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과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는 건강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 영유아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돕고자 2024년부터 의료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이주 아동에게 건강보험 가입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합니다. 건강보험이 있더라도 아동의 어린 시절 집중 치료가 필요한 장애아동은 더 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2025년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여섯 아이와 가족의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전하고자 합니다. 시련의 계절을 지나 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여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해 주세요.
※ 인터뷰 대상자의 이름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모두 가명으로 표기하였습니다.
1. 낯선 땅에서 만난 따뜻한 손길들
2023년 가을에 태어난 타시아는 또래 아이들보다 작다. 40주를 다 채우지 않고 38주 만에 나올 때만 해도, 엄마는 아이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빨리 나오고 싶어 하는 공주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8kg밖에 되지 않는 가냘픈 무게로 태어나 곧장 종합병원으로 이송되면서, 타시아의 축복 가득해야 할 탄생에는 걱정의 그림자가 조금씩 짙어졌다.

진료비와 검사비만 해도 1000만 원 정가 나왔는데, 외부 지원금 300만 원에 자부담 700만 원을 더해 겨우 치료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25개월이 지난 지금 아이의 몸무게는 7.1kg이다. 여전히 작은 체중에 키도 작다. 또래 아이들은 한창 뛰어놀 나이지만 타시아는 누워 지낸다. 즐거워야 할 외출은 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아 바늘을 꽂고, 고통스러운 검사를 견디며, 쓴 약을 먹는 시간이 되었다.
타시아의 경련은 2025년 7월 1일 저녁에 처음 시작되었다. 뇌파 검사 시행 결과 뇌전증과 발달 지연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소두증과 손발 기형도 앓고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속적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엄마 아빠는 너무나 잘 안다. 특히 엄마는 분만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간호과 출신이라 아이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지 뼈저리게 느낀다. 종합병원에서 태어난 후, 병원 측이 유전자 검사를 권했으나, 이미 700만 원 정도의 병원비를 지불한 뒤라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병원에는 계속 다녔지만, 병원비 마련은 까마득했고 초음파 검사 같은 치료만 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병원에서도 의사가 입원을 권했지만, 비용 때문에 약만 받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는 말끝에 결국 엄마는 참았던 눈시울을 붉혔다.
“미등록 상태라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어서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요. 병원의 후원금을 지원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의료진에게 혹시 더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물었어요. 의료진들이 알아봐 주셨고 페이스북을 통해 ‘아름다운재단’과 ‘이주민과함께’의 지원사업 알게 됐어요. 뇌파 검사를 해야 진료를 받는데 검사비가 큰 부담이었거든요.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 의료비 지원이 없었다면 검사조차 받지 못했을 거예요.” (타시아의 어머니)
다행인 것은 최근 타시아가 스스로 앉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변의 관심과 사랑에 아이가 기적처럼 화답한 것일까. 지난 7월에 겪은 심한 경련 이후, 아이는 오히려 혼자 몸을 지탱할 힘을 얻었다. 성장이 멈춘 것 같던 아이에게서 발견한 작은 기적이다. 많이 좋아졌고, 계속 나아질 거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타시아의 엄마 아빠 앞에는 아직 넘어야 할 높은 산이 많다.
“의사가 타시아의 뇌가 작으니까 뇌수술을 해서 뇌가 자라게끔 하자고 했어요. 저 작은 아이가 그렇게 큰 수술을 이겨낼 수 있을까 무섭기도 하고……, 어떻게 할지 아직 결정을 못 하고 있어요.” (타시아의 어머니)
- 성실한 노동자들의 꼬여버린 비자, 그리고 미등록
엄마와 아빠는 필리핀에서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각자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에서 일하다 필리핀으로 휴가를 간 두 사람은 동창회에서 운명처럼 재회했다. “아! 너도 한국에서 일하는구나!” 그렇게 친구로 지내다가 동거를 시작했고, 한 번의 가슴 아픈 유산 끝에 또다시 운명처럼 타시아를 만났다.
타시아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배경에는 부모의 안타까운 체류 상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2017년 E-9(고용허가제) 비자로 한국에 처음 입국했고, 2019년에는 ‘성실근로자’로 인정받아 체류를 연장해 왔다. 그러나 2023년 초 임신과 동시에 고위험 산모로 분류되어 치료를 받으면서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체류 기간이 만료되어 미등록 신분이 되었다. 아이의 지속적인 치료 때문에 지금은 귀국을 꿈꿀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빠 역시 2014년에 E-9 비자로 들어와 ‘성실근로자’로 연장받아서 일했는데, 코로나19가 닥쳤다. 당시 정부는 코로나19 시기를 감안하여 외국인노동자의 비자를 1년 연장을 해주도록 권고했지만, 강제사항이 아니다보니 회사가 거부하면 그만이었다. 아빠는 회사의 근로계약 연장 거부로 인해 2021년 미등록 신분이 되었다.
