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푸른 낯을 드러낸 맑은 하늘 덕분에, 동네를 걷기만 해도 나들이 기분이 절로 나는 4월의 주말. 이 화창한 봄날에 산도 공원도 아닌, 아름다운재단 회의실로 속속 모여든 10명의 새내기 기부자들을 만났다. 딸 둘을 동반한 아빠, 신혼부부, 혼자 온 청년 등 면면은 제각각이었으나, 아름다운재단과 나눔의 인연을 처음 텄다는 공통점 하나로 마주 앉아 눈인사를 나눴다. 재단과 다른 기부자들을 만나는 ‘처음자리’라 초반엔 서름서름했으나, 두 시간 남짓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포근하게 무르녹은 ‘마음자리’를 볼 수 있었다. ‘나눔’이라는 만능열쇠가 마음과 마음을 열어준 까닭이다.
아름다운재단을 소개합니다!
새내기 기부자들은 봄날의 유혹 속에도 기부를 결심한 아름다운재단을 더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해 꿋꿋이 ‘처음자리 마음자리’에 참여했다. 진지하게 반짝이는 두 눈으로 아름다운재단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는 시간.
먼저, 공익성, 상호존중성과 함께 재단이 추구하는 핵심가치인 ‘투명성’을 주제로 한 짧은 영상을 감상했다. 전문배우들이 아닌 간사와 가족, 기부자 등 아름다운재단 관계자들이 직접 출연해 훈훈함을 더한 재단 홍보영상을 감상하며, 기부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깃든다. 아빠(양승우 씨)를 따라온 오늘의 최연소 참가자, 흥밋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일곱 살 채아의 주의를 끄는 데도 성공한 듯싶다.
아름다운재단을 선택한 이유로 다수의 기부자들은 ‘투명성’을 첫 손에 꼽는다. 비영리단체 최초로 회계 투명성 프로그램을 도입했을 뿐 아니라, 배분위원회와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공정한 배분과 기금운용을 도모하며 활동내역을 모두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등 투명성을 지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이끌어낸 값진 신뢰다.
아름다운재단이 우리 사회 내에서 기부에 대한 인식 전환과 나눔문화 확산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되짚어볼 때 꼭 이야기되는 운동이 있다. 2000년 재단 설립 초기부터 진행해온 ‘1% 나눔운동’이 그것.
“지금은 ‘1% 나눔’이란 말이 흔히 쓰이는 용어가 됐지만, 아름다운재단이 이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가진 것의 1%를 나눈다는 개념이 익숙하진 않았어요. 기부란 돈이 아주 많거나, 큰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던 때였죠. 기부에 대한 인식이 이러할 때, 아름다운재단은 ‘세상에서 나눌 수 없을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는 취지에서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 기부자소통팀 김지애 팀장
아름다운재단은 2015년 런칭한 ‘아름다운Day’를 통해서도 ‘1% 나눔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돌, 생일, 입학, 졸업, 결혼 등 기억하고 기념하고픈 인생의 모든 날이 나눔과 함께 더욱 아름다운 날로 거듭날 수 있게 말이다. 처음자리의 ‘달달지수’를 한껏 상승시킨 신혼부부 이지은&이영일 기부자도 이를 통해 재단과 첫 인연을 맺었다. 결혼기념기부는 지은 씨가 영일 씨 몰래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고. 결혼 후 처음 맞는 남편 생일에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어 고민하다가 기부를 택했다는 ‘갓새댁’, 지은 씨의 예쁜 마음에 영일 씨는 새삼 또 한 번 아내에게 반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재단이 진행하는 지원사업은 교육, 환경, 건강, 주거, 노동, 안전, 문화, 사회 8개 영역으로 나뉜다. 각 영역별 브리핑에 앞서 기부자소통팀 김지애 팀장은 이 사업들이 고정불변의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가령 2000년대 초반, 단전·단수 가정을 돕기 위해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했던 ‘물 한방울, 빛 한줄기 나눔캠페인’이 제도 변화를 이끌어내며 종료됐듯, 역할을 다하고 마침표를 찍는 사업도 있다. 그 빈자리엔 새로운 지원사업이 들어선다. 근본적인 문제해결과 지원의 사각지대를 살펴 발굴하는 또 다른 이슈.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아름다운재단의 현주소다.
8개 영역 중 건강영역의 ‘생계형 건강보험료 체납자 지원사업’은 새내기 기부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사업이다. 자녀 둘을 키우는 40대 가장, 양승우 씨와 김효진 씨는 똑같은 팟캐스트를 통해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을 접했다. 매달 5만원도 안 되는 건강보험료를 낼 수 없는 ‘생계형’ 체납자들이 있다는 것, 6개월 이상 건강보험료를 연체하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 체납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의 예금과 생계수단까지 가압류되고 통장 거래마저 중지된다는 것. 아빠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 대학생, 사회초년생 자녀에게까지 부모의 건강보험료 체납이 대물림되는 가혹한 현실이었다. 두 아빠는 이들의 체납보험료 탕감을 위해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를 시작했다. 국민 모두 어떤 차별 없이도 병원을 이용할 수 있어야하고, 가난해서 건강을 잃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지원사업의 취지에 깊이 공감한 까닭이다.
