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

공익사업팀 임주현 매니저

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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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구나, 그걸 느꼈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사람이 절실하니까 어떻게든 이루어지더라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는 거잖아요. 이 일을 계기로 사고방식이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임한슬 씨(가명)는 힘들게 모은 전 재산 약 2천만 원을 사기로 날리고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범인은 잡았지만, 가해자가 그의 명의를 도용해 일으킨 각종 금융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은행의 연락을 받는다. 경찰의 참고인 조사 요청 전화도 끊이지 않는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휴대폰이 자주 울렸고, 한슬 씨는 틈틈이 문자와 부재중전화 목록을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슬 씨는 밝은 표정이었다. 서글서글하게 잘 웃는 모습을 보면 그가 겪은 불행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시 웃을 수 있기까지는 참으로 긴 고통의 터널이 있었다. 그 터널의 끝에서 한슬 씨는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을 발견했다. 용감하게 손을 뻗었고, 자신을 향해 내밀어준 사람들의 손을 잡고 터널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두웠던 시간을 돌아보며 담담히 얘기하는 한슬씨

, , 눈물로 모은 전 재산이 한순간에

아름다운재단과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의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은 경제적 위기 상황에 놓인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주거비, 생계비, 의료비, 교육비 등 생활안정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갑작스럽게 사회에 나온 청년들이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돕는 구급약인 셈이다.

사실 지난해만 해도 한슬 씨에겐 이런 구급약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20대 초반에 약 2천만 원을 모았으니 또래 청년들보다 오히려 재산 규모가 큰 편이었다. 그의 재산은 피, 땀, 눈물로 이룬 결과였다. 시설을 통해 들어오는 후원금을 꼬박꼬박 모았고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깃집, 술집, 택배 상하차 등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어렵게 고생해서 번 돈을 쉽게 쓸 수는 없다. 생필품은 무조건 저가 할인매장에서 구매했다. 자신이 살던 시설이나 자립전담기관에서 보내주는 자립생활키트, 식자재꾸러미 등의 지원물품도 자주 이용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다. 그러나 한슬 씨가 악착같이 모으고 지켜낸 돈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설레던 인연이 비극의 발단이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 A 씨가 자기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한슬 씨는 그렇게 B 씨와 SNS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온라인상의 대화만으로도 조금씩 호감이 생겼다. 서로의 연애 감정이 깊어졌다고 느낄 무렵 B 씨는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부모님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돈을 갚기로 한 날은 점점 미뤄졌고, B 씨는 갑자기 계정을 탈퇴하고 사라졌다.

로맨스 스캠으로 전 재산을 한 순간에 잃었다

빌려준 돈만 문제가 아니었다. B 씨가 한슬 씨의 명의를 도용한 것이다. 그 명의로 여기저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심지어 중고거래 사기까지 벌였다. 경찰이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 한슬 씨는 자신의 명의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자립전담기관이 선임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사기 사건에 대한 소송을 시작했는데, 수사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B 씨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동창 A씨가 B인 척 SNS 계정을 운영한 것이다.

힘들게 모아놓은 돈을 한순간에 빼앗긴 마음은 한 가지의 감정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연인이라고 여겼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고, 믿었던 고등학교 동창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좌절감, 무력감, 우울감. 이 모든 감정이 얽히고설켜 한 덩어리의 커다란 서러움으로 가슴을 짓눌렀다. 한슬 씨는 한 달 내내 혼자 울면서 보냈다. 전기세가 아까워서 불을 끈 채 울었다.

한슬 씨는 “자립준비청년 중에는 저 같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립 초기에 목돈을 가진, 그러나 아직 세상 물정에 밝지 않은 20대 초반의 자립준비청년은 사기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 한슬 씨는 그런 사례를 많이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의 말을 믿고 대출까지 받아서 돈을 빌려줬다가 재산을 몽땅 날린 친구, 사기를 당하고 궁지에 몰려 돈을 구하다가 결국 도박에 빠진 친구,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한 친구까지.

가장 힘들었던 시간에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은’ 마치 구급약과 같았다

이렇게 세심하게 지원해주는 곳이 없었어요

한슬 씨는 참 강한 사람이다.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서도 그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지 않았다. 한 달간의 은둔을 마친 그는 친구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다들 비슷하게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한슬 씨의 피해를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친구들 다음으로 한슬 씨가 손을 내민 곳이 바로 아름다운재단과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의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이다. 유난히 공부 욕심이 많은 한슬 씨는 교재비가 절실했고,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은 한 줄기 빛이었다.

