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자립준비청년 곁에는 누가 있을까

공익사업팀 임주현 매니저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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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절이든 자립준비청년의 삶에 찬란한 꽃길이 펼쳐진 적은 없지만, 올해 서른 살인 한준희 씨(가명)가 시설을 퇴소하던 10여 년 전의 상황은 더 가혹했다. ‘자립준비청년’이란 용어조차 낯선 시절, 오랫동안 지내던 시설을 떠나던 날 그의 전 재산은 500만 원이었다. 지자체에서 나오는 자립준비금 300만 원에 고3때부터 회사에 다니면서 모은 결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보증금으로 쓰면 끝나는 딱 그만큼의 돈이다.

아등바등 벌어도 돈은 좀처럼 모이지 않고 손안의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사건 사고가 생길 때마다 빚이 늘었다. 겨우 빚을 갚고 나면 다시 빚이 쌓였다. 삶은 아슬아슬한 도돌이표 같았고, 앞은 보이지 않았다. 하루하루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던 그때, 준희 씨는 거짓말처럼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을 만났다. 아름다운재단과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의 청년생활안정지원사업은 경제적 위기 상황에 놓인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주거비, 생계비, 의료비, 교육비 등 생활안정금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정말 막막하고 힘들었는데 신기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난 거잖아요. 제가 찾고자 해서, 제가 간절해서 찾아낸 기회죠.”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대출, 채무변제, 다시 대출… 그러다 만난 청년생활안정지원사업

첫 채무는 친구의 ‘배신’으로부터 시작됐다. 같이 살던 친구는 목돈이 없다며 보증금을 분담하지 않는 대신 월세를 부담하겠다고 했다. 1년 뒤 친구의 갑작스러운 이사로 집을 뺄 때서야 준희 씨는 자신의 보증금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친구가 월세를 내지 않아 보증금이 매달 차감된 것이다. 친구는 연락을 제대로 받지 않았고 돈은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그땐 돈보다 사람을 잃은 마음이 더 아팠다. 시설에서도 함께 지낸, 가족 같던 친구였다.

보증금이 다급한 준희 씨에겐 대출이 유일한 살길이었다. 1금융권에서 돈을 빌렸지만 이자는 8%나 나왔다. 직장에 다닌 지도 얼마 안 되고 급여도 크지 않았던 탓이다. 이자가 높은 것에 비해 대출의 문턱은 낮아도 너무 낮았다. 은행에 직접 가지 않고도 영상통화로 본인 확인만 하면 바로 끝나는 간단한 절차였다. 준희 씨는 “쉬워서 오히려 문제”라고 했다. 너무 쉽게 빌릴 수 있으니 자꾸 빌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대출이 20대 내내 계속됐다. 그렇다고 준희 씨가 돈을 허투루 쓴 건 아니다. 멋진 옷도 좋아하고 취미생활에도 관심이 많고 여행도 다니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꾹 참았다. 그에게 투잡은 기본값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그래도 생활비는 늘 빠듯했다. 실직했을 때, 큰 병이 났을 때, 집 보증금이 더 필요할 때를 버텨낼 정도의 자산은 도저히 모을 수 없었다. 그럴 때 준희 씨의 비빌 언덕은 은행이었다.

빌리는 건 그렇게 쉽더니 갚기는 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안 좋아지자 은행은 상환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빚 독촉 전화를 받던 준희 씨는 채무변제 제도를 통해 상환 기간을 늘려 월 납입액을 낮추는 방식으로 조정을 했다. 그렇다고 갚을 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서 상환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대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다

다행히 급여가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급여와 노동조건은 반비례했다. 매일 5시간 쪽잠을 자는 삶이 1년간 이어졌다. ‘아직 젊으니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몸은 정직했다. 결국 통증이 찾아왔고 하혈이 계속됐다. 빚은 가까스로 갚았으나 실직을 하니 다시 돈이 궁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살던 집의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 새로 들어갈 집의 보증금과 이사 비용 등으로 준희 씨는 다시 2천만 원을 대출받았다.

올해 초, 준희 씨의 경제적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매달 갚아야 할 돈은 100만 원에 가까웠고 이 돈을 내고 나면 늘 생활비가 모자랐다. 관리비와 휴대폰 요금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는 쌓여가는 고지서를 펼쳐보지 않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빚을 갚고 다시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고 또다시 빚을 지고, 마치 삶이 무한굴레에 빠진 것만 같았다. 준희 씨가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을 만난 것은 새로운 대출이 그를 잡아먹으려 할, 딱 그 무렵이었다.

현금 지원만큼이나 소중했던 재무상담

한참 어려운 시기에 만난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은 한 줄기 빛이었지만, 신청서를 쓸 때만 해도 준희 씨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립준비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이 많지만, 그에게는 별로 해당 사항이 없었다. 대다수 사업은 ‘20대 중반’으로 연령대를 제한했다. 대학에 다닌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장학금’ 등으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바로 취업한 준희 씨에겐 이마저도 그림의 떡이었다.

