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게임, 하지만 누구에겐 ‘거대한 벽’
요즘 게임은 단순히 시간 때우기용 오락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재활 훈련이고, 누군가에겐 배움의 장이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따뜻한 미디어다. 하지만 화려한 그래픽과 빠른 속도감이 누군가에겐 거대한 벽이 되기도 한다. 게임이 비장애인을 위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조기기 없이 장애인 스스로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많은 게임이 빠르고 정교한 상지 동작(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을 포함한 팔 전체의 움직임)을 요구해 뇌병변, 지체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탓이다. 장애 유형에 맞춘 기능성 컨트롤러나 입력 장치 등 보조기기가 부족해 게임을 즐기고 싶어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또한 대부분의 게임 UI(사용자 인터페이스)와 UX(사용자 경험)가 장애인 친화적이지 않아 게임 수행을 위한 정보를 습득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모두를 위한 컨트롤러, 게임 접근성의 실현
여기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바로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이다. 장애인 게임 접근성(Game Accessibility)이란 장애를 가진 사용자가 신체적, 인지적 제약 없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게임 콘텐츠를 즐기고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이 문화와 여가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 권리를 실현하는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은 카카오게임즈,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국립재활원과 손잡고 ‘장애인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2023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지체·뇌병변 장애인들이, 각자의 몸 상태에 맞춰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마비나 관절 변형으로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게임은 단순한 놀이 그 이상이다. 게임을 통해 지독한 외로움을 털어내고,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귀며, 힘든 시기를 버텨낼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2025년에는 31명의 지원대상자에게 총 206대의 게임접근성 보조기기를 지원했는데, 지원 빈도 분석 결과 특수마우스(글래사우스프로, 토비아이트래커, 안경마우스 등)와 컨트롤러(엑스박스 컨트롤러, 닌텐도 플랙스컨트롤러)가 전체 68.6%로 가장 많았다. 지체·뇌병변 장애인의 특성상 게임 수행 환경을 개선하는 보조기기도 함께 지원하였는데, 거치대 및 책상 중심의 물리적 환경 지원 비중이 65.9%로 가장 높았다.
- 안구마우스: 눈 깜빡임으로 컴퓨터의 마우스 역할을 대신하는 보조기기다. 컴퓨터 모니터에 기기를 설치하고 화면에 화상키보드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띄워 사용한다.



- 게임 컨트롤러: 게임 조작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개발한 기기들로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다영 님의 왼손마우스, 신혜 님의 e스포츠 도전기
실제로 게임 관련 일을 했던 다영(가명) 님에게 게임 보조기기는 ‘그저 버티던 일상’을 ‘기대되는 하루’로 바꿔놓았다. 오른손을 못 쓰게 되며 깊은 우울감에 빠졌었지만, 왼손 전용 마우스와 특수 컨트롤러를 만난 후 다시 액션 게임을 시작했다. 이제는 50명이 넘는 게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예전 포트폴리오를 다시 꺼내 볼 정도로 자존감도 회복했다.
“이 사업은 저를 다시 태어나게 했어요. 병으로 인해 게임도, 디자인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모두 멈춘 채였던 저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요. 게임은 그냥 시간 낭비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만들고, 마음을 다시 움직이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는 분들이 누구든 지원사업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다영 님

중증 중복 장애를 가진 신혜 님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언어장애가 있어 ‘마이토키(MyTalkie)’를 활용해 소통하며 늘 새로운 도전을 꿈꿨다.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용기로 시작한 게임은 이제 신혜 님을 당당한 e스포츠 대회 선수로 성장시켰다. 아직은 시작 단계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웃고 교감하는 그 과정 자체가 신혜 님에게는 세상을 향한 소중한 통로가 됐다.
“실력이 좋은 건 아니지만 게이머라는 목표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기뻐요. 신혜가 집에서만 지내며 무기력하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아졌고, 활기를 되찾았거든요. 중증장애인에게 직업 활동은 매우 제한적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신혜에게 게임은 단순한 여가의 수단이 아니라 직업의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그게 보조기기가 만들어준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 나희숙 님(어머니)

당신의 컨트롤러는 평등한가? ‘모두의 게임’을 위한 첫 걸음
아직 게임접근성이 갈 길은 멀다. 게임 산업이 ‘미래 성장 동력’이라며 치켜세워질 때, 정작 누구나 차별 없이 즐겨야 할 ‘문화’로서의 고민은 부족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접근성의 본질이다. 접근성은 단순히 ‘멀다, 가깝다’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일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슬로프나 저상버스 같은 기초적인 생활과 관련된 접근성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인간다운 삶은 마음껏 놀고 즐기는 문화 활동 또한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 접근성은 단순한 보조 차원을 넘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로 봐야 한다.
낮은 접근성은 개인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배려하지 않은 사회적 설계 탓이다. 다영 님이 되찾은 자존감과 신혜 님이 느낀 도전의 즐거움이 ‘특별한 행운’이 되어선 안 된다. 누구나 장애 없이 플레이하는 세상, 그 시작은 ‘모두가 즐거울 권리가 있다’는 우리의 인식 변화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글 모금기획팀 신문용 매니저
사진 김권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