 손을 내민 이웃들의 온기가 모여 생명의 불꽃은 다시 타올랐다.

- 베트남 엄마의 텅 빈 주머니와 꽉 찬 사랑,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
2024년 9월 4일, 세상의 빛을 본 누엔홍하의 첫 호흡은 위태로웠다. 예정일보다 훨씬 이른 34주 만에 태어난 아기의 몸무게는 고작 1.34kg.
호흡이 비정상인 데다 신생아 패혈증과 상세 불명의 혈소판감소증, 그리고 온몸에 퍼진 청색증에 열까지 끓었다. 탄생을 축복 받아야 할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아기는 우유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결국, 장 수술과 급성장염이라는 합병증까지 겹쳐서 세 곳의 병원을 숨 가쁘게 옮겨 다녀야 했다. 건강보험이 없는 미등록인 아기에게 청구된 총 진료비는 무려 1억 1,200만 원. 그것은 평범한 노동자인 엄마가 일생을 벌어도 모으기 힘든 거대한 성벽 같았다.
“처음에 창원 소재 대학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했는데, 장에 문제가 있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가 너무 작은 데다가, 수술비용까지 생각하면 정말 눈앞이 캄캄했어요. 그 후 급성장염으로 양산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는데, 당시 저는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의사 선생님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합병증이 발생했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요. 건강보험이 없으니 병원비가 1억 원이 넘게 나왔는데,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다행히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어요.” (누엔홍하의 어머니)
엄마는 아이가 아픈 것이 임신 중에 제대로 먹지 못한 본인 탓인 것만 같아 괴로울 때도 있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모아야 했기 때문에 만삭 때까지 자동차 공장에서 100시간 넘게 초과 근무를 하며 버텼던 시간이,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된 것은 아닐까 자책감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15개월이 된 누엔홍하는 건강을 회복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전히 장 흡수력이 약해 또래보다 작지만, 엄마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감사한 기적이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가 작으니까 유전자 검사도 해보자고 했는데, 이미 병원비로 수천만 원을 쓴 뒤라 더는 돈이 없어서 못 한다고 했어요. 그땐 정말 속상했어요. 그래도 이제는 병원에서 ‘괜찮으니 안 와도 된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이가 잠을 잘 못 자고 여전히 건강을 조심해야 하지만 저는 힘들지 않아요. 그저 집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누엔홍하의 어머니)
- 엇갈린 엄마 아빠의 인연과 홀로 선 엄마
엄마는 베트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2년 결혼비자로 입국해 11년째 한국에 살고 있지만, 2016년 남편과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별거를 시작하면서 엄마의 법적 보호망은 사라졌다.
미등록 신분이 된 엄마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 계속 살고 싶었다. 그러다 베트남 국적의 아빠를 만났고 단란한 가정을 꿈꿨지만, 아빠는 임신 사실조차 모른 채 베트남으로 잠적해 버렸다. 연락이 끊긴 아빠를 원망할 시간조차 엄마에게는 없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심장병 치료비까지 송금해야 했기 때문이다. 창원 공장에서 한 달에 330만 원을 벌어서 고향에 보내고 출산을 위해 차곡차곡 모았지만,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직장을 잃었고, 모아둔 퇴직금 600만 원과 저축해온 2,800만 원은 고스란히 병원비로 들어갔다.
“아직 창원의 병원에는 1,178만 원 미수금이 남아서 매달 20만 원씩 갚아나가고 있어요. 어차피 중환자실에는 보호자가 같이 있을 수 없으니 병원비를 벌기 위해 농촌에서 일용직 일을 하고, 일 없는 날에 아이를 보러 병원에 왔어요. 지금은 동네에 있는 병원 식당에서 하루 4시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100만 원 남짓 받는데, 어린이집 보육료 50만 원과 미수금을 내고 나면 생활비가 없어요. 아끼고 아끼면서 견디고 있어요. 이제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5시에 와요. 그래서 오후 5시까지 일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어요.” (누엔홍하의 어머니)
엄마와 누엔홍하는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단둘이 산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베트남 언니가 유일한 통역 도우미일 뿐, 경제적으로 기댈 곳은 전혀 없다. 급한 마음에 주위 사람에게 빌린 130만 원 빚이 있지만, 수도와 전기가 끊길까 봐 공과금부터 내다보니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누엔홍하가 배 안에 있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다시 일어나 열심히 일해서 하나씩 갚아나갈 생각이다.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보며 엄마는 신발끈을 동여맨다.
