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판 위에서 피어난 아이들의 노래

1%나눔팀 김예주 매니저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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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과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는 건강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 영유아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돕고자 2024년부터 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이주 아동에게 건강보험 가입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합니다. 차별적이고 복잡한 가입 과정과 한 번만 보험료가 밀려도 의료보험에서 제외되는 절차로 이주민 가족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2025년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여섯 영유아와 가족의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나누고자 합니다. 시련의 계절을 지나 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여섯 아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해 주세요.

※인터뷰 대상자의 이름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표기하였습니다.

두 가족이 꿈꾸는 당당한 내일

한국 사회의 가장자리, ‘미등록’이라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의 시간은 흐릅니다. 당호아안과 수아먓은 건강보험도, 법적 신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삶의 첫 발을 뗐습니다. 아프면 달려갈 응급실의 문턱은 높았고, 부모님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하루치 일당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내놓아야 하는 고단한 삶을 견뎌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얼음판 위에서도 희망의 꽃은 피어났습니다.

비록 서툴고 느린 발걸음이지만 재활 치료를 통해 멈췄던 발달의 시계를 다시 돌리기 시작한 당호아안 , 그리고 폐렴 수술 후 건강을 되찾아 알록달록한 원룸 안에서 웃음을 되찾은 수아먓. 두 아이는 이제 어린이집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며 각자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 “엄마 고마워요” 굴곡진 삶을 버티게 하는 노래

베트남 국적의 당호아안은 예정보다 두 달이나 앞서 태어난 이른둥이였지만, 다행히 신체 발달은 또래들 못지않았다. 하지만 한창 감정을 표현하고 활동량도 많아야 할 시기, 당호아안의 시간은 멈춘 듯했다. 한부모 가정의 미등록 아동으로서 체류자격과 건강보험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에다가, 홀로 생계와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는 당호아안에게 충분한 시간을 들일 수가 없었다. 엄마가 저녁에 일하러 가고 나면, 아이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서 쏟아지는 환한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영유아기 시절 매일 2~3시간씩 이어진 자극적인 미디어 노출은 당호아안에게 필요한 다양한 감각과 사고력 발달을 막았다.

“두 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선생님이 당호아안은 친구와 어울려 놀기보다는 혼자 노는 시간이 많고, 집중력도 극히 낮으며, 과잉행동을 보여 통제가 어렵다고 했어요. 저녁에 일하러 나설 때마다 울면서 매달렸는데, 그런 아이를 떼어 낼 때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당호아안의 어머니)

밝은 미소로 인사하는 당호아안 (AI로 편집한 이미지입니다.)

2025년 6월부터 찾기 시작한 아동발달센터에서는 당호아안에게 언어발달 지연과 주의 집중력 저하, 상황 판단 및 대처 능력 부족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깨끗한 복장과 밝은 태도로 병원을 찾고,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듯한 당호아안에게서 내면에 뚫려있는 발달의 구멍을 발견한 것이다.
당호아안 앞에는 발달 지연이라는 장애 못지않은 큰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바로 ‘미등록 아동’이라는 신분의 벽이다. 건강보험조차 가입할 수 없는 아이는 독감이라도 걸려 링거를 맞고 검사를 받으면, 단번에 20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가 청구되었다. 한 번 병원에 갈 때마다 기본 5만 원이 훌쩍 넘는 진료비는 엄마의 하루치 일당을 고스란히 앗아갔다. 엄마가 감당해야 할 차가운 현실이었고, 높고 험하기만 한 문턱이었다.

  • 새벽까지 이어지는 주 7일의 노동, 엄마라는 이름으로 버티는 삶

엄마의 삶은 굴곡진 이주민의 서사를 그대로 품고 있다. 엄마는 2011년에 한국 남성과 결혼해서 2016년에 베트남에서 첫째 딸을 낳았다. 딸이 4개월쯤 되었을 때 딸을 여동생에게 맡기고 한국에 입국해 가정을 꾸렸지만, 남편의 정신적 질환을 버틸 수 없었다.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법적으로는 이혼하지 못한 채 별거를 선택해야 했던 엄마는, 그사이 만난 베트남 출신의 미등록 이주노동자와의 사이에서 당호아안을 낳았다. 그러나 당호아안의 아빠마저 2022년 베트남으로 돌아간 뒤 양육 책임을 외면하면서, 엄마는 철저히 혼자 남겨졌다. 베트남에 두고 온 아홉 살 딸의 양육비와 외할아버지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친구에게 빌린 200만 원까지, 엄마의 어깨에는 쉴 틈 없이 부채가 쌓여갔다.

엄마는 낮에는 당호아안을 돌보고, 저녁 8시가 되면 노래방 청소와 식당 주방 보조 일을 하러 나간다. 매일 새벽 3시까지 주 7일을 꼬박 일하며 한 달 평균 250만 원을 벌지만, 그 돈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빠져나간다. 당호아안의 보육비 40만 원, 일하러 간 동안 당호아안을 돌봐주는 유학생에게 주는 돌봄비 60만 원, 베트남 딸 양육비 40만 원,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을 빼고 나면 식료품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식비가 모자라 가끔씩 돈을 빌려야 하는 날이면 엄마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9월부터 밀리기 시작한 전기세 고지서는 어느새 누적되어 엄마의 가슴을 짓눌렀다.

