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해외] – 우리 베프(VIET FRIENDS) 하자!! 팀


당신의 자리에서 고통을 마주합니다

7박 9일 간 베트남평화기행을 통해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서 스스로 인정하고, 한국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잊지 않기 위해 떠난 [우리 베프(VIET FRIENDS) 하자!!] 팀의 길 위의 희망찾기


왜 베트남과 친구가 되려는가

[우리 베프(VIET FRIENDS) 하자!!] 팀

우리 베프(VIET FRIENDS) 하자!! 팀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그의 자리, 입장에 서는 것이다. 그곳에서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본다. 흘러 다니는 소리를 듣고 공간을 가득 메운 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둘러싼 공기를 느낀다. 낯선 감각을 경험하며 제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이해의 문이 열린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던 뭔가가 생생하게 다가올 때 비로소 공감이 움튼다. 그제야 ‘우리’라는 공간이 생기고, 타인과 함께 걸을 수 있다. 여행은 이것을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이다. 당신의 신발을 신고 세상과 마주하는 일. 2016년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 ‘길 위의 희망찾기’ 선정 단체 ‘의정부 베프’가 지향하는 여행이다.

“저희 ‘베프’는 ‘베트남 프렌즈’의 줄임말인데, 베트남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에서 출발한 모임이랄까, 동아리랄까… 우리의 모임 형태를 어떻게 규정할진 모르겠네요(웃음). 시작은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한지 50년을 맞이하는 2014년에 경기도교육청과 의정부시청의 의정부시혁신교육지구 창의교육허브 사업 예산의 일부를 지원받은 것부터였어요. 그땐 몇몇 선생님들이 주축이었고 ‘베트남평화봉사기행’이란 타이틀로 움직였죠. 저와 다른 청소년들은 참여자였는데 그들이 2015년에 베트남을 다녀와서 베프를 만들었어요.” (이예진, 꿈이룸배움터)

같이 회의하고 있다

당신의 신발을 신고 세상과 마주하는 일. 우리 베프(VIET FRIENDS) 하자!! 팀이 지향하는 여행이다.


4개월 전부터 착실히 준비했건만 여행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한국군에게 억울하게 죽은 다수의 민간인을 애도하고, 삭제된 역사를 제대로 알아보려고 시작한 여행이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돼 있었다. 억지로 끌려가서 목도하는 진실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한데 현실은 상상 외로 무겁고 버거웠다. 유적지에서 희생자를 기리고 생존자와 유가족을 마주하는 건 거대한 장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죄책감과 미안함,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이 뒤엉켰다. 그래서 이렇게 끝낼 순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베트남과 다시 만나야 했다. 그들의 자리에 서서 바라본 전쟁은 참혹했고, 그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쉬이 잠들지 못할 것 같았다. 이해와 공감은 자연스레 행동을 이끌어냈다. 더 적극적으로 베트남전을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단비 같은 ‘길 위의 희망찾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뭔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잊히진 않는데 무기력하게 가만있고 싶지 않아서


“뭔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잊히진 않는데 무기력하게 가만있고 싶지 않아서 함께 여행한 친구들과 공부를 시작했죠. 선생님도, 장소도 없으니까 각자 천 원씩 모아 카페에서 커피 2잔 시켜놓고 토론하고, 집에 있는 색지 같은 거 모아 수작업으로 모금함 만들고 광복 70주년 행사 땐 부스 얻어 모금도 했어요. 그리 모은 250만 원은 민간인 학살 지역의 학교 학생들에게 전달하자고 결심했죠. 때마침 두 번째 베트남 여행이 꾸려졌어요.” (이예진, 꿈이룸배움터)

경기도교육청과 의정부시청의 지원으로 두 번째 베트남평화봉사기행이 진행됐다. 여행 의사를 밝힌 60여 명 중 어려운 과정을 거쳐 17명을 선정했고 다시 4개월 간 준비한 후 두 번째 베트남 여행이 마무리됐다. 그것이 2016년 1월이었고 두 번째 여행자들도 베프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역사를 왜곡 없이 수용하기 위한 청소년들의 느슨한 연대체 ‘베프’의 제1의 목표는 ‘기억하기’였다. 그러자면 베트남 여행을 멈출 수 없었다. 또 다른 청소년과 이 고통스런 기억을 나누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싶었다. 한데 자원이 부족했다. 경기도교육청과 의정부시청의 지원 프로그램은 종료됐고 다른 곳의 후원을 얻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 인도적이고 자발적인 청소년의 여행 의도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편견 때문이었다. 외부 지원 없이 자부담으로 진행하면 좋겠지만 짧지 않은 해외여행을 부담 없이 다녀올만한 청소년은 없었다. 그때 눈에 띈 게 아름다운재단의 2016년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 ‘길 위의 희망찾기’ 프로그램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이 여행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지속돼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을 담아 발표했어요.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길, 희망찾기… 모두 베프를 수식하는 단어였어요. 우리가 이제까지 생각했고 정리했던 생각을 모아 서류를 제출하고 PT 준비를 했죠. 이 여행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지속돼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을 담아 발표했어요. 기쁘게도 지원을 받게 됐고 우리는 세 번째 베트남 여행을 지난 6월에 다녀왔습니다.” (홍다현, 발곡중)