- 따듯한 지원이 이방인에서 이웃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엄마를 일으켜 세운 것은 주변의 따듯한 손길들이었다.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과 함께 다른 민간 재단이 나선 덕분에 1억 원이 넘는 병원비를 건강보험 수가로 전환하여 5천 9백만 원으로 낮출 수 있었고, 아이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여러 도움의 손길 덕에 진료를 받고 보육료도 내며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도 퇴원할 때 후원금을 주었고, 아기 옷과 분유 후원도 이어졌다.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의 긴급 생계비 지원을 받은 엄마는 누엔홍하의 다음 달 보육료를 해결할 수 있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늘 아이를 먼저 챙기는 엄마다.
“미등록이라는 신분 때문에 늘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곳에서 도움 주시는 것을 겪고 나니 이제는 제 생각도 좀 달라졌어요. 무척 감사하고 사회에 나갈 힘을 얻어요. 한 번씩은 제가 부모 역할을 잘 못 해서 아이가 뒤처지거나 힘들어질까 봐 걱정도 되지만요. 이제 병원 치료도 끝났고, 혹시나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절에서 운영하는 의료공제에도 가입했어요.” (누엔홍하의 어머니)
엄마는 한국이 더 이상 차가운 이방인의 땅이 아님을 느낀다. 비록 아이의 성장을 위해 베트남어로 육아 정보를 검색하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공부해야 하는 고단한 일상이지만, 엄마는 이제 아이와 함께 미래를 꿈꾸며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당장은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지만, 아이가 건강하게 더 자라면 부모님이 계신 본국으로 돌아갈 결심도 하고 있다. 그전까지는 이 땅에서 아이의 건강을 지키며 잘 키우는 것이 엄마의 유일하고도 간절한 계획이다.

2. 끼얀이 마주한 세상과 생명의 기록
끼얀과 끼얀의 엄마를 만나러 간 날, 밖에는 부슬부슬 겨울비가 내렸다. 끼얀의 엄마가 머물고 있다는 경상남도 함안군의 공장 기숙사 주소지를 들고 논밭 사이 시골길을 달렸지만, 도착한 곳에는 공장도 기숙사도 없이 드문드문 작은 집들만 보였다. 여기가 아닌가? 당황하던 차에 주소지를 알려준 사장님을 만났고, 그를 따라 더 외지고 깊숙한 곳에 있는 단층집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엄마가 미등록 신분이라 혹시 모를 위험을 염려한 사장님이 일부러 틀린 주소지를 알려준 것이었다. 어린 끼얀과 신분이 위태로운 엄마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장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현관문이 열리자 아직 백일도 지나지 않은 끼얀을 안은 엄마가 활짝 웃으며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아기와 산모가 머무는 곳 답게 뜨끈뜨끈한 방 한가운데에 끼얀의 이부자리가 있었다. 자리에 앉자 불과 몇 달 전, 긴박했던 끼얀의 출생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끼얀은 2025년 10월, 임신 31주 만에 이른둥이로 태어났다. 체중도 고작 1.5kg밖에 되지 않아, 세상에 나오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43일을 버텨야 했다. 갑자기 산통이 시작되었을 때는 하필 추석 연휴였기 때문에 산모를 받아줄 병원을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 두 군데를 돌았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 절박했던 순간을 엄마와 사장님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삼*병원 응급실에서도 거절당했어요. 다행히 진주의 한 병원에서 진료만이라도 해주겠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그 자리에서 진통이 시작된 거예요. 그대로 아기를 낳았는데, 너무 작게 태어나서 곧장 부산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43일 동안 인큐베이터 생활을 했어요.” (끼얀의 어머니)
끼얀의 아빠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돈을 벌기 위해 3년 전 태국에서 입국했다. 참외농장에서 함께 일하며 동거했으나, 엄마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다른 지역으로 일터를 옮겼고, 그 뒤로 엄마와 연락을 끊었다. 태국에서 사업 관계로 발이 넓은 사장님이 가끔 아빠와 통화를 하는데, 사장님이 끼얀의 소식을 전해줬지만, 끝내 아이를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사장님이 아빠를 대신해 아기 분유도 주문해 주고, 산모가 잘 먹어야 한다며 고기와 반찬도 챙겨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 산모에게 들이닥친 경찰과 벼랑 끝에 선 생명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사장님은 노산인데다 아빠도 없고 미등록 신분으로는 아이를 키우기 힘들 것이라며 아기 낳는 것을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눈물로 호소하면서 끝까지 작은 생명을 지켰다. 그 간절한 사랑의 힘 때문이었을까. 보통 아기 체중의 절반밖에 안 되는 끼얀의 생명력은 놀라울 만큼 야물었다.