“제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요. 밤낮없이 일하느라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제가 부모 역할을 잘못해서 당호아안의 발달이 늦고 사회성도 떨어지는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당호아안의 어머니)

인터뷰 내내 엄마는 양육의 고통과 죄책감을 쏟아냈다. 밤에 일하니 늘 몸은 천근만근이고 잠도 부족하다. 아이를 돌보느라 개인 시간은커녕 집안일조차 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아이를 친근하고 따듯하게 대하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질 때면,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곤 한다고 엄마는 고백했다. 하지만 엄마는 포기할 수 없다. 당호아안이 옆에서 “엄마! 고마워요”하고 입버릇처럼 말할 때마다,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를 깨닫기 때문이다.

  • 다시 흐르기 시작한 당호아안의 시간

엄마와 당호아안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주민과함께>와 <아름다운재단>의 손길이 닿았다. <이주민과함께>에서 수행한 ‘보육료 지원사업’에 당호아안이 대상자가 되었고, 부모 교육을 실시하던 중 강사가 당호아안의 발달 장애 상태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어린이집을 방문해서 상황을 재차 확인했고, 이를 계기로 당하아안의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교육청 바우처 16만 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 치료를 받았는데, 또래보다 언어 발달이 많이 늦은 당호아안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주민과함께>에서 의료비를 지원하여 치료 횟수를 늘리도록 했다.

“<이주민과함께>에서 재활센터를 찾아가 센터장에게 치료시간이 더 필요하다, 일주일에 두 번으로 치료시간도 늘리고 통합 치료도 받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었어요. 덕분에 재활 치료가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어나고, 언어치료에다 감각통합치료도 받게 됐어요.” (당호아안의 어머니)

그러자 당호아안에게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또렷하지 않던 발음이 살아나고, 어휘량도 늘었으며, 엄마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는 태도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재활 치료를 통해 당호아안의 발달 시계를 다시 돌아가게 한 것 같아 엄마는 희망을 느낀다.

“지금 가장 바라는 건 당호아안이 어린이집 보육료와 병원비 걱정 없이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는 거예요. 나중에 학교에 갈 때 체류자격을 얻어서 당당하게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호아안의 어머니)

미등록이라는 신분 때문에 비자 신청 시 거액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현실에 엄마의 가슴은 다시금 철렁 내려앉지만, 아이를 한국에서 끝까지 키우고 싶다는 의지는 누구보다 단단하다. 혼자 내몰리듯 육아와 생계를 맡아오면서 삶에 대한 만족도도 낮고 스트레스도 많았던 엄마지만, 곁에서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도 곧잘 부르고, 참새처럼 종알거리며 점점 성장해가는 당호아안을 보면서 삶의 태도도 긍정적으로 바꾸려 다짐한다. 이 작은 아이의 노래가 멈추지 않도록 손을 잡는 일은 한 가정을 구하는 일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내일의 희망이다.

2. 얼음판 위에서도 손을 놓지 않는 세 가족

차가운 낙동강 바람을 맞으며 찾아간 수아먓의 집은 화전산단에 위치한 원룸 빌라이다. 방 하나에 화장실과 베란다가 딸린 작은 집이지만, 들어서는 순간 젊은 엄마 아빠의 아이는 공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록달록 예쁜 빛깔의 아이 물건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벽에는 오순도순 가족사진들이 정성스레 꾸며서 붙어 있고, 세간살이들은 흐트러짐 없이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 높은 곳에는 조국 미얀마의 안녕과 평화를 기도하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초상화가 걸려있어, 이 가족이 얼마나 고향을 사랑하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수아먓은 아직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지 않았었다. 올 3월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친구와 다툰 적 한번 없이 즐겁게 다니고 있다. 그런 수아먓이 얼마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잔기침과 간헐적 발열로 잠도 잘 못 자고, 식사량도 줄어 성장을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미등록 신분이라 건강보험이 없다.

위태로운 얼음판 위에서도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수아먓과 가족의 모습(AI로 생성한 이미지 입니다.)

제대로 된 치료는커녕 밤에 불덩이같이 열이 올라도 응급실에 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찬 수건으로 아이 몸을 닦아가며 겨우 열을 식히고, 날 밝으면 동네 의원을 찾아가 약을 타 먹이는 게 전부였고,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아이를 발만 동동거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25년 9월에 폐렴 수술을 하고 일주일 정도 입원했는데,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낸다고 한다. 수술 한 번으로 나을 것을 그렇게 오랫동안 세 식구가 속을 태운 것이다.

