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홀로사는어르신을위한국배달지원사업]
통계청이 지난 12월 19일에 발표한 <2013년 사회동향 통계>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이 10%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 중 100만여 명이 가족 없이 혼자 생활하는 이른바 독거노인이다(2010년 인구총조사 통계). 전체 1인 가구의 1/4을 차지하는 그들은 10년 단위로 100만 명씩 늘어날 전망이다. 빠른 고령화와 급락하는 노인 경제력은 우리 사회에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 1위’라는 화두를 던졌다.
해결해야 될 문제로 떠오른 ‘독거노인’은 더 이상 다양한 삶의 방식을 표현하는 단어일 수 없다. 자신의 미래일까 싶어 두렵고, 현재 돌봐야 해서 불쌍한 존재의 대명사일 뿐이다. 어느 시에서처럼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늙음에 대한 불안. 홀로 사는 ‘독거’는 다른 것에 예속되거나 의존하지 않고 존재하는 ‘독립’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3년 1월, 송래형 씨로부터 시작된 아름다운재단의 ‘은빛겨자씨기금‘이 소중하다. 불안한 노년의 유일한 비빌 언덕인 국민연금의 반을 뚝 떼어 독거노인의 불안을 다독거렸으므로. 독립이라 불리지 못하고 그저 홀로 사느라 어려운 이들을 지원한 순간 신기하게도 ‘불안’은 ‘나눔’으로 바뀌었다. 하나라도 더 쟁여둬야 미래가 덜 불안하다는 망상엔 균열이 일었다. 수년 동안 동절기에 진행된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한 국 배달 지원 사업’이 단순히 봉사가 아닌 이유이다.
사업을 이끄는 중추 ‘아름지킴이’
“사업1안으로 재가복지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밑반찬사업이에요. 지역 내 몇몇 어르신들을 직접 방문해서 반찬을 전달해 드립니다. 수년 전부터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홀로 사는 어르신께 국을 배달하고 있어요. 찬바람이 불면 따뜻한 국이 아쉬웠는데 여력이 없어 생각만 하고 있었거든요. 이런 사각지대를 살피고 사업을 진행해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올해로 3년째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일하고 있는 서울시립 도봉노인종합복지관의 김지현 사회복지사. 12월부터 3월까지 총 16회의 국 배달을 시작하는 첫날, 부피가 남다른 국 배달 용기를 점검하는 김 사회복지사의 얼굴에 설렘과 긴장이 묻어난다. 일주일에 두 번 밑반찬을 제공받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 예순다섯 분이 기뻐하실 모습이 그려져서이다.
“예전엔 저희가 직접 밑반찬을 만들었는데 어르신들 기호와 건강에 맞춤한 밑반찬을 제공하기 위해 이제는 전문 업체와 함께 해요. 국 메뉴도 마찬가지죠. 일주일에 2번 업체가 저희에게 이 음식들을 배달해주면 ‘아름지킴이’이라는 봉사단이 어르신을 만나요. 80여명의 중·고등학생과 학부모가 조를 이뤄 어르신 댁에 방문하는데 이 시스템이 저희 복지관 자랑거리입니다.”
김 사회복지사가 이야기했듯 가족봉사단 ‘아름지킴이’는 지역의 자랑거리다. 처음엔 의식주 지원에서 시작했으나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런가. 눈 맞춤을 하고 건강을 묻고 손 한 번 그러쥐면 쓸쓸한 마음에 햇볕 드는 게 당연지사.
아름지킴이의 지속적인 방문 이후 어르신들은 정서적으로 지지받았음을 보고했고, 그런 연유로 아름지킴이는 ‘2012년 복지프로그램 공모’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도봉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됐다. 선덕고, 정의여고, 자운고 학생과 학부모 80~100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도봉구 저소득 어르신들게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국과 밑반찬을 배달한다.
나를 변화시키고, 모두를 변화시키는 ‘국 한 그릇’
오후 4시, 중년의 여성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서로 가볍게 목례를 나눈 뒤 테이블 위에 놓인 반찬과 국을 챙기기 시작한다. 아름지킴이 학부모 구성원이다.