이유란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장은 “30대 정도면 자립이 완성되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준희 씨 또래 청년들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립을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제도의 사각지대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 곁에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이 있다.

사업을 통해 준희 씨가 받은 지원금은 그동안 밀린 3개월치 월세 155만 원과 한달치 관리비 15만 원. 당장 필요한 돈이었는데 다행히 선지급으로 빠르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지출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주거비 걱정이 줄어드니 일단 숨통이 트였고, 다른 문제를 해결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올여름 그는 두 번째 채무변제를 신청했다. 그 사이 새 직장도 찾았다.

준희씨와 재무상담을 한 김민영 상담사

그러나 지원금이 전부는 아니다. 준희 씨에겐 돈만큼이나 중요한 혜택이 있었다.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에서 제공하는 재무상담이다. 그는 예전부터 재무상담을 한번 받아보고 싶었다. 현금 지원을 받아도 결국 문제가 반복될 거라고, 더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준희 씨는 “저도 이미 채무변제만 두 번째잖아요”라고 말했다. 상황이 어렵지만, 그렇기에 더 정확하게 자신의 상황을 알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밀린 고지서를 애써 모른 척하던 그는 새로운 기회 앞에 스스로를 다잡았다. 현실을 직면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의 용기는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2차례 재무상담을 통해서 준희 씨는 자신의 소비 습관을 기록하고 재무 상태도 파악했다. 그러면서 줄일 수 있는 지출 항목도 많이 발견했다. 급할 때마다 샀던 1회용 휴대폰 배터리, 심심한 입을 달래는 간식거리. 한번 쓸 때는 몇천 원이지만 조금씩 쌓이니 꽤 큰 돈이었다. 꼼꼼히 기록을 하면서 지출도 줄어들었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 하고 멈칫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는 것만 능사는 아니다. 돈의 흐름을 이해하고 계획을 세워서 상황에 맞게 소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준희 씨는 “돈을 써도 된다는 생각은 그때 처음 해봤다”고 말했다. 늘 막연한 불안에 쫓기며 무작정 허리띠를 졸라매던, 그게 너무 힘들어서 때로는 문제를 회피했던 준희 씨는 ‘내 돈과 삶의 주인’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돈 때문에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없던 삶에서, 잘 계획하고 준비하면 뭐든 할 수 있는 삶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공식적인 상담 과정은 끝났지만,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준희 씨를 담당했던 김민영 재무상담사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도 좋다. 앞으로도 관계를 이어나가자”고 했다. 준희 씨는 그 말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늘 혼자 고민하고 혼자 버텨온 그에게 새로운 비빌 언덕이 생긴 것이다.

김민영 상담사는 “사실 돈 문제는 누구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청년들을 상담하다 보면 경계심이 있는 경우도 꽤 있는데, 준희 씨는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해주더라”고 전했다. 그는 “저 같으면 주저앉았을지도 모르는데, 어려운 상황에서도 밝고 적극적인 준희 씨를 보면서 저도 많이 배웠다”고 했다.

‘내 돈과 삶의 주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재무상담

“자립준비청년 곁에 있어 주세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준희 씨는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위험한 길을 빠지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고 했다. 자립준비청년은 과도한 채무나 사기 피해에 더 취약하고 회복 과정도 더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시설에서 퇴소한 뒤에 기대거나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 생활안정 지원사업과 그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준희 씨에겐 그런 ‘어른’인 셈이다.

좋은 어른이 생겼다고 해서 바로 경제적 어려움이 해소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한숨 돌렸지만 준희 씨의 빚은 아직 남아있다. 수입도 아직은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냥 주저앉기에는 준희 씨에게는 꿈이 많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다.

일단 새로운 진로도 모색 중이다. 현재 다니는 회사가 갑작스럽게 폐업하게 되었는데, 구직급여를 받는 동안 다시 직업훈련을 받을 계획이다. 창의적인 일을 좋아하는 준희 씨는 상품 기획에 관심이 많고 게임의 원화를 그리는 일에도 흥미가 있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대학 진학도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자꾸 일어나 매번 미뤄온 바람이다.

곁에 누군가 있어주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뿐만이 아니다. 준희 씨는 지역 내에서 꽤 알려진 환경활동가이기도 하다. 환경정화 및 자원순환 활동을 한 지가 벌써 약 10년째다. ‘동네가 깨끗해지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지인들이 동참했고 길을 가던 사람들도 함께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단체를 만들었다. 이제 그는 환경 관련 강의도 하고 캠페인이나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당장 삶이 허덕이는데 지역 환경을 돌볼 겨를이 있었나 싶지만 준희 씨는 “이 활동이 없었다면 집에서 우울하게 보냈을 것 같다. 이게 있어서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서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이다. 공동의 가치를 품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과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가면서,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면서.

준희 씨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뭐라고 해봐야 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있더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립준비청년들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된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잘 찾아보면 여러 지원제도나 사업이 있거든요. 스스로 노력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신청을 하려고 해도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해요. 자립준비청년들은 그 힘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 지지자가 되어서 힘이 되어주면 좋겠어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박효원 작가
사진 임다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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