“<2025 이주민 영유아 의료비 지원사업> 신청을 통해 200만 원 정도 되는 병원비를 전액 지원받았어요. 덕분에 폐렴이 나아서 지금은 어린이집도 잘 다니고 있어요.” (수아먓의 어머니)

  • 막다른 길에서 만난 희망, 그리고 묵직한 책임감

수아먓의 부모는 서른세 살 동갑내기 청년 부부다. 아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2년에 E-9 고용허가제 비자로 처음 입국해서 일했고, 고국으로 돌아가 2017년에 결혼을 했다. 가정을 꾸렸으니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회사 사정이 점점 어려워졌고, 부양해야 할 식구가 늘었는데도 월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고민 끝에 회사를 옮기기로 마음먹었지만, 사업주는 퇴직 처리를 해주지 않았다. 퇴직 처리가 되어야 이직을 할 수 있는데 ‘고향으로 가려면 가라!’ 하면서 오히려 폭언과 괴롭힘을 일삼았고, 사업주와의 관계는 나빠져만 갔다. 결국 2019년,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때부터 6년째 ‘미등록 신분’이라는 불안한 삶을 살게 되었다. 아빠는 가장으로서의 무게에 눌려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뒤로 정해진 직장이 없이 일했어요. 일이 생겼다는 연락이 오면 일당 12만 원 정도를 받고 달려가요. 연락이 안 올 때는 가끔 바다로 나가는 배를 타기도 하고요.” (수아먓의 아버지)

엄마 역시 미얀마에서 대학을 마치고 아빠와 결혼한 후, 2018년에 관광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여성은 고용허가제 비자가 나오지 않은데다, 한국어라는 언어 장벽 때문에 당장 아르바이트도 하기 힘들었다. 그 뒤 2023년, 남편과 아이를 갖기로 계획을 세워 축복처럼 딸 수아먓을 낳았고, 전적으로 양육을 맡아 돌보고 있다.
수아먓의 엄마는 보건소에서 임시관리 번호를 받아 영유아 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았고, 인터넷, 유튜브,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에게 필요한 육아 정보를 수시로 찾아본다. 가끔은 정보가 부족해서 어려울 때도 있지만, 엄마는 늘 방법을 찾는다. 아빠가 일이 없을 때는 병원에 같이 가지만, 아빠가 일하러 가고 없으면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다. 아이가 태어난 병원이기 때문에 의사가 아이 상태를 잘 알아서 힘들지는 않다고 한다. 기초적인 한국말은 조금씩 알아듣기도 하고, 안 되면 번역기를 돌려서라도 의사의 말은 놓치지 않는다.

  • 얼음판 위의 오늘, 그래도 함께 꾸는 꿈

엄마와 아빠는 수아먓을 잘 키우고 싶다. 한국말도 잘 배우고, 앞으로도 한국에서 교육을 잘 받기를 바라기 때문에, 어린이집 보육료 부담이 크지만, 수아먓을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의료비 등의 지원을 받은 아동 가운데 50%는 건강이나 교육환경 등의 문제로 본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수아먓의 엄마와 아빠는 한국에서 정착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필요한 절차를 준비고 있다.

“미등록 아동이기 때문에 어린이집 보육료가 월 60만 원 정도 돼요. 저희 소득에 비해 큰 금액이지만, 어린이집에 가면 한국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 다른 걸 줄여서라도 교육시켜요. 만 6세가 되면 학교에도 갈 수 있고 비자도 나오니까, 아이와 함께 한국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수아먓의 어머니)

이제 수아먓이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다니니 큰 걱정은 하나 덜었지만, 아직도 엄마 아빠의 마음 한구석에는 무거운 짐이 많다. 고국 미얀마가 내전 상황이라 돌아갈 수 없는 것, 미얀마에 계신 부모님의 안전과 가난한 형편이 늘 마음 쓰이는 데다, 당장 본인들의 신분이 ‘미등록’이라는 현실은 하루하루 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이다. 하지만 젊은 부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계획을 세우고 해결해나간다. 어려움 속에서도 수아먓을 잉태할 계획을 세웠었고, 무사히 낳아서 정성을 다해 잘 키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리고 수아먓 가족에게는 든든한 미얀마인 이웃들이 가까이에 함께 살고 있다. 다들 빠듯한 형편이지만, 마을 공동체처럼 서로 돌봐주고 챙긴다고 한다.

“주변에 25명 정도 되는 미얀마인 이웃이 있어요.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기쁨은 함께 나누는 동포들이 있어서 좋아요. 수아먓이 태어났을 때도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축하해주었고, 옷이나 기저귀도 챙겨주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내내 도움을 받았어요.” (수아먓의 아버지)

당장은 취업이 어렵지만 이제 수아먓도 어린이집에 잘 다니고 있으니, 엄마는 이제 한국어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그동안은 한국어가 안 돼 아르바이트도 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온라인으로도 열심히 배우고, 교육을 해주는 곳도 찾아가며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제대로 배워서 나중에는 당당하게 일도 하고 한국 사회에서 정착해나가고 싶다. 비록 내일이 불안한 얼음장 위를 걷고 있을지라도, 수아먓 가족은 서로의 따뜻한 손을 놓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작은 집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빛깔들처럼 이들 가족에게 희망의 빛깔이 가득하길 응원해본다.

 사단법인 이주민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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