“중학교 때는 직접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어르신을 찾아뵀어요. 아이가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이렇게 기관과 연결돼서 배달만 담당하니 좀 아쉬운 부분도 있죠. 하지만 더 자주 더 맞춤하게 밑반찬을 제공할 수 있어 좋아요. 전달만이 아니라 말벗이 돼야 겠다고 생각해요. 아프신 곳은 없는지, 집안은 괜찮은지 살펴드리는 것까지 우리의 몫이라고 아이와 이야기하죠.”
2년째 아름지킴이 봉사단장을 맡고 있는 박지영 씨. 전국 회원 10만 여명 규모의 학부모샤프론 봉사단장이었던 그녀는 오랫동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 혼자 활동했다면 5년 동안 꾸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료 학부모, 허드렛일도 마다않고 서포터로 존재한 도봉노인종합복지관 사람들 그리고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가 있었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시작은 봉사 점수였죠. 한데 이 일을 하다 보면 관계가 형성되거든요. 일주일에 2번, 그게 아무리 잠깐이라도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특히 아이들한테. 솔직히 과제가 많거나 시험이거나 날씨가 사납거나 피곤하면 가고 싶지 않을 텐데 꾀를 안 부려요. 함께 봉사하면서 아이의 책임감에 놀랄 정도라니까요. 누군가와 맺은 관계를 책임지려는 아이의 모습이 참 기특해요.”
차가 없는 팀은 무거운 반찬을 들고 만원버스를 타고 캄캄한 골목을 걸어야 어르신 댁에 도착한다. 눈이 오면 미끄러지기도 하고 비가 오면 발이 젖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한 번을 거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해서다.
이혼 후 오랫동안 홀로 지내시는 우울한 할머니는 갈 때마다 우신다. 그런가 하면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는 자꾸 물건을 훔쳐갔다고 야단을 치신다. 집안이 엉망이라 문밖에 놓고 가라는 할아버지도 계시고, 어느 분은 돈을 쥐어주면서 아파서 한 끼도 차려먹지 못해 어지러우니 두유 좀 사달라고 부탁하신다.
아주 잠깐 밑반찬만 배달할 뿐이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는 게 사실이다. 피상적이고 막연했던 늙음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건 물론이고 살아있는 관계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아흔을 넘긴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달라졌어요. 제 미래도 다르게 그려보고요. 아이들도 그래요. 사춘기 시절을 격하게 지나는 아이들이 이 활동을 경험하면서 달라지더라고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건 참 중요하다 싶어요. 어르신들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그녀가 아이들에게 “우리가 그분들께 뭘 나눠주는 게 아니라 외려 우리가 받고 오는 게 봉사”라고 강조하는 건 괜한 제스처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자신과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나눔을 살펴보게 된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으며 세상 살면서 마구 덧댄 욕망을 하나둘 내려놓는다. 더불어 살면 외로움도 슬픔도 불안도 더디 스민다는 사실 또한 활동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이미 따뜻한 국 한 그릇 같은 존재다.
“국 배달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힘들어요. 두세 개 짊어지면 무겁잖아요. 그래도 국이 나오면 반가운 게, 어르신들 퍽퍽해서 못 드시던 밥 술술 넘기시겠다 싶어서예요. 추운 속 달래는 건 두말할 것도 없죠. 저나 아이들, 아름지킴이에게 이 활동이 그럴 거예요. 귀찮을 때도 있고 힘들기도 하지만 퍼석거리는 삶을 술술 넘어가게 하고 싸늘한 일상을 따뜻하게 데워줘요.”
글. 우승연 | 사진. 박지영, 홍리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돌봄> 배분사업이 바라보는 복지는 ‘사회로 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 입니다. 주거권, 건강권, 교육문화권, 생계권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의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고자 합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시민이라면 누구나 갖는 권리를 지원하는 <사회적 돌봄>과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