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을 안고 조천근 기부자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유리문 너머로 언뜻 눈이 마주쳤던 바로 그 순간, 어릴 적 주말이면 즐겨 보던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떠올랐다. 꼭 만나고 싶었던 첫사랑, 선생님 혹은 오랜 친구를 찾아가 리포터가 마침내 “주인공이 저기 계시네요. 드디어 찾았습니다~!”하며 주인공의 환한 웃음 띤 얼굴이 클로즈업 되던 익숙한 그 장면이 문득 겹쳤던 건 왜일까? 아마도 이 글을 쓰는 간사인 나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한 기부자님이기에, 과연 어떤 분일지 궁금한 마음에 기대감을 한껏 품고 찾아간 만남이어서 일 테다.

“우리 식구들 진짜 고맙고요~”

식사자리에서 웃으며 이야기 하시는 모습

오늘의 주인공, 조천근 기부자님.

십여 년 전, 평소 호감을 가졌던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 꾸준히 기부하고 계시는 조천근 기부자님. 기부인생 총 35년 차를 자랑하는 베테랑 기부자이다! 그런 조천근 기부자님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어 시간 동안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정말 스무 번은 족히 들었던 말이 있다. 

“우리 식구들 진짜 / 항시 / 정말 /무지하게 고맙고요~^^” 

처음 ‘식구’란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했다. ‘정말 아름다운재단을 사랑하고 계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기부자란 존재는 단순히 기부금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뜻을 함께하며 같은 지향점을 바라보는 동반자’라는 머릿속의 개념이 마음속으로 뛰어들어온 순간이었다. 조천근 기부자님은 만나 뵙고 싶다고 연락을 했을 때부터 “나 때문에 멀리까지 오는데 무조건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같이 해야지요”라며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실만큼 다정한 분이었다. 물론, 전화로도 만났을 때도 한사코 사양했지만 따뜻한 그 말씀을 결코 거역할 수 없어 결국 정말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환대와 맛있는 음식 덕분에 더욱 풍성했던 나눔인터뷰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솔직히 벌써 12년이나 됐는지도 몰랐어요. 우리는 한 번 하면 쭉 가니께~ 35년 전 첫 기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열 곳이 넘는 곳에 기부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름다운재단은 무조건! 믿고 맡기지요. 내가 우리 식구들 진짜로 믿고, 나는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을 해내는 참말로 대단한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고생으로 사회가 밝아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배부른 음식보다도 훨씬 든든한 격려 앞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배부른 마음을 얻었다. 식구(食口)란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그날,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재단의 ‘한 식구’가 되었다.

한결같이 지켜 낸 당신과의 약속

옛 기억을 회상하시는 듯한 기부자님

“내가 하는 일의 매출액 1%를 기부하자는 생각으로 처음 시작했어요. 기부하는 중간에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순간들도 있었지. 1997년 IMF 당시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사업을 하는 나도 굉장히 어려웠는데 특히나 회사 직원의 잘못으로 엄청난 빚까지 떠안은 적이 있었죠. 아이들이 중고등학생 일 때였는데 과외 한 번 못 시키고, 아빠로서 학교 한 번 못 찾아갈 정도로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지요. 어머니까지 중풍으로 쓰러지시면서 상황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때도 기부를 멈추지 않았어요. 내가 기부를 끊어버리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은 어떡하나 싶은 그 마음 때문에 결코 멈출 수가 없더라고. 그땐 지금보다 젊었고, 내가 좀 더 노력하면 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매출액의 1% 기부’라는 다짐 이후로 어떠한 상황과 어려움도 스스로와의 약속을 꺾어버리지는 못했다. 기부를 중단한다고 해도 누구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힘든 상황 속에서조차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첫 마음을 굳건히 지켜낸 삶이었다.

“그때 참. 진~짜 열심히 살았어(허허)… 요즘, 아내가 전체 기부금을 조금 줄이는 게 어떠냐고 슬쩍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계속 가야지요. 안 그래도 재단에도 예전보다 조금 줄이게 돼서 그것이 늘 미안하고…”

호탕한 웃음 섞인 말씀 뒤에 얼마나 많은 노고가 담겨있는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 낸 뚝심 있는 나눔에 그저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세상을 위해 더 깊고 넓게 마음을 쓰는 기부자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마음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기부금의 많고 적음, 늘리고 줄이는 것이 기부자를 바라보는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생각했다.