“아빠는 가구공장에서 일해요. 24만 원을 내고 공장기숙사에서 지내며 주말에만 와요. 야근하면 300만 원 정도를 받지만, 최근 경기가 나빠져 월급이 170만 원까지 떨어졌어요. 월세 37만 원 등 고정 지출금을 내고 나면 아이 분유값이 제일 걱정이에요.” (타시아의 어머니)
간호사 출신인 엄마는 필리핀의 소아과 의사에게 자문했다가, 아이 성장에 도움이 되는 분유가 필리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그 분유를 먹인 후 아이 키가 많이 자라고 체중도 늘었는데, 한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필리핀의 마트에서 직접 분유를 공수하느라 배송비를 포함해 월 30만 원 이상의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엄마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 다시 꿈꾸는 아이의 내일
2년 넘게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 법도 한데, 엄마는 지친 기색 하나 없다. 줄어든 월급에 비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 앞에서도 엄마는 주눅 들지 않으려 입술을 깨문다. 아이가 건강하지 않거나 발달이 늦은 것이 본인 탓인 것같이 느껴져 힘든 적이 있었냐는 질문에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저는 잘 먹었고 건강했어요. 아이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힘들 때도 있고, 내가 좋은 부모가 되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가끔 걱정되지만, 잘 키울 자신도 있어요.” (타시아의 어머니)
병원 의료진의 세심한 배려와 이주민 지원단체의 손길은 타시아의 엄마 아빠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다. 단순히 경제적 보탬을 넘어, 타시아 가족이 이 땅의 소중한 일원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전달된 50만 원의 긴급 생계비 지원에 엄마는 다시 한번 두 손을 꼭 모아 쥔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언제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정해진 것은 없지만, 오늘도 타시아의 건강을 응원하는 이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힘을 내본다. 7.1kg의 작은 몸으로 세상과 싸우는 아이 뒤에는, 그 아이를 결코 놓지 않으려는 부모와 그들의 손을 맞잡은 우리 사회의 따스한 연대가 버티고 있다.
2. 사랑꾼 엄마 아빠의 약속 “슈에진, 한국에서 끝까지 지켜줄게”
외국인을 위한 마트가 있는 경남 양산의 조용한 주택가, 이곳에는 미얀마에서 온 슈에진네 가족이 살고 있다. 아빠의 직장은 울산이라서 매일 왕복 1시간 거리를 오가야 하지만, 슈에진의 엄마 아빠는 이곳 양산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2023년 5월에 태어난 축복 같은 딸 슈에진이 그해 9월부터 지금까지 생명줄처럼 의지하고 있는 병원이 바로 이곳 양산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 슈에진네 집을 방문했을 때, 엄마와 아빠는 낯선 손님을 위해 과일과 과자를 정성스레 차려두고 깍듯하게 맞아주었다. 정갈하게 정돈된 집 안 거실 한복판, 큰 유모차에 비스듬히 누운 슈에진의 거칠고 가쁜 숨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바닥과 고급은 아니어도 줄 맞춰 정리된 자그마한 가구들이 집주인의 부지런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집이 참 정갈하다고 건넨 칭찬에 아빠는 “아, 다 ‘당근’이에요. 중고로 하나씩 구해서 닦아가며 쓰고 있죠”라며 엄마와 눈을 맞추고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슈에진의 엄마와 아빠는 미얀마에서 고등학교 동창으로 만나 대학에서 함께 동물학을 전공했다. 캠퍼스에서 함께 꿈을 키우며 결혼까지 골인한 사랑꾼 부부였다. 대학에서 배운 동물에 대한 전문지식을 뒤로 하고, 타국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깝지 않으냐는 물음에 아빠는 다시금 선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공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지금은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2014년에 E-9 고용허가제 비자로 처음 입국했을 때 다닌 회사는 사정이 안 좋아 문을 닫았어요. 2023년부터 다니고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가 두 번째 직장인데, 부품을 정비하고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실 지금 가진 E-7 비자는 회사변경이 어렵기도 하고, 미얀마가 내전 중이라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회사가 운영되는 한 저는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슈에진의 아버지)
- 멈춰버린 아이의 시간과 현실이라는 높은 장벽
유모차 옆에 앉은 엄마는 대화 중에도 슈에진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보통의 아이라면 한창 집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것마다 호기심을 보이고 부모에게 재롱을 피울 나이인데, 슈에진은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산을 쉬지 않고 오른 사람처럼, 아이는 고통스러운 쇳소리와 함께 가쁜 숨을 헐떡일 뿐이다.