“돈이 정말 한 푼도 없었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도 부담스러워서 피했고요. 아르바이트하러 가는 교통비가 아까워서 30분을 걸어갔어요. 그런데 교재비는 도무지 아낄 방법이 없더라고요. 꼭 사야 하는데 이게 너무 비싼 거예요. 보통 한 권에 5만 원씩은 하는데 이걸 6~7권은 사야 하거든요. 그걸 다 사려면 돈이, 어휴~”

이때 나타난 구원투수가 바로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 한슬 씨는 사업을 통해 교육비를 지원받았고, 이걸 모두 교재 구입에 썼다. 아직 2학년이지만 공부 욕심이 많아서 ‘선행 학습’을 하려고 4학년까지의 교재를 미리 샀다. 대학에서 정보보안 분야를 전공한다는 그는 “일반 책은 솔직히 별로 흥미가 없는데 전공 책만큼은 재미있다”면서 눈을 반짝였다.

지원금으로 공부에 필요한 전공서적을 구매했다 (AI로 제작한 이미지)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답게 그동안 다양한 지원사업을 경험해 본 한슬 씨는 “다른 곳도 생활비 지원을 하지만, 아름다운재단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이 제일 좋았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장점은 소통이 빠르다는 것. 문의 전화를 할 때마다 담당자와 연결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던 다른 기관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참여자의 상황을 최대한 반영하는 행정절차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지원사업은 참여자가 일단 자기 돈으로 지출을 한 뒤 증빙 자료를 제출해서 해당 금액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슬 씨는 먼저 낼 몇만 원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청년생활안정지원사업에서는 지출할 여력이 안되는 참여자를 위해 선지급 시스템을 운영했다. 덕분에 한슬 씨는 걱정 없이 교재를 구입했다. 그는 “이렇게 세심하게 지원해주는 곳이 또 없다”고 말했다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지원금만이 아니다.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 만큼 학업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삶에 대한 의욕도 강해졌다. 무기력과 우울감이 다시 찾아올 때마다 ‘지원을 받았는데 뭐라도 해내야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힘든 고비를 넘긴 스스로를 생각하면 자부심도 느껴진다. 한슬 씨는 더 단단해진 듯했다.

지원을 통해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교재비 걱정 사라져 학업에 집중뭐라도 시도해봐야 해요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을 만나 다행히 한숨 돌렸지만, 꿈을 이루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한슬 씨는 아직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다. 범인을 잡았어도 돈을 돌려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자기 명의로 대출된 돈까지 우선 한슬 씨가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영수증빙과 결과보고서 제출까지 잘 마친 청년들은 자립응원금 20만 원을 받는데, 그는 이를 빚 갚는 데 전부 썼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도 한슬 씨를 꺾을 수는 없다. 그는 쉽게 지치지 않는 사람이다. 학업과 아르바이트에 집안일까지, 한슬 씨에게는 24시간이 부족하다. 일주일에 2번은 밤을 새우며 과제를 했고, 남들 학과 공부만 할 때 그는 별도의 프로젝트까지 진행해서 상도 받았다. 지난 학기에는 학과 인원 40명 중에 4등을 했다. 지도교수님은 은근히 그가 대학원에 진학하길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그는 대학원보다는 얼른 취업을 하고 싶다. 공부는 정말 재밌지만, 그래도 빨리 돈을 벌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싶다. 정보보안 전공을 살려 IT기업에 들어가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다. 잘 안되면 IT 관련 강사로 일한다는 플랜B도 세웠다. 한슬 씨는 “많이 무시당하고 살아서 그런지, 나를 증명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슬 씨가 이미 자신을 증명해냈다는 사실, 충분히 성공했다는 사실을 아마 본인만 모르나 보다. 계속되는 역경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 사람과 삶에 대한 희망을 지켜내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상이 무너졌지만, 그는 끝내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 ‘청년생활안정지원사업’이라는 구멍을 통해 그는 다시 빛으로 나왔다.

인터뷰 내내 밝고 씩씩하던 한슬 씨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결국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포기하고 자책하다 보면 끝이 없거든요. 뭐라도 시도해야 해요. 계속 하다보면 결국 노력한 만큼 그 결과가 돌아오더라고요. 저도 청년생활안정 지원사업을 통해 이렇게 길이 열렸잖아요.”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이라는 구멍을 통해 그는 다시 빛으로 나왔다
 박효원 작가
사진 임다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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