다음세대를 생각하는 진정한 어른

그간의 다양한 나눔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동,청소년을 위한 지원사업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두고 계셔서 그 이유를 여쭤보았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교실도 제대로 없었고, 점심도 못 싸다니는 친구들도 많았어. 우유를 큰 통에 끓여서 나눠주면 그걸 나눠 먹고 그랬던 기억이 있지.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어야지 못 먹고 그런 아이들을 생각하면 제일 마음이 쓰여. 나도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댁에서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면서 참 외로움도 많이 느끼고 힘들었는데 그때 생각도 나고. 그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이 취업도 너무 어렵고 참 힘들잖소. 어린 시절 내가 힘들었을 때를 떠올리면 항시 외롭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생각나.”

조천근 기부자님은 물질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이 시대의 아동청소년 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늘 가슴 한 부분에 간직해둔 어른이셨다. 그래서 자신이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돕고자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신 듯 했다.

나무 옆에 서서 자연스러운 포즈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만큼 힘들고 어렵게 산 세대가 없는 것 같아. 하지만 지금 젊은이들도 일자리 구하기도 너무 어렵고, 당장에 내 삶이 너무 팍팍하니 기부 또한 어렵지. 그래도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 우리 식구들이 그런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어른들도 젊은이들을 많이 지지해주고 그래야겠지만…”

기부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대를 나누고 책임을 미루는 어른이 아닌, 세대를 가로질러 같이 이 사회의 책임을 짊어지려 하는 진정한 어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믿음에 대한 책임감

“재단에서 보내주는 소식지나 사업보고서는 지금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갖고 있어. 휴대폰으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직접 보는 게 더 좋더라고.”

열 곳이 넘는 곳에 기부하고 계시지만 저마다 보내오는 소식지와 보고서들은 꼼꼼히 챙겨 보고 계셨다. 기부를 시작한 이후로는 늘 믿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계신다는 말도 전해주셨다.

“기부하면서 제일 중요한 게 믿는 거.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더 이상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곳엔 아무리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참 오랫동안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을 했어도 최근에 기부를 딱 끊어버렸지요.”

강한 어조와 달리 내심 씁쓸함이 담긴 목소리 앞에서 ‘막연한 신뢰보다는 정말 어떤 일을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 늘 관심으로 지켜보고 계시는구나.’를 생각했다. 이런 기부자님들의 마음을 기억하고 더욱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그 믿음에 보답하도록 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부자들보다 더 나은 생각으로, 더 고생하면서 하고 있으니 우리가 생각할 땐 간사들이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단체들이 한 번씩 문제가 될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다 고생하고 노력하는 와중에 한 번씩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 하나로 그동안의 수고한 일까지 다 욕하는 건 좀 그렇더라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주시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참 고맙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믿어주시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허투루 일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눔은 언제까지나 진행형

촬영에 쑥스러운 듯 웃으시는 기부자님

“아직도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면서 365일 잊지 않고 하는 게 ARS로 2,000원씩 기부되게 하는 거. 그리고 나중에 마지막으로는 시골에 조그마한 요양원을 하나 세워서 내 능력에 맞게, 내가 직접 도울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서 아내와도 이야기 나눴어요. 사후에는 장기기증도 할 거라 그것도 벌써 아내와 함께 장기기증 서약도 해뒀고. 그래서 건강해야 돼(웃음)”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미 많은 곳에 기부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을 찾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잘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한 계획을 멈추지 않으신다니!! 나눔이 습관처럼 스며있는 삶. 그리고 삶 그 너머까지의 나눔도 현재진행형이었다. 또한 그 모든 나눔이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늘 아내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하고 있어 특히 더 빛났다.

근사한 돌담 앞에 서 계신 기부자님
“나보다 더 못한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 살면서 위만 보지 말고 밑에만 보면 되는 거야. 내가 술도 좋아하지만(웃음) 걷는 것도 좋아하고, 운동도 하고 있으므로 건강관리 잘해서 오래오래 계속 기부해야지”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기부자님과 나눴던 이야기를 곱씹자 박노해 시인의 [그 맑은 두 눈에]라는 시가 생각났다. 그 누구보다 충만한 나눔의 실천, 그 속에서 숨길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충만한 표정. 단순히 물질적인 여유만을 가진 사람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기품이 느껴졌다. 조천근 기부자님의 선한 마음과 실천만큼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우리 식구’로 남아주시길 바라본다. 🙂

 


나누는 자가 살아온 일생은
움켜쥔 자가 쌓아온 생보다 충만해라
그 선한 이에게 좋은 날들이 이어지기를

[그 맑은 두 눈에/ 박노해] 중에서

 

글 서수지 간사 l 사진 임다윤

댓글 2

  1. 안인호

    조천근 기부자님의 글을읽고 나눔에대한 실천을 다시 새겨봅니다 더불어 건강해야 오래 기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아름다운재단 공식블로그

      네, 조천근 기부자님처럼 나눔에 대한 생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큰 힘이라 느낍니다. 안인호님도 건강한 삶, 나누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 의견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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