“임신했을 때 검사는 정상이었어요. 태어났을 때도요. 목도 잘 가누고, 저희와 눈도 맞추며 대화도 하던 예쁜 아이였지요. 그런데 3개월 지나 예방접종을 한 날 밤이었어요. 갑자기 열이 급격하게 오르더니 경련도 하지 뭐예요. 급하게 병원에 가니 아이 호흡이 너무 빠르고 이상하다며 더 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어요. 상세불명의 뇌전증과 선천성 후두연화, 그리고 대사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슈에진의 어머니)
그날 이후 가족의 삶은 병원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갓난아기였던 슈에진은 울산 소재 대학병원에서 3주간 입원 치료를 하고, 3개월간 독한 약물치료도 견뎌야 했다. 지금까지 양산 소재 대학병원에서 주 2~3회 호흡기 치료 외 내과, 내신경과, 안과, 재활의학과 등 무려 7~8개 치료를 받고 있다. 엄마와 슈에진이 아침 8시 30분부터 진료를 시작해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치료를 받는 날이면, 회사에 있는 아빠의 마음도 늘 병원에 가 있다. 슈에진 진료를 맡은 교수님과 통화하고, 문자도 주고받으며 슈에진 상태를 놓치지 않고 챙긴다.
슈에진이 경련을 하고 나면 슈에진도 엄마 아빠도 기진맥진이 된다. 컨디션에 따라 경련의 강도가 달라지는데, 심할 때는 응급실로 달려가 한 번에 40만 원 하는 주사를 맞히기도 한다. 이렇게 엄마와 아빠는 온 정성과 시간,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슈에진 치료에 쏟아붓고 있지만, 현실적인 장벽은 매 순간 부부의 어깨를 짓누른다.
“치료비 때문에 은행에서 900만 원을 대출받았어요. 제 한 달 수입이 250~260만 원 정도인데, 월급이 들어오면 매달 대출상환금 120만 원이 먼저 빠져갑니다, 교통비까지 합치면 1주일 병원비만 20만 원이고, 2~3개월마다 한 번씩 수술이나 검사를 하면 120만 원 정도가 추가로 훌쩍 들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사정을 아는 집주인분이 월세를 깎아주셨다는 거예요.” (슈에진의 아버지)
부모에게 비자가 있기 때문에 슈에진도 건강보험 적용은 받지만, 복지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있다. 슈에진의 장애등록은 인정되지만, 공식등록이 불가능해서 치료에 필요한 다양한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껏 병원에서 빌려 사용하고 있는 보조기 신발이 이제 작아져서, 봄에는 아이의 발에 맞춰 새로 사야 하는데 100만 원이나 한다. 1박스 45,000원 하는 특수 분유값도 갈수록 부담이고, 특히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뇌전증 치료약인 뇌파약은 부부에게 커다란 근심거리이다. 게다가 민간단체들의 이주민 아동 지원도 주로 미등록 아동에게 집중되어 있어, 슈에진 경우처럼 이주노동자의 소득에 비해 생존에 필요한 의료비가 과도하게 드는데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지난 2025년 6월에 수술을 했을 때, ‘영유아 건강권 지원사업’ 에서 의료비 300만 원을 지원해주고 재활치료비까지 보태주어서 큰 도움이 됐어요. 미얀마의 의사가 그랬거든요. 아이가 오래 살기 힘들 테니, 아이를 꼭 살리려면 한국에 가라고요, 저희는 아이가 한국에서 끝까지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2027년에 제가 거주 비자로 바꾸게 되면, 회사 일 말고도 아르바이트를 더 해서라도 치료비를 벌 생각입니다.” (슈에진의 아버지)
- 얼음판 위에서 피어올린 나눔과 포기할 수 없는 꿈
아빠는 일하랴, 아이 돌보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봉사활동도 빠뜨리지 않는다. <희망웅상>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양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위해 통역을 해주는 봉사활동도 200시간 이상 해오고 있다. 자신이 받은 크고 작은 도움을 다시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한국에 처음 올 때 부부는 많은 꿈을 꾸었다. 고생스럽더라도 꾹 참고 돈을 벌어서, 고향에 있는 병든 부모님도 돕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미얀마에 집도 사고, 가게도 여는 소박하고 행복한 꿈. 지금은 슈에진을 살리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우선이라서 그 소중한 계획을 미뤄두었지만, 엄마 아빠는 그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의 가쁜 숨소리가 편안해지는 날, 함께 아이 손을 잡고 웃을 날을 꿈꾼다.
글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