나눔으로 위로 받고 희망을 품다
8개 사업 영역에 대한 브리핑이 끝난 후 이어진 기부자들의 ‘나눔 한마디’ 시간. ‘나에게 나눔이란 [ ]이다’라고 괄호를 채워 넣으며, 나눔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나눔의 의미매김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눈인사나 살짝 나눴을 뿐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은 사이들인지라 다소 수줍고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으나, 씩씩하게 발표 첫 순서를 자원한 유연화 씨 덕분에 이야기의 물꼬가 트였다.
첫 발표자에게만 주어진 쿠키 선물을 옆자리 채영&채아 자매에게 쾌척하며 시원하게 분위기를 띄운 연화 씨는 [나를 위한 위로]라고 나눔을 정의했다.
“나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지라도 계속 마음 쓰이고 미안해지는 일들이 있어요. 세월호가 그렇고, 생리대 살 돈이 없어 깔창을 사용하는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 이야기가 그랬죠. 이를 어쩌면 좋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죄의식마저 쌓여가던 중에 기부를 선택했어요. 미안한 마음이 나를 너무 옥죄지 않도록 하는 하나의 방편, 어쩌면 나를 위로하고픈 마음으로 나눔하고 있습니다.”
귀여운 딸․딸 아빠로 눈길을 끌었던 양승우 씨는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을 통해 아름다운재단을 접하고 올해부터 1% 나눔을 시작했다. 재단에선 새내기 기부자이지만 오래 전부터 다른 단체를 통해 국내외 아동을 후원해왔다. 아이들이 겪는 가혹한 현실에 유독 가슴이 반응하는 아빠에게, 나눔이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시련이나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빛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했다.돌 기념 기부로,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의 나눔을 시작한 고은혜 씨에게, 나눔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예전에 사회복지 쪽 일을 잠깐 했어요. 한데, 기부금이 100% 지원대상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복지단체 운영비로도 사용되는 부분에 회의를 품어 그 일을 그만두고 일반 직장에 취업했죠. 제 시각이 달라진 건,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였어요. 씨앗을 뿌렸다면 물 주고 가꿀 사람이 꼭 필요한 법인데, 그 소중한 역할을 왜 몰랐을까 싶더라고요.”
결혼 7개월 차의 신혼부부는 나란히 앉아 속닥이며 적은 나눔 한마디를 수줍게 소개했다. 지은 씨에게 나눔이 [배움]이라면, 영일 씨에게 나눔은 [연금복권]이다. 배움도 행운의 당첨금도, 부자를 만드는 일. 부부가 차곡차곡 쌓아나갈 마음의 부가 사뭇 기대된다.
김진석 씨에게 나눔은 [나눈 만큼 무언가를 채워가는 것]. 나눌수록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가 되는, 나눔의 마법을 믿는 까닭이다. 대학 때부터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다녔던 진석 씨는 취업 후 예전처럼 시간을 내지 못해 봉사활동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기부로 대신하고 있다.
정지훈 씨에게 나눔은 [가치있는 소비]다. 어쩌면 자신이 가치 없게 소비해버렸을지도 모를 돈이 기부를 통해 가장 가치있는 쓰임새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그의 가치있는 소비생활에 기부자들 모두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매년 여름 마다 가족과 함께 라오스, 캄보디아 등 해외 저개발국으로 봉사활동을 떠난다는 김효진 씨. 그에게 나눔은 [세상 최고의 기쁨]이다. ‘60일의 건강보험증’ 캠페인을 통해 아름다운재단을 알게 된 그는, 아내와 의논 후 기부를 시작했다.
“저에겐 이미 종교가 있지만, 만약 ‘나에게’란 단서가 붙지 않는다면 나눔은 ‘세상 최고의 종교’라고까지 생각합니다. 빌 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의 기부가 사회에 일으키는 파장과 반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자 다소 수줍던 ‘처음자리’가 푸근한 ‘마음자리’로 무르익었다. 처음 만난 사이들이지만, 나눔으로 위로받고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마음들이 겹치고 번져서다.
‘처음자리 나눔자리’의 상징적 이벤트인 나눔씨앗을 화분에 심고, 나눔의 인연으로 찬란한 봄날을 함께한 기부자들끼리 기념사진을 찍었다. 기부자들이 하나씩 품고 간 나눔씨앗 화분에선 대략 사흘 이내로 싹이 틀 것이다. 그리고 20일 쯤 지나면 집집마다 귀여운 빨간 무, 래디시를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자리 마음자리’의 추억을 얹은 래디시 샐러드 한 접시가 나른한 봄날, 상큼한 위로가 되길 바라본다.
글 고우정 | 사진 임다윤
+ 보너스 컷 ^-^이 사진을 보며 나눔이란 정말 거창하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언제나 ‘내곁에 있어줘서'(로 추정^^;)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나눔에 대한 의미를 묻는 그 순간, |