산부인과로 엄마를 잡기 위해 들이닥친 경찰들도 차마 끼얀을 어쩌지 못했고, 43일간 인큐베이터 안에서도 잘 견뎌냈고, 지금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장님은 출산을 앞두고 구급차에 실려 온 산모를 누군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에 혀를 끌끌 찼다.
“어느 병원에서 신고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불법체류자 있다고 신고를 한 거예요. 참 너무 하지요. 산모를 잡아가면 핏덩이같은 아기는 어떻게 하라고. 출동한 경찰들도 황당했는지 쳐다보더니만 그냥 가데요. 애 낳고 있는데 별수 있었겠습니꺼.” (사장님)
끼얀이 무사히 자라서 퇴원한 것은 다행이지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미등록 신분인 엄마에게는 일반인이 상상조차 힘든 병원비가 청구되었다. 진주의 한 병원에서 출산비가 500만 원, 또 다른 병원에서 치료비와 입원비 등 총액이 1억 원을 넘었으니, 엄마로서는 평생 만져본 적도 없는 큰 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료 쇼핑하러 오는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국제수가가 아닌, 건강보험료 수가로 병원 협의가 되어 3,500만 원으로 금액이 낮춰졌다. 더불어 영유아 건강권 의료비 지원과 병원의 모금, 사장님의 도움이 있었고, 끼얀 엄마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까지 보태어 병원비를 지불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1,500만 원의 미수금이 남은 상태다.
“인큐베이터 비용만 하루에 100만 원 정도였어요. 그래도 끼얀이 건강하게 퇴원해서 정말 기뻐요. 아름다운재단과 이주민과함께의 의료비 지원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도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끼얀의 어머니)
- 다시 일어설 준비, 꿀단지처럼 숨겨둔 아기수첩의 희망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엄마는 끼얀만 보면 옅은 미소가 저절로 떠오른다. 끼얀은 토닥이는 엄마 손길에 사르르 잠이 들었다. 평온해 보이지만 엄마의 어깨에는 여전히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다.
엄마는 태국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후 결혼했지만, 23살, 26살 두 딸을 데리고 이혼했다. 친정아버지가 농장을 차리느라 대출을 받았는데, 그때 진 빚과 전남편의 빚까지 떠안아야 했다. 결국 두 딸은 본국에서 친정 일을 돕게 하고, 3년 전 여동생과 함께 한국행을 택했다. 여동생은 현재 해남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태국에서는 남자 일당도 기껏해야 1만 원 정도예요. 그런데 한국의 일당은 열 배가 넘어요. 그러니 위험을 감수하고 이렇게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오는 거예요. 저도 빚만 갚으면 태국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지요. 끼얀이 6개월 되면 태국에 있는 친정에 보내고, 다시 과일 농장으로 갈 겁니다.” (끼얀의 어머니)
엄마는 과일 농장에서 멜론, 참외, 수박 농사를 했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끼얀을 곁에서 지켜보지 못하고 석 달 뒤에는 헤어질 것이 마음 아프지만, 엄마는 애써 웃는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당장은 끼얀의 내과, 안과 병원 진료도 받아야 하고, 엄마의 B형 간염 때문에 그 검사도 받아야 한다. 달리기에 앞서 신발 끈을 단단히 고쳐 매듯 앞으로 본인의 건강도 챙길 계획이다.
끼얀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물으니, 엄마는 구석진 이불 밑에서 꽁꽁 감춰둔 꿀단지라도 꺼내듯이 아기 수첩을 가져와 펼쳐 보였다. 마침 거주지 가까이 보건소가 있으니, 보건소를 통해 임시번호를 받아 아이에게 필요한 예방접종을 받으라고 안내했다. 엄마는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 사장님이 안도감과 고마움 가득한 미소로 길을 알려주고, 엄마도 문 앞까지 나와 환하게 웃으며 배웅해 주었다. 마당에는 초록빛을 띤 풀들이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면서도 납작 엎드려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를 견뎌낸 풀들이 봄이 오면 파릇파릇하게 일어나 제 역할을 하듯, 시련의 계절을 지나고 있는 끼얀과 엄마에게도 곧 따스한 햇살이 비치길 바란다. 1.5kg의 작은 몸으로 세상을 이겨낸 끼얀의 생명력이 희망찬 봄을 불러오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글 사단법인 이주민과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