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운동, 잊혀진 역사 ‘고운’을 기록하다

공익사업팀 박수진 매니저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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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의 '공익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공익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은 '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을 개편해 새롭게 선보이는 사업입니다. 작지만 중요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공익 단체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이어지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콘텐츠 제작을 지원합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20개 단체가 직접 작성한, 작은 움직임에서 비롯된 변화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앞으로 공익 단체들의 활동이 더욱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더 멀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에서 고등학생운동을 기록하는 이유

‘고등학생운동’을 아시나요?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중고등학교 안과 밖에서 벌어진 중고등학생들의 변혁운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대학생운동’과 구분하며 ‘고등학생운동’, 줄여서 ‘고운’이라 불렀습니다. 두발자유, 보충학습 철폐, 경쟁교육 반대, 학생자치 등 학교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서로를 조직하여 모임을 꾸렸고 함께 행동했습니다. 군사독재에 반대했고 통일과 노동해방을 이야기했습니다. ‘고운’은 교실에서 질문했고, 학생회와 축제를 만들고, 차별에 뾰족한 저항을 만들며, 학교와 사회를 바꾸려 했던 운동입니다.

하지만 이 역사는 오랫동안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수십만 명의 고등학생들이 서로를 조직해서 거리에 섰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고등학생운동은 낯선 역사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저항과 조직, 정치적 행동은 개인의 일탈이나 ‘특별한 사건’으로 축소되거나 아예 지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25년, ‘고등학생운동사’가 출간되며 비로소 고운의 역사가 하나의 흐름과 맥락을 가진 운동으로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기억과 역사로 형성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고등학생운동을 교사들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나 어른들에 의해 조종당한 것이라고 축소시켜 기억하는 편견이 오래되었고, 한국 사회 전반에서도 청소년들의 사회·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사례로 선택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영상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고등학생운동을 청소년인권운동의 ‘전사(前史)’로 설정하고 꾸준히 역사를 기록하고, 고운 열사를 기억하며, 현재의 청소년들과 고등학생운동을 공유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더 나아가 고등학생운동의 역사를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고등학생운동의 이야기가 닿을 수 있도록, 오늘날의 청소년인권운동과 연결고리를 찾아 운동을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인터뷰 결과 자료집, 연구 보고서등의 콘텐츠들이 있지만 보다 확장성을 가지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영상물 제작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에 청소년과 청소년인권운동의 관점에서 1980-90년대 ‘고운’을 했던 활동가들에게 묻는 형태의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의 시선으로 다시 묻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은 종종 새롭고 낯선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등학생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청소년의 저항과 운동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청소년들은 자유와 존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함께 외쳐왔습니다. 다만 그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기록되지 않았고, 계승되지 못했을 뿐입니다.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입시와 교육체제, 나이(연령)주의 등에서 억압적 현실을 살고 있는 청소년의 관점에서 고운에 대해 질문하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의 비리에 맞서 어떻게 점거농성, 수업 거부 같은 싸움을 벌일 수 있었는지, 1989년 전교조 출범과 전교조 교사 해직 사태 당시 어떻게 연인원 47만 명의 중고생이 집단적 저항을 할 수 있었는지, 학교의 탄압 속에서 김수경 열사가 투신 했을 때 고운 활동가들의 심정은 어땠는지, 성차별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에 맞서 싸울 때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자 했습니다. 현재 청소년과 청소년인권활동가 관점에서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현재 청소년들이 정치적 주체로 더 많이 나설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도 함께 물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 고운을 질문하다! 인터뷰 촬영 중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학교에서의 차별, 통제, 입시 경쟁 교육 체제와 서열화 등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문제입니다. 고운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문제들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떤 방식으로 맞서 싸웠는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지금 ‘지음’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10대로서 청소년인권운동에 진입하고, 활동을 만들어가며 해왔던 경험과 고민도 같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번 콘텐츠를 제작하며 청소년이 사회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점을 다시 짚고, ‘가만히 있지 않았던’ 청소년들의 투쟁을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

고등학생운동을 기록하는 일은 당장의 성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긴 호흡과 꾸준한 고민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재단은 이 시도를 믿고, 청소년인권운동의 ‘뿌리를 다지는 작업’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특히 재단에서 열었던 역량강화교육은 이번 사업을 조금 더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콘텐츠를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을 수 있고, 운동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잊혀진 역사, 80~90년대 고등학생운동 영상 상영회
"어렵고 힘든 일이겠지만 언젠가 모든 지역의 고운의 목소리가 기록될 수 있기를, 그 개인의 경험과 지식을 모아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고운에 대해 더욱 전체적인 이야기와 그림을 구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고운의 이야기들이 과거의 역사로만 다뤄지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함께 고민하며, 10대의 정치적 실천과 주체성도 제대로 이야기되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사회 변혁의 주체이자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청소년을 인정하는 것은, 고운에 대한 탄압과 낙인찍기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 출처: 프레시안 "고등학생운동, 상흔을 넘어선 청소년 주체성 논의를 말하다"(2025년 11월 28일)

이번 콘텐츠 제작을 계기로 고등학생운동과 청소년인권운동이 보다 서로를 가깝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싸우는 청소년’의 이야기가 더 잘 읽히고, 오래 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도록, 앞으로도 서로에게 든든한 연대자이자 지지자로서 관계망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소중한 ‘처음’을 함께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재단과 모든 기부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지원 덕분에, 청소년인권운동과 고등학생운동이 우리 사회와 역사의 주체로 다시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자세히 알아보기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청소년인권 보장을 위해 모인 활동가들의 단체로서, 청소년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 구조와 문화에 저항하고 청소년이 모든 영역에서 동료시민으로 평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운동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https://yhrjieum.kr


글,사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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