7박 9일 간의 공감 여행


기획부터 프레젠테이션까지 자력으로 얻은 여행의 기회. 그것은 베프에게 ‘여행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부여했다. 그래서 베프의 여행 준비는 여느 때보다 철저했다. 5월 11일 여행 추진 배경과 함께 여행에 참여하는 이유와 동기를 나누는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공정여행 이해하기, 호이안 모둠기행 관련 조사 및 계획, 봉사활동 프로그램 논의, 베트남 문화 강연, 안전교육 등 총 10회의 사전 모임 중 무엇 하나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설렘과 책임이 버무려진 시간은 여행만큼 소중했다. 그리고 드디어 7박 9일 동안의 베트남평화봉사기행이 시작됐다.

미소짓는 세 소년

솔직히 말해서 다녀와서 제 자신이 별로 달라진 건 없어요. 그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잊지 않는 거예요.


“제겐 첫 세계여행이었어요. 비행기도 처음이라 신나는 마음으로 다녀왔어요. 물론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그 또한 고마운 경험이었어요. 베트남의 낯선 풍경과 그곳 재래시장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좋았어요. 7박 9일이란 시간이 짧게 느껴졌어요.” (한상욱, 의정부고)

베트남평화기행은 중부의 호이안, 꽝남, 꽝응아이를 방문하는 것과 남부 호치민에서 자유여행을 즐기는 두 축으로 나뉘었다. 통역을 맡은 다낭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 대학생들과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하며 평화를 위한 워크숍을 가지는 한편, 학살지역의 판쩌우찐 중학교 학생들과 공동평화수업을 진행했다.

“3일 동안 판쩌우찐 중학교 친구들과 지냈어요. 둘 다 영어를 잘 하는 게 아니라 몇 개의 단어만 써서 대화를 나눴는데도 마음이 통하는 것 같더라고요. 한국 가수 이야기를 나눌 땐 즐거웠고 위령비를 둘러보고 피해자분들을 만날 땐 의지가 됐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페이스북으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어요. 외국인 친구는 처음이에요.” (홍다현, 발곡중)

서로의 낯선 이야기가 배려와 신뢰 위에 켜켜이 쌓였다. 현지 친구들과 함께 퐁니퐁넛위령비와 하미마을위령비를 찾아가선 평화의 의미를 되새겼고, 팜티화 할머니와 유가족, 평화의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무거운 마음을 나눠 가졌다.

“고엽제 피해를 입고 의식만 있고 생각은 할 수 없는 평화의 마을 분들을 보며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싶어 마음이 심란했어요. 그때 어떤 분이 이리로 오라고 하시더니 저를 꼭 안아주셨어요. 굉장히 울컥했죠. 이런 분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하고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우락, 의정부고)

휴전 상태인 분단국가의 청소년이었지만 전쟁을 피부로 느낄 순 없었다. 때때로 들려오는 전쟁은 시공이 다른 어쩌면 잘 짜인 허구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가설 수 있는 전쟁은 피해자의 자리에서였다. 그래서 가해자의 자리는 불편했다. 베트남평화봉사기행은 익숙한 자리에서 바라보던 것을 낯설게 만들었다.

“옛날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잘 알진 못했어요. 책을 봐도 베트남 전쟁은 무슨 일로 발발했고 어떻게 진행, 종전했고 그 일로 우리나라가 발전의 계기를 얻었다는 식으로 나와요. 그래서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청했는데 생각보다 더 충격이었어요, 그곳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은. 머리로 알던 것과는 달랐죠. 생각할 게 더 많아졌고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다녀와서 제 자신이 별로 달라진 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도 분명하고요. 그저 계속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공부하는 것뿐이에요. 잊지 않는 거예요.” (오종서, 의정부고)

베트남 여행에서 품은 희망

이야기를 나누는 중

타인을 공감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유로이 내디딘 한 발. 그것은 무겁고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분명 ‘희망’이었다


다녀온 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알게 된 이상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였다. 청소년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버리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뭣도 모르면서 휩싸인 행동 아니냐는 권위적인 피드백에 움츠리지 않았다. 베프는 평화를 지향하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태도에 집중할 뿐이었다.

“여행이라는 게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고 그런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생각해요.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잣대가 자문화중심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겠다고 결심했어요.” (박정환, 꿈이룸배움터)

7박 9일의 여행은 끝나고 두 달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베프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움튼 또 다른 길 때문이다. 타인을 공감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유로이 내디딘 한 발. 그것은 무겁고 슬프고 고통스럽지만 분명 ‘희망’이었다. 그것이 베프가 여행을 통해 품은 ‘꿈꿀 내일’이었다.

글 우승연 ㅣ 사진 조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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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희망찾기]란?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는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 ‘길 위의 희망찾기’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아동청소년들에게 국내외 여행 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서 ‘청소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행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여행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트래블러스맵 (http://www.travelersmap.co.kr/) 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6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 ‘길 위의 희망찾기’ 지원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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