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연락 두절. 그도 ‘도망자’가 되었다. 빚쟁이들을 피해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중략)
날카로운 삶의 예각이 그를 찔렀다.
올해 7월 ‘건강은 압류할 수 없다’ 기사를 연재한 전진식 <한겨레21> 기자의 글 일부다. 흔히 보던 기사와 달리 문학적 표현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전진식 기자의 연재기사는 커버스토리를 시작으로 지난 10월 초까지 4회에 걸쳐 계속됐다. 다음 스토리펀딩에서도 같은 글이 연재되면서 430여 명이 아름다운재단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에 참여했다. 모금캠페인을 펼치는 내내 참 궁금하고 신기했다. 이런 호흡과 온기로 기사를 쓰는 그는 누구일까?
가을이 깊어지는 어느 날, 아름다운재단 정기나눔팀원들이 모두 함께 전진식 기자를 만났다.
전진식 기자와의 첫 만남
아름다운재단이 전진식 기자를 처음 만난 것은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이 한창 준비 중이던 지난 봄이었다. 사실 국민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속한 저소득층의 어려움을 다룬 이번 캠페인은 담당자에게도 어려운 주제였다. 사안이 복잡했고 바로잡아야 할 제도적 문제점은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원사업과 모금캠페인은 이제 막 시작 단계였다. 생소하고 복잡한 이슈를 깊이있게 전달할 언론이 필요했다.
전진식 기자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 꼭 함께하고 싶은 기자였다. 지난 2015년 그가 쓴 ‘우리 곁에 장발장‘ 연재기사는 가난으로 인해 벌금을 내지 못하는 우리 시대 장발장 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삶은 생계의 어려움으로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체납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 가혹해지는 제도의 모습 또한 닮아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 간사들은 무작정 그를 찾아갔다. 한 번에 승낙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거절에 대한 마음 준비도 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바로 그 날 연재 결정이 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답했고, 자신을 찾아 준 것이 오히려 ‘고맙다’했다.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름다운재단과 전진식 기자는 전국 곳곳에 있는 생계의 어려움으로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사람들을 함께 만났다. 무더운 여름부터 가을의 초입까지 함께 달렸다.
그가 만난 ‘건강보험 체납자’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정기나눔팀 간사들에게 “문학을 전공한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전진식 기자. 소개 때문이 아니더라도 기자라기보다는 사람에 관심이 많은 문학청년 같았다. 수줍음이 많았고, 말소리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에는 기자로서의 소신이 강하게 묻어 있었다. 자신도 풍족한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다는 그는 현장에서 만난 체납자들이“삼촌 같고 부모 같고 조카 같다“고 했다. 다만 “여전히 어려운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에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사실 가려져 있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가,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그 분들을 가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생계의 어려움으로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사람들은 밀려드는 부채, 사고, 실업이나 계속되는 가난으로 삶이 무너져내린 경우가 많다. 당장 오늘 하루를 장담할 수 없는 절망적인 삶을 겪기도 했다. 그 와중에 건보료까지 챙길 여유는 없다. 그가 만난 사람들도 그랬다. 그의 기사는 문학적이지만 감성적이지는 않다. 차분하고 담백하다. 가만히 읽다 보면, 사람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해 그 사람을 몰아붙이는 제도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간다.
글을 읽은 사람들은 단순히 ‘도와야 한다‘를 넘어 ‘제도를 바꿔야 한다‘ 말했다.
“10살, 건강보험 체납자 영희”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로 10살 체납자 영희(가명)를 떠올렸다. 영희는 부모의 학대로 그룹홈에서 사는 아이다. 건강보험공단은 학대한 부모의 체납 보험료 115만 5,240원을 내라는 독촉장을 수차례 보냈다. 그가 담담하게 쓰려 했다던 영희의 이야기는 스토리펀딩에서 3,7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았다. 댓글은 570건이 달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10살 아이에게 독촉장을 보내며 “법대로 했으니 무조건 건보료가 면제되지 않음”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이슈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공감은 SNS 공유와 댓글, 기부로 이어졌다.
전진식 기자는 “기사를 썼을 때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 모금액이 많아지면 내 돈도 아닌데 기쁘다. 기사를 통해 제도가 개선되고 취재한 사람들의 처지가 좋아지면 내 일처럼 좋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를 보면서, 기자와 활동가가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커다란 이슈에 눈과 귀가 가요. 그에 비해 작은 이슈는 묻히는 경우가 많죠. 생계형 건보료 체납도 마찬가지였어요. 앞으로 어떤 기사를 쓰고 싶냐고 묻는다면… 큰 이슈는 사실 제가 아니어도 쓸 사람이 많으니,저는 소외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제 기사를 본 사람들이 손에 잡힐 듯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그래서 마음이 저릴 수 있도록 전달하고 싶어요.”
4개월 가까이 계속된 ‘건강은 압류할 수 없다‘ 기사 연재는 이제 마쳤지만, 그는 앞으로도 여러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기사를 쓸 것이다. 겨울로 다가서는 이 계절, 체온이 있는 그의 기사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스토리펀딩 ‘건강은 압류할 수 없다’ 연재를 마치며
다음 스토리펀딩 ‘건강은 압류 할 수 없다’ 전편 보기 1화 “아파도 3만 원 없어서 병원 못 가요” 2화 “통장은 벌써 차압이.. 나이도 어린데 겁나요” |
건강할 권리 찾기 캠페인 <60일의 건강보험증>은 계속된다
생계의 어려움으로 건강보험료를 체납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사업은 이제 시작이다.
현재 아름다운재단에서는 궁극적인 제도개선을 위한 ‘체납자 실태조사와 제도개선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당장 고통받는 사람들도 외면할 수 없다. 아름다운재단은 <60일의 건강보험증>을 통해 생계의 어려움으로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한 체납자 중 진료가 시급한 사람들의 긴급지원을 실행한다.
현재 가족 중 병·의원 및 약국 이용이 시급한 경우 체납보험료 1회 분할납부금과 1개월 건강보험료를 지원한다. 이를 통해 적어도 60일만큼은 의료비 추징과 체납료 독촉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체납자들에게 ‘결손처분제도‘를 알리고, 체납 독촉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실제 결손처분을 돕는다.
가난을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모두가 안녕한 사회‘, 아름다운재단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이 당신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변화다.
글 김남희 간사 l 사진 김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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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름
11월 쌀쌀한 날씨 속에 가슴따뜻한 기사 넘넘 좋네요~~!! 이글을 읽고 저도 기부에 동참합니다.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서 힘이되었음 합니다.
아름다운재단 공식블로그
늘푸름님 따뜻한 댓글이에요. 동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나눔사업국 정기나눔팀ㅣ김남희 간사
안녕하세요.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정기나눔팀 김남희 간사입니다. 늘푸름님의 댓글로 하루종일 가슴이 따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할 권리가 온전히